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30
검찰총장 안 된 건 문 대통령을 위해서도 다행
현 정부 의혹 사건들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워
4월 마지막 주말을 앞두고 발표될 차기 검찰총장으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유력하다는 뉴스를 본 첫 느낌은 충격과 경악이었다. 이 정부 들어 납득할 수 없는 고위직 인사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이성윤이 검찰총장이 된다고? 이렇게 노골적인 보은과 방패 인사를 한다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고육지책이었는지 검찰총장후보추천위는 후보자 추천에서 이성윤을 배제했다. 만일 이성윤 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되었다면 민심에 불을 질러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마저 바람 앞에 촛불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성윤을 추천에서 배제한 것은 문 대통령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이성윤은 검찰총장으로 승진하지 못했을 뿐 여전히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막강한 직책에서 검찰권을 행사하고 있다. 정권의 부패부정한 요직들을 내놓고 봐주기 수사를 하고 있고 문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실세들이 옹호하고 있기에 새 검찰총장이 누가 되든 이성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성윤 지검장은 전임 검찰총장 시절 후배 검사들 거의 전원으로부터 불신임을 당했을 때도 부끄러움 없이 자리를 지켰던 인물이다. 이제 자신을 위해서나 검찰 조직을 위해, 무엇보다 대한민국에 정상적 형벌체계가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서 내려오길 간곡히 권한다. 정권에 충성도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이성윤은 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재직 당시 김학의 전 차관 출금 사건에 관해 수사 중단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고발된 형사 피의자다.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만으로도 검찰이 그를 기소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럴 경우 이성윤은 재판정에 넘겨지는 피고인 신세로 떨어진다. 이와 관련해 수원지검이 4차례에 걸쳐 소환했으나 불응해 구설에 올랐고 급기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기관장의 관용차로 모셔가 ‘황제 영접 조사’를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전례를 만든 주인공이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4월23일 서울 서초구 검찰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이 원하는 검찰 개혁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
이성윤 지검장이 왜 특급 대우를 받는지 그 이유는 다들 안다. 그는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수사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 등 정부 실세에 대한 수사를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막아 버틴, 대표적인 이 정부의 수호천사다.
이런 사유로 이성윤이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어 자신에게 주어진 검찰권을 대통령을 위해 사용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합리적 추론에 속한다. 향후 문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은 두 가지 기준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정권 재창출과 퇴임 후 신변 안전보장. 이 두 가지가 차기 대통령선거를 불과 10개월 앞둔 현 정부에 가장 절박하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수사가 진행될 경우 청와대 윗선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사안들, 즉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이라든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비롯해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무마 의혹’ 그리고 이성윤 지검장 자신이 피의자로 연루돼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등을 최대한 미루고 뭉개고 유야무야 지연시킬 방패막이 이 정부엔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가운데 월성 수사를 빼놓고는 모두 이성윤 자신이나 이성윤의 검찰권 영역에 속하는 사안이다. 이성윤이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있는 한 이런 문제들이 제대로 처리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성윤이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라 공명정대한 검찰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문재인 정부와 친정부 인사들이 기필코 달성하겠다며 집권 4년 내내 목놓아 외쳤던 검찰 개혁의 실체가 대체 뭐였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가 원하는 검찰 개혁은 국민이 원하는 검찰 개혁이 아니었다. 국민이 원하는 검찰 개혁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다. 권력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공정한 수사를 하는 검찰로 거듭나 달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그러나 이 정부가 걸어온 길은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검찰의 독립성 확보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이 정부의 검찰 개혁은 개혁 추진의 적임자로 낙점되어 기대를 모았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와 그 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거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조국 가족에게서 입시 서류 조작과 부적절한 사모펀드 투자 의혹이 드러났다면 즉시 낙마시키고 다른 적임자를 세워 개혁을 추진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집권 세력과 지지자들은 조국만이 개혁을 담당할 수 있고 조국을 반대하는 것은 검찰 개혁을 반대하는 것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내세워 광장으로 몰려 나왔다. 2019년 10월, 이때부터 한국인의 마음은 모세가 지팡이로 내려친 홍해처럼 둘로 갈라져 한국사에서 이렇게 분열된 시절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나라가 쪼개졌다.
지난 1년 내내 계속되어 국민을 지치게 했던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갈등은 또 어떠했나. 추 장관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편법과 위법 논란을 일으키며 윤 총장 징계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법치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법치를 파괴하고 무너뜨렸던 과정에 대한 사회사적 분석과 철저한 반성은 향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이 정부에서 검찰 개혁이란 “우리 세력이 검찰을 장악하면 그것이 검찰 개혁”이라는 타락한 믿음 아니었을까. “우리가 가는 길은 정당하고 옳고 우월하며 우리를 막아서면 적폐이고 수구”라는 비뚤어진 선민의식은 현 정부와 지지자들에게 노사모 시절부터 시작되어 김어준 뉴스공장을 거치면서 공고하게 구축된 감성이다. “감성이 가치처럼, 진리의 기준처럼, 행동을 정당화하는 증거처럼 간주되는 순간 위험해지”며 “합리적 생각을 대체한 감성은 무분별과 불관용의 토대가 된다”고 말한 건 밀란 쿤데라가 그의 소설 《자크와 그의 주인》(민음사, 2013)에서였다.
자기들의 정권 재창출만이 민주화라는 역사적 소명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믿는 이 정부는 정권 재창출을 위한 어떤 일도 정당화하는 이상한 심리에 빠져 있다. 그 심리야말로 목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현 정부에 충성하는 피의자를 서울중앙지검장에 계속 두면서도 그게 부조리하고 해괴망측하단 걸 인지하지 못한다. 의심 없이 굳어버린 감성과 그릇된 믿음이 합리적 사고를 대체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비극적인 결과가 빚어진다.
오진영 / 번역가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