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0
‘조국의 강’이어 ‘남국의 강’에 빠진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어느새 ‘내로남불’이란 단어와 동의어로 취급받는 신세가 돼 버렸다. 지난 대선 기간 이재명 후보는 세 번에 걸쳐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김남국 의원의 코인 보유·거래 논란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거의 바뀐 게 없는 모습이다. 당 안팎에선 “잠시 잊거나 봉합해 놨던 조국 트라우마가 다시 소환되면서 ‘조국의 강’에 이어 ‘남국의 강’ 앞에서 당이 큰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내심 낙관해 왔던 내년 총선 승리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유권자들의 여론 추이도 심상찮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는 “특히 40대의 이탈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갤럽의 5월 첫째 주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40대의 민주당 지지도는 일주일 전 58%에서 36%로 급락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꼽히는 40대에서 22%포인트의 지지율 하락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한국갤럽의 5월 둘째 주 조사에선 20대의 민주당 지지율도 19%로 집계되며 전주(31%)보다 12%포인트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30대의 민주당 지지율도 42%에서 33%로 낮아지면서 유사한 하강 곡선 추세를 보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듯 민주당 의원들의 위기감도 상당하다. 일치단결해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자를 ‘무리하게’ 방어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조기에 쇄신 의총을 소집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해석이다. 의총 후엔 조국 사태 때와 달리 ‘재창당’의 각오로 “국민 상식에 맞는 정치 윤리를 바로 세우겠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의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이 위기관리 능력과 도덕적 가치, 법적 책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여전히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한 현실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적잖다.
무엇보다 과거 조국 내정자를 신속히 지명 철회하지 않았던 위기관리 실패가 오늘날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지난 5일 코인 사태와 관련해 첫 보도가 나온 뒤 민주당은 국회 윤리특위에 선제적으로 제소하긴커녕 계속 머뭇거렸고, 여론이 한참 악화되고 나서야 이재명 대표는 지난 17일 제소 카드를 수용했다. 더욱이 민주당은 지난 14일 김남국 의원의 탈당계를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접수하면서 사실상 ‘제2의 민형배 사태’마저 예고하고 있다. 김 의원도 “잠시 당을 떠나는 것”이라며 이런 논란에 불을 붙였다.
도덕적 가치 측면에서도 민주당은 갈수록 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양이원영 의원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우리 당은 너무 도덕주의가 강하다”고 오히려 개탄한 게 대표적이다. 법적 책임 측면에서도 조국 사태는 이미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상태다. 김남국 의원도 애당초 민주당의 방어 논리였던 ‘국민정서법’ 위반이 아니라 정치자금법·자본시장법 위반과 뇌물죄 혐의 등 실정법 위반 여부를 재판을 통해 다퉈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가 19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도대체 왜 민주당은 과거의 전철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더 퇴행하는 이유는 뭘까. 진영 간의 치열한 내전 속에서 ‘도덕’은 사치스러운 고민일 뿐인가.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사실상 내전을 진행 중인 미국의 민주당은 왜 내로남불에 빠지지 않고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걸까. 문제는 오늘날 한국의 민주당은 최소한 지켜야 할 가치를 견지하면서 선거에서도 이기는 길을 스스로 버렸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는 물론 단기적인 생존 능력도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의 노선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는 점이다. 지금의 민주당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가치 정당의 깃발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이 대표와 적극 지지층의 자장 안에 머물러 있는 오늘날의 민주당은 단지 ‘생존주의 정당’일 뿐이다. 이런 정당의 일차 목표는 말 그대로 ‘생존’이다. 여기엔 자체적으로 설정한 ‘딥 스테이트(적폐)’와의 적대적 투쟁이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하며, 따라서 도덕은 오로지 적이나 적에게 동조한 자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될 따름이다.
이번 코인 사태 와중에 이 대표의 미지근한 리더십을 비판한 당내 청년 정치인들에게 행해진 일부 극단적 지지자들의 폭력이 상징적이다. 당의 소중한 미래 자산을 ‘원외 8적’으로 규정했는데도 정작 이 대표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민주당을 연상시키기보다는 미 의사당 폭력 사건 때의 트럼프가 떠올려지는 게 한국 민주당의 어처구니없는 현주소인 셈이다.
향후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당 안팎에선 “민주당이 생존주의 정당으로 변모한 순간 검찰 통치의 완벽한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단기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칠수록 검찰이 올가미를 더 조일 카드는 많다. 돈 봉투 사건은 물론이고 이번 코인 사태가 다른 의원들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백현동, 대북 송금, 대선 자금 등도 검찰이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 카드다.
일단 민주당은 여야 의원 전수조사 등을 앞세우며 위기 탈출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지지율도 정체·하락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6월이 지나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관리형 비대위’ 체제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비명계’인 박광온 원내대표의 당선이 향후 비대위의 연착륙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관건은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과연 ‘재창당’의 각오를 얼마나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냐다. 쇄신 의지의 첫 관문은 국회 윤리위에서 김남국 의원을 제명까지 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이런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노력 없인 생존주의 정당에서 가치 정당으로의 전환은 요원할 뿐이다. 도덕적 불감증과 그들만의 동업자 의식이 만연한 지금의 민주당이 유권자들에게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안병진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중앙SUN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