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다시 찾은 퇴계원교회
박상동 장로
1984년 8월 안식일에 퇴계원교회를 처음 찾았을 때, 한옥집의 작은 교회였다. 방석을 깔고 앉아 예배드리기에 불편한 교회였고, 화장실은 야외에 있는데 바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위태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박노선 장로, 우홍정 장로 그리고 남자 화장품 외판원을 하는 박병철 집사 등 여러분이 친절하게 맞아주고 즐거운 교제를 나누었다.
신앙을 전부로 알고 생활하다 군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하기 전, 걱정과 두려움으로 금식기도를 하며, 믿음의 선배들을 찾아 조언을 듣고, 다니엘과 요셉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논산훈련소에 1984년 2월 24일 입대하여 첫 번째 맞는 안식일 훈련을 거부하여 여러 지휘관과 면담을 하고 뜻을 굽히지 않자. 최종적으로 명령불복종으로 헌병대에 입창되었다. 14일이 지난 후에 군종감이 오셔서 면담을 하며 다른 재림교인 병사들은 토요일 오후에 따로 예배를 드리는데, 너만 특별한 요구를 하는 것은 부당하며 다른 병사와도 형평성이 없으며 일반 병사와는 다른 특혜를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마음을 돌리고 훈련에 참가하라며, 다시 토요일 훈련을 거부하면 항명죄에 해당해서 재판을 받고 군 형무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불명예전역을 한다. 그리고 두고두고 꼬리표가 붙어 다니게 될 것이다. 최종 선택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며 고민하며 여러 날 밤을 셌다. 결론은 훈련을 받기로 선택 하였다. 입창기간 동안 당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구타와 욕설 고문 같은 벌 등을 감내할 자신도 없고, 혼자서 견디는 감옥생활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조금 늦게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퇴계원에 있는 공병대 본부중대 본부소속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인사계 중대장과 대대장 면담을 통해 훈련소에서 있었던 훈련거부 문제로 상담을 해서 일병 달기 전에는 외출을 하지 못하였다. 자대에서 혼자 예배드리고 일병을 달고는 퇴계원교회에 보내 주기로 합의 하였다.
‘뜻을 정하여’라는 다니엘처럼 나도 다시 한 번 뜻을 정하기로 굳게 결심 했지만, 토요일 휴무대신 언제나 일요일 대체근무를 하도록 해서 언제 부터인가 불만족하게 되었다. 교회만 갔다 오면 꼭 일요일에 할 일을 준비 해놔서 그게 처음에는 당연히 감사히 받아 들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부당하다는 생각에 불만이 쌓이고 토요일 1~2시간 대신 일요일 온종일 일하는 것 때문에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남들보다 1시간 먼저 일어나 개인의 경건의 시간을 가진 후에, 아침점호 전에 주변정리를 하여서 인지 모범병사로 포상휴가를 많이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에 토요일에 나오던 교회가 바로 퇴계원교회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를 만나 아들과 딸을 얻었는데, 쉽지 않는 도박 같은 사업을 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주안에서 잘 자라서 아들은 신학과에 입학하였고, 딸도 삼육대 음악과에 들어가게 되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딸이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올라가며 기숙사에서 탈락되어 딸을 위해 방을 얻거나 친척집에 맡기려다, 마침 처남이 별내 지구에 사놓은 아파트가 비어있어 2012년 3월에 갑자기 이사하게 되었다.
교회를 선택하기 위해 주변을 알아보던 중 가장 가까운 교회가 삼안리, 천성, 퇴계원, 대학교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삼안리교회에 가고, 다음으로 퇴계원교회에 방문하였다. 교회지남 소식으로만 듣던대로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에 들어서니 과연 교인이 참으로 많았다.
첫 느낌은 ‘답답하다. 갑갑하다. 비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려 28년 만에 찾은 퇴계원교회는 놀랍게 발전하였다. 지금껏 다녀본 교회는 은평, 순창, 광양, 월곡, 무등교회로 100명 내외의 작은 교회였었다. 드디어 500명이 모이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전에 보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경험을 하게 되는 중이다.
퇴계원교회에 출입한지 이제 3년차이고, 30년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교회를 경험하는 중이다. 그리고 60주년을 맞은 퇴계원교회에 대한 나의 기대는 하나님의 뜻과는 일치되는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먼저는 가능하면 해외선교사를 파견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1년에 한사람 또는 부부가족을 위해 1200만원~2400만원을 부담을 할 만한 여력이 되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로 노숙자를 위한 보금자리 마련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몸을 뉘일 곳이 마땅하지 않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위해 작은 집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원룸을 얻는다면 1년에 500만원~1,000만원이 소요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가능하면 매년 30명~50명의 자원하는 교인들에게 개척이나 작은 교회에 파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면 합니다. 영구 이적을 말합니다. 교회가 수용한계를 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새 성전을 건축하거나 2부 예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제안해봅니다.
연합회에 제안도 해보고 재림마을에도 제안 했지만,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에 관한 '사명 선언문'이 교회 현판 옆에 붙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현판만으로는 교회 존립목적과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아쉽게 생각되었습니다. 본교인들 뿐 아니라 외부인도 이해하기 쉬운 사명진술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례 운조루에 있는 ‘타인능해’ 쌀독에 관한 이야기가 옛날에만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퇴계원교회에서도 빈민구제를 위한 쌀 나눔 뒤주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제 생각에는 1KG 쌀 소포장을 나누면 어쩔는지? 광주 무등교회에서도 주월1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쌀 나눔 후원자의집이라고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 여름 성경학교 비용이 만만치 않고 비용과 쏟은 열정과 노력의 결실이 조금 아쉽게 느껴집니다. 성경학교 비용을 아껴 저개발 국가에서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과감히 50%를 떼어 후원해 보면 어쩔는지…
60주년을 맞이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70주년, 80주년, 90주년, 100주년을 맞이할 때마다 더 큰 성장과 부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며 부족하지만 제가 보기에 해봤으면 하는 사업을 제안해 보았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음양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애쓰신 교회를 거쳐간 선배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주께서 뜻하신 바를 우리 인간을 통해 펼치신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도 주님의 도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