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이 어렸을 때 다락에 올라가 그림을 익히고 있었는데, 집에서 그가 있는 곳을 모르다가 사흘이 지나서 찾았다.
아버지가 노(怒)하여 그에게 회초리로 때렸더니 이징은 울다가 떨어진 눈물을 끌어다 새를 그렸다.
이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영욕(榮辱)을 잊은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李澄, 幼登樓而習畵, 家失其所在, 三日乃得. 父怒而笞之, 泣,. 引淚而成鳥. 此可謂忘榮辱於畵者也.
출처 : 《연암집(燕巖集)》: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이징(李澄, 1581-?)은 조선 중기의 화가이다.
허균은 그를 산수, 인물, 초충에 모두 뛰어난 당대 최고 기량의 화 가로 평가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이징이 다락방에 올라가 그림을 그렸는데 그 일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징이 없어져 보이지 않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온 집안 식구들 이 애타게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이징은 사흘째 돼서야 발견되었고, 가슴이 타들어 가던 아버지는 어린 이징을 심하게 꾸짖었다.
호된 꾸중에 이징은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그 눈물을 손으로 끌어 다가 새를 그렸던 것이다.
그림 그리기에 전념한 예술 정신 고취(집중)
이징(李澄, 1581-?) : 조선 중기의 화가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함(子涵), 호는 허주(虛舟). 16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이경윤(李慶胤)의 서자(庶子)이다. 화원으로 벼슬은 주부를 지냈다. 1609년 원접사(遠接使)의 수행 화원으로 동행하였으며, 1623년 위항 문인 유희경(劉希慶)의 요청에 의하여 그의 별서(別墅)의 실경 산수화인 <임장도 林莊圖>를 그렸다. 1628년 태조의 진영(眞影)을 개수한 공으로 동반(東班)의 6품직을 제수받았다. 1627년 <소현세자가례반차도 昭顯世子嘉禮班次圖>를, 1638년 <인조장렬후가례반차도 仁祖莊烈后嘉禮班次圖>를 제작하는 데 이기룡(李起龍)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만년에는 1645년 소현세자를 따라왔다가 3년간 머무르고 돌아간 중국인 화가 맹영광(孟永光)과 가깝게 지내기도 하였다. 허균(許筠)은 그를 가리켜,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배워서 화가가 되었고, 산수·인물·영모(翎毛)·초충(草蟲)에 모두 능하며, 이정(李楨) 사망 후의 “본국제일수(本國第一手)”라고 하는 등, 당시에 가장 뛰어난 기량의 소유자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숙종 연간의 남태응(南泰膺)은 “각체(各體)를 모두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대가였다. 그러나 고법(古法)을 넓게 구사하되 웅혼한 맛이 없고 정밀하나 오묘하지 못하며 기교에 능하되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평한 바 있다. 산수화에서는 조선 초기의 안견파(安堅派)와 중기의 절파계(浙派系)를 융합한 화풍을 즐겨 구사하였는데, 초기의 화풍에 더 집착하는 성향을 보였다. 그리고 수묵 산수화와 함께 장식적인 취향이 짙은 이금 산수화(泥金山水畫)도 잘 그려 이 방면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다. 영모화에서는 절파풍의 강조된 묵법(墨法)을 토대로 간일하게 도안화되었으면서도 서정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말·기러기·원앙새 등을 많이 그리고, 이 분야의 한국적 화풍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표작으로 <연사모종도 煙寺暮鐘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이금산수도>(국립중앙박물관·간송미술관 소장), <노안도 蘆雁圖>(개인 소장) 등이 있다.
《연암집(燕巖集)》: 조선(朝鮮) 후기(後期)의 실학자(實學者) 박지원(朴趾源)의 시문집(詩文集)이다. 박지원의 자(字)는 중미(仲美), 호(號)는 연암(燕巖)이다. 그의 아들 박종간(朴宗侃)이 편집(編輯)해 놓은 57권 18책의 필사본(筆寫本)을 1901년 김택영(金澤榮)이 일부(一部)만 발췌(拔萃)하여 9권 3책으로 간행(刊行)하였고, 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17권 6책으로 인간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파(實學派) 가운데 이용후생(利用厚生) 학파(學派)의 대표적 인물인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특히 선비의 각성(覺醒)과 실학 정신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허생전(許生傳’은 『열하일기(熱河日記)』 속의 '玉匣夜話(옥갑야화)'에 실려 있는 데, 박지원의 포부와 지성이 생생하게 표현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이 책에는 18세기에 와서 패사소품류(稗史小品類)의 영향을 받아 출현하기 시작한 한문단편이 다수 실려 당대 인간들의 삶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면서, 친구와 사귐에 있어 잘못된 도리와 타락한 양반의 실상을 풍자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과농소초(課農小抄)』등을 비롯하여 ‘호질(虎叱)’, ‘양반전(兩班傳)’ 등의 한문소설이 실려 있어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측면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