기린을 만나는 법
기린을 만나는 법 / 오석균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파란시선(세트 0014) / B6(신사륙판) / 112쪽 /
2017년 9월 15일 발간 / 정가 10,000원 / ISBN 979-11-87756-09-5 / 바코드 9791187756095 04810
신간 소개
어떻게 불어도 그대 곁으로 흐르는 바람
오석균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 <기린을 만나는 법>이 2017년 9월 15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오석균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자랐으며, 1996년 <문학 21>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기억하는 손금>이, 수화책으로 <프리미엄 수화>(공저)가 있다. 현재 속초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다.
<기린을 만나는 법>은 요컨대 ‘그대’를 향해 부는 바람의 연가곡이다. 시인이 쓴 구절을 그대로 옮겨 적자면 이 시집은 “어떻게 불어도 그대 곁으로 흐르는 바람”(「직지사 가는 길」)이다. 보라. 시집의 어느 면을 펼쳐 보아도 바람은 분다. 그 바람은 ‘핏줄을 따라 쉬엄쉬엄 비탈길’을 올라(「알약 한 봉지」) 저 ‘미시령을 넘어’(「고장 난 햇살」) 시인이 살고 있는 ‘영랑호’에 도착한 “빈 바람”이다(「저녁 밥상을 차리며」). 그 바람은 “그냥 툭 치고 간 것 같은데” “무지 아프다”(「꽃 지는 날 2」). 왜 그러한가. 일단 “시간은 바람처럼”(「가을 그리고 낙엽」) 흐른다. 바람은 혼곤한 새벽잠을 깨우고(「단추를 달며」) 오후의 햇살 또한 “바람을 타고”(「잠자리」) 흐른다. 그러나 “지워진 기억 사이로”(「잠자리를 만나는 법」) 오가는 바람은 “한쪽으로만 익숙하게 흘러”(「화진포 가는 길 2)간다. “지난봄 스치던 바람”은 가을 ‘억새밭’ 사이로 여전히 불고(「가을 멀미」) “화암사 유월 밤바람은 아직 차”갑고(「나무 반딧불」) “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울음소리”는 언제나 겨울이다(「겨울이 오는 소리」). 그러니까 바람은 어떤 기억에 매여 있고 어느 한곳에서 불어오고 불어 간다. 시인은 그런 바람을 따라 “오늘은”, 아니 실은 오늘도 “어디까지 걸어가 본다”(「가을 당신」). 그곳은 때로 ‘사천항’(「사천항에서」)처럼 특정 지명이 적시된 경우도 있지만, “그대 냄새”(「기린을 만나는 법」)의 출항지이며, 그런 맥락에서 그대가 예전에 있었고 지금 있고 앞으로 있을 혹은 있어야 할 곳이라면 “어디”이든 모든 곳이며, 세상 곳곳에 편재하는 그곳은 “어디”이든 “아린 삶을 증거”한다(「파를 썰며」).
그래서 이 아름답고 안타까운 바람의 연가곡은 “바람보다 먼저 그대 사랑한 소나무 둥치 사이”(「안목항에서」)를 지나 “종로 3가 지하철역 오후 5시 40분”(「바다가 설악에게」)에도 “가난한 마음들”이 모인 “광장”에도(「파를 썰며」) 흐르고 스민다. 이런 바람을 두고 그리하여 “네가 봄이다”(「개나리」)라고 말해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처음은 아니었으나” “가장 멀리 기억하리”(「등 뒤에서」)라는 이 시집의 마지막 문장은 “길마다 늘어선 하얀 손들”(「기린을 만나러 가는 길」)을 향한 순정한 결의이며, 어쩌면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의 모두일 것이다(「양파를 썰며」).
추천사
여기는 비가 오지 않는 나라 온 땅이 투서로 가득하다 기린을 만나러 떠나는 밤 한쪽 팔이 없는 아저씨 손가락에 물을 찍어 거울에 쓴다 자꾸만 내려야 할 곳을 찾는다 아무 역이나 내려 개찰구에 쭈그려 앉아 기다린다 국물이 참 따뜻하다 구부러진 아침 길이 꽃 아래 길게 눕는다 정녕 아프지 않고 괜찮을까 매번 발밑이 없다 그냥 멍하니 울다 잠을 깨곤 한다 아침저녁으로 챙기는 작고 예쁜 알약 스무 개 서서 꾸는 꿈을 들여다보는 것 가끔 새소리를 따라 할 수 있기를 내 얼굴이 맑다며 다가와 도를 말해 주는 사람 하루를 걸으면 이틀을 앓는다 닫힌 문 앞 그대가 운다 오늘 하루 마지막 밥상 정작 물어야 할 것은 잊어버리는 것 애인 같은 마음이었을까 밥솥을 열면 슬픔도 뜸이 들어 있을까 지는 꽃도 그럴까 한밤중에 일어나 서랍을 연다 손이 있다면 참 예쁠 텐데 천 개의 학을 단숨에 그려 보던 밤 가장 멀리 기억하리 물구나무서서 시를 외울 것 덜렁거리던 단추 그림자가 춥다 가난한 마음들 광장에 모여 점점이 앉아 있다 이월 눈은 결코 녹지 않는다 마르기 전에 눈감았으면 날은 이리 좋은데 나비 하나 날아 하늘이네 아주 잠시 머물다 떠나간다 머리나 깎고 가라며 비 지나간 칠월의 어깨를 이끄셨나 보다 겹쳐진 생의 이면들 온종일 일렁인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서 나무 냄새가 났다 남자는 나무처럼 늙어 간다 한쪽으로만 익숙하게 흘러가는 바람 늘 한두 개씩 놓고 나간다 무지 아프다 나도 없고 지금도 없겠지만 오늘도 당신이 그립다 네가 봄이다: 나는 다만 시인의 문장들을 옮겨 적을 수밖에 없었다. 오래도록 쓸쓸하고 고요할 생에 감히 경의를 표한다.
―채상우(시인)
‘그대’라는 시어가 밟히고, ‘떠나감’이 느껴지고, 이 떠나감이 ‘죽음’과 만나는 것 같다. 그가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 비가 오지 않는 나라에서 빗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 그가 ‘쪼다’ 같은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 어쩌면 그것은 ‘그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감정이 동일한 무게로 평생 시인을 짓누르지는 않을 것이다. 몰아치고 있는 관성이 지금 현재 그만큼 지독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불어도 그대 곁으로 흐르는 바람”처럼 말이다.
오석균 시인의 마지막 시편에서 ‘그대’는 떠난다. 시인은 ‘그대’의 “허한 등판”을 쳐다본다. 생전에 단 한 번도 쓰다듬어 주지 못한 “허한 등판”. “허한 등판”은 “굽고 더 굽어져” 있다. 굽어진 등을 드러내 보이며 그대는 떠난다. 그대가 떠나는 날은 몹시 추웠나 보다. 추위가 ‘그대’의 체온을 잡아먹는다. 홀로 떠나는 그대. 그 등을 오래도록 쳐다보는 나.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는 나. 어쩌면 이 시집은 ‘그대’ 때문에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대를’ 핏줄에 새기기 위하여.
―문종필(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저자 약력
오석균
서울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자랐다.
1996년 <문학 21>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기억하는 손금>이 있으며, 수화책으로 <프리미엄 수화>(공저)가 있다.
현재 속초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다.
시인의 말
한 명의 시인이 하나의 정부라네
고향도 잃은 사람이 정부는 무슨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비용이
한 권의 시집을 내는 비용과 비슷하다네
그러면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아침밥을 차리며 13
벼랑 14
저녁 밥상을 차리며 15
단추를 달며 16
건망증 18
서랍 정리 20
취한 사랑 21
전복해물탕 22
아침에 눈을 뜨면 24
가을 멀미 26
가을 그리고 낙엽 27
비 오는 날 28
겨울이 오는 소리 29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며 30
고장 난 햇살 32
속초 해변에서 34
알약 한 봉지 36
제2부
기린을 만나러 가는 길 39
기린을 만나는 법 40
잠자리 42
잠자리를 만나는 법 44
양파를 썰며 45
문 앞에서 46
산을 오르며 48
산을 내려오며 50
개나리 52
설악 가는 길 53
바다가 설악에게 54
파를 썰며 56
사천항에서 58
죽는 것 59
길은 60
제3부
가을 씀바귀 63
가을 당신 64
노인 요양병원 66
어릴 적 68
얼마나 늙어지면 냄새가 날까 70
설날 아침에 72
숙제 74
황혼을 위하여 76
가을 바다 78
흑백사진을 보며 80
아야진의 밤 81
안목항에서 82
자리 찾기 84
제4부
직지사 가는 길 87
지는 꽃을 위하여 88
화진포 가는 길 1 89
비 젖는 나무 90
꽃 지는 날 1 91
꽃 지는 날 2 92
나무 반딧불 93
화진포 가는 길 2 94
대나무 밭을 지나며 96
등 뒤에서 98
해설
문종필 어떻게 불어도 그대 곁으로 흐르는 바람 99
시집 속의 시 세 편
기린을 만나는 법
문득 불어온 바람에 그대 냄새를 맡는 것
골목을 돌아서다가 한없이 긴 목을 발견하는 것
엉거주춤한 다리와 슬픈 눈을 들여다보는 것
한 눈씩 감겨 입 맞춰 보는 것
눈길을 좇아 슬픔의 강을 건너는 것
강물에 젖은 옷을 입어 열병에 걸리는 것
옆에 서서 다리를 대어 보는 것
쉬지 못하는 다리를 거쳐 간 길을 밤새 불러 보는 것
서서 꾸는 꿈을 들여다보는 것
꿈길에 가로등이 되어 있는 것
먹는 입 모양을 따라 해 보는 것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는 것
어제를 비워 나를 향하게 하고
오늘을 채워 그를 바라보는 것
둘만의 언어로 보고 싶다 말하고
말한 만큼 뛰는 심장 소리를 들어 보는 것
둘의 심장을 맞대어 보는 것
그 결에 설풋 잠이 드는 것
그대 주변을 타고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듣는 것
그 강을 타고 돌아오는 것 ***
가을 당신
남들은 치매라 하지만 난 망각이라 한다
밀려오는 어둠에 새까매지는 게 아니고
잊고 싶지 않은 그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삶의 일상마저 기억 밖으로 밀어내는
잃고 싶지 않은 것과의 간절한 사투
같은 하루가 또 반복되어도
기다리던 사람은 오지 않고
기다리는 나만 추억 속에 남아
오늘은 어디까지 걸어가 본다
아침을 몇 번 먹었는지 이름이 뭔지
어디 사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그런 것들이 어찌 바람을 기억하며
별빛 환한 어둠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목소리를 찾아 나서다 이름을 잃고
땀 젖은 손깍지를 생각하다 길을 잊지만
이승에서 비껴 나가기 전
단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마지막 풀어헤친 가슴의 슬픔
떠나간 발소리 들으려 종일 열어 둔 창으로
가을비 낙엽 대신 들어와 앉고
홀로 입술 깨문 채
가을만이 비에 젖고 있다 ***
가을 씀바귀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요양병원 밖에서 계절과 만난다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데
순서 없이 잃어버리고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엊그제는 틀니를 잃어버리고
틀니를 해 주고 죽은 둘째 아들도 잃어버리고
통장 돈푼을 몰래 가져간 큰아들도 잃어버리고
세어 버린 씀바귀만 한 줌 들고 서 있다
공원엔 햇살이 오락가락하고
바람은 구름 뒤에 숨어 흐르는데
잊혀지지 않는 이름 하나 저 풀뿌리로 남아
손잡아 이끄셨나 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열어 본 까만 봉다리
시들고 말라 가는 그대의 육체
가을비는 토닥토닥 흘러가는데
이것 좀 무쳐 주고 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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