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원교회 역사 : 한때에 그 사람들!
손원영 원로장로
1953년에 (최성훈 목사님이 개척) 시작된 퇴계원교회 퇴계원리 산 65번지, 화신백화점 사장이였던 박흥식씨 산 묘지 산자락 밑, 목조주택 16평을 구두계약으로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수십년을 지내게 됩니다. 한국의 산업화 발전과 함께 퇴계원 지역도 부분적으로 개발되면서 유입 인구도 늘어났습니다. 퇴계원교회는 삼육대학과 삼육초중고등학교가 인접하였기에 이사한 성도들로 교인 증가 와 함께 부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예배당은 협소하여 새로운 교회가 적실하지만 산자락 밑에 적은 교회로서는 새로운 교회건축이나 이전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 김창훈 성도 부친이신 고 김세현 사장께서 당시 퇴계원 지역 요지의 땅 104평을 교회부지로 증여하여 주시는 기적 같은 일이 1980년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지금의 교회로 발전을 이루게 되었음을 보게 되면서, 사람들이 계획하고 일을 하지만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봅니다.
퇴계원교회를 되돌아 보면서 역사의 순간마다 한때 특별한 역할을 하였던 사람들을 기억하여 봅니다.
❶ 조그마한 목조주택 교회에서 박노선 장로님과 김정순 집사님께서 19년 동안 한결같이 행하신 봉사를 주님께서 기억하시리라. 한때 한국의 재벌회장 박흥식씨는 교회 진입로가 자기네 땅이라고 하며 통행을 막는 그들에게 당당히 맞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당당히 맞서 싸우셨던 대담한 용기와 믿음을 가지신 박노선 장로님 이셨습니다. 현재의 우남빌라를 건축한 건설회사가 건축할 당시에는 그곳이 골짜기로 된 논들이었다. 우남건설이 교회가 그들의 땅이라고 비우고 떠나라 하며 중장비로 교회 건물 바로 밑과 진입로까지 파 헤칠 때, 교회는 아무런 소유권 등기나 계약서 등 권리증이 없었다. 절박한 그 당시에 박병철 청년이 공사하는 중장비 앞에 드러누워 시위를 하고 떼를 부리며 “우리 교회 손 못 댄다!”하며 공사를 중지시키고 교회를 지켰던 일도 있었다. 교회 소유권 등기권리도 없고, 주소 번지도 틀리는 상황인지라, 아무 권리 행사를 할 수 없는 목조주택 교회를 정지호 목사께서 1990년도에 부임하여 교회가 억울하지 않도록 협상하여 보상 받아냈다. 당시 그분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협상을 잘해 보상을 기대 이상 받아서, 목사님이 교회차를 사자고하여 구입하게 되는데, 승합차가 아닌 당시 고급 소나타 승용차를 구입하므로 교회가 분열되고 어려운 일이 발생하였다.
➋ 우남건설에서는 교회를 비워 달라고 자꾸 압박은 하고, 교인들은 증가하여 예배장소가 좁아 박흥식씨 묘 산자락 옆 나무 그늘에서 안식일예배를 드리던 당시로서는 사면초가였다. 그리하여 퇴계원 역전 쪽 고 김세현 사장이 기증하여 주신 교회부지에 건축을 하자는 교회 의견이 있어서, 일차로 교회서기 손원영 집사인 제가 동북건재 사무실을 찾아갔다. 김창훈 사장과 어머님이신 이성숙 집사께 말씀을 드리니 당황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기증하신 고인의 뜻대로 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2차로 당시에 시조사 기관 근무를 하시며 본교회에 출석하며 도와 주시던 도현석 목사(서중한합회 정식 담임 발령은1986년 3월 1일)를 대표로 몇 분이 기도를 한 후 다시 찾아 말씀드리게 되었다. 그때 그 사무실 분위기~~. 도목사님의 초연한 모습에서 모세와 같은 휼륭하신 지도자 모습을 나는 볼 수 있었다. 기증하여 주신 땅에 건축을 반대하신 것은 지금 생각하면, 주님께서는 퇴계원교회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증여한 땅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고 매도했을 경우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는 문제를 교회에서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면세 방법은 2년 이상 토지를 목적대로 사용해야 되므로 예배장소는 부족하고 하여 도현석 목사 지도로 그 땅 위에 천막교회를 짓고 예배를 드리며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사막과 광야와 같은 교회를 도현석 목사의 지도력과 헌신을 퇴계원교회는 잊을 수 없다.
➌ 교회부지로 다른 곳을 알아보다가 당시 방인성씨(방경섭 집사 부친) 땅 논을 개발하는 것을 알고 그곳을 알아보자고 하여 박노선 장로님과 친분이 있는 전명호 장로와 함께 문성건설 임동현 사장을 만났다. 당시 방인성씨 땅의 모든 개발행위를 임동현 사장에게 위임한 상태였다. 우리의 뜻을 이야기하니, 원하는 땅에다 교회 건축까지 다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 어려운 우리 현실에 정말 그때 우리는 천사를 만난 것 같고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구나 생각하며 기뻐하였다. 나름대로 계약서를 만들어 서중한합회장 김군준 목사님께 드리니 염려를 하시며, 건축시방서와 자세한 계약서가 있어야 된다고 하시며 허락을 하지 않으셨다. 당시 성도들 약20여명이 합회장 사택을 저녁에 찾아가 떼썼던 일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러 우여곡절 속에 1986년도 건축은 시작 되였고 외부건물은 지어졌지만 내부공사의 진척은 없었다. 김군준 목사 합회장께서는 염려하셨지만, 우리는 건축업자만 믿고 현장감독이나 소장도 없었기에 저는 교회 건축현장에서 제일 가깝게 살면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총무부장이시던 임병훈 목사님께 특별한 것은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다. 1987년 전기 시설도 안되고 전등도 없어서 도목사와 의논하고 우리가 청계천에 가서 조명등과 싼데리아를 구입하였다. 시조사에 근무하며 동부교회에 나가는 손준호 집사와 직접 공사를 하였다. 드디어 교회는 퇴계원역 근처의 천막교회에서 2차 성전인 퇴계원 107의 5, 6번지에 건축한 새 성전으로 1987년 6월 13일에 입주하게 되었다.
❹ 천사와 같던 건축업자 임동현 사장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어렵게 되니 교회와 처음 약속한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관계는 엉망이 되어갔다. 교회는 위기와 시련을 당하게 되였다. 1대 담임목회자 안영철 전도사가 1988년 3월 5일 부임하여 여러 노력 끝에 교회 건물은 준공하고 재단 명의로 11월 16일 소유권 등기를 하였다. 하지만 건축 관계자와 여러 문제가 있어 대지는 해결이 안되었다. 2대 정지호 목사가 담임으로 1990년 3월 1일에 부임하였다. 건축업자와 문성건설 그들 직원들 간에 교회건물 부동산을 놓고 법적 소송을 하면서 우리는 제삼자 관계로 형성되고 복잡하게 일들이 꼬이었다. 임동현 사장은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1991년 10월 8일과 15일 화요일에 두 차례에 걸쳐 폭력배를 보내 교회에서 난동을 부렸다. 예배를 방해하며 우리 성도들을 압박하며 임동현씨는 정지호 목사에게 폭력을 가하며 교회가 자기 것이라고 비우고 이사 가라고 하였다. 이 지경 되어 여기서 계속 당하지 말고 다른 곳을 알아보자고 담임목사님과 박노선 장로님께 제안을 드리니 그게 좋겠다고 하여 알아보니 지금에 교회건물 부지 땅인 퇴계원 산33번지 375평 찾게 되었다. 위치도 좋고 하여 교회 건축부지로 하게 해달라고 전명호 장로에게 설득을 하였다. 당시 방인성씨 재산을 옆에서 지켜 보호하며 도와주던 전명호 장로와 동생 전상호 장로의(전상호명의 가등기 땅이였음) 역할이 있었기에 지금에 교회부지 땅을 쉽게 준비할 수 있었으며 그들도 퇴계원교회를 위해 협력하였다. 당시에 정지호 목사님의 수고 공로도 기억하면, 1차 성전인 65번지 건물 보상건과 현재 교회부지 땅을 외상으로 매입 계약하여 놓은 업적으로 인정하며 주님의 섭리가 함께하였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❺ 3대 담임 정양윤 목사님은 1993년 12월 1일 급작스럽게 부임하였다. 교회건축의 시련과 또 갈등과 상처로 아파하는 성도들을 보듬어 살피시며, 눈물의 2차 성전을 떠나는 일을 강행하여, 옛날 출애굽 사건을 선도했던 모세와 같이 이루어 내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귀한 건축헌금과 곳곳에 손길이 가고 섬긴 교회를 떠나려 할 때, 모든 성도가 협력하고 한마음으로 떠나는 것을 찬성하기까지 담임목사님은 기다리며 상처받고 상심되는 성도가 없도록 지도하시며 2차 교회를 비우고 나갔습니다.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 나아갈 때 하나님은 길을 준비하여 주셨는데, 바로 도현석 목사 처남 되는 김창훈 사장이 상가건물 2층을 3차 성전 건축을 하여 이사하기까지 무상으로 사용하게 너그럽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모든 성도가 기뻐하며 감사하였습니다.
❻ 3차성전 건축을 하려 할 때 어려움도 많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진입로 문제였습니다. 온성도가 전심으로 기도하고 담임목사님은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2개월 후에는 의정부 사령관의 불가 통보가 왔고, 한 달 후인 1996년 10월 10일 김영삼 대통령 정부 때 국방부장관 직인이 찍힌 군부대 진입로 사용을 허락하는 공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1997년 3월 1일 서중한합회장 김동준 목사님과 함께 산중턱에서 공사 기공예배 드리고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1997년 12월 20일 한국연합회장 한상우 목사님을 모시고 헌당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정양윤 목사님의 많은 수고와 헌신을 퇴계원교회 성도들은 잊을지라도 주님은 기억하시리라. 4대 담임 임병훈 목사님은 2000월 3월 1일 부임하시어 교회 숙원사업인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교육관을 건축하고 도시가스공사를 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되게 수고를 하셨습니다.
❼ 지면의 한계로 생략된 인물들과 스토리가 많이 있지만~~~
저는 2차성전 건축하여 1987년도 입주하면서부터 교회 바로 곁 빌라에 가깝게 살면서 30여년을 늘 교회 관리를 천직으로 알고 섬기다 은퇴를 하였습니다. 이제는 후임자 이관호 장로가 충성된 종으로 봉사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양한 달란트를 가진 성도들이 모인 생동하는 퇴계원교회가 하나님의 위대한 마지막 복음사업을 영광스럽게 이루기를 바라며~~~ 70주년을 교회를 돌보시며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모든 행사는 잊혀지지만 길이 남고 기억 할 수 있게 옥보석 같은 기념비적 책을 만드시는 특별한 달란트를 가진 이성근 장로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