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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A버전/B버전
화보 스캔 출처- 비스티움 YA_RONG 님
진지하고
착한 말
금지 구역
윤두준과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으니
200자 원고지 90매가량, 비스트이
다른 멤버를 만났대도 똑같이 나왔을 말,
어느 열혈 팬이 그를 직접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림짐작으로 써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말을 지웠다. 그러자 화장을 지운
맑은 얼굴의 윤두준이 나타났다.
#1. 먼발치에서 윤두준을 본 적이 있다. 작년, 기억이 맞다면 여름과 가을 사이. 스포츠 브랜드 화보 촬영장에서였다. 무대에서 춤추면서 노래하는 젊은 남자들이 저렇게 조용할 수 있나 싶을 만큼 비스트 멤버들은 촬영 내내 말이 없었고, 그 탓에 촬영장엔 싸늘하면서도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역시 별말 없이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던 윤두준은 자기 차례가 되자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등장해 트램펄린 위를 뛰었다. 폴짝폴짝, 어찌나 잘 뛰는지 그 목의 촬영은 금새 끝이 났다. 스튜디오를 떠나기 전, 그가 사진가에게 다가가 뭔가를 속삭이는 게 보였다. 어깨에 두른 손이며 말하는 옆모습이 퍽 다정하고 따뜻해 보였다. 그가 떠난 뒤, 사진가에게 물었다. "윤두준이 뭐래요?"
"다들 밤새우고 촬영장에 오느라 기력도 없고 예민한 상태라 촬영하기 힘들었을 텐데, 고맙고 미안하다고요." 잠시 시차를 두고 사진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두준은 늘 저래요. 어른스럽고 배려심이 깊죠."
#2. 인터넷과 SNS에서 윤두준을 찾았다. 팬들이 올려둔 정보가 넘치고 흘렀다. 거기서 건져낸 윤두준은 이런 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남자답다' '운동을 좋아하고 잘한다' '뭐든 열심이다 '의리가 있다' '대체로 진지하지만 때로 허당이다' ··· 추측건대 윤두준이라는 세계는 훈훈하고 진솔하며 사려 깊은 평화의 땅인 듯 했다. 성실한 연예인 좋다. 듬직한 리더 멋있다. 착한 청년 누가 마다해. 다만, 늘 똑같은 이야기는 지겹다. 윤두준과 마주 앉는 다면 누구나 하는 말 말고, 팬이 아닌 사람 조차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 빼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뮤지션으로서 꿈, 연기를 대하는 자세 같은 거창한 얘기는 제쳐두고 사소한 것들로만 질문을 뽑았다. 어쩌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두 사람,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시간을 공유 할 뿐인 두 사람이 별생각 없이 주고받을법한 '잡담'의 시나리오를 닮은 질문을 들고 윤두준을 만나러 갔다.
#3. 그를 만나고 돌아와 곧바로 녹음 파일을 열었다. 그의 말을 하나하나 문자로 환치하는데 이질감이 느껴졌다. 써놓은 걸 고면 응당 높낮이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 내용인데 녹음 파일 속 그의 목소리는 오직 한가지 톤. 그래서인지 수다스러운 편에 가까우리만치 하나의 질문에 길게 답을 하는데도 꽤 차분하게 들린다. 끝끼ㅡ지 옮겨 적고 보니 먼발치에서 본 윤두준과 팬들이 올린 정보에서 길어올린 윤두준이 원고지 90매의 대화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진지하고 솔직하고 단순하며, 공정하고 사려 깊은 그의 말들을 잘라내 다른 곳으로 옮긴다. 힘 닿는 한 오래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싶다는 이야기,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라 꽤 오랫동안 슬퍼했는데 근래 들어 신화나 지오디 형들 덕에 희망을 얻었다는 이야기, 비스트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칭찬 등을 미련 없이 잘라낸다. 그런 건 인터넷에도 많으니까. 교과서에 나올 것 같웆이야기는 재미없으니까. 오늘은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윤두준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4. "스스로 '소심하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말한 걸 봤어요. 어떻게 소심한지 증거를 대봐요"
"소심해요, 무지 소심하죠. 사소한 말 한마디도 마음속에 다 담아둬요. 특히 누가 저나 제가 한 무언가에 '별로'라는 말을 하면 그게 그렇게 마음에 남아요. '뭐가 별로지?' '도대체 어떤 부분이 별로였을까?' 이 생각을 줄창해요, 며칠에 걸쳐서. 계속 생각하다가 막 욕도 해요. '씨··· 지가 뭔데 나한테 별로라고 하는 거야?' 그러다 또 '아냐, 그냥 별생각 없이 한 말 아닐까?' 이러면서 자신을 위안하고. 그렇게 사흘 정도 끙끔 앓아요.(웃음)"
"소심한 거 말고 또 뭐가 있어요? '윤두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려준다면."
"음··· 마음이 아직까지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성격도, 일상도 고등학교 때와 달라진 게 없어요. 스물여섯인데 지금도 저는 친구들이랑 어울려 게임하고 축구하는 게 젤 즐거워요."
"어딜 가나 축구 이야기를 하네요. 축구가 그렇게 좋아요? 왜 그렇게 좋아요?"
"한마디로 말하기엔 그 매력이 너무 깊고 오묘해요. 축구를 해본 사람, 다리가 안 움직이고 숨이 목까지 차도록 뛰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사실 1시간 동안 축구를 한다고 하면 1시간 내내 즐겁지가 않거든요. 취미로, 재미 삼아 하는 축구인데도 괴로울 때가 많아요. 몸이 힘들기도 하고, 우리 편 중 누군가가 어이없는 플레이를 해서 짜증 날 때도 있고··· 우리끼리 하는 말로 '개발질'이라고 하는데(웃음), 그럴 땐 정말 화가 나요. 그런데 그 모든 힘들고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어떻게 하다 이기면, 그때의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트위터 보니까 축구 보면서 흥분해 올린 글도 많던데··· 보는 것도 그렇게 재밌어요?"
"축구는 발로 하잖아요? 실수가 전제되어 있는 스포츠라고요. 실수를 하고, 위기가 오고, 그걸 극복하면 또 상대방이 위기에 처하고··· 그런 식으로 한 경기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게다가 제가 절대 못하는 플레이를 선수들은 척척 해내요. 그러면 묘기를 보는 기분이 들죠."
"게임은 무슨 게임을 해요? 컴퓨터 게임?"
"다 해요. 비디오 게임도 하고 컴퓨터 게임도 하는데, 요즘은 주로 롤을 해요. 리그 오브 레전드라고, 요즘 완전 유행하는 게임이 있어요. 제가 이 게임을 하는건 너무 많이 알려져 한번은 제 아이디도 공개됐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모여서 하는데 아, 정말 재미있어요. 사회적으로 게임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지만 전 각자 자기 할 일에 충실하다면 게임이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게임 안에서 욕하고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행동이지만, 뭐 저도 가끔 할 때는 있지만요.(웃음)"
"얘기를 듣다 보니 주변에 여자 친구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남자가 편해요. 여자는 보살펴주고 배려하고 지켜줘야 하는 존재니까 대할 때 많은 걸 생각해야 하잖아요, 조심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아무래도 힘들죠. 반대로 남자랑은 쉽게 친해져요. 남자들 열에 여덟은 축구를 좋아하거든요.(웃음)"
"직업을 바꿔야 한다면 뭘 할 거예요?"
"체육 선생님."
"너무 늦지 않았으려나?"
"아 지금 제 나이에서 새 직업을 찾는 거예요?"
"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지금 이 상태로 연예 활동 금지!"
"그럼 공부할래요."
"갑자기 웬 공부?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어요?"
"아뇨 그럴 리가요. 공부에 투자를 못했죠. 일찍 예체능 쪽으로 빠져서. 그래서 미련이 좀 있어요. 후회까진 아니지만··· 새로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공부해보고 싶어요.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
"'식샤' 때 이미지 때문인지 '윤두준=먹방'이 자연스러운 공식이 됐어요. 먹는 거 좋아해요?"
"드라마에서처럼 미친 듯이 맛있는 걸 찾아 다니지는 않는데 '한 끼 때우자' 식으로 맛없는 걸 먹지는 않아요. 숙소에서 뭘 주문해 먹어도 최대한 내가 처한 상황에서 맛있는 걸 골라 먹죠."
"'먹방' 자신 있는 메뉴는?"
"치킨! 치킨을 세상에서 젤 좋아해요."
"어떤 치킨?"
"안 가려요. 맛 상관없어요. 튀긴 닭은 다 맛있어요. 닭과 튀김의 조합은 그 자체가 신의 한수예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에 비견할 수 있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사건이죠."
"닭 말고 또?"
"단골집은 프로 간장 게장. 일본 가면 이치란 라면."
"독서실 라면으로 알려진 거기?"
"네. 거기 가면 면발의 두께, 매운 정도, 추가 양념 등을 취향 따라 조절 할 수 있잖아요? 별 거 다 해봤어요. 차슈를 김에 싸먹어 보기도 하고··· 갈 때마다 색다른 시도를 하는데 매운 정도는 늘 정해져 있어요. 늘 두 배로, 거기에 마늘 추가. 그게 젤 맛있어요. 아, 얘기하다 보니 또 먹고 싶네···. 이치란 라면은 다른 멤버들도 다 좋아해요. 현승이만 빼고"
"현승 씨는 왜?"
"현승이는 워낙 입맛이 독특해요. 현승이는 워낙 개성도 뚜렷한 친구라 다른 멤버 모두가 좋아하는 라면을 안 좋아해도 '현승이 라면 그럴 수 있겠다' 하죠."
"멤버끼리 싸울 때는 없어요?"
" 없어요. 안 싸운지 3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이제 서로가 너무 익숙해져 '이 선을 넘으면 싸운다'는 걸 감으로 알아요."
"그런 착한 대답 말고,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비스트 이야기 있으면 좀 들려줘요. 팬들이 모르는 비밀 같은 거···"
"하하. 그런 거 없을걸요? 팬의 위대함을 잘 모르시는구나."
"팬의 위대함?"
"저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는 게 팬이에요."
"하핫, 여자는 어때요? 이 여자, 저 여자 요리조리 조합해 윤두준이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여자를 하나 만든다면?"
"복잡하게 안 해도 돼요. 청순하게 생겼는데 알고 보니 왈가대이고 붙임성도 좋고 털털한 여자가 있다 쳐요. 그러면 매력적일 것 같아요. 반전 매력이라고 하죠? 그게 있는 사람이 좋아요. 겪어 본 사람 중에는 한지민 누나가 제 이상형에 가장 가까워요."
"근데 그런 여자를 어디서 만나죠?"
"에이, 못 만나죠. 이상형을 어떻게 만나요. 이상형은 단지 이상형일 뿐, 로망으로만 간직하는 거예요."
"하하, 재밌네. 난 재미있는데. <긱>은 남자들이 보는 잡지라 걱정돼요. 남자 독자들은 비스트나 윤두준에 크게 관심 없을 수도 있는데··· 그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한다면 뭐라고 하겠어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안녕하세요? 비스트 리더이자 K리그 홍보대사 윤두준입니다. 반갑습니다."
"그게 다예요?"
"네!"
"그게 뭐야?"
"K리그 홍보 대사, 라고 하면 다들 조금은 관심 보이실걸요? 제가 아이돌 최초 K리그 홍보 대사라고요. 그거 때문에 저 좋아해 주시는 형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목에 'K리그 홍보대사 윤두준', 이렇게 넣어주세요. 그러면 게임 끝이예요, 하핫.
"학교 다닐 땐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어요. '뭘 해도 나는 잘할 거야' '뭘 해도 크게 될 거야' 라고 생각했죠. 근데 막상 연예계에 들어오니 와, 쉽지가 않더라고요. 크게 되는 건 고사하고 살아남기조차 어려워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열심히 하게 됐어요. 타고난 노력파여서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으니 하는 거죠."
"뒤는 안 봐요. 너무 먼 미래도 안봐요. 지금 눈앞에 닥친게 저한텐 중요해요. 연예계에선 내일을 확신할수 없어요. 계획한다고 뜻대로 되는것도 아니고··· 그러니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매번 갖고 있는 걸 최대한 꺼내놔야 해요. 그래야 내일이 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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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잘 이해하고 대답도 조리있게 잘해. 무엇보다 진솔하고 군더더기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