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삶에 따뜻함을 보여준 사람들

[김우]

한 줌의 삶에 따뜻함을 보여준 사람들

일요일 아침 불안한 느낌과 함께 제천서 소식이 왔습니다. 그동안 중증장애인으로 36년을 고생한 조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제 동생도 오래전에 오늘 돌아간 딸과 함께 시설에서 놀다가 사고로 이 땅을 떠났습니다. 무겁고 어두운 마음으로 위태롭고 험하게 보인 길들을 달려 내려갔습니다.

작년에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는 서울 시청 앞에서 탈시설 로드맵 법안의 위법과 부당함, 그리고 장애인시설 존치의 당위성 및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습니다. 인용합니다.

“현재 우리 딸을 비롯한 시설의 모든 발달장애인아이들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직원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고로 돌봄 서비스를 받으며 모두 함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제 딸은 집에 귀가하여 잘 지내다가도 2~3일 만 지나면 "거주시설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단 하나! "거주시설"이 곧 우리아이들의 "삶의 터전"이고 그들만의 "형제자매"가 있는 곳이고 그들만의 "소통의 공간"이며 그들만의 "생활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친부모, 친형제자매가 있는 자기 집 보다도 거주시설에 "머물기"를 희망하는 것은 거주시설에는 그들의 사랑과 기쁨과 행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발달장애인이 내 자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은 그 누구보다 먼저 법의 보호를 받아야하고, 법적인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하는 최하위의 "사회적 약자"이고 성인이 되어도 2~3세의 정신 연령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나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하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할 능력조차 없어, 누군가가 24시간 돌보아 주어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생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아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53세에 불과하여 너무나 짧은 삶을 살다 가는 "시한부 인생"이기에 부모에게는 참으로 마음 아프고 슬픈 일이지만, 이런 우리아이들을 이제는 우리사회가 보듬어 안아주고 사랑으로 위로해 주고 보호해 주어야만 하기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는 누구보다도 이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와 소명"을 가지며, 또한 이런 이유로 발달장애인들의 삶의 터전이며 공동체이자 그들의 유일한 공동사회이므로 "발달장애인거주시설"은 반드시 "존치"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빈소에 사람이 적을 것 같아서 몇몇 지인들에게 염치불구하고 근조화환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을 무리하게 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우였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분들이 어떻게 소식을 듣고 오셨는지 밤늦게 까지 있어 주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정이를 돌봐 온 ‘이하의 집’ 선생님들이 모두 오셔서 정성과 진심어린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마지막 날 거주하였던 시설을 돌아볼 때 까지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들은 우리 유족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든든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하였습니다. 솔직히 부모도 어려워하는 일들을 종사자들은 내 식구처럼 중증장애인과 같이 지내며 동고동락同苦同樂 하지 않습니까? 사회복지 현장의 열약한 근무조건과 처우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일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동안 정이가 생활하였던 ‘이하의 집’은 1995년에 개원한 장애인 거주시설로 2014년에는 여자 생활관을 별도로 증축한 중증장애인에게 특화된 맞춤형 공간입니다. ‘이하의 집’은 2개 층의 건물로 되어있는데 1층과 2층간의 이동은 기본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내부계단을 이용하여 다닐 수 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2층에서 침상이 경사로를 통해 바로 현관으로 나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서 장애인들이 바깥세상으로 나아가기가 편하고 좋았습니다. 내부 공간은 중증장애인들이 자기 휠체어와 높낮이 조정이 가능한 이동식 침상을 이용하여 거실과 침실, 욕실과 화장실 등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화장실과 욕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용변처리 등을 다 할 수 있도록 일부 공간의 높이를 구조적으로 조정한 것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접근성과 편이성이 좋은 시설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장애 때문인지 중증장애인들의 사망이 점점 많아지는 현실입니다. 같이 생활하던 친구들이 한 사람, 두 사람 곁을 떠날 때 마다 종사자는 물론 같이 생활하던 거주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날 조카와 30여년을 같은 방에서 지낸 정숙씨(가명)는 제 손을 잡고 온 몸으로 꺽꺽대며 울었습니다.

마음을 다 잡고 비가 흩뿌리는 봄을 바라보았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죽는 필연적인 우리 삶의 한 조각을 겪으며 어떻게 보면 ‘전체’와 ‘정상’이라는 평균적인 이상을 위해서 쌀알 같은 낱낱의 개인을 무시하고 도외시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생각과 모습이 실은 장애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줌의 재가 되어 조그만 나무 옆에 묻힌 몸 작았던 한 여인을 추모하며 그동안 함께 걸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꾸벅!(202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