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와 충돌하지 않고 ‘다비드상’ 갈등 해결한 미켈란젤로
피렌체 시장이 “코 너무 큰 거 아니냐” 지적하자 반박 없이 고치는 척 연기
감정·에너지 소모 안 하고 시간 낭비 없이 시장 흡족하게 만들어
대업을 위해 정면 충돌 피한 지혜… 세속적 권력보다 위대한 예술 보여줘
김영애 '나는 미술관에 간다' 저자
입력 2023.04.03. 01:15
업데이트 2023.04.03. 06:03
사람들 사이 의견의 대립은 필연적이다. 또한 서로 다른 관점과 의견이 있는 사회가 건강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의견을 가진 이가 상사와 부하 관계라면? 부부 사이이거나 부모 자식 사이일 때는? 난제를 풀기 위해 협상의 달인을 찾아가 자문하고, 기도를 드리고 혹은 점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기가 막힌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 예술가들의 사례가 로버트 그린의 책 ‘권력의 법칙’에 소상히 소개되어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사진).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의뢰한 피렌체 시장이 조각의 코가 크다고 지적하자 고치는 척 연기를 해 시장과 충돌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했다. /위키피디아
첫 번째 주인공은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다. 그가 2년여간 공들여 조각한 다비드상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작업을 의뢰한 피렌체 시장이 방문해, 코가 조금 큰 것 같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 작품은 높이가 5미터에 달하는 데다 좌대 위에 올려질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아래에서 조각을 올려다보게 되면 원근감으로 인해 얼굴이 작게 보일 것을 계산해 일부러 조금 크게 만든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원리를 설명하는 대신 조각대 위에 올라가서 코를 손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는지 한번 봐 달라고 묻자, 시장은 한결 낫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난다. 미켈란젤로는 사실 조각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대리석 가루를 가지고 올라가서 조금씩 뿌리면서 작업하는 척 연기를 했을 뿐이다. 시장과 논쟁을 벌여봐야 그가 한낱 예술가의 말에 자신의 주장을 굽힐 리도 없고, 또한 설사 그랬다고 한들 미켈란젤로에게는 아무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물은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다. 그가 윈저 시청 건물을 설계할 때 시장은 뻥 뚫린 1층을 보며 2층이 무너질까 봐 보강을 요청했고, 렌은 1층에 두 개의 돌기둥을 세웠다. 그런데 훗날 청소하는 사람들이 발견한 건 기둥의 끝이 천장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건축가이면서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렌은 자신의 설계에 대해 확신이 있었지만 미래의 사고를 걱정하는 시장을 설득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고, 훗날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린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지혜로운 인물이었던가 하는 의아함에 다시 한번 그의 인생을 살펴본다. 그는 성질이 고약하기로 유명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교황 율리우스 2세와 갈등을 일으키고 로마를 떠나버린 사건이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요청대로 무덤을 장식할 조각상 40여 개를 만들기 위해 대리석을 고르고 옮기며 약 1년 가까이 업무를 진행하다 어느 날 프로젝트가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일이 틀어진 건 미켈란젤로를 시기한 건축가 브라만테의 계략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브라만테는 교황에게 무덤을 만드는 것은 불운을 가져올 것이라고 설득해 이를 중단시키고, 대성당 프로젝트를 밀어넣는다. 그뿐만 아니라,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써 망신을 줄 계획도 포함시킨다. 교황이 미켈란젤로와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를 신뢰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떠나버린 미켈란젤로를 불러와 교황도 만족시키고 자신도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대인배처럼 보이게 하는 전략이다.
브라만테가 미켈란젤로를 미워한 건 그가 평소 자신의 건축적 결함을 가차없이 지적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 미켈란젤로는 그저 잘못된 것이 눈에 보여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었지만, 브라만테로서는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미켈란젤로는 요청을 거절하다가 다시 무덤 조각을 재개하려면 성당 프로젝트가 끝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로마로 돌아와 업무에 착수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들을 설득하는 대신 작업에 몰두하는 길을 택한 셈이다. 4년의 시간 동안, 가로 14m·세로 40m에 달하는 거대한 벽을 거의 홀로 완성시키는 천재적 능력 앞에서 브라만테의 모략은 수포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도 흥미로운 건 시키는 대로 대충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황을 설득해 천장 도안을 다시 디자인할 자율권을 확보해 창세기의 풍부한 내용을 더한 점이다. 천장화가 완성된 이후에야 미켈란젤로는 틈틈이 무덤 조각 프로젝트에 재착수하게 된다. 너무 뛰어난 회화 실력에 최후의 심판 벽화까지 맡게 되면서 30세에 시작한 무덤 조각 프로젝트는 70세가 돼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영국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인트 폴 대성당. 렌이 윈저 시청 건물을 설계할 때 시장이 안전 문제를 제기하자 렌은 돌기둥 2개를 세워 시장을 안심시켰다. 훗날 이 기둥의 끝이 천장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켈란젤로와 렌은 권력자와 충돌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의견 대립을 해결한 것이다. /위키피디아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렌은 미켈란젤로에 비해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편이지만 그가 세 인부와 나누었다는 대화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세인트 폴 대성당 복원에 참여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석공들에게 다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인부들은 질문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모른 채 그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즉답을 내놓았는데, 첫 인부는 돌을 자르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인부는 일당을 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세 번째 인부가 크리스토퍼 렌 경이 위대한 성당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 인부는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일에 임하는 태도는 모두 달랐던 것이다. 세 번째 인부의 대답에 감동을 받은 렌 경은 그의 고된 작업이 헛되지 않도록 위대한 성당을 완성시키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바로 그 힘으로 35년을 버텨, 정권이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면서 예산이 삭감되는 등의 난처한 상황을 견디고 마침내 1710년 대성당 복원을 완성시켰다.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미켈란젤로와 렌, 이 두 예술가는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때로는 권력자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권력자와의 정면 충돌을 피하고 무려 30~40년, 인생의 절정기를 바친다. 충분한 재산이 있었지만 청빈한 삶을 살았던 미켈란젤로나 국회의원, 기사 작위 등 이미 최고의 명예를 누린 렌 경이 현세의 욕망을 위해 이와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각각의 사건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얼른 방해꾼들을 보내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소명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들이 열정을 다 바친 결과물이 당대의 짧은 세속적인 권력보다 더 높고 위대함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