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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존과 평화를 위한 씨알사상: 제주씨알선언에 부쳐
제주도는 대문, 거지, 도둑이 없는 삼무(三無)의 섬으로 널리 알려졌다. 대문과 거지와 도둑이 없다는 것은 제주도가 가난한 섬이라는 것을 나타내면서 평화롭고 순박하며 정직하고 평등한 공동체 사회임을 보여준다.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가 협력하고 합의해서 나라를 세우고 다스렸다는 것은 제주도가 자치와 자존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제주도의 정신문화적 전통과 유산은 제주의 자존과 평화를 위한 근거와 바탕이 될 수 있다. 제주도는 중앙정부로부터 혹독한 억압과 수탈을 당하고, 4·3사건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 집단적 학살을 당하는 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된 제주도의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모순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아픔과 모순을 치유하고 극복하면서 제주의 정신문화적 전통과 유산을 살려서 제주의 자존과 평화를 지켜야 한다.
씨알사상은 제주도 인들의 맘속에 깃든 자치와 자존, 정직과 평화의 정신을 자각하고 실천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상이다. 씨알사상은 주체의 자유와 전체의 통일에 이름으로써 제주도 역사의 아픔과 모순을 치유하고 극복하면서 자치와 협동을 통해서 제주의 자존과 평화를 실현해가도록 자극하고 이끄는 사상이다.
씨알과 씨알사상
‘씨알’서 ‘씨’는 입에서 낼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소리이고 ‘ᄋᆞᆯ’은 가장 깊고 낮은 소리라고 한다. ‘ᄋᆞᆯ’은 ‘알’로 발음하는 것보다 제주서 발음하는 대로 ‘올’로 읽는 게 옳은 것 같다. 씨는 하나의 작은 개체 속에 생명의 알맹이를 담은 실체이고 생명의 알맹이를 실어 나르는 매체이며 새 생명을 낳는 주체다. 이것은 생명진화역사의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실이고 진실이다. 아메바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씨알의 형태로 생명의 알짬을 보존하고 전달하고 새로 낳는다.
보다 나은 새 생명을 낳는 게 씨의 구실이고 사명이다. 새 생명을 낳는 것은 보다 나은 ‘나’를 낳는 것이다. 새 생명을 낳는 것이 생명의 가장 생명답고 창조적인 일이다. 물질과 기계와 정보는 복사하고 복제할 수 있으나 생명과 정신은 복사하고 복제할 수 없다. 물질과 기계는 새 것을 낳을 수 없으나 생명은 낳을 수 있다. 사람의 경우에 겉나인 몸의 나는 부모가 낳아주지만 속나인 얼의 나는 내가 스스로 낳아야 한다. 사람은 역사적 존재이므로 시대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고 얼을 가진 정신적 존재이므로 세상(사회, 나라)을 품고 산다. 사람이 저 자신을 새롭게 낳는 것은 시대를 새롭게 낳고 세상을 새롭게 낳는 일과 결합되어 있다.
‘ᄋᆞᆯ’에서 ㅇ은 ‘큰 하나의 전체’(하늘, 우주의 대통일), 하나로 이어진 둥글고 원만한 세상을 가리키고 ㆍ는 모든 것이 비롯되는 근원의 통일된 한 점, 내적으로 통일된 초점인 ‘나’를 가리킨다. ㅇ는 전체가 하나로 통일된 세상을 나타내고 ㆍ는 하나로 통일된 주체를 가리킨다. ㄹ은 생명활동을 나타낸다. 주체의 깊이와 자유에서 전체의 하나 됨(통일, 둥글고 원만한 세상)에 이르는 생명과 정신의 움직임, 활동이 ㄹ이다.
씨알사상은 생태학적 위기와 사회의 양극화와 영성의 파괴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지혜와 철학을 담고 있다. ‘씨알’에서 ‘씨’는 개체 생명의 주체와 알맹이를 뜻하고 ‘ᄋᆞᆯ’은 내적 구조와 활동양식을 나타낸다. ㅇ은 하나로 이어진 두루 원만한 큰 하나를 나타내고 ㆍ은 속에 하늘을 품어서 내적으로 통일된 초점을 가진 것을 나타내며 ᅟᅠᆯ은 내적으로 통일된 초점을 가진 주체(인격)가 두루 원만한 큰 하나의 세상을 이루어가는 활동을 나타낸다. 속에 하늘을 지님으로써 통일된 초점을 가진 사람만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두루 원만한 큰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씨알사상은 사람을 우주와 생명진화와 인류역사와 민족사의 씨알로 본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는 137억년 우주역사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고 37억 년 생명진화가 압축되어 있고 200만년 인류역사가 담겨 있고 5천년 민족사가 살아 있다. 사람 속에는 영원한 생명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씨알은 하늘과 땅을 결합하여 상생과 평화의 생명을 빚어내고 있다. 향기롭고 고운 꽃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인가! 다른 목숨을 먹이고 살리는 열매는 얼마나 평화롭고 고마운 것이냐? 생명과 정신의 씨알인 사람은 스스로 하는 생명의 주체이면서 하나로 이어진 둥글고 원만한 세상을 지어가는 존재다.
씨알은 생명진화와 인류역사의 비밀과 신비를 담고 있다. 생명과 정신의 깊이를 경험하고 깨달아서 알고 이해하는 만큼 씨알의 뜻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자연생명과 인류역사와 영성을 통합하는 말이다. 개체와 전체의 통합을 나타낸다. 몸 맘 얼의 관계와 통합을 나타낸다. 껍질과 알맹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고난과 죽음을 통한 구원과 향상의 길을 보여준다. 씨알은 희생과 상생의 길을 보여준다. 밀알 하나가 깨지고 죽어서 새싹이 나면 암을 예방하는 영양소인 엽록소가 500배 이상 증가한다. 사람의 작고 못난 자아가 깨지고 죽어서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면 인간의 정신력과 영성이 수 만 배 이상 고양될 것이다. 스스로 깨지고 죽음으로써 새 생명을 낳는 씨알은 스스로 하는 생명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나타내면서 하늘과 땅과 생명의 상생과 협력과 합일을 나타낸다.
우리는 생명평화와 제주자존의 정신 및 씨올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제주의 마을을 생명평화의 마을로, 제주도를 생명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씨알정신은 자존과 평화의 정신이다. 씨알은 스스로 하는 자존과 주체성을 가장 잘 나타낸다. 씨알을 누가 강제로 폭력으로 싹 트게 하고 꽃 피고 열매 맺게 할 수 있는가? 총과 칼로, 대포로 꽃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없다. 씨알 하나, 들꽃 하나가 어떻게 자존과 존엄을 스스로 드러내는지 보라! 씨알 하나 속에 수 억 년 생명의 역사가 담겨 있고 수 억 년 이어갈 생명의 역사가 들어 있다. 솔로몬 왕궁의 사치와 화려함도 들꽃 하나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초라한 것이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니다. 사람은 우주보다 깊고 존귀한 존재다. 사람은 37억년 진화한 생명나무 꼭대기에 핀 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만물과 모든 생명체들은 존재와 생명의 한없는 깊이와 신비를 지니고 있다. 돌 하나도 바람과 물도 한없이 존귀하고 신비한 것이다.
제주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땅이며 자치와 자존의 정신을 지닌 섬이다. 오랜 세월 중앙정부의 낡은 국가주의 권력으로부터 억압과 수탈, 학살과 모독을 당한 제주도는 지배와 정복,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낡은 국가주의서 벗어나 생명 평화와 통일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씨알사상은 낡은 국가주의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다. 또한 제주도인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자치와 자존의 정신을 살려서 새로운 나라의 꿈을 가지고 세계의 생명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도록 격려하고 이끌 수 있다.
1. 균형 잡힌 식사와 적절한 운동, 절도 있는 생활 등 올바른 습관 형성을 통해 생명의 바탕이 되는 몸의 건강을 추구한다.
씨알사상을 시작한 유영모는 수행법으로 ‘몸성히 맘놓아 뜻(얼) 태움’을 제시했다. 몸이 성해야 맘이 놓이고 맘이 놓여야 얼과 뜻을 불태워서 또는 얼과 뜻을 타고서 힘 있게 얼과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은 맘의 껍질이고 맘은 몸의 알맹이다. 맘은 얼의 껍질이고 얼은 맘의 알맹이다. 껍질이 성해야 알맹이가 알차게 익을 수 있다. 씨앗은 껍질부터 자란다. 껍질이 자란 다음에도 껍질만 가득 차 있으면 거죽만 있는 쭉정이가 된다. 껍질이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는 스스로 속을 비워서 알이 차게 해야 한다. 껍질은 알맹이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알이 들고 알이 차야 씨알이 된다. 우리말 거짓(거즛)은 거죽에서 온 말이다. 거죽 껍질에 매인 것이 거즛, 거짓이다. 참은 ‘알이 차오름’, ‘알 참’에서 온 말이다. 참과 거짓이란 말 속에 씨알사상이 담겨 있다.
돈과 기계, 조직과 제도는 생명과 정신의 껍질이고 얼과 뜻, 정의와 평화는 알맹이다. 알맹이는 목적이고 껍데기는 수단과 도구다. 몸과 물질, 돈과 기계, 조직과 제도는 얼과 뜻,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쓰이는 것이다. 얼과 뜻,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몸과 물질, 돈과 조직은 아낌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백과 정신이 있어야 씨알생명평화 운동을 할 수 있다.
몸을 잘 길러서 성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몸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인생의 끝도 아니다. 몸은 맘의 껍질이다. 몸의 욕망과 감정이 가득 차면 맘은 숨 막혀 죽는다. 성한 몸이 스스로 비워서 맘이 알차게, 자유롭고 편하게 해야 한다. 몸에서 맘이 자유로운 것이 맘 놓임이다. 맘이 놓이면 생각이 잘 난다. 생각이 잘 나면 지혜와 지식이 풍부해진다. 생각과 지혜와 지식이 풍부해지면 마음의 생각과 지혜와 지식을 다시 비우고 정화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과 지식을 넘어서 얼이 힘차게 살아 있고 뜻을 굳세게 지키고 이뤄야 한다.
“균형 잡힌 식사와 적절한 운동, 절도 있는 생활”은 알맞게 먹고 알맞게 운동하고 알맞게 생활하라는 말이다. 몸이 성하고 맘이 놓이고 뜻이 굳세게 살아 있으려면 알맞게 먹고 알맞게 자고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말하고 알맞게 행동해야 한다. 무엇이든 알맞게 하려면 알맞게 그치고 마칠 줄 알아야 한다. 알맞게 그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自足). 마칠 줄 알고 자족하는 사람은 고마운 맘으로 살 수 있다. 고마운 맘으로 사는 이는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할 수 있다.
2. 주체의 자유와 전체의 통일에 이르는 배움과 익힘에 힘써 통합적인 인격의 성숙을 추구한다.
생명의 본성과 목적은 주체와 전체의 통일에 있다. 생명은 내적으로 통일된 초점을 가지고 있으며 밖으로 전체 생명과 하나로 이어지고 통합되어 있다. 내적으로 통일된 초점이 주체, 인격, 정신이다. 안에도 하나 됨이 있고 밖에도 하나 됨이 있다.
한겨레는 ‘한’(하늘, 하나님)을 품은(모신) 민족이다. 우리민족은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웠다. 하늘은 주체의 한없는 깊이와 전체의 하나 됨을 나타낸다. 하늘이 바로 주체의 자유와 전체의 통일이 함께 이루어진 자리다. 한민족은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늘을 우러르는 민족이다. 하늘이 열려서 주체의 깊이(자유)서 전체 하나에 이르는 것이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주체의 깊이서 전체 하나 됨에 이르는 것이 공인(公人)이 되는 것이고 하늘 열고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이순신은 나라 전체의 자리서 주체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공인이었다. 이순신처럼 사심 없이 전체의 자리서 주체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사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민주시대에는 모든 민이 공인이다. 특히 남을 이끌려는 이들은 공인이어야 한다. 공인은 전체의 자리서 주체로 사는 이다. 전체의 자리서 자유로운 주체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참되고 영원한 삶에 이르는 것이다. 전체의 자리서 주체로 생각하면 인류는 영원히 살 수 있다.
3. 1국 2체제, 읍면동 자치 등 고도의 지방분권과 주민참여를 실현하여 도민의 손으로 제주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지방자치를 추구한다.
평면에서 생각하면 중앙과 중심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변두리다. 서울이 중앙이면 다른 지역은 모두 가장자리 변두리로 밀려난다. 생명과 정신의 세계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의 세계다. 땅만 알고 하늘을 몰라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짐승들은 땅의 평면서 살지만 사람은 머리를 하늘에 두고 하늘을 그리며 사는 존재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서 입체의 공간세계서 산다. 땅에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운 것이라면 나라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의 세계에 속한다. 평면서 입체 공간의 세계로 올라가면 새로운 중앙, 중심이 생긴다. 입체의 새로운 중앙서 보면 평면에 있던 중앙과 변두리의 차이는 없어진다. 평면에 있던 중앙과 변두리는 모두 변두리가 된다.
입체의 새로운 중심과 중앙은 어디 있나? 하늘에, 사람의 생명과 정신 속에 있다. 어디서나 하늘이 열린 곳에, 주체와 전체의 통일이 이루어진 곳에서 나라의 중앙과 중심이 세워진다. 하늘은 어디에 있나? 주체와 전체의 통일이 이루어진 씨알의 삶 속에 있다. 씨알은 하늘을 품은 존재이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존재다. 민주시대에는 민이 나라의 주인과 주체다.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나라의 중앙과 중심은 국민의 정신과 생각 속에, 주체와 전체의 통일이 이루어진 곳에 있다.
씨알이 중심이고 나라다. 제주 씨알이 중심이고 나라다. 씨알이 자치와 협동을 실현하는 것이 땅에서 하늘을 여는 것이다. 나라는 자치와 협동이 이루어지는 지역 현장에 있다. 지역서 자치와 협동을 실현하는 것이 하늘을 여는 것이고 나라를 새로 세우는 것이고 새 역사, 새 문명을 시작하는 것이다. 제주는 지역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장 변두리다. 시대가 크게 바뀌어서 새 시대가 열리려 할 때는 가장 소외된 변두리서 새로운 중심과 중앙이 열린다. 새 문명은 늘 변두리서 시작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도 가장 소외된 변두리였던 갈릴리서 시작되었다. 제주도는 새 문명 새 역사를 시작할, 새로운 중앙과 중심이 될 자격과 사명을 가졌다.
19~20세기는 약육강식과 식민지정복을 위해 전쟁과 폭력으로 치닫던 국가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지배와 정복, 전쟁과 폭력, 억압과 수탈을 추구하는 낡은 국가관이 지배한 시대다. 낡은 국가관에서 보면 국가는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카를 마르크스)이거나 폭력의 합법적 사용을 독점한 기관(막스 베버)이었다. 전쟁과 폭력의 시기였던 20세기를 지나서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를 동시에 실현해가는 21세기는 자치와 협동, 상생과 평화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적 국가관이 확립되는 시대다. 새로운 국가관의 핵심은 민의 자치와 협동이다. 국가의 중앙과 중심은 지역 자치의 현장에 있다. 국가의 주권도 지역 자치의 현장서 나와야 한다.
지역자치를 중심으로 국가는 재편되어야 한다. 제주도의 정치 문화적 자존과 사회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 1국 2체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형태로 높은 수준의 지방자치를 실현하고, 읍면동의 수준에서 자치와 협동을 위한 조직과 생활양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자치와 협동은 나와 네가 깊어지고 커지는 일이며 참되고 큰 나로 되는 일이다. 그것은 주체의 깊이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일이며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자치와 협동은 민의 삶과 정신 속에서 큰 나로 해방되는 일이며, 하늘을 열고 새 나라를 낳고 세우는 일이다. 서로 살리고 더불어 사는 길을 여는 자치와 협동은 나를 해방하고 나라를 세우는 생명과 평화의 축제다.
4. 건전한 협동조합 생태계를 구축하고 도민자본을 육성하여 외지자본 주도가 아닌 도민주체 경제발전을 추구한다.
씨알은 스스로 싹이 트고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꽃이 피고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씨알은 스스로 자신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주체이면서 서로 주체로서 서로 살리고 협동하는 서로 주체의 공동체다. 씨알에게는 가장 주체적인 삶이 가장 협동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자발적 주체성과 상생하고 협동하는 공동체적 전체성이 맞물려 있다.
나라의 씨알인 민이 생산 유통 소비의 주인이고 주체다. 나라가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모든 재화는 민을 통해서 민에게서 나온 것이다. 씨알인 민은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이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존재다. 자유로운 경쟁과 합리적 효율성과 이윤추구에 바탕을 둔 자유 시장경제와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유무상통(有無相通)에 근거한 자치와 협동의 시장경제가 결합되어야 한다.
본래 시장은 노동의 분업과 전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생활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진 것을 남에게 주고 필요하지만 없는 것을 남에게 받기 위해서 시장이 생겨났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니 인정이 넘치고 내게 없는 것을 남에게서 받으니 기쁘고 신이 난다. 그러므로 시장은 본래 인정과 신명이 넘치는 곳이다. 내게 있는 것을 먼저 주고 내게 없는 것을 받는다. 이렇게 주고받는 일이 고맙고 기쁜 일이다. 자치와 협동에 바탕을 둔 유무상통의 시장경제가 생산과 유통과 소비의 차원에서 확장되어야 한다.
21세기는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대다. 자본과 기술이 지배하는 산업화는 민주의 토대를 허물고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든다. 또한 자본과 기술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동서정신문화의 만남과 합류에 바탕을 둔 세계평화와 통일의 길을 가로 막는다. 자본과 기술의 세계화는 공동체적 정신과 영성을 파괴한다.
자본과 기술, 기계는 물질이고 물질은 생명과 정신과 나라의 수단이고 껍데기다. 자본과 기계·기술을 목적과 최고 가치로 삼으면 민주화와 세계화는 이룩될 수 없다. 생명과 정신과 나라의 알맹이는 민의 주체와 전체, 얼과 신과 뜻이다. 주체의 자유와 전체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얼과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본과 기계(기술)을 쓰고 부릴 수 있어야 한다. 자본과 기술은 얼과 뜻, 세계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쓰여야 한다. 자본과 기술, 기계가 지배와 독점을 위한 도구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과 기술은 자치와 협동, 자존과 평화를 이루는 도구와 수단이 되어야 한다.
외지의 자본이 주도하는 제주도의 경제발전은 제주도민의 자존과 주체를 훼손하고 제주도민의 삶과 자원을 억압하고 수탈하며 가치와 문화를 파괴할 것이다. 외지 자본에 의한 경제성장은 외지인들의 이익을 증대시킬 뿐 제주도민의 삶을 초라하게 하고 위축시킬 것이다. 제주도민이 자치와 협동을 통해서 자본과 기술, 문화와 정신을 높임으로써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문화적으로 자존감을 가지고 제주도의 풍요와 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협동과 상생을 바탕으로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지역 자치 모임을 실현해 가야 한다. 경쟁과 돈벌이 중심의 자유 시장경제를 보완하고 수정하고 대체하는 협동과 상생의 시장경제를 확산시켜야 한다. 지역마다 삼일정신과 철학을 바탕으로 자치와 협동의 조직을 만들고 자치와 협동의 생활양식을 펼치고 연대와 협력의 그물망을 엮어가자.
5. 도민의 존엄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는 복지공동체를 추구한다.
씨알은 나라의 알맹이고 나라는 씨알의 껍질이다. 껍질의 구실과 목적은 알맹이를 지키고 살리고 키우고 알차게 하는데 있다. 나라는 나라의 주인과 주체인 국민에 대한 국가의 기본의무와 책임을 다 해야 한다.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서 국민이 존엄과 품격을 지킬 만큼 먹고 입고 자고 기본 교육을 받고 문화생활을 하도록 국민을 보살피고 돌보아야 한다.
제주도민은 스스로 자신들의 존엄과 품격과 행복을 이루고 지켜야 하며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생활주권이 보장되는 복지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 나라와 제주도민 전제의 자리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남’이란 없다. 전체의 자리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같은 나라에 속한다면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서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제주도민은 다른 제주도민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내게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민으로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인간의 존엄과 품격을 지키는 복지공동체를 발전시켜가야 한다.
제주도민의 존엄과 품격과 행복을 실현하고 지키기 위해서 제주도민은 권리주장을 앞세우기 전에 먼저 인간으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깨닫고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의무를 다 해야 한다. 생명(生命)은 하늘의 사명을 받은 것이다. 의무가 권리보다 앞설 때 권리를 지키고 확장시킬 수 있다. 의무보다 권리를 앞세우는 공동체는 속에서 이미 허물어진 것이다.
어린이와 노인과 장애인처럼 스스로 생활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존엄과 주체도 존중되어야 한다. 사회복지가 사회의 약자들의 존엄과 주체를 지키고 존중하지 못하고 그들을 사회복지의 대상으로만 대접할 때 사회복지는 반드시 부패하고 타락한다. 가난한 약자들이 존엄과 품격을 지키며 스스로 주체로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울 때 사회복지공동체는 건전하게 지탱될 수 있다. 민이 스스로 주체로 살려는 의지와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복지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민주정신과 철학이 먼저 확립되고 실천되지 않으면 건전한 복지사회는 이룩될 수 없다. 민의 자치와 협동에 근거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확립될 때 비로소 복지공동체가 건전하게 세워질 수 있다. 의무가 권리보다 앞서고 민주가 복지보다 앞서야 한다.
6. 생명을 살리는 농업, 휴양ㆍ치유 중심의 관광, 자연과 공생하는 개발 등을 통해 쉼과 치유의 본향인 자연치유의 섬을 추구한다.
씨알사상은 자연생명과 인간역사(사회)와 신적 생명(하늘의 얼)을 아우르는 통합적 사상이다. 자연생명세계와 인간사회와 신적 생명이 함께 주체로서 실현되고 완성되도록 이끄는 것이 씨알사상의 과제다. 자연생명세계는 지배와 정복, 착취와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와 전체로서 존엄과 깊이를 지닌 존재로 존중되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주체로서 만나고 사귀고 주체와 전체의 깊이와 아름다움과 가치를 서로 드러내야 한다.
자연생명을 주체로 존중하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서로 주체로 상생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자신의 본성과 주체, 신비와 아름다움을 드러내도록 돕고 섬겨야 한다. 인간은 자연의 주체와 전체, 깊이와 신비, 존엄과 아름다움을 알아주고 찬미하고 드러내고 표현하고 실현하는 존재다.
인간은 자연의 품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존재다. 자연이 자연답게 드러나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실현될 때 인간도 인간답게 온전히 실현되고 완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되어야 자연도 자연답게 될 수 있다. 인간이 자연물질생명세계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히면 자연물질생명세계를 파괴하고 착취할 뿐 아니라 인간 자신의 본성과 목적을 파괴하고 불행하게 된다. 다석 유영모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맘대로 하고 자연대로 되게 하라.”는 말로 표현했다. 맘이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욕망서 자유로워지면 맘을 맘의 본성에 따라 맘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맘이 맘대로 자유로워지면 자연과 몸을 자연과 몸의 물성과 이치에 따라 실현되게 하고 완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이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는 것이라면 농업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것이다. 농업은 자연생명의 본성과 목적을 실현하고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아름답고 존귀한 일이 되어야 한다. 관광이 인간의 탐욕과 본능을 충족시키고 자연을 파괴하고 수탈하는 것이라면 관광은 인간을 욕되게 하고 타락시키는 것이며 자연을 해치고 파괴하는 것이다. 관광은 자연과 인간의 깊은 만남과 아름다운 사귐이 되어야 하고 자연생명세계가 자신의 깊이와 신비, 아름다움과 존엄을 드러내고 인간이 자연생명세계를 알고 배우는 기회와 계기가 되어야 한다. 자연관광을 통해서 인간의 몸과 맘과 얼이, 본능과 감성과 지성과 영성이 맑아지고 깊어질 수 있어야 한다. 관광을 통해서 인간의 감성과 지성과 영성이 혼란과 분열, 타락과 황폐에 빠지는 게 아니라, 혼란스럽고 분열되고 병들고 황폐한 맘이 일치와 통합, 고양과 성숙, 치유와 완성에 이르러야 한다.
제주도의 농업이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고, 제주도의 관광이 지치고 상처받은 현대인에게 쉼과 치유를 주면 좋겠다.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깊이, 고유한 문화와 가치, 높은 뜻과 꿈을 보기 위해서 세계의 사람들이 몰려올 수 있게 하면 하면 좋겠다. 제주도가 단순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생명과 정신의 깊이와 높이를 보고 깨닫고 배움으로써 몸과 맘이 치유되고 완성되는 마당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제주도 씨알들이 제주도와 제주도의 정신문화를 아름답고 품위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함께 제주도에 사는 제주 씨알들의 삶과 정신에서 더욱 아름답고 품위 있는 세계가 열려야 한다. 그런 세계는 제주도 씨알들의 작은 몸짓과 조그만 생각과 뜻이 모여서 작은 생활공동체들을 통해서 시작되고 만들어질 것이다.
7.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평화로운 인류공동체를 구현하는데 디딤돌이 되는 세계평화의 섬을 추구한다.
제주도(濟州道, 濟州島)의 글자풀이: 제(濟)는 ‘건너다, 구제하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주(州)는 ‘고을, 마을, 나라’를 뜻한다. 도(道)는 행정구역을 나타내면서 ‘길, 이치, 방법, 인의(仁義), 덕행(德行)’을 뜻한다. 바다 건너 있는 섬 고을 이란 뜻에서 제주도라고 했는지 모른다. 제주도는 한국과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섬이다. 역사적으로도 한중일과 얽혀 있다. 제주도는 한국과 일본과 중국의 사이를 건너고 넘어가서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의 길을 여는 섬이 될 수 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장벽과 대립을 넘어서 세계평화와 통일의 길과 이치와 방법을 마련하는 섬이 되면 좋겠다. 제(濟)는 구제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전쟁과 폭력, 지배와 정복, 억압과 수탈을 일삼는 낡은 국가주의의 관행과 관념에서 민을 구제하여 자치와 협동, 상생평화의 새로운 국가들의 세계로 나아가는 제주도가 되어야 한다.
제주도는 통일과 평화의 새 나라를 상징한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의 산맥들이 바다 속에서 하나로 만나 제주도가 되었다. 제주도는 하나의 섬으로 이루어지고, 하나의 산봉우리로 되어 있다. 제주도는 하나 됨의 상징이다. 산 이름도 ‘한라’다. ‘한라’는 ‘큰 하나의 나라’로 풀이할 수 있다. 남북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는데 한라산의 높이가 1950m다. 한라산에서 남북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시대를 열라는 암시가 담긴 것이 아닐까? 예로부터 한라산 정상에 서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한라산에서 동북아와 세계평화시대를 잡아당길 수 있지 않을까?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고 제주도에서 중국, 일본과 함께 동북아 평화 시대로 나아가자. 중국도 일본도 동북아에서 평화의 지도력을 가지기 어렵다. 중국은 지나치게 큰 나라이고 대국주의 전통이 너무 강해서 평화시대를 여는데 앞장 서기 어렵다. 일본은 식민지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를 전란 속에 빠트렸기 때문에 평화시대를 여는데 앞장 설 수 없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작은 나라이고 일본의 식민지전쟁으로 큰 고통을 겪은 나라다. 따라서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앞장 설 수 있다. 식민지의 고통을 겪으면서 온 민족이 떨쳐 일어나 삼일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삼일운동을 통해 민주와 민족자주와 세계평화 정신에 이르고 남북전쟁의 잿더미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가 아닌가? 세계인류를 평화 시대로 초대할 자격이 있다.
한국에서도 제주도는 오랜 세월 억압과 박해와 소외를 경험한 변방이다. 제주도야말로 세계인류를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부르고 이끌 자격을 가졌다. 제주도의 아름다움 속에서 낡은 국가관과 행태를 넘어서 자치와 협동, 평화와 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가자. 자치와 협동, 평화와 통일을 위한 만남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세계평화와 통일의 새 기운과 운동이 일어나는 자리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