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퀠른에서 약속이 있어 스웨덴은 통과만 했고 덴마크에서도 짧게 머물고 페리를 타고 독일로 이동했다. 독일에 오자마자 특별히 눈에 띄는 풍경이 있었다. 독일에는 민가가 없는 곳에 여지없이 빼곡하게 픙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함부르크에 도착할 때까지 풍력발전기를 수백 기는 본 것 같다. 독일은 올해 4월 마지막 원자력발전소의 전원을 껐다. 자료를 찾아보니 독일은 전체 에너지의 25%정도를 풍력에서 얻는다고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자원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 에너지 생산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졌기 때문에 독일 에너지 정책은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독일의 탈원전 정책을 응원하고 싶다. 아직까지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고 핀란드처럼 엄청난 암반지형이 있어 영구히 밀봉시킬 수도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가지고 있다. 발전소 한 기만 잘못돼도 나라 전체가 위험하다. 당장은 값싼 에너지일지 모르지만 후손에게 물려줄 위험부담과 핵폐기물 처리비용까지 계산한다면 가장 비싼 에너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과 많이 다른 풍경을 감상하며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큰 항구이고 독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독일에서 부자가 가장 많은 도시이고 주민 소득도 제일 높은 곳이란다. 전세계에서 온 삼천여 개의 회사들이 수출입 업무를 위해 상주하고 있고 햄버거의 어원이 된 도시이다.
인터넷으로 자동차 정비소, 현대자동차 서비스센터, 트럭 수리점들을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공임을 턱없이 비싸게 달라거나 예약이 밀렸다고 하거나 네시라 영업이 끝났다고 했다. 유럽 다른 나라들은 아직 모르지만 북유럽과 독일은 대부분 관공소나 영업장들이 세시나 네시면 영업을 종료한다. 영업시간이 끝나서 봐줄 수 없다는 수리점을 나와 혹시나 하고 시내를 돌아보다가 문이 열린 카센터를 찾았다. 튀르키에 형제가 운영하는 카센터였는데, 영업시간이 끝났지만 우리가 사정을 설명하니 다음날 오면 고쳐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찾아가보니 카센타 규모가 제법 컸다. 카센터 기술자가 망가진 제너레이터를 한국에서 보내준 새 제너레이터로 교체해주었다. 전조등도 잘 들어오고 주행충전기도 제 역할을 잘하게 됐다. 그런데 공임으로 100유로(십오만원이 조금 덜 됨)만 달라고했다. 우리가 알아봤던 곳들 중 공임을 120만원까지 요구한 곳이 있었는데 완전 공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무료로 찌그덕대던 소리도 잡아주어 너무 고마웠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 며칠, 혹은 몇 주나 기다릴 수 없는 사정을 헤아려 바로 수리해주고 수리비도 적게 받은 것 같다. 고마운 튀르키에 사람들이다. 그후로도 독일에서 우연히 튀르키에 사람들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다.
자동차를 고쳤으니 차에 문제가 생긴 지 한 달만에 아우토반에서 전조등을 켜고 신나게 달렸다. 그동안은 전조등을 켤 수 없어서 야간운전은 할 수 없었다. 북유럽과 독일에서는 낮에도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다니면 상대쪽에서 오는 차들이 계속 전조등을 겨라고 불을 번쩍인다. 배려라는 것은 알지만 전조등으로 번쩍이는 차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 편히 제한속도 시속 655킬로미터(네비게이션에 찍힌 제한속도) 아우토반을 100킬로미터로(우리 차는 미니버스라서 속력을 110길로 이상 낼 수 없게 잠겨 있음) 신나게 달렸다. 독일은 고속도로 포함 모든 도로가 무료다. 여행 전에는 독일의 아우토반이 특별한 장소, 특별한 구간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독일 고속도로 중 원에 사선 다섯 줄이 그어진 표지판이 있는 곳이 아우토반이고 독일 전역 고속도로 대부분에 있었다. 속도제한, 추월금지 제한 등 모든 제한을 해제한다는 의미란다. 아우토반은 모든 제한이 철폐된 곳이라지만 다들 안전하게 운전했다. 나는 독일 아우토반이 어쩌면 심리적인 해방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제한이 없다고 실제로 655킬로로 달리는 사람은 없듯 모든 제제가 없어도 스스로 결정해서 안전하게 행동하는, 자율성을 존중하는 문화의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제일 큰 문제였던 자동차 배터리 충전과 주행충전기 문제를 해결했지만, 지금도 차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 생기고 있다. 어떤 문제는 바로 해결하지만 어떤 문제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좀 더 안고 다니는 중이다. 여행도 일상처럼 쉬운 일은 없는 것 같다. 어찌됐든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나는 순간순간 참으로 행복하고 즐겁다. 행복하다고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