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3. 27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보세요.”
돌이킬 수 없거나 되돌리기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주위에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기억이 누구나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대학 학과를 정할 때나 심지어 결혼문제에 대해서도 경솔하게 결정을 내려 평생 후회하기도 한다.
타투도 이런 예의 하나 아닐까. 스무 살 무렵 왠지 멋있어 보여 순간적인 충동에 팔뚝이나 어깨에 큼직한 문신을 새겼는데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며 점점 부담스러워지다가 어느 순간 ‘그때 참았어야 했는데...’라고 입술을 깨물면서 피부과를 찾게 된다. 여러 차례 레이저 시술을 받느라 문신할 때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들였음에도 자세힌 보면 흔적이 남아 있어 더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어떻게 문신은 한 번 새기면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걸까.
▲ 문신을 새기려면 바늘로 피부를 찔러 틈을 낸 뒤 안료를 진피까지 침투시켜야 한다. 1888년 제작된 일본 목판화로 타투 시술을 받고 있는 게이샤가 손수건을 물으며 아픔을 참고 있는 장면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피를 보면 진피까지 다친 것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피부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피부는 겉에서부터 표피, 진피, 피하조직 이렇게 세 층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피부는 표피에서도 가장 바깥층인 각질층으로 납작하고 딱딱하게 된 죽은 세포로 이뤄져 있다. 각질층이 떨어진 게 각질(비듬)이다. 우리 몸에서는 매일 1.5g의 각질세포가 떨어져 나온다. 방을 쓸면 모이는 집먼지의 상당 부분이 바로 각질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각질이 떨어져도 피부가 멀쩡한 건 표피 맨 안쪽의 기저층에서 줄기세포가 계속 표피세포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안쪽의 표피세포가 위로 밀려 올라오면서 각질화돼 결국은 떨어져 나갈 때까지 한 달 정도 걸린다. 따라서 표피에 문신을 새긴다면 길어야 한 달이다. 물론 이런 일은 불가능하거나 무척 어려운데 표피의 두께가 0.1m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표피 아래가 진피로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두께가 1mm 내외다. 진피에는 표피와는 달리 모세혈관이 분포한다. 즉 찰과상을 입어 피가 나면 진피까지 다친 것이다. 문신을 새길 때 피가 나는데, 이는 문신 안료가 진피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는 말이다.
▲ 문신을 새길 때는 안료가 진피까지 들어간다 / 사진 GIB 제공
표피와 진피는 어쩌다 보니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지만 태생이 다르다. 즉 발생학의 관점에서 표피는 외배엽에서 유래한 반면 진피는 중배엽에서 왔다. 문신 안료에 물든 진피세포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표피로 넘어가 각질화돼 떨어져 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옛날에는 진피를 도려내지 않는 이상 문신을 없애지 못했다.
피부과 레이저 기술이 발전하면서 문신에 물든 진피에 레이저 펄스를 쏘아 진피세포를 터뜨리고 문신 안료도 잘게 쪼갤 수 있게 됐다. 안료 파편은 진피를 떠다니다 인근 림프관에 쓸려 들어가 배출된다. 이 과정으로 한 번에 문신을 다 없앨 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차례 시술을 해야 하고 그럼에도 안료를 완벽하게 없애기는 어렵다.
▲ 피부의 단면을 도식화한 그림으로 위에서부터 표피(epidermis), 진피(dermis), 피하조직(subcutis)로 이뤄져 있다. 표피세포는 한 달 주기로 교체되는 동적인 구조이고 진피는 세포들이 오래 제자리를 지키는 정적인 구조다. / 위키피디아 제공
대식세포 죽어도 후임자가 바로 식작용
그런데 놀랍게도 구체적으로 진피의 어떤 세포에 문신 안료가 들어가고 어떻게 시술한 자리에 수십 년 동안 그대로 있는가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다. 학술지 ‘실험의학저널’ 최신호에는 문신의 미스터리를 규명한 논문이 실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피에 있는 대식세포(macrophage)가 문신 안료를 머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식세포는 선천면역계의 구성원으로 몸에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외부 이물질이나 세포 찌꺼기를 아메바처럼 세포 안으로 끌어들여 처리하는데 이를 ‘식작용’이라고 부른다. 즉 문신 안료를 외부 이물질로 인식해 잡아먹기는 했는데 이를 분해할 효소가 없다 보니 그냥 머금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대식세포는 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는가.
흥미롭게도 진피에 자리를 잡은 대식세포는 죽을 때까지 머물며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팔뚝에 문신을 하면 진피에 있는 대식세포가 안료를 먹은 뒤에도 일정 범위 안에서 계속 보초를 선다. 그런데 이 범위가 너무 좁아 우리 눈에는 한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시간이 지나도 문신 모양은 그대로다.
▲ 진피에 독소를 처리해 대식세포를 모두 죽여도 문신은 사라지지 않는데 혈관에서 대식세포가 바로 보충돼 문신 안료를 먹고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문신이 평생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 ‘실험의학저널’ 제공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면 손상이 누적되고 결국 대식세포는 세포사멸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죽는다. 그 결과 지니고 있던 문신 안료가 밖으로 나오는데 미처 림프관으로 배출되기 전에 새로 투입된 대식세포가 얼른 잡아먹은 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혈관 속을 돌던 단핵세포(monocyte)가 주변 조직에서 대식세포가 부족하다는 신호를 포착하면 혈관을 빠져나와 대식세포로 분화해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다. 한 달이면 표피가 싹 바뀜에도 늘 같은 피부로 보이는 것처럼, 진피에서 이런 다이내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문신은 그대로인 이유다.
이번에 문신의 미스터리를 밝힌 프랑스 면역학자들은 사실 처음부터 문신을 연구하려던 게 아니었다. 이들은 진피에 분포하는 면역세포의 실체를 규명하는 연구를 해왔는데 우연히 생쥐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피부색이나 털색은 멜라닌이라는 색소에서 비롯한다. 표피의 기저층에 존재하는 멜라닌세포는 멜라닌을 합성해 멜라닌소체라는 과립에 담아 내보낸다. 표피세포나 털(피질)세포에 멜라닌소체가 들어가면 피부나 털이 색을 띤다.
그런데 생쥐의 귀 진피에 있는 면역세포를 조사하다 멜라닌소체를 머금은 대식세포를 발견했다. 쥐의 피부는 털이 빽빽하기 때문에 멜라닌세포가 만든 멜라닌소체는 대부분 털로 가고 따라서 피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귀에는 털이 없어 만들어진 멜라닌소체의 일부가 진피로 넘어가 대식세포가 먹은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이 과정을 규명하다가 ‘그렇다면 문신 안료도?’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진피에는 다양한 면역세포가 분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그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생쥐의 꼬리 진피에 타투를 한 뒤 조사한 결과 특정 유형의 대식세포(왼쪽)가 안료(녹색)를 머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유형의 대식세포(가운데)나 수지상세포(오른쪽) 내부에는 타투 안료가 없다. - ‘실험의학저널’ 제공
연구자들은 이번 발견이 레이저 시술로 문신을 지울 때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즉 레이저 펄스에 대식세포가 죽고 문신 안료를 토해냈을 때 대식세포가 바로 보충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안료가 배출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빨리 이뤄져 경솔한 문신으로 인한 맘고생이 좀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석기 /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