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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와 김일성,김정은 만세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
2018.10.4. 10.4선언 11돌 기념행사차 방북했던 이해찬 더민주당 대표가 향후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김영우의원은 해도 해도 너무한 조공외교니,북한지도부와 손잡고 사회주의 혁명이라도 하자는 건가?하면서 비판을 했고 이에 이해찬대표는 대립대결구도서 평화공존구도로 넘어가기 때문에 이제는 그에 맞는 제도나 법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고 북미간 평화협정을 맺어야 제도개선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제도개선을 먼저 하자고하면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남북관계가 먼저 개선되어야 국가보안법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같은 논쟁은 우리 정치수준의 이론적 천박함과 철학적 기초의 부재를 말해주는 것이다. .
국가가보안법은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이 이름만 바뀐 것이다.
일본은 패전후 맥아더 군정에 의해 치안유지법이 폐지되었고 이로인해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고도성장에 의하여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적군파,혁명좌파, 연합적군등 급진좌파가 스스로 몰락 정리되었다.
반면 한국은 일본 군국주의에 협력한 친일파들이 청산되지않고
권력과 경제를 틀어쥐어 치안유지법 체제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민중을 억압하고 있다.이로인해 자유와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못해 한국경제가 선진경제대국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선진경제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재벌지주제의 청산과 창의와 공정이 필수적인데 국가보안법이란 족쇄가 재벌지주제의 이익을 강화하고 창의와 공정을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이자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공화국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는 무조건적 무제약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매국보수진영은 반공반북 민중배제의 국가보안법체제를 자유민주주의체제라고 강변하여 이를 사수하자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유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국가보안법체제를 자유민주주의라고 호도한다. 매국보수진영의 지배담론에 더 이상 놀아나서도 방관해서도 안된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무고한 인사들이 간첩으로 몰려 살해되었고 많은 민주인사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으며 합법정당인 통합진보당마저 종북의 굴레를 씌워 사법농단으로 해산했다. 심지어 김일성보다 나쁜놈이라고 술김에 욕을 해도, 김일성만세를 혼자서 응얼대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는 국가보안법폐지로부터 비로서 시작될 수 있다. .
한국은 아직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를 재벌과 지주가 독점하는 자유제한 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반북의 틀안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만 국가보안법 폐지를 고려한다는 것은 자유의 근원에 대한 철학부재요 민주화운동의 자기기만이다.
그간 민주화운동진영중 일부는 자유에 대한 철학부재로 인해
자신들도 명확히 자각하지 못한채 민주화운동의 기치하에 대중의 지역감정 고착화, 반공의식강화, 신자유주의강화를 해왔다.그들은 6월항쟁후 양김분열당시 ,김 대중씨의 민주진영 분열과 지역분할구도에 의한 4파전 필승론에 비판적 지지를 함으로써 지역감정을 결정적으로 고착화하였다.박정희정권의 지역차별전략 못지않게 민주화운동진영도 지역감정을 강회시킨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획득한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매국보수진영에 의해 공산주의로 매도될 때마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즉자적으로 대응하여 매국보수진영보다 백배 천배 강하게 반공반북의식을 대중적으로 각인시켜왔다.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민주화정책이라고 실시하여 양극화와 비정규직 확대, 고용불안을 초래하였다.이로인해 도탄에 빠진 민중은 민주화진영에 염증을 느꼈고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과정에서 있었듯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 모세와 함께 고난을 감수하기보다는 퇴영적인 이집트의 고기냄비를 갈망하게 되었다.그래서 민주화보다는 설사 독재와 부패라도 잘먹고 잘사는 것, 부자아빠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로인해 박정희신드럼이란 허상을 불러일으켜 MB와 근혜정권등 반동적 보수정권이 출현하게 되었다. 깊은 철학적 반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번에 이해찬 대표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만 국보법 폐지를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도 결국은 반공반북의식을 강화시키는 반자유민주주의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노동당의 남한내 활동까지 민주주의적 질서하에 조건없이 보장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서독같은 경우 사회민주당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에 의하여 동독 방송 및 언론, 동독공산당의 서독지부 활동까지 보장했다.
이처럼 포용정책은 내적인 민주개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김수영시인이 종북좌파라서 김일성만세라는 시를 지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적색테러와 백색테러가 난무하는 생사가 경각에 달린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시인의 말대로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자유를 죽음의 공포속에서 온몸으로 체득하였다.
김 수영시인의 온몸으로 체득한 자유에서 김일성만세라는 시와 라디오계란 시가 창작되었다.
김일성만세 (1960.10.6.)
김 일성만세
한국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 일성만세
한국정치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눈 잠이 깰 수 밖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김 일성 만세를 주장하는 종북좌파 정치세력을 인정하는 것이 한국 자유의 출발이 된다.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시원이 된다. 북한내 모든 사상과 단체가 남한에서 자유롭게 선전되고 활동할 수 있을 때 자유는 비로서 존재하게 된다.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더욱 심화 발전한다. 국가보안법 철폐야 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시원이 되는 것이다. 당시 속물들은 요즘도 그렇지만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어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고 예술창작에도 장애가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김 수영은 창작 자유의 조건이란 산문에서 “적어도 언론 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 이란 중간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역설한다.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를 허용하는 순간 사람들은 내적 자기 검열의 덫에 걸려들게 된다. 인간의 모든 실천과 창작활동은 압제의 그림자를 갖을 수 밖에 없다.이만하면이란 중간사는 스스로 자유의 한도를 설정하여 고개를 들지않고 체제에 순응하면 무방하지만 고개를 들어 체제에 반대하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목이 잘리는 것이다. 자유는 이만하면의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유무의 문제이며 모든 것이며 무조건적이어야 한다.
분단체제와 대립하는 자유 북한과 대립하는 자유,사회주의와 대립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를 갈구하던 김 지하 시인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시인이 자신의 사유지평을 생명성, 여성성, 전통성까지 확대했지만 시인의 자유가 분단체제와 대립하는 제한적 자유였기에 그 치열함을 상실하고 반동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자유가 모든 것일 때,모든 것이 자유롭게 드러날 때 대상적 진리가 창출되고 문화와 미가 창신되고 혁명적 창조력이 넘쳐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하여 이를 수호한다는 매국보수진영의 기만적 궤변은 너무나도 역겁다.그러나 문제는 매국보수진영의 통치담론에 조종되는 민주화진영의 즉자적 대응이다. 이러한 허위담론의 포장을 뜯어내고 그 허구성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사상의 관제고지를 장악하는 것은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민주화운동진영은 그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현실의 민중은 자유민주주의 과잉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결핍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자유민주주의는 타도대상이 아니라 쟁취대상이다. 그런데도 다분히 관념적인 진보인사들은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폄하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기피한다. 국가보안법이란 족쇄에 갇힌 자유를 두고 북한을 포용한다는 햇볕정책은 하나의 자기기만이며 한계가 분명하고 정권의 이해타산에 의해 제약될 수 밖에 없다.
지난시기 김 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정권교체에 따라 무산된 것은 내적 자유의 토대없이 외적 포용정책에 연연했기 때문이다. 자유가 국시가 되어도 부끄러운데 반공이 국시라니 역사와 민족앞에 너무나도 수치스럽다. 자유는 결코 국가가 보장해 줄 수 없다. 국가가 권장하는 자유, 국가가 보장하는 자유는 자유의 모래성이다.이는 자유를 황제가 보장한다는 자유제국처럼 황당한 형용모순이다. 자유는 오직 민중속에 내리꽂혀야 스스로 자리잡아야 한다.
자유가 민중적 지반속에 깊숙이 뿌리박을 때 국가보안법은 무너질 것이다. 방탄의 스피치 유어셀프처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취지처럼 니르고자 할 바를 니르자.두려움없이 니르자. 오직 그것만이 국가보안법을 없앨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자유를 수호한다는 매국보수의 기만적 궤변에 자유론을 집필한 밀은...밀은 그것이 설사 진리가 아닐지라도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진리를 더욱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한다. ..... 저승에서 경악하고 김 수영시인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김 일성만세라는 시의 유용함에 놀라고 있다.
< 라디오 계 ><1967. 12. 5>
6이 KBS 제2방송
7이 동 제1방송
그 사이에 시시한 주파가 있고
8의 조금 전에 동아방송이 있고
8.5가 KY인가 보다
그리고 10.5는 몸서리치이는 그것
이 몇 개의 판테온의 기둥 사이에
뒹굴고 있는 폐허의 돌조각들보다도
더 값없게 발길에 차이는 인국(隣國)의 음성
ㅡ물론 낭랑한 일본 말들이다
이것을 요즘은 안 듣는다
시시한 라디오 소리라 더 시시한 것이
여기서는 판을 치니까 그렇게 됐는지 모른다
더 시시한 우리네 방송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지금같이 HIFI가 나오지 않았을 때
비참한 일들이 라디오 소리보다도 더 발광을 쳤을 때
그때는 인국 방송이 들리지 않아서
그들의 달콤한 억양이 금덩어리 같았다
그 금덩어리 같던 소리를 지금은 안 듣는다
참 이상하다
이 이상한 일을 놓고 나는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한참이나 생각해본다
지금은 너무나 뚜렷한 입체음을 통해서
들어오는 이북 방송이 불온 방송이
아니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지금 일본 말 방송을 안 듣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 미련도 없이
회한도 없이 안 듣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써도 내가 반공산주의자가
아니 되기 위해서는 그날까지 이 엉성한
조악한 방송들이 어떻게 돼야 하고
어떻게 될 것이다
먼저 어떻게 돼야 하고 어떻게 될 것이다
이런 극도의 낙천주의를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서 해본다
ㅡ아아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른 탓이다
시인은 일본방송과 북한방송을 대비하고 있다.
현실의 비참한 일들이 라디오소리보다 더 발광을 쳤을 때는
광주민주항쟁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현실은 계엄군이 무차별 학살로 발광치는데 신문 방송 라디오는 언론통제로 인해 평온하기만 했다. 이간은 상황에선 사람들은 혹시하면서 인국방송인 일본방송을 듣게된다. 잘들리진 않지만 그 한마디가 금덩어리같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방송이 판테온 신전의 기둥 사이에 뒹굴고 있는 폐허의 돌조각들보다도 더 값없게 발길에 차이는 인국(隣國)의 음성이 되고 말았다.시시한 생각이 들어 듣지도 않는다.
북한 방송도 마찬가지다. 북한방송이 지금은 불온방송이지만 개방되어 합법화되면 지금은 너무나 뚜렷한 입체음을 통해서 몸서리치며 들려오는 이북 방송이 불온 방송이 아니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지금 일본 방송을 안 듣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 미련도 없이 회한도 없이 안 듣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한다. 물론 시인은 북한 방송 콘덴츠가 엉성하고 조악함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유를 위해 개방되고 합법화되어야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북한이 어떻게 돼야한다는 것은 북한에 촉구하는 것이고 될 것이다라는 것은 개혁에 대한 희망이다. 그럼에도 북이 콘덴츠를 지양하지 않는다면 북한 방송은 반공반북주의자들을 오히려 양산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자유의 원리나 남북관계발전을 위해서도 자유민주주의 출발을 위해서도 시급히 철폐되어야 한다.남북관계개선후 국가보안법철폐 운운은 자유의 기본원리에 맞지않는다.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북의 방송 신문 잡지 서적 통신이 개방되어야 한다.
그로인해 한국사회가 문미창신의 나라로 빛나고
그것을 통해 남북간 깊이 연결된 되돌리 수 없는 평화 DNIP(deep neworked irreversible peace)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한 내적 자유의 토대위에서만 남북간 경제협력등 제반협력이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폐지,신문방송개방, 방북신고제야 말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수 있는 지름길이다.
김정은 환영단과 오늘밤 김제동의 인터뷰
1960년도 김수영시인이 김일성만세라는 시를 쓴 이후에
2018년 김정은 환영단이 남한내에서 만들어졌고2018.12.4.일 kbs 오늘밤 김제동이라는 시사프로그램에서 김수근 환영단장과 인터뷰를 하였다.
김수근 단장은 “김정은 위원장 팬이다. 겸손하고 지도자로서 능력있다. 어떻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왜 공산당이 좋아요라고 외칠 수 없는지 되묻고 싶다”하고 하였다.세습에 대해서는 박근혜, 시진핑,푸틴과 다를게 없다. 생각할 자유를 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공정성 공공성 정치적 균형을 상실했다고 12.7일자 사설을 통해 비판했다.
한나라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이 통째로 넘어가고 있다고 파시스트적 선동을 했고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청와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가짜뉴스를 날렸다. 한편 kbs공영노조(제 3노조)는 오늘밤 김제동 제작진 4명과 양승동 kbs사장을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신장이라는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한편 방통심의위에서는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심의규정을 적용해 오늘밥 김제동의 의견진술을 결정하였다. 이에 대해 pd연합회는 “오늘밤 김제동에 대한 마녀사냥을 중단하라”고 다음과 같이 성명을 발표하였다.
<오늘밤 김제동>이 이념논쟁에 휩싸였다. ‘위인맞이 환영단’ 김수근 단장 인터뷰가 포함된 12월 4일 방송분에 대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이 통째로 넘어가고 있다”며 자당 의원들의 출연 자제를 권고했고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환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청와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란 글을 올렸다. KBS공영노조는 양승동 사장과 제작진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급기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프로그램을 심의에 회부했다.
김정은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일부 존재한다고 해서 대한민국 체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논란을 빚은 ‘김정은 환영단’은 자생적인 모임이며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이 단체의 구호와 활동이 논란과 우려를 낳고 있다면 이를 시청자에게 알리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서 오히려 건강한 담론이 형성되게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기능이자 책임이다.
자유한국당의 반응은 시대착오적이며 파시스트 선동에 가깝다. “대한민국이 통째로 넘어가고 있다”는 나경원 대표의 발언은 지나친 과장이다. 오히려 공영방송에서 이러한 방송을 통해 체제내로 흡수했기 때문에 김수근 단장의 인터뷰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청와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김병준 위원장의 발언은 KBS를 모독했을 뿐 아니라 가짜뉴스일 뿐이다. KBS PD협회가 밝혔듯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나경원 대표와 김병준 위원장은 KBS와 시청자 앞에 사과하길 바란다.
이러한 정치권의 움직임에 화답하듯 KBS 공영노조는 국가보안법의 유령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신장과 민주적 기본질서’란 방송법 규정을 앞세웠는데,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소수 의견을 묵살하고 탄압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포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북한 김정은이 아무리 밉고 그를 찬양하는 게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그냥 인정하는 걸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 맘에 안 드는 의견을 짓밟고 처벌하는 것은 중세의 마녀사냥이자 파시스트의 행동방식이다. 하물며 언론이 이를 방송했다고 국보법으로 고발했다니 헛웃음 나온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을 망각한 자들이 ‘노조’의 방패를 앞세우고 공영방송 KBS 안에서 칼춤을 추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오늘밤 김제동>은 공정성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12월 4일 방송분은 김수근 단장 인터뷰를 2분가량 보여준 뒤 신지예 녹색당 공동위원장과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의 토론을 18분가량 이어갔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보수 정치권에서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정치권의 분위기를 전했고 신지예 위원장은 “김정은 환영단이 사용하는 단어와 태도가 촌스럽게 느껴진다”고 의견을 밝힌 뒤 “정치권에서 이를 자기들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려 든다” 고 꼬집었다. 신 위원장은 “김정은 환영단이 촌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낡은 색깔론도 이제 지양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MC 김제동과 두 패널은 김수근 단장의 발언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었다.
극우 반공이념에 찌든 발언들은 하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지만 김수근 단장의 낯선 의견은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충격적이긴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러한 착시현상 때문에 <오늘밤 김제동>은 비판의견 분량이 훨씬 더 많았는데도 김수근 단장 대목만 기억하고 문제 삼는 것이다.
정치권과 방송계의 극우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방송통신심의위도 슬그머니 <오늘밤 김제동>을 심의하기로 했다. 방심위가 눈치보기 끝에 소신을 저버린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만약 방심위가 <오늘밤 김제동>을 제재한다면 공영방송의 기능에 재갈을 물리고 나아가 시청자의 권익을 침해하게 될 것이 우려된다. 테러집단이나 마약업자가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때 이를 보도하면 이 단체의 주장을 알리는 결과가 되므로 제재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성립할 것이다. 물론 공영방송 KBS가 유튜브와 달리 엄중한 사회적 책무가 있다는 시각은 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위인맞이환영단’ 현상이 우려스럽다면 이를 공론화하고 자연스런 비판에 노출시키는 게 체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을 꼭꼭 숨긴다고 사라지는가? 오히려 위험한 요소가 음지에서 자라나서 곪아터지지 않겠는가? 공영방송은 이러한 현상을 소개하고 다양한 의견과 검증에 노출시켜야 하며, <오늘밤 김제동>은 이러한 공영방송의 기능과 책임에 충실했을 뿐이다.
다양성은 민주사회의 힘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며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자연스레 여과되고 수용되는 체제다. 1960년,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외쳤다. “'김일성 만세‘, 한국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의 시 <김일성 만세>는 신문지면에 실리지 않았다. 21세기 한국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그대와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그대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나는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요약한 볼테르의 이 격언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걸까?
<오늘밤 김제동>을 마녀사냥 하는 세력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김제동은 코너를 마무리하며 시청자 의견 하나를 인용했다. “우리는 통일이 돼도 절대로 기차 타고 유럽여행을 할 수 없다. 휴가 기간이 그만큼 안 되기 때문이다.” 공감되는 말이었다. 지금 이 사회에 산적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소모적인 이념 싸움은 이제 그만두자.
한나라당,조중동등 보수언론등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kbs공영노조는 적폐세력이 노조라는 위장장치속에 암약하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녹색당 신지예위원장이나 이 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의 촌스럽다 고리타분하다는 평가는
자유민주주의 원리와 이론의 문제를 정서의 문제로 치환하고 쟁점에서 도피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조속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북한의 모든 사상을 포용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