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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07 노아이야기
아 근데 이곳이 제게 너무너무 좋아졌습니다.
은혜스러운 말씀을 듣고 또 제 마음을 청소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한 시간을 제가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또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저보다 더 좋은 믿음과 더 맑은 영혼과 더 진실한 신앙을 추구하는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믿음을 가지고 저분들처럼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그게 이제 분위기네요. 영적인 분위기 너무 좋은 영적인 분위기가 저를 너무나 행복하게 하고 참 그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오래 머물고 싶은 만큼 그렇게 좋은 분위기를 하나님께서 유지시켜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또 하나 제게 참 좋은 것은 이 새벽 시간이에요.
이상하게 매일 똑같이 알람을 맞춰놓지도 않았는데 새벽 세 시만 되면 자꾸 깨요.
그래서 오늘은 새벽에 후두둑 후두두 뭔가 이제 비가 떨어지는 소리에 제가 눈을 떴는데 보통 서울이나 제가 머물고 있는 파주라면 그 그 시간에 눈을 떠도 눈이 떠지지가 않아요.
이렇게 다시 감기거나 아니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거나 아니면 어 오늘 하루 종일 잠을 설치셨으니까 피곤하고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텐데 다시 잠을 청하거나 하거든요.
근데 갑자기 이 후둑후둑하는 핏소리가 제 마음을 이렇게 두드리는 주님 음성처럼 들리는 거예요.
재훈아 나랑 이야기 하지 않을래? 그러면 갑자기 막 설레는 마음으로 해서 막 서둘러서 샤워를 하고 그리고 교회로 걸어오는데 머리가 하나도 안 아파요.
너무나 머리가 맑고 깨끗하고 교회에 들어오는데 막 설레는 거예요.
어저께도 주님께서
그 행복하게 하는 그 은혜와 말씀들을 주셨는데 오늘도 그러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용한 시간에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어떤 인간의 인간이 만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만드신 그 천년기의 소리만 들려오는 시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는 거예요.
주님과 대화를 하는데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감사하고 기뻤어요.
제가 왜 엘렌 화이 자서전에 보면 이분이 새벽 한 시에 계속 기도했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기도했다.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나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흐릿하고 이걸 몇 번 시도해서 반복하면 몸이 극도로 피곤하고 이겨내지 못하는 그래서 며칠 못 가는 거예요.
근데 왜 이곳에서는 가능할까? 똑같은 새벽이지만 첫 번째 공기가 다르고요.
두 번째에서 이곳에서 먹는 것처럼 제가 밖에서는 먹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조금 조금 먹는 게 계속 하시는 말씀이 내한테 적용해 보니까 다 맞는 거예요.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려 하시는지가 특별히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이런 시간이 필요한지 저는 이제 직접 체험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제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요.
이곳이 너무너무 좋아졌습니다. 내일이 이제 마지막 시간이라는 게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어서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기도 합니다.
네
어쨌든 이곳에서 여러분 다른 어떤 것보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행복한 분위기에 적고 하는 그것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꼭 만나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청소하시고 여러분의 영성을 회복해서 영적인 수신기를 회복해서 하나님과 계속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을 꼭 받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이 노하후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가고 있는데요.
오늘은 창세기 칠장을 좀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제가
계속 말씀드리지만 첫 번째는 노화를 준비시키는 것 방주를 준비시키는 이야기 그리고 오늘은 노화 홍수 이야기에요.
예 이 이야기가 끝나게 되면 이제 창세기에 이제 큰 텀에서 한 번에 끝나거든요.
다음 남은 이야기가 많은데 지금 이제 줄을 세워놓고 뭐를 선택할까를 이제 세 가지를 선택해서 여러분들에게 기별을 전해야 되는데 기도하면서 세 가지의 기별을 더 나누어 드리고 제가
이번 강의를 좀 마칠려고 합니다. 홍수 직전 세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꽉 제악으로 꽉 찬 세상이에요.
사람들이 마음속에 다 제악으로 꽉 차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게 이제 옛 뉴스를 보더라도 뭐 뭐 연쇄 살인사건 이게 전혀 기사가 되지 않아요.
그 시대에
끊임없는 범죄와 살인과 음란 음란과 부도덕이 판을 치는 그런 세상이에요.
거의 요즘과 같은 세상이라고 하면 되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 그래서 함부로 죄를 짓는 세상 그런 세상이 노아 홍수 전에 세상의 모습이었습니다.
근데 이런 혼란과 부패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기별을 전해야 될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오늘날 세천사의 기별과 같은 영원한 복음을 전해야 돼요.
그래서 첫 번째로 당시에 노화가 전한 기별은 제가 볼 때는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은 홍수로 멸망한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경고의 기별이고 죄를 탄핵하는 기별이었고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노화를 통해서 백이십 년 동안 짓고 있는 그 방주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신다고 하는 자비의 기별이에요.
예 새 천자의 기별 속에도 이 두 가지가 다 들어있어요.
이거는 창세기 삼장 십오 절에 들어있는 거예요.
심판의 기별과 복음 그러니까 이 두 가지죠.
그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다 담겨 있어요.
근데 당시 모든 세상의 기와 눈은 이 노아의 기별과 그리고 그런 노아가 전하는 그 기별이 어떻게 되어질까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당시에 노아의 노아의 삶의 일거수 일투족은 온 세상 사람들의 이슈였어요.
워낙에 큰 권능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노아가 하는 모든 것들을 다 이렇게 이제 눈여겨봤는데 근데 그러던 어느 날 노아가 육백세 되던 날 이때가 인류 역사 천육백오십육 년이 되던 해인데 무드셀라가 사망하고 그때 노아와 여덟 식구는 이제 홍수가 올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삶을 준비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해요. 하나님 무드셀라가 죽었다면 올해 이제
이 홍수가 심판이 올 텐데 다음 지시를 들려달라고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냐고 계속 지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겠죠 이런 내용이 그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모든 복음서라든가 하나님의 그 인도하시는 사역을 보면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방주 안으로 모든 먹을 양식을 비축하며 이제 홍수를 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져요.
그래서 노아가 말씀대로 방주 안에다가 모든 양식을 다 비축합니다.
그리고 이어 얼마 후에 띄워주세요.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에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내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는 지시가 떨어집니다.
근데 그때까지 비는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는데 그러나 노아는 이제 방주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노아는 광신자라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가운데 주목합니다.
한편으론 두렵기 때문에 예 오늘날로 하면 케이비에스 에스비에스 와이티엔 모든 방송국이 다 노화 방주에다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하고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전국에 보도하고 있었겠죠.
근데 노아가 당당하게 방주 안으로 들어갑니다.
비가 안 오는데로 비를 피해 들어가는 게 아니라 비가 안 오는데 들어가는 거예요.
근데 무엇 때문에 노아가 그렇게 행동했는가 이걸 주석했죠.
히브리 십일장 칠 절에 보면 노아는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때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해서 아직도 이 은혜가 부어지고 있는 이때 피난처를 구하도록 사람들에게 간절히 애소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근데 그들은 노아의 말을 배척하며 조소의 소리를 높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이제 완전히 이 노아가 마지막으로 애수함에 외치는 이거는 무엇이다? 셋째, 천사의 큰 외침 성령의 권세로 외쳐지는 큰 외침이에요.
이게 외쳐지고 난 후에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 기별을 받고 방주로 들어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정확하게 둘로 심판되어집니다.
누가 진짜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이고 누가 세상 사람인지 그래서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방주 밖에 있는 사람으로 나누어져요.
이것이 일요일 휴업령을 통해서 갈라지는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로 갈라지는 것과 똑같은 일이에요.
안식일을 예배하는 자와 일요일을 예배하는 자, 방주 안과 방주 밖에 사는 사람
영원한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창세기 삼장 십오 절에 말하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계속 이 얘기가 같은 패턴으로 계속 나눠지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근데 그때 이 갑자기 조롱하던 군중을 침묵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집니다.
노아가 막 이 기별을 외치고 난 다음에 딱 끝났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죠?
조롱이 멈추어지는 순간적으로 두려운 현상이 벌어져요.
갑자기 짐승들이 방주를 향해 쭉 이동해 들어오는 거예요.
사나운 짐승부터 온순한 짐승까지 조용히 방주로 걸어가는 듯이 보였다고 합니다.
급한 바람 소리가 막 들리며 사방의 새들이 날아오는데 그 수요가 하늘이 어두워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막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질서정연하게 순서를 다 지키면 들어가는 게 이렇게 해요.
방주의 문을 통해서 여러분 창세기 육장 십구절부터 이십 절, 칠장 이절부터 삼절 말씀을 보면 마치 노아가 짐승들을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아가 아니라 온 짐승들이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그 음성을 듣고
부조한 자를 보면 어떻게 나왔는가 하면 거룩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방류로 들어갔다고 하는 말이 나와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노아가 어떻게 세들을 모든 종류대로 인도하여 방주로 들릴 수 있을까요? 그거 없죠 그렇죠? 그 많은 수요를 다 잡아서 방주하더라 넣는 것은 어렵습니다.
근데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데 오늘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될지를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먼저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분의 계획과 방 방법을 따라 순종해서 하나님의 방주를 지어놓으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모든 구원할 존재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할 존재들을 거룩한 천사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방주로 인도하시는 거예요.
예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들어올 수 있어.
모든 존재들은 다 방주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짐승들은 들었잖아요
거기가 피난처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할, 구원 받을 존재들은 천사의 인도하심을 따라 방주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는 무어다 구원의 방주가 말씀대로 지어졌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정말 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하나 꼴 지어져 가고 있는지, 신자들은 정말 로아처럼 하나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정말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이 이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이 교회가 구원의 방수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거예요.
준비만 되면 하나님은 마지막 때 어떻게 한다 이 동물들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하늘의 천사를 통해서 진리를 갈구하며 빚을 찾고 있는 인근의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우리가 전하는 그 기별에 반응하여 이 교회로 인도되어져 돌아오는, 들어오는 기적적인 일이 벌어질 거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 이게 예언돼 있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큰 소리로. 노아가 마지막으로 경고의 음성을 바랄 때 바람이 불면서 성령의 바람이 불면서 모든 동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이 똑같이 늦은 비 성령의 바람이 불 때, 우리가 큰 소리로 경고의 음성을 외칠 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가며 우리가 그렇게 외칠 때 노아처럼 어떤 일이 벌어진다 이 광주 안으로 들어와야 될 모든 사람들이 그 구원의 기별을 듣고 천사의 인도하심을 따라 들어올 수 있다고 하는 걸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기별이 여기 담겨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짐승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놀라움으로, 어떤 사람들은 무서움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이걸 또 설명을 해야겠죠 철학자들한테 또 물어보는 거예요.
현인들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예 근데 헛수고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였다고 이거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푼 거예요.
그러면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멸망이 다가온다고 하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노화의 기별에 굴복하고 함께 방주로 들어갑시다 하고 들어가야 된다고 하는 게 우리의 보통 상식이지만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부조와 선자를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아주 강팍해졌기 때문에 이러한 광경도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져도 순간적인 인상 밖에 줄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은혜스러운 기별을 듣더라도, 어떤 하늘의 은혜를 받더라도 그것은 언제뿐이다 순간뿐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이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은 또다시 소란한 환락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서 그 두려움을 잊을 죄에 빠져버리므로 오늘날로 말하면 술, 마약, 게임, 온갖 음난에 빠짐으로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두려움을 없애버렸다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 계속적으로 내게 비추어 오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양심에 호소하는 그 성령의 음성 그리고 그 진리의 빛들을 오늘 우리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여러분, 이것이 정말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매번 이 진리의 음성에 침묵하고 매번 돌아서고 할 때마다 내 양심은 어떻게 될까요? 점점 더 무뎌지고 영적 감각은 둔해지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어둠의 속에 갇혀버리는 거예요.
이 노하우수 직전의 사람들처럼 여러분, 결국 신앙이 성장하고 자란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주어진 빛에 순종하며 살아간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우리가 이 주어진 빛에 매 순간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이제 이 한 가지를 생각해야겠죠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에 들려오는 어떤 빛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빛이라는 확신이 올 때 우리는 즉시 그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야 돼.
이게 경건의 연습이에요. 이 즉시가 안되면 다음에 순종할 확률은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빛이라는 확신이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망설이고 주저하게 될 때, 그 순간 우리가 순종하지 못할 이유가 그 다음부터는 생겨나는 거예요.
처음에는 수십 가지가 생겨나다가 더 지체되면 수백 가지가 생겨나고, 더 지체하면 수만 가지가 늘어나요.
그러다 우리는 결국 그 생각이 압도되어서 순종을 포기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그 어떤 빛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우리 양심을 통해서 확인할 때, 그때마다 우리는 두 번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즉시 그 음성에 순종하고 그 진리의 길을 따라갈 때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속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노아에게 이제 사절부터 십절 이런 말씀이 마지막으로 들려왔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40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제일
주변에서 쓰려고 했다. 그가 여호와께 자에 임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홍수가 땅에 있을 때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공수를 피하며 광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정신과 부정한 증신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노아가 임명하신 대로 한 수 둘씩 노아에게 나와 광주로 태어났으며 7일 후에 황소가 땅에
예 다시 반복해서 말하지만 방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믿음으로.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가 아니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에요.
예
근데 이제 중요한 거 하나 좀 알려드릴게요.
어떻게 우리가 홍수가 온다는 것을 그리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하나님 말씀으로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계속 이 결론만 들었잖아요.
어떻게 이걸 믿을 수 있을까? 당시에는 모든 진리를 시험하는 시금석인 성경도 없어요.
그렇죠
그러면 논쟁이 벌어지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거 그래서 계속 싸우는 거잖아요.
두 기별이 이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야.
홍수 온다는 거 그리고 방주로 들어가면 살 수 있다는 거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라고 노아는 주장하고 있었고 반대의 쾌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거 하나님으로 부터 온 말씀 아니야 계속 그걸 비판하고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 아닌 증거를 내는 거예요.
싸우는 거예요. 이게 이설과 진리가 근데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고 진리인가
좀 생각해보세요. 예 중요한 겁니다.
그것이 진리로 입증되려면 노아는 이미 주어진 진리로 그것을 입증해야 돼요.
항상 그런 거죠. 다시 말해 자신이 선지자임을 노아는 선지자거든요.
그 시대에 자신의 말이 진리임을 기존에 주어진 빛으로 입증해야 돼요.
근데 당시 시대에 가장 온전한 진리는 뭘까요? 그 시대 사람들이 볼 때 가장 온전한 진리는 바로 뭔가 하면 아담이 온전한 진리의 근원이었어요.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모든 기별을 가지고 전화했던 사람이에요.
그게 진리의 근원이에요. 예 아담이 신 하는 일은 아담이 하는 일은 아담이 했던 그 모든 기별들은 그 아담이 계속 천년 가까이 전했잖아요.
그렇죠 이거를 그 다음에 계승한 선지자가 누구다
제가 말씀을 드렸죠 누구다? 에녹이잖아요.
에녹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담 사후의 에녹이 똑같이 똑같이 계속 계속 아담이 했던 그 말을 계속 전하는 거예요.
예 에녹이 아담을 계승하는 선지자라고 하는 것은 그가 전하는 기별이 아담이 전하는 기별과 충돌하지 말아야 돼요.
다시 말하면 아담이 전해준 빛을 통해서
에녹이 선지자라고 하는 게 입증되어지는 거야.
대체 주관적이잖아요. 왜냐? 그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어 홍수 날 거야 하면 그게 무슨 니가 주관적으로 받았지 그게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냐고 의심할 수 있잖아요.
다시 말해서 그도 하나님의 창조와 타락과 창세기 3장 15절을 아담이 전하는 기별을 근거로 해서 계속 세상을 구원할 복음과 심판할 기별을 전해야 돼요.
창세기 3장 15절의 복음의 기별은 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고 창세기 3장 15절의 심판의 기별은 뭐예요? 두 무리로 나누어진다고 하는 거예요.
한 무리는 하나님 백성이 될 것이고 한 무리는 뱀의 후손이 된다라고 하는 거예요.
뱀의 무리는 어떻게 된다? 그러면 심판받는다고 하는 게 그 기별이잖아요.
그래서 심판의 기별과 복음의 기별은 창세기 3장 15절부터 계속 종말까지 내려오는 이 두물이라고 하는 거 이 심판의 기별에 빛이 더해지면서 엔옥에게 더 구체화되어지는 빛이 바로 뭘까요? 그 심판은 무엇이다? 홍수다라는 그가 죽을 때
내가 보내느냐 뭘 보낸다는 거예요? 심판 홍수로 구체화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빛은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 분명해지고 확대되는 거예요.
예 근데 에녹이 하늘로 올라간 후 에녹의 비열과 동일한 복음을 전하며 등장한 사람이 누구다?
노아예요. 아담의 기별에다가 더하여 에녹의 홍수의 기별을 막 전하다가 이 기별의 빛이 더해지면서 그 복음이 더 구체화 되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홍수전 남은 기간이 얼마다? 이제 백이십 년이 될 거야.
홍수의 기별에 더해지는 거예요. 더 구체적으로 이 날짜가 나오고 그다음에 너희들을 구원하기 하나님 백성들을 구원한다 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어떻게 한다? 구원한다고 하는 게 바로 뭐예요? 방주예요.
방주를 지어라. 그리고 그 지어진 방주에 머물면 어떻게 된다?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기별을 창세기 삼장 십오 절의 기별을 뚜렷하게 계속 계속 전하면서 명쾌하게 전하면서 그것이 더 구체화되고 더 디테일하게 계속 계속 하나님이 주신 빛으로 증거하는 거예요.
예 여러분 그래서 광주에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아담부터 시작해서 에녹을 거쳐 내려온 모든 기별의 빛이 어디에서 모아지는 거예요? 이 마지막 때 방주에 들어가야 된다고 하는 방주의 기별 속에 모아져서 증거되어지고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기별은 아담의 창세기 3장 15절의 빛을 믿는 사람들만이 그다음에 에녹의 홍수의 별을 믿을 수 있고 에녹의 홍수의 기별을 믿는 사람만이 노아의 방주의 기별을 받아들이며 방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정말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전하는 세천사의 기별과 안식일 진리가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창세기 삼장 십오 절부터 시작된 그 복음의 빛이
노라, 아브라함, 구약의 모든 선지자와 계수님 시대를 거쳐서 계속 이게 계속 계속 이게 현대 진리로 계속 그 시대의 진리로 계속 계속 증폭되면 더 빛이 확대되어졌어요.
각 시대 시대마다 더 확대되고 밝아진 모든 진리의 기별들이 다 모아져서 그 온전한 빛이 세천사의 기별이라고 하는 이 마지막 시대의 현대 진리로 담겨져야 온전한 빛이 되어 증거되어질 수 있는 거예요.
이것만 뚝 떼어서 설명하면 사람들이 그건 재림교회만 가지고 있는 진리예요.
이렇게 얘기를
갑자기 뚱딴지같이 안식일 지키면 망한다.
이것이 현대 진리라고 하면 누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복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마지막 시대에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기존에 주어진 빛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즉 예수님이 개인의 구주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결국 이 빛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게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에요.
그래서 이 기별은 기존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민노라고 공언하는 그 뭐야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 전해진 기별이 바로 뭔가 하면 세천사의 기별이었고 이게 바로 무슨 기별이다? 추수의 기별이었다고 하는 오늘 이 말씀을 앞에 우리 최 원장님께서 계속 말씀으로 계속 얘기해 주셨죠 이 믿음으로말미암는의의 기별이 바로 안식일 기별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거예요.
예 다시 말하면 창세기 3장 십오 절에 나온 그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 진리를 계속 하나님이 주실 것이고 그 진리의 빛을 인도하여 따라가는 사람들이 결국 어디로 간다? 광주로 들어가는 거예요.
예
그래서 결국에는 이 세천사의 기별은 성경 전체를 통해 풀어질 수 있는 다시 말해 성경 전체를 통해 풀어줄 수 있고 성경 전체의 빛이 모아지고 담겨진 것이기 때문에 세천사의 기별이 뭐다? 영원한 복음이 될 수 있는 여러분 그래서 전혀 비가 내리지 않는 시대에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기별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기별이 추수의 기별이잖아요.
누가 하나님 백성인지 아닌지 판정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기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찾으셨다고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 마지막 시대도 세천사의 그 마지막 시금석이 되는 안식일 진리를 통해서 누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찾는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에 믿음으로말미암는의예 기별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래서 오늘 정말 우리가 점검해야 될 것 중에 하나가 뭔가 하면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오늘 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인가 내 안에 믿음이 있는가 이것이 오늘 매 순간 우리가 점검해야 돼.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드릴 때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그 말씀을 믿음으로 사는 거 오늘 제가 최 원장님 강의를 들으면서 늘 이제 생각하는 게 뭐냐 그러면 믿음으로말미암는의라고 하는 말씀을 하시면서 계속 그게 받아서 산다고 하는 거예요.
받아야 산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받아서 산다고 하는 거예요.
오늘 하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이 은혜가 내리는 자리에 우리가 머물고 있어야 되고 수시로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야 돼요.
그래서 매 순간 어떻게 해야 될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하나기도를 해야겠죠 그렇죠? 오늘 이런 말씀이 있어요.
고린도후서 십삼장 오 절 말씀 한번 띄워주세요.
자 읽어보겠습니다. 시 읽으실 때 같이 읽어주세요.
그래야 잠이 낍니다. 시작.
너희는 믿음 안에 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걱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스스로
제가 이거를 몇 번을 계속 계속 여러분들에게 강조하는 이유는 뭐냐 그러면 계속 점검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아니면 이렇게 말씀을 듣고 있어도 내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몰라요.
하나님께 물어봐야 돼요. 그리고 성령께서 비추어줘야 돼요.
내 삶에서 하나님께 빛나가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내가 진짜 믿음으로 사는 게 맞는지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꾸 점검해야 돼요.
만약에 내가 믿음으로 살고 있지 않으면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회계의 자리로 돌아가야 돼요. 다시금 주님 제 마음을 고쳐주세요.
주님 제가 믿음으로 살게 해주세요. 여러분
네
어쨌든 노아가 마지막 자비의 간청이 끝나고 그 후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나 그러냐 하면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눈부신 섬광이요 쫙 나타났다 그럽니다.
번개보다 더 화난 영광의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방주의 문 앞에 막 돌아요.
무섭겠죠
그리고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이 닫을 수 없는 육중한 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이건 뭘까요? 성령이죠 예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손가락 지금 성령의 령이에요.
쫙 닫혔대요. 천천히 이 문은 어떤 사람의 손에 의해서도 열릴 수 없는 손에 의해 닫혀졌고 그리고 그 앞에 하늘의 인이 하나님의 인 딱 이 사람들은 이건 내 거야 하나님의 인이라는 도장 치는 거죠.
인이 그분에 탁 찍혔다고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이건 무슨 말인가 하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문 구원의 문이 이제 어떻게 된 거예요? 닫힌 거예요.
셋째 천사의 기별이 전해지고 늦은 비 성령이 임해서 들어올 사람들이 다 들어오고 나면 확정되어지면 그 다음에는 이제 뭘까요? 은혜의 문이 닫힌 거예요.
은혜의 시기가 끝난 겁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그분의 중보를 그치실 때 하나님의 자비의 문이 닫혀진 것 같은 똑같은 사건이 될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제 하늘 지성소에서 예수님의 주보 사업이 맞혀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악인들을 제어하지 않아요.
이제 이제 그동안은 양심에 호소하고 막 성령께서 제어하는 힘에 의해서 어느 정도 이제 통제가 되지만 이제 모든 게 확정되어지면 성령의 제어하심이 이제 완전히 사라지게 돼요.
그럼 악인들이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고 날 뜨게 된대요.
근데 그때 구원의 방주 안에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는 그 언약의 장소에 머무르는 사람만이 안전하게 보호되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노아가 그 누구도 열 수 없는 닫혀진 방주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은 뭔가 하면 이 노아와 그 식구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보호되어지는 거예요.
근데 초기 문집이나 대쟁투 학원을 보면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그냥 우리가 아무 보호됨 없이 막 이렇게 피난처로 돌아다니잖아요 그렇죠? 악인들은 이제 완전히 사악해져 가고 전부 다 사이크오패스로 거의 다 변할 거예요.
전부 다 닥치는 대로 하나님 백성들을 죽이려고 막 날뛸 텐데 그때 초기 문집이나 대쟁투 학원에 보면 하나님 백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의 생명 사기에 의해서 덮여지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말씀이 있어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이 믿음으로 살고 있고 매 순간 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다고 하는 걸 이걸 매 순간 확정하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큰 평안을 줄 것이고 특별히 대환란의 때를 지나갈 때 우리에게 굉장히 큰 마음의 평안을 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근데 문제는요 노아와 여덟 식구가 방주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후에 바로 비가 왔나요?
이때가 천육백오십육 년 이월 십일이에요.
하나님께서 날짜까지 다 기록해놨어요.
본문에 보면 창세기 칠장 사절에 보면 지금부터 칠일이면 위에 보면 나오죠 그렇죠?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가 내리게 할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니까 1656년 2월 17일 날 2월 17일 날 홍수가 나요.
그러니까 이거는 2월 1일이에요. 2월 1일 7일 전
그래서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칠일 동안은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조와 선지자를 보면 이 기간 동안 노아와 여덟 식구들의 믿음은 또 시험을 당하였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시기가 이 시기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합니다.
가장 버티기 힘든 그러니까 그전까지 방주를 짓고 해도 괜찮아.
근데 방주 안에 들어갔는데 비가 안 와요
네
이건 마치 하나님 백성들이 구원이 확정됐어요 구원은 확정됐는데 재림이 이르러 오지 않고 이 휴업령과 재림사이에 무슨 뭐가 어떤 기간이 있죠?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지고 난 다음에 잠시 지나면 뭐가 오죠? 그리고 일요일 휴업령과 재림 사이에 있는 그 환란의 기간을 뭐라 그래요? 야곱의 환란이 있는 것처럼 동일한 시험의 시기가 노아에게 찾아온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백성들이 확정된 후와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그 사이에 구원이 지체되는 그런 시기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모습이죠.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 거예요. 분명한 지체는 노아의 기별은 기만이고 홍수는 결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그들의 신념을 더욱 굳게 해주었다.
와
들어갔는데 비가 안 와 진짜 이거 정말 웃기는 코미디가 발생했다.
짐승들과 새들이 방주 안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천사가 문을 닫는 그 엄숙한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들은 여전히 농담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기를 계속하였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능력 능력의 놀라운 표현을 조롱하였다.
그거 다 가짜야 무슨 어떤 마술사가 있는지 몰라.
이러면서
그들은 떼를 지어 방주주의에 몰려들어서 막 방주주에 몰려들었어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비웃고 대담하게 전에 없던 난폭한 행위를 감행하였다.
막 방주를 부수려고 하고 막 노아 나와봐 하면서 막 그러는 거죠.
술을 마시고 그래서 당시 세상에 가장 큰 이슈였던 사람이 그러니까 모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어요.
홍수 갈 거라고 해갖고 사람들이 긴장했어요.
워낙 정교하게 기배를 전했고 워낙 강력하게 기배를 전했기 때문에
그 비가 올 것이라고 하면서 큰소리를 치고 방주 안에 들어갔는데 비가 오지 않는 거예요.
며칠 동안 자그마치 하루 이틀이 아니에요.
일주일 동안 그 안에 스스로 머물면서 스스로 갇혀 있는 거예요.
안에 나가지도 못해요 이제 창피해서.
근데 왜 세상 사람들이 이토록 노아를 조롱하고 비웃고 대담하게 방주에다 대고 난폭한 행동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 노아가 곧 비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방주에 들어갔는데 비가 올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돼.
근데 세상은 너무나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매일같이 하늘을 보는데 구름 한 점 없어요.
맑은 하늘이 어제와 같이 오늘도 계속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 일주일간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도 않아요.
막 세상에 하나님이 올 것 같으면 바람이 불지도 않고 너무나 평화롭게 계속 일주일간은 흘러가는 노아에게는 이 기간이
가장 큰 실현의 기간이었다고 합니다.
이 일주일 동안 세상 사람들은 정상적이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이고 노아는 멀쩡한 세상을 두고 혼자 방주 안에 들어가서 혼자 홍수가 날 것이라고 떠들면서 짐승들과 함께 갇혀 있었으니까.
이 사람들은 뭐예요? 광신자예요 광신자.
그래서 매일 사람들이 와서 방주를 두드리면 이렇게 조롱했대요.
노아야 뭐 하니 그 안에서 그 방주에서 뭐 하고 있니 이제 그만 쇼하고 나와라 조롱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이 칠일간은 노아에게 어떤 시기다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였어요.
동일하게 악인과 의인이 결정된 후 주님이 재림하시기 직전 그 짜른 한란의 시기가 마찬가지로 하나님 백성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라고 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승리자고 하나님 백성들은 실패자요 패배자예요.
근데 그 기간이
야곱의 환란의 기간이 길까요 짧을까요? 아무도 모르지만 제가 볼 때는 결코 길지 않을 것이라고 봐요.
칠일보다는 훨씬 더 긴 기간일 수 있고 뭐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 누구도 버틸 수 없는 아주 정말 혹독한 환란의 시기가 닥쳐올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기간을
짧게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이 칠일째가 되는 날 너무나 갑작스럽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바람이 쫙 불더니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홍수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근데 그 홍수가 시작될 때 그때부터는 그토록 조롱하고 비웃던 모든 입술이 다 침묵하게 예수님이 오시는 날 그토록 조롱하고 비웃고 그다음에 자기의 쾌락 때문에
그 하나님의 복음의 기별을 무시했던 모든 사람들의 그 모든 잘못된 이야기가 다 일소되어진 이게 심판이에요.
그때 그날이 창세기 칠장 십일절에 보면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둘째 딸 곧 그 열일의 날 2월 둘째 딸 2월 17일이에요.
창수 창조 이후 천육백오십육 년 2월 17일이었다고 하는 거야.
근데 여러분 이 날짜가 구체적으로 기록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각해야 돼요.
이건 역사 기록이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신화가 아니기 때문에 방주 홍수가 났어 하는 게 아니라 그 날짜를 정확하게 다 기록하는 거예요.
아담이 태어났고 언제 죽었고 정확하게 날짜가 다 기록된 건 역사 기록이에요.
그런데 이날에 창세 후 1육백오십육년 이월 십칠일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역사 기록에 보면 큰 기쁨의 샘들이 막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서 사십쥐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다고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아무 일이 없을 것 같은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고 하는 거예요.
도저히 과학적 법칙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아무 이 없을 것 같은 땅에서 물이 터져 오는 거예요.
그 조짐이나 기운이나 어떤 자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없 일이 벌어진 거예요.
아무 일이 없을 것 같은 이 땅에 사십일 동안 물이 내렸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 증거들이 지금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화석이고 엄청나게 물이 흘러간 흔적인 그랜드 캐년 같은 그런 모든 대협곡들이 노아 홍수를 증거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이 엄청난 물로 덮이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그날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날마다 쾌락을 탐닉하며 일상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마태복음 24장 3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여기 보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이러하리라.
예수님이 재림하는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는 역사는 반복되어진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지금 오늘날에 이런 일이 지금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죠 그렇죠?
이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지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면서 성적 타락이나 방종에 물들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지만 실제 문맥을 보면 그게 아니에요.
여기 보면 잘 보세요.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 가고 하는 일이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뭐 하지 못했다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 게 중요한 메시지예요.
인자의 이 마음도 그러하리라. 그때 두 사람이 밭에 있으면서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고, 두 여자가 맷돌질 하고 있으면서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이 말은 노아 시대와 같이 인자가 오는 때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뭘 하고 있다 일상적인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하는 거요.
왜냐하면 그날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집을 짓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먹고 마시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시집가고 장가하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밭에서 일하고 맷돌질을 하는 것처럼 아무런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은 그때, 너무나 평범한 일이 반복되는 그때, 도적같이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쓰나미가 몰려오고 기상 이변이 벌어지고 온갖 무시무시한 범죄와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데도 이 모든 일이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재림의 징조가 되어 나타나고 있음에도, 이 모든 것이 이제 이 인간이, 이 세상이, 인간이 살기에 적당하지 못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음에도, 우리는 뭔가 취해서 마지막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는 거예요.
예 잠깐 깼다가 또 자는 거예요. 잠깐 깼다가 또 자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깨어남을 통해서 우리에게 바라시고 목적하시는 그러한 신앙생활의 이 혁명적인 변화가 사람들의 삶 속에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부조한 자를 보면 홍수가 임하기 일주일 전까지, 온 세상이 엄청난 물로 덮이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그날까지 그들은 쾌하게 탐닉하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갔다고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의 때도 이와 같을 것이다.
결코 기대하지 않은 때, 깨어있지 않은 자에게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날에 그때 재림이 이르러 올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된다 깨어있으라 어느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고 하는 거야.
여러분, 이 시대의 어둠에 저항하지 못하면 우리는 열처녀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이 마지막 시대에 등불이 꺼진 상태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각성하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깨어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 온 천지가 주의 오심을 알리는 재림의 징조로 가득 차고 있음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노아처럼 이 마지막 시대에 주님께서 오실 일을 대비해서 방주를 짓는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시기를 분별하고 오늘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가지며 살아야 될 곳이 어디인지를 꼭 찾고 오늘도 하늘과 교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한 10분 정도만 더 하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거
응
창세기 칠장 육절에 보면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와 내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는 지시가 떨어지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요.
칠일이 지난 후에 천둥 번개가 치고 큰 빗방울이 떨어졌을까요?
예
빗방울이 떨어진 게 아니에요. 비가 비가 오는 이 장면은요 지금 인류 역사 단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는 본 적이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다시 말해 천년개가 모든 법칙을 벗어나는 일을 하고 있는 일이 벌어져요.
시간이 지나자 이제 그 부자 한자의 글에 보면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내리는 비는 점점 더 빨리 떨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과 짐승들이 무서워서 미친듯이 막 돌아다니면서 시끄러운 음성을 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창세기 7장 11절에 보면 노아가 육백세되던 둘째 날 곧 열일의 날이라 그날에 큰 기쁨의 샘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서 사십주야
비가 땅에 쏟아졌다고 하는 얘기가 나와요.
근데 먼저 하늘에 창이 열렸다고 하는 이 말은 어떤 말씀일까요? 창세기 1장에 보면 둘째 날에 하나님이 물과 물을 분리하실 때 하늘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나누어 놓았죠 그때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으로 엄청난 물을 하늘 위로 탁 올렸어요.
청계층을 이루면서 하늘을 둘러싸게 만들었어요.
근데 하늘의 창이 열렸다고 하는 것은 이 청계층이
붕괴되어지는 거예요. 예 이걸 상상해보면 마치 팔당 때 맛이죠 팔당댐이 확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요? 붕괴되면 엄청난 물이 서울을 향해서 밀려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하늘에서 그런 뚝이 터지는 것 같이 어마어마한 물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땅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걸 보는 거예요.
무슨 장마 때 집중호우 내리는 것과 비교가 안 됩니다.
마치 하늘에서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시간당 오십 미리 백미리 이런 정도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물이 한 땅으로 내려 굽는 거예요.
그리고 기쁨의 삶이 터졌다고 하는 건 무슨 말일까요? 지하수가 터지는데 보통 지하수를 관정할 때 파내려가고 파내려가다가 지하수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죠?
분수처럼 막 올라오잖아요. 근데 이런 비슷한 현상이 여기저기서 막 터져 올라오는 거예요.
곳곳에서 지하수가 터지면서 올라오는데 어마어마한 바위가 하늘로 막 날아가는 거예요.
예 제가 읽어드릴게요. 물은 구름에서 큰 폭포를 이루고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폭포가 막 쏟아지는 형언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땅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으면 그 물이
솟구쳐 오르는 힘으로 큰 바위를 수백 피트 공중으로 높이 띄어 올렸다.
그래서 땅 속에 다시 깊이 파묻힙니다.
이게 막 나뒹그러지는 오늘날의 큰 바위들이죠.
그러면서 화려한 가옥과 아름다운 정원과 우상으로 세워두었던 모든 것들이 다 파괴되어지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 무서운 파편들이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바라보고 어떻게 됐을까요? 기절할 일이 벌어진다고 하는 넋을 잃고 다 기절하는
그리고 물만 아니라 폭풍과 거세지면서 수목, 건물, 바위, 흙이 사방으로 나눠 흩어졌고 그 장면을 보는 사람과 짐승은 두려움에 떨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하는 거 심지어 요동하는 자연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단 자신도 이 상황 속에서 자기의 생명을 염려하였다고 하는 자연의 법칙이 다 무너지니까 이제 끝이구나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상황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그동안은 자기들의 머리를 믿었죠.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과학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보다 훨씬 더 뛰어난 기술과 과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당시의 사람들이었어요.
자기들이 스스로 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떠오르는 한 곳이 있었겠죠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 딱 한 군데 있어요.
어디예요? 방주 방주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방주를 향해 몰려들었다고 하는 그리고 방주를 향해 손을 뻗치면서 미칠듯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노아에게 애걸했다고 합니다.
이때 그들의 약심이 각성되어서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과 그것 때문에 홍수의 심판이 초래되었다고 하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때서야 하나님께 열렬히 구원을 호소하며 방주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면서. 그런데 그토록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던 그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던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 순간 이들의 호소를 외면하시게 될까요? 이제 하나님 마음이 바뀌었나요?
그렇지 않고 부조화 선자에는 이런 이유가 적혀 그 이유가 적혀있어요.
그들은 예 형벌이 무서워서 그들의 죄를 인정했지만 진정한 통일의 정신이나 죄악의 가증스러움은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뭐를 미워하는 거다? 죄를 미워하는 거예요 예
이들은 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뭐를 두려워하는 거예요?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뿐이었다고 하는 거예요.
심판이 물러갔다면 그들이 하늘에 올라갔다면 또다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생활로 되돌아갔을 것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대단히 중요한 교훈은 은혜의 시기가 지나간 후에는 진정한 회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고 있는 이때, 다시 말해 아직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계신 이때,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진정으로 참되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하는 것은 복음의 기별이에요.
왜냐하면 회개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
어쨌든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방주주의로 몰려들어서 방주의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합니다.
근데 끝끝에 방주의 문이 열려지지 않자 이들은 절망 중에 방주를 부수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 그리고 어떤 사람은 방주에 매달려서 밀어닥치는 물길 속에서 끝까지 방주에 달려 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물이 막 차 올라가니까 산 꼭대기로, 꼭대기로 올라가는 거예요.
예 그래서 나무에다가 자기의 몸을 붙들어 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짐승이 강하니까 짐승에다가 자기 몸을 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 계속 계속 안전한 곳이 어디 있을까 찾는 거예요.
두려워서 시간이 갈수록 계속 안전하게 보이는 것들이 다 무너지면서 전부 휩쓸려 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물이 계속 더 높이 불어오르죠.
끝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제일 높은 산 꼭대기에서 이제 머무는 거예요.
부조 같은 자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마지막 남은 사람들은 대양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모두 무엇을 생각했는가 하면 그 순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종의 엄숙한 경고가 조소와 희롱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너무 간절한 거예요. 한 번만 더 그 기별을 들었으면
그러면서 그들이 무시해왔던 그 구원의 기회를 얼마나 사모하였을까 얼마나 사모하였어 이런 일이 분명히 벌어질 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시간 만에 더 유예를 단 한 번의 금유의 특권을 그리고 노아의 예술에서 흘러나오는 초청을 다시 듣기를 그들이 얼마나 애원했을까 하는 거예요.
여러분 분명히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오늘입니다. 내일이 아니에요.
오늘 저를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에 호소하시는 이 자비의 초청을 꼭 들으시고 이번 기간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그 하나님의 기별을 꼭 들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고 주님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절, 2절 말씀입니다.
그다음에
여러분 제발 우리가 서 있는 이 위치가 얼마나 분명하고 얼마나 확실하고 얼마나 고귀한 은혜의 자리인지를 꼭 깨닫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확실한 기별을 꼭 받아들이시고 그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부디 거절하지 말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어쨌든 이제 물이 차올라가면서 산 꼭대기에 세워진 방주가 탁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홍수가 땅에 40일 동안 쏟아지면서 천하의 모든 산이 다 잠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록에 보면 물이 불고 불어서 십오 육이이나 이제 산에서 제일 꼭대기보다 십오기 정도 더 올라갔다고 하니까 한 칠점오 미터 가장 높은 산보다 칠점오미터 이상 물이 더 불어난 거예요.
마지막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고 마칠게요.
왜냐 그럼 노아 홍수 기배를 여기서 끝내고 저녁에는 다른 말씀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방주 밖의 상황은 이런 모습인데 방주에 탄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네
룰루랄라 하면서 뭐 했을까요? 너무 좋아 여기 펜션 여기 진짜 저택 같아 호텔 같아.
이렇게 지냈을까요? 방주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대단히 튼튼하게 지어진 배였지만 이 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첫 번째 문제는 우선 이 배는 한 번 들어가면
밖을 내다볼 수가 없어요. 창문을 맨 꼭대기에다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밖을 내다보기 보다는 공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예 그러니까 밖의 상황을 전혀 안에서 볼 수 없는 형태로 지어진 배에요.
또 이 배는 뭐도 없다? 노도 없고 엔진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방향 타도 없어요. 스스로 방향을 결정할 수 없고 동력을 낼 수도 없는 그런 배예요.
그러니까 물에 뛰어놓는 게 전부인 배에요.
다시 말해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그런 배였어요.
근데 이 배가 망망대로 흘러가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이 배 안에는 양식이 한정되어져 있습니다.
만약 이 배가 먼 바다로 표류해버리고 막 이제 그러다가 막 돌아다니면 어떻게 될까요? 이 바닥에서 다 굶어 죽는 거예요.
예 더군다나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알 수 없어요.
부조와 한자를 읽어보면요 사장 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막고 거대한 방주 전체가 진동할 때마다 방주 안에 있는 짐승들은 어떻게 했을까? 막 흔들리는 거예요.
환란의 때 공포와 고통 가운데 부르짖었대.
막 우는 거예요. 방주 안의 사람들도 이 세상에 대환란의 기간 동안 이 대환란이 벌어진 거예요.
평안하게 방주 안에 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근데 이 중요한 기별입니다. 창세기란 책은 처음 누구를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말씀드렸죠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에요.
그래서 방주 안에 탄 식구들이나 나중에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는 비슷한 처지입니다.
이집트에서 구원을 경험하고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똑같이 노아처럼 구원받은 백성들이에요.
근데 그들이 구원을 받은 후에 노아가 망망대회로 들어간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를 건너서 구원을 받은 후에 그들이 그 다음에 들어가는 곳이 망망대회와 같은 끝없는 사막의 광야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 광야는 하루라도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이고, 하루라도 생수가 나오지 않으면 목말라 죽는 것이 바로 광야였어요.
언제쯤 여행이 끝날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의 방향을 정해서 갈 수가 없어요.
오직 뭐가 인도하는 대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야 돼요.
하늘에서 인도하는대로 따라가야 돼요.
마치 대양에서 표류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며 살아갔다고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노아도 한 달, 두 달 배 안에 쌀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어요.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하는데 도대체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거예요.
계속해서 끊임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근데 꼭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방주는 절대 표류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부주아서자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막고 거대한 방주 전체가 진동하였으며 물결이 칠 때마다 뒤흔들렸다.
안에 있던 짐승들은 공포와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폭풍 가운데서도 그것은 계속 안전하게 떠 있었다.
왜냐하면 능력이 탁월한 천사들이 그것을 보호하도록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배가 물결에 요동하며 흔들리고 있었을지라도 방주는 안전하게 그 폭풍 가운데서도 떠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 이유는 그 이는 뭐다? 능력이 탁월한 천사들이 그것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 당시에 온 우주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당신의 언약한 백성이에요.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으로 언약한 백성들이 머물고 있는 바로 그 방주 안이라고 하는 거
여러분 그것이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몰라요.
그래서 노아는 믿음으로 그 배를 운전하시는 이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 배에는 엔진도 필요 없고 키고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걸 지으면서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배를 어떻게 하신다 운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그 배를 만들 때 그래서 하나님이 이 배를 운전하는 것을 믿는다면
굳이 밖을 내다볼 필요도 없어요. 운전하는 사람만 밖을 내다보면 돼요.
운전하는 사람이 밖에 정보가 필요한 거예요.
밖을 내다봐야 보이는 게 뭘까요? 망망대회와 수많은 시체덩이에요 다 다 죽음이 그걸 볼 수 없도록 하나님이 만든 거예요.
밖을 내다봐야 보이는 것은 그런 거 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예 마찬가지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뭔가 하면 바로 우리가 분명히 구원을 받았는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어떻게 되어 질지, 이 광야 생활이 언제 끝날지, 미래가 잘 안 보일 때 그때 가장 고민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된거요?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쓰러져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노하우 홍수에 통해서 들려주는 교훈은 우리가 순종을 통해 구원의 방주 안으로 들어왔다면 방주는 절대 대책 없이 표류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절대 광야에서 다 방황하고 표류하다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 양식은 막 줄어들고 물도 떨어져 가고 배는 계속 포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방주의 상황을 다 알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면밀히 체크하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목적지를 향해서 표류하는 듯이 보였지만 계속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을 노아는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그 방주 안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염려와 싸우면서 방주 안에 머물러야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광야에서도 그들은 동일하게 광야를 표류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계속 하나님은 무엇을 향해 목적지를 향해서 그들을 인도하고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을 믿지 못하고 이 믿음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은 결국 그 길을 포기하고 원망하고 불편하다가
불평하다가 결국 광야에서 다 쓰러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야곱의 환란시에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집을 잃고 생계가 끊기면서 생존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하나님의 어떤 보호와 도움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곳으로 들어가요.
산과 들로 막 쭉 도망다닐 때 우리는 마치 노하우수처럼 망망대해 하나님 없이 표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게 맞는지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그때 하나님을 불신하는 그런 생각과 마지막 때 싸워 나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를 대비해서 오늘 우리가 준비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하면 오늘 계속 계속 오전 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듣는 말씀이에요.
믿음으로 사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 말씀 읽고 제가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대쟁투 학원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예 자 시작
평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습관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게 한 이름의 교훈을 소운 절망으로 서 사랑하면 안 될 것이다.
네 그러니까 오늘날 믿음을 조금 밖에 활용하지 않는 자들은 사단의 기만적 권세와 양심을 억압하는 법령에 굴복할 위험이 가장 크다.
비록 그들이 실현을 견디어 낼지라도 그들은 환란의 때 더욱 심한 난관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될 것 이 말씀이 바로 이거예요.
그 다음에 들어가는 게 노하우가 구원을 받았지만 엄청난 그 대환란 속에서 지내는 거예요.
예 그때 하나님이 이 불안과 염려와 더불어 싸워야 되는 그 기간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를 우리가 좀 더 편안하게 지나가기 위해서 구원을 받는다 할지라도 이 믿음을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돼 배우지 못하면 그전에 떨어질 확률도 더 많고 왜냐하면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습관을 기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등하니 한 믿음의 교훈을 그들은 절망 가운데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다음 말씀이 하나 있는데요 우리는 오늘날 주님의 약속을 실증함으로써 하나님과 친숙해져야 한다.
오늘 들려주는 모든 교원의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고
믿음으로 살아내는 그러한 경험들을 오늘 풍성하게 가져가야지만 그때 그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평안하게 그 시기를 지나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많은 분량의 말씀을 정말 드렸는데요.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잘 담겨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 이 노아홍수에 벌어졌던 그 모든 이야기와 사건들이
먼저는 실제 역사였음을 우리가 꼭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그때 당시에 벌어졌던 모든 이야기들이 반면교사가 되어 우리 마음속에 담기게 하여 주시고 또한 노아가 가졌던 그 믿음의 모습들을 오늘 우리가 교훈을 통해 다 배우게 하여 주셔서
날마다 배운 그 교훈들 그 말씀들이 우리 삶에 실증되어지는 믿음으로 살아가며 실증하는 그런 경험들이 우리의 삶 속에 풍성히 경험되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과 더욱 친숙하게 되어져 가는 그러한 저희들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이 기간 특별하게 우리의 삶을, 우리의 모든 시간들을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