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난 대화, 까칠한 대화 - 보이는 대화의 원리
강 길 호 명예교수(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우리사회엔 유독 말과 관련된 속담이 참 많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우리의 익숙한 속담은 말을 예쁘게 하면 그 말이 우리에게 보상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속담이다. 이와 반대로, 언행이 까탈스럽거나 까칠하면 남의 공격을 받는다는 일침을 놓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자기가 먼저 예쁘게 말해야 남도 나에게 예쁘게 말해 준다는 교훈을 강조하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도 있다. 이들 속담 모두는 우리에게 친숙한 속담들이지만, 예쁘게 말을 해야 하는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선조의 지혜가 녹아있는 경구들이라 그 의미를 새겨둘만 하다.
매일 사람을 만나고 쉼 없이 대화를 나누며 사는 게 우리 일상생활의 모습이다. 그리고 누구나 대화를 하는 데 별 어려움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누군가를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대부분의 경우 원활하게 이야기하고 별 탈 없이 넘어간다. 모두 무난한 대화꾼처럼 보이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우리 대화는 허점투성이다.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데 실패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대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대화 끝에 상대와의 사이도 나빠지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대화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말이 자본이 되고 말이 자산이 되는 말의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어 멋지게 말하는 대화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런 트렌드 때문인지 대화법을 배우고자 하는 열풍도 최근에 빠르게 번지고 있다. 잘못된 대화를 아름답고 멋지고 맛있는 말로 바꿀 수 있는 요령을 그만큼 배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 찾아보면 대화의 요령이니 대화법이니 하며 많은 대화 팁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이들 요령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어라,’ ‘유머를 활용하라,’ ‘상대방을 칭찬하라,’는 식의 아름다운 조언으로 가득차 있지만, 막연하고 애매모호한 충고라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선 이렇게 말하라 혹은 저렇게 말하라는 대화의 이른 바 법칙보단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대화인지에 대한 이치를 아는 이른 바 대화의 비결을 아는 것이 멋진 대화를 하는 데 훨씬 유리할 수 있다. 이치를 알면 상황에 맞춰 적합한 대화를 하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대화의 비결인 대화원리를 알면 맛깔난 대화를 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일견 매우 복잡다단한 것 같지만, 우리의 생각이나 의도를 상대방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대화를 한다. 이를 테면, 축하해 주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혹은 재미나게 시간을 때우려는 의도 등등으로 대화를 한다. 대화의도가 있는 곳에 대화가 있고,, 대화가 있는 곳에 대화의도가 있다. “물 한 컵 마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면 이 대화의 의도는 목이 마르니 마른 목을 축일 물이나 뭔가가 필요하다는 대화의도를 담은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대화를 하면 그 속에 늘 대화의도가 숨어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할 때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예기치 않게 우리의 대화는 상대방과 나와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준다. 대화의도라는 대화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실, 대화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그러하기에, 맛깔난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의 대화의도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혹은 까칠한 표현을 쓰면서 우리의 대화의도를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선택한 이러한 표현방식에 따라 상대방과 나와의 인간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혹은 나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물 한 컵 갖고 와”라는 말과 “미안하지만 물 한 컵만 가져다 줄 수 있겠니”라는 말은 같은 대화 의도를 표현한 말이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감정은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고, 이러한 감정의 차이가 인간관계에 다른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하니, 우리는 이야기할 때 어떻게 우리의 대화의도를 표현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대화의도를 멋지게 표현하는 방법이 이것이다.”라는 특정한 대화의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상대방과의 인간관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표현을 선택하면 우리의 대화의도가 상대방에게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우리의 대화의도를 명확히 전달할수록 우리의 표현법이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려 상대방과의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 대화의도의 명확한 전달과 인간관계를 배려한 표현의 선택은 서로 역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반비례 운운하는 이 말의 의미가 어떤 뜻인지 아마 잘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해해 보도록 하자.
돈을 빌려간 친구에게 돈을 갚으라는 대화의도를 가지고 친구에게 대화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내 대화의도를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표현은 “돈 갚아라”라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내 대화의도는 명확히 전달되겠지만, 친구는 상당히 감정이 상해져서 나와의 앞으로 관계가 소원해 질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친구야, 미안하지만 아 이런 말하기 싫은데 너도 형편이 지금 어렵지, 나중에 이야기할까. 으음 나도 지금 형편이 말이 아니라서 빌려간 돈 지금 돌려줄 수 있겠니?“라고 말한다면 상대방과의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유지하겠지만 돈을 받으려는 대화의도의 성공가능성은 낮아 질 가능성이 높다.
대화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요령은 복잡하지 않게 애매모호하지 않게 그리고 상대방이 나의 생각을 간파하기 쉽게 간결하고 명쾌하게 말하는 것이다. 즉, 쓸 데 없는 말은 거두절미하고 하고 싶은 말만 간결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짧게 말할 때 우리의 대화의도가 선명하게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대화의 표현법은 실제 대화의도를 감춘 채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화의도만 드러나는 간결한 표현은 자칫 상대방이 무례하다고 생각하거나 기분 나쁘다고 느껴서 두 사람의 인간관계를 부정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화 의도를 애매모호하게 그리고 약간 횡설수설하듯 말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화의도와 인간관계는 서로 이율배반적이다. 명확한 대화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짧고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바람직한 반면에,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시 예를 들어서 이해해 보기로 하자. 내가 친구의 차를 빌리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친구야, 네 자동차 좀 빌려줘”라는 간결한 말은 나의 대화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하지만 갑작스러운 부탁에 대해 친구가 황당하게 생각하면서 기분이 상해져 인간관계가 약간 소원해질 수 있다. 반면에, “친구아, 정말 어려운 부탁하나 하려고 하는데... 부탁 못하겠다. 내가 넘 염치없어서. 나중에 부탁할까. 아 지금 필요한데... 어떡하지. 급하게 어디 가야 하는데, 어떡하지”라는 식으로 길게 이야기했다면, 도대체 이 대화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서 대화의도를 달성하기는 어렵겠지만 두 사람의 인간관계는 적어도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의 관점에서 보면,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바로 대화의도와 인간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는 대화의 기술이 뛰어난 것이다.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이 쉽게 알아차리도록 만들면서 상대방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 질 수 있도록 대화에 잘 녹여내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이른 바 대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대화의 의도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짧게 말하는 것이 유리한 반면에,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선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 둘이 이율배반적이라는 데에서 대화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세상의 이치가 대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역설의 대화법에 대한 간략한 팁을 준다면, 대화 전에 대화의도와 인간관계의 경중을 고민하고 여기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대화의도가 중요하다면 너무 길게 말하면 상대방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대화의도의 중요성을 폄하할 가능성이 높으니 간결하고 짧게 이야기하는 것이 대화의 요령이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면 상대방과 대화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 후 그리고 은근슬쩍 대화의도를 대화에 침투시키는 전략이 유효하다. 대화의도와 인간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다양한 대화의 비결이 있지만, 이 원리들은 위에서 말한 요령에서 파생한 것들에 불과하다. 여기서 말한 이치만 깨우치기만 하면 맛깔난 대화를 스스로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치만 알면 대화는 보이는 법이다. 이치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멋진 대화꾼들이 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