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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7회 백년산행 2012년 1월1일 {신년산행}~자유로운 영혼 이상세계 명품
임진년 <흙용>의해 / 2012.. 1월 2일 계방산 산행후기
옹달샘.
내나이 오십하고도 다섯을 넘어서내....
눈물이 난다~ 눈물이난다.
어느 날인가 선대로 부터 전해들으며 흘려버린 이야기 괜스리 눈물이 난다던 그말.
망각의 눈물일까!
세월의 강물일까!
그말에 동의할수 없었든 나이가 나에게도 있었던가 십다.
부모는 쉬 자식의 마음을 해아리나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함은 내리사랑이라는 자연의이치요 순리이다.
그시절 남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고 또 감추고만 살았을 선대의눈물을 지금에서야 돌아보개 되니말이다
오죽하면 효자는 하늘이 낸다 하겠는가.
요즈음 들어 자주 생각하게 되는말 아니 내 스스로에게 던지는 고언은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 겄이다.
생의무게!마음의 무게가 회한으로 남아 가벼워진 눈물샘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우리로 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고있는 달빛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그 달빛을 따라 먼 우주로 향하개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실예로 달은 지구로부터 해매다 수cm 이내의 거리를 벌리며 아주 조금씩 지구로 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멀어져버린 달의 중력이 사라지면 지구는 혼자 살아갈수없는 행성으로 변할 겄 입니다.
아마도 하나의 축이 사라진고로 현재와 다른 불규칙한 자전 주기를 따라 몹시 흔들리는 별이되고 말겠죠.
이름하여 달의 몰락 입니다.
우주의 분명한 이치는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존재한다는 것 입니다.
그사이로 시간과 공간의 차이많이 있을 뿐이죠.
마치 우리내 인생길과 같이 말입니다.
20 여 년전 방아다리 약수터의 추억이 새삼 떠오르고 ...
백두대간상의 독립지맥* 오대산 두로봉에서 분기한 서남구간 능선 끝자락
척천리 마을 약수터...
운두령 표고<1089.M>
계방산의 산세는 육산으로서 능선 오름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터라 산행길 어려움은 없고 정상은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계방산 산록의 동남쪽 능선 끝자락 하산길인 척천리 산중 마을에는 지금은 널리 알려지고 유명해진 방아다리 약수가 숨겨진듯 자리 잡고 있다. 속사리 마을에서 진부리를 넘어서는 이곳 산중 지름길인 가리치 고개넘어 계방산의 동측이자 오대산 국립공원의 서쪽 마무리 능선자락 사면이 마무리 되어지는 위취이다.
이 약수는 필자가 25~6년전에 줄겨 다녔든 오지여행의 일환으로 각 지역을 두루 찿아들다 우연히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로서는 귀하디 귀한 자가용 차량 이엇든 <포니1>애마를 몰고 비포장도로 비좁은 흙길을 사정없이 달려와 산중속 저무는 하루를 쉬어가기 위한 숙영지 안전지대를 물색 하든중 반가운 마음에 찿아들어 하루를 묵고 새벽아침 약수터 주변 풍경에 반해 하루를 더 묵어 왔든 오래전 추억의 장소 이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무명지 이엇든 이 지역은 지난 추억을더듬어 보건대, 초라한 지붕을 이어 덥은 움푹내려않은 약수터의 좌측 숲길 안쪽으로 두어채의 소박한 민박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넓거나 혹은 좁은 방, 방, 마다에는 절대적으로 병을 고치고자 하는 환자들이 실타래처럼 막연한 소문을 따라 찾아들어와 머물며 몆날을 묵어가든 민초들의 민중병원 같은 곳이엇다.
그때 전해들은 방아다리 약수의 효능은 피부병과 위장병에, 그리고 눈병에도 탁월하다는 것이었고, 그로인한 약수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약수를 받아마시기위한 투숙객들이 줄을서서 기다릴 정도 이었고, 어떤이는 귀한 약수를 받아 연신 눈을 씻어내며 눈병이 낮기를 소망하는 이도 보였다.
그곳 숙영지에서 약수로 지어먹은 밥은 파란빛이 은은하고 다소 고들거리는 고수밥이었는데 밥맛의 차이는 없었든 것으로 기억 되어진다.
방아다리라는 지역명은 이곳 약수계곡 지역 형세가 디딜방아 모양세를 닮아 그리지어졌다 하고, 1998년도에 이르러서는 한국 관광공사 선정, 국내 7대 명약수로 지명되기에 이르러,그효능을 인정받은 보물같은 약수터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현재에 이르러는 여러차례의 드라마 촬영지로서도 그 명성을 드높인 까닭에 고요한 숲속길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인근에는 약 20 여호의 가구가 민박집을 운영하며 살고있다 하니, 필자가 다녀온 세월의 무게가 새삼 스럽기도 하다. 문헌상으로는 1910년경 경남사람인 <이명호>라는사람이 지독한 위장병으로 좋은약수를 찿아 해매던중 현몽으로 이곳 약수를 점지받아 발견하였다는 설과 원주민 아낙이 움푹파인 암반터에 나락을 넣고 방아를 찢다가 구멍이 뚤리면서 약수가 샘솟앗다는 설 등이 전해지는대 이러한 연고는 지역명칭의 또다른 유래를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산당이 싫다던 승복군의 이야기~
이곳에서 반공소년 이승복의 생가는 넘어온 가리치 고개를 되 넘어서서 계방산아래 속실교를 건너면 마을초입이되는 윗 삼거리 우측길 속실계곡 약2KM 전방 분지터에 자리잡고있으나 당시 초라할 수밨에 없든 옜집의 건물터를 죄외한 산중집의 마당과 주위의 공터가 현제 사유지로 되어있는 까닭에 기념비적 시설확충과 관리는 엄두를 내지 못한채 이제는 녹슬어버린 시대상의 아픔으로남아 반공 이대오르기의 산물로만 그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옜든, 논란의 여지를 남긴 부분을 떠나 어린 소년의 처참한 죽음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듯이, 지난 시절의 슬프고도 처참했든 시대상의 진실앞에 가여운 연민만이!!........
당시 60년대 후반기와 70년데 초반에는 이러한 공비출몰이 잦은터라 산중 주민 소개령이 진행중이엇고 승복군의 집
또한 그대상 이었을터, 좀더일찍 이사를 서둘럿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슴니다.
인물 이승복은?
1959년도 12월9일출생{음력 8월10일} 당시<9세>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 출생.
1967년 3월2일 <8세>계방산 분교입학.
1968년 12월9일 2학년 재학중 공비잔당에 의해 피살
68년도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한 120여명의 공비잔당이 북으로 도주하는과정에 이곳으로 숨어들어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36곳을 단검에 찔리고도 살아남은 그의 형 <이학관>당시나이15세 에 의하여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사실이며,
이군가족이 살든 계방산 계곡 원터에는 원형을 그대로 지어 복원하였고, 생가 가옥면적7평에 700 여만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하나, 필자가 하산길에 그의집을 확인한바, 그 모습은 많이 소원 한듯한 모습 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이승복의 기념관이 이곳으로부터 약4~5km거리 속사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전시관 옆으로는 이군이다니던 속사초교 계방분교가 지금도 향학 중이며 그 기념관 뒷동산 양지녁에는 승복 일가의 무덤이 모셔져 있다한다.
※사건개요_울진 삼척지구로 침투하여 토벌중이든 무장공비 잔당이 백두대간 태백산맥을 통해 북으로 도주중 먹을것을구하기위해 민가를 찾아 배회 하다 당시 외따로 떨어져살든 승복군의 집이 표적이 되고 말았다. 때마침 이웃의 이사를 돕기위해 집을비운 이군의 아버지와 할머니를 제외한 남은식솔 4명이 그들의 거침없는 손길에 의해 처 참하게 살해된 사건이, 미확인된 내용의 전말이라 하겠다.
오래전 산화한 어린 영혼의 죽음앞에 소 영웅이라 해야할지 단순한 운명이라 해야할지 그저 산길 나그내 방문객 으로서 조용한 예의를 같추고 돌아볼 밖에.....영면 하소서!! 그 처참한 참변 속에서 승복군의 형은 살아남아 생존하였다는 기적같은 사실을 전합니다
현제 그자리에 들어선 옛집의 형태는 살아남은 그의 형이 참여하고 고증을하여 지어진 집이라 합니다.
오대산맥의 이해...
오대산 비로봉<1563.4m>- 계방산<1577.4m>-지맥간 직선간거리-약15km
운두령고개<108.9m>보래령- 보래봉- 회령봉 {오대산 지맥군 형성}
오대산 5대봉우리
동대산_두로봉_상왕봉_비로봉_호령봉 5대봉이 오대산 연꽂의 형상을 만들고 그 연꽂잎 중앙에는 명산 대찰인 상원사가 자리한다.
남녁의 대관령을 지나온 백두대간 능선이 선자령 눈밭의 평원을 건너 이곳 진부에 이르러 그 여맥을 잠시 주춤 거리는대 동해의 주문진을 향하는 길 진고개 64번 국도를 좌우로 가르며, 그 우측이 지금은 심한 통제로 찾아들기 어려워진 소황병산을 지나면서 강릉지역 소금강 계곡으로 유명한 노인봉이 고개 마루금을 이루고, 좌측으로는 대간 연결 구간이자 오대지맥의 시작점인 동대산을 올라서서 북진하는길에 오대산 북측 정점 구간인 두로봉의 두로령을 지나 멀리 홍천의 구룡령을 건너서는 모습이 선명하며 그 두로령 좌측 서역을 향하는 능선길은 오대산 지맥군을 형성하며 계방산, 운두령, 보래령, 회령봉,등 지난시절 탐방을 완료 한바있는 서역능선을 향하여 찾아가기 바쁜 능선길을 이룬다.
이들 산맥의 서,남,계곡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강기맥의 한축을 이루며 남한강의 지류, 북측 발원지가 되기도한다
동학의 혁명이 깃든 운두령 옛길...
50번국도인 영동고속도로 속사ic에서 속사리 북측 끝지역 계방산의 서쪽 능선을 가르는 고개길로 해발고도<108.9m>의 국내에서 두번째로 높은 고개길이다.
이지점에서 좌측으로 서진하는 능선길 약6km위취에는 지난겨울 산행길의 여운이 아련한 보래령 옜 고개길이 봉평면에서 북축 홍천군 내면의 창촌리를 향하는{ 레젼드 로드}를 형성하며 멀리 내린천변 인제군을 향하여 북진하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고개길의 산간도로 정점에는 보래령과 운두령길이 내면의 자운리에서 합류하개되는대 인근 창촌지역의 문암산은 금년여름 {오낼산행}트래킹 코스로 넘어선바있는 문암동의 생둔 계곡길이 장마철 넘쳐나든 계곡물로인하여 신발을벗어들고 여울을건서서 하산길 우중에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문암교 다리인근 계곡변에서 삼겹살 파티를한 여름 날 추억이 뭍어나는 지점이 되겠다.
이지역 오대산과 계방산정 산 능길의 서북구간 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내린천의 원류가되기도한다
임진년 <壬辰年> 검은색 임 과 용을의하는 진 {검은용의 해} 계방산 산행후기..
임진년<흙용>의해 2012년 1월1일 산행
가시거리 100 여m의 계방산 산행길, 서리꽂 만발한 능선길을 걸으며 ~~
상수리나무,물푸래나무,발달나무,자작나무,활엽수 군락자로 이루어진 능선길을 걷는다...
바람이 넘는길 운두령 옛고개에 내려섭니다.
잔뜩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서울을 출발한 시간이 오전07시55분 눈덮인 산간도로인 영동 고속도로 속사lc를 빠져나와 이곳에서 약5km거리의 속사리 계방산 아래마을 들머리인 삼거리의 하산 지점을 확인하고 남겨진 고개길 3km남짖의 굽이진s자 오름길, 운두령 정상을 향하여 버스는 힘겹게 올라서기 시작합니다.
10 여분을 힘겹게 올라선 운두령 옛길은 해발고도<1000>고지를 막 넘긴 고산 고개길인지라 왠만한 산행길의 정상을 웃도는 높이이다 보니 고개라 부루기도 어색할 지경입니다.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넘는 고개길로는 남한 최고높이의 고개길로 등제되어 있다고 하니, 혹여 그런 연유로 탐방전의 미답 상태에서 단순한 마음에 더 올라설 길이 남아 있겠는가 하는 섯부른 판단은 일단 유보하심이 마땅하다 하겟다.
계방산 서리꽂 겨울정원이 열리는 등로기점에서 출발하여 <1166>봉 고지를 지나면서부터 연하게 피어오르던 짖은 안개속 상고대 설꽂이 제법 영글기 시작하는대 추위속에 살필 여력도없이 모두들 서둘러 올라서기 바뿐 모습이다.
초입에 설치된 출입 통제선 고개길 사면의 가파른 나무계단길을 올라서고 나서부터, 고산,고행의 원칙인 가파른 능선길의 예상과는달리 계방산길은 완만한 오름과 적당한 내림의 휴식을취하며 걷기에 편한 육산 능선길 인지라 초행자도 안심하고 오를수 있는 겨울 설산의 명지답다.
필자가 오래전 두어차례 이산을 방문한 기억중에 산의 매력을 꼽으라면 오지의 특성을 그대로 잘 보전한 첩첩 산중이라 할만 하였으나 2012년 1월 오늘 다시 또 찾아들어 살펴보는 그 느낌은 안으로 감추어 두었든 지난날의 고요하고 순박햇든 순수한 모습을 많이도 벗어버린 탓에 긴 아쉬움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우찌 그간 지난 10 여년의 세월을 이곳인들 비켜 가겟는가!! ...........
산길은 고개를 두어구비 넘어서며 제1핼기장과~ 제2핼기장을 지나면서 설경길 정점을 이루는 모습인대,초입 오름길변
의 지나간 여름날 온몸을 뒤 덮었든 푸른옷을 벗어버리고 차렷 자세로 달관한체 빽빽히 들어선 상수리 나무 군락지로 인한 조망의 어지러움을 뒤로하고 올라선<1492봉>고지대 조망지는 알려진 그 명성을 때맞추어 흩날리기 시작하든 눈보라와 산안개에 가려져 능선길 북측으로 바라보일 삼봉약수 산인<가칠봉>과 구룡령길, 더 멀리로는 점봉산과 그넘이 남설악의 대청봉 능선이 그 실루엣 조차도 확인할수 없엇으며, 지척인 정서역의 운두령고개를 건너서 이어진 능선길따라 코앞으로 전개될 보래령과 회룡봉 능선과, 정상기준 정동방향으로 지척인 오대산넘어.노인봉 조차도 확인할수없어 모두 지난 산행으로 탐방 완료한 산행길의 반가움을, 가져간 나의 애장품인 딸국이의 앵글에 담아올릴 기대감에 찾아든 필자의 마음을 한없이 안타깝게 하기도 하였다.
그 아쉬움에 후미에서 서성이다 본진과 한참의 거리를 촬영의 미련으로 홀로이 남겨짐을 뒤늦개 인지하고 서둘러 눈보라 치는 계방산 정상의 모습을 스케치한후 아이젠 착용조차도 미루어둔체 많은 눈이 쌓여 미끄러운 경사지 하산길을 황급히 내려서는 길이다.
산정에서 하산길은 정상기준 정남코스인 광장 바로앞 나무계단길인 제1코스를 버려두고 비교적 완만하여 안전한 코스인 제2코스, 계방산 캠핑장과 이승복 생가터가 위취한 속실계곡 길로 이어 내려간다,
※ 제1코스길과 제2 코스길은 약2.5km 거리의 차이로 제1코스인 산 능선길이 짧기는 하나 겨울철 다소 급경사 지대로 어려움을 감수해야하는 부담이 따른다.
하산길 과정에서 필자는 1000m 고지 능선 길변에서 수령이 상당히 오래되보이는 야생 돌배나무 한 구루를 발견 하였는대 의아 스럽기 그지 없엇다, 왜?? 어떤 연유로 이 높은 상상봉에 유실수 나무가, 인근에 모목<母木>조차 확인할길 없는대,과실수로서는 치명적인 부족한 일조량과 고산의 부족한 산소량을 극복하고 이곳에 자라고 있는 겄일까! 아마도 10 여년전 내가 먹다버린 배의 씨방이 우연히 자릴잡고 자라난것은 아닐런지!!ㅎ 나무의 형세로 보아 연대는 한참을 넘는 듯 하니 그 옜날 또 다른 나의 우연한 행동인 흔적의 산물이라 할것이다!! ...
계방산<1577.4>m 12.5km_4시간 30분산행
산행지_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속실리/노동리 소재
산행코스_운두령_1496봉_계방산_고개삼거리_제2켐핑장_이승복생가_계방산삼거리 주차장
운두령~정상_4.8km 계방산 정상~이승복생가_5.4km 이승복생가~주차장약2km
다음카페 "오동추야"를 방문하여주신 애독자 님들을 위한 계방산 산행길 초행자 가이드...
『제 187회 백년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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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점/ 운두령 정상의 모습/전방 으로는 홍천군 의 내면을 넘어서는31번 지방도 길이되며
이지점에서 홍천까지의 거리는30km이다.{오전10시20분도착}
도로의 우측 사면 둔덕을 나무계단길 따라 오르게된다.<준비운동 10분후 출발>
나무 계단을 다 올라서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능선길 진입.
능선초입 약0.5k지점 의 풍경/오의진님.오일용님인증
여름 옷 벗어버린 겨울 나무의 어지러운 풍경으로 조망은 여의치 않고 ...
계속하여 편안한 능선을 이어가는 설원길이며 이정표는 계방산 정상을 안내한다/운두령1.2k지점
산중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친절한 안내도/이쯤되면 길일을 염려일랑
붙들어 매시라는 야그다.
그간의 평안함을 고 하고 제법 산길다운 면모로 접어드는 구간이 된다▲
이후 뭐 그리 대단한 고개길은 없으니 안심하길 바란다
드디어 능선길변 곳곳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얼음꽂 서리꽂***
아주 오래전 산행의 그 느낌으로 재연을 해봅니다.▲
이지점 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 하더이다
2012년 정초에 첮눈을 맞다!!!!!
제1 핼기장에서...
앵글은 멀리 산의 정북 방향을 향하건만 보이시는대로 짖은 고산 안개는 지척을 가리기조차 어렵기만 합니다
홍천군 내면 가칠봉 방향 ▲
1492봉 전망대 이산의 최고 조망을 자랑하는 지점답게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으나, 고산 운해의 바다가
펼쳐진 까닭에 북동방향 의 여러 명산군 과 파노라마, 거친 백두대간의 파고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안타
깝기만 합니다
이곳 지역은 동해의 바다와 내륙을 가르는 태백산맥의 영동과 영서를 넘나드는 고산 준령의 영향으로
언제고 비와 눈을 훝 뿌릴 준비를 하고있는 지형입니다.
바라보는 방향은 북진하는 백두대간 구룡령과/점봉산 방향이 됩니다.
<11시50분 도착>
오
동
추
야
!
!
1492봉 에서 계방산 정상가는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누군가는 먹다버린 과일의 주인이 되었을 터! 고산 능길가 의 돌배나무▲
<11시55분 도착>
아~ 계방산 !!
제2핼기장<12시3분 도착>
정상<12시15분 도착>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이분들! 나와전혀 생면식인 산우님 들이다.
나는기록을 위하여 애장품 딸국이를 들었을 뿐이고 님들은 일행이
사진찍는 줄루만 알고 열심히 내가원하는 바대로 따라 주었다는 사실.ㅎ
촬영이 끝난후 어처구니 없기는 피차가 일반 이었다는! 미안한 마음에
나는 나의 카페 주소를 알려주고 방문을 요청하였다.
연이어 찍겠다고 올라서는 수고에 죄송한 맴이 들기도 하였으나 어쩌랴
서로들 웃고 말수밖에 ...
나의 일행은 멀리서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할런지!!
홀로이 남겨지어 정상석과 탑신을 촬영하고 황급이내려설 마음만이 ~~
정상에서 바로 하산할 앞서 소개올린 제1 하산길의 나무계단모습.
시계는 멀리 동남 쪽 방향 오대산과 동대산 방향 이나 보여질 산 그림자는 흔적조차 확인 할길이 업고.
그래도 운해낀 겨울산의 그림자는 휘몰아치는 드센 바람따라 낭만이 넘실대는 모습 입니다.
하산길의 여로~~
하산구간의 거대주목나무
<12시30분 도착>
하산길변 주목나무 아래에서 일행과 조우하고 짧은 휴식을~
하루살이 때이른 우화처럼!
눈가루가 점점히...
헤이즈 현상으로
떨어져
내리며
전멸
합
니
다
!
줄을 서서 나란히 걸어 봅니다 /일부구간은 엉덩이 썰매구간이 앾300여M를 이룹니다.
임도길에 이르러 <1시35분 도착>
제2 자동차 야영장의 모습
마침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든 조난된 승용차 발견 열심히 견인을 해줍니다
<1시55분 도착>
승복군의 생가도착 /제2 야영장 아래 지척의 거리이고...
그 시절에 맞추어 오래된 영상물로 올려 봅니다.
김관용 고문님 인증 승복군의 비각 앞에서...
소년의 집 앞마당 전경/ 좌측 전방으로는 두엄더미를 형상으로 가족의 죽엄이 숨겨졌든 장소입니다
살아남은 친형의 고증에의해 원형그대로 복원된 그의집...
제1 야영장을 지나며 **
임도길 따라 2KM를 걸어 갑니다.
주차장이 있는 삼거리 마을 풍경 입니다.
집 마당 입구에서는 누렁이가 먼산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부짖고 있더이다.
<,삼거리 주차장2시25분 도착완료>
하산완료를 이룬후 신정연휴일 준비해온 떡국으로 만찬을 합니다 .
다소 덜읶은듯도 하였으나 이 추위에 배고푼 민심은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닌고로
다들 맛나게.어떤이는 두어그릇도 사양함 없이 후룩 후룩 먹어 치우기 바쁜
계방산의 때 늦은 중식시간을 마치고, 남겨진 하산길의 여운을 이곳 노동리 마을 설원들역에 뿌려두고
버스는 이내 서울을 향하는 시간 입니다 ...
2012년1월1일 산행기 명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