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의 정취를 제일 먼저,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음식이 도다리쑥국이다. 한반도의 봄을 여는 남해안, 한려수도의 중심지에서 비롯된 음식인 데다 바다와 들판의 봄 전령사, 도다리와 쑥이 어우러져 입맛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처럼 도다리는 봄에 잡은 것이 맛있다. 산란 후 통영 앞바다로 돌아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다리와 겨울을 뚫고 싹을 돋아낸 햇쑥은 무기질, 비타민에 더해 생명의 기운마저 품었다.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들은 “봄철에 도다리쑥국을 세 번만 먹으면 한 해 건강이 걱정 없다”고 주장할 정도다. 도다리와 쑥의 조화가 ‘봄의 보양식’을 만든 것인데 무엇이 음식에다 그토록 진한 봄기운을 불어넣는 것일까?
도다리는 가자미목 가자밋과 생선이다. 세계적으로 가자미목에 속한 물고기는 모두 52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26종이 산다. 도다리는 그중에서도 넙치라고도 하는 광어나 일반 가자미에 비해 몸이 마름모꼴로 넓은 것이 특징이다.
보통 ‘좌광우도’라고 해서, 눈이 왼쪽에 몰려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와 가자미라고 하지만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생김새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예전에는 도다리, 광어, 가자미를 모두 비슷한 물고기로 여겨 한자로 접어(鰈魚)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접어가 당돌하게도 ‘내가 조선의 물고기다’라고 주장한다. 눈이 비뚤어져 가자미 눈깔이라고 무시당하는 주제에 감히 조선의 대표 물고기임을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일까?
이유는 도다리, 가자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생선이었기 때문이다. 남해안의 도다리쑥국, 강원도와 함경도의 가자미식해, 경상도의 가자미미역국 등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가자미 종류를 많이 먹는다. 요즘 가장 많이 먹는 생선회도 광어회니 예나 지금이나 가자미 사랑은 변함없다. 심지어 옛날 한반도를 ‘가자미 땅’이라는 뜻에서 접역(鰈域)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그런데 가자미 나라라는 별명이 조금은 불쾌하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우리는 별명이 많은 나라다. 먼 옛날부터 아침 해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나라여서 조선(朝鮮)이라고 했는데 고조선과 조선왕조에서는 아예 국호로 삼았다. 숲 속의 닭이 울어 왕의 탄생을 알렸기에 신라를 계림(鷄林)이라고 했고, 동방에 신선들이 모여 사는 언덕이어서 청구(靑邱), 무궁화가 많아서 근역(槿域)이었다. 가자미가 많은 땅이라는 뜻의 접역 역시 조상들이 자랑스럽게 여긴 별명이다. 조선 초 세조는 명나라와의 외교 문서에서 스스로 우리 땅을 접역이라고 불렀고, 조선 후기 정조 역시 “우리나라는 접역으로 예의를 아는 곳”이라고 했다.
가자미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조상님들은 가자미 땅이라는 별명에 자부심을 느꼈을까? 비밀은 가자미 눈깔이라고 부르는 가자미목 생선의 눈에 있었다.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가자미, 도다리, 광어의 눈은 모두 한쪽으로 몰려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가자미가 한쪽 방향밖에 볼 수 없어 혼자서는 절대 헤엄을 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짝을 이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 눈을 합쳐야 한다는 뜻에서 가자미 종류의 생선을 비목어(比目魚)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화합과 협동, 신뢰와 믿음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죽을 때까지 운명을 함께하는 부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했다.
고대 신화에는 비목어와 비슷한 동물이 또 있다. 비익조(比翼鳥)라는 새로 암수의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어서 서로 짝을 이뤄야 날 수 있으니 역시 지극한 사랑의 징표로 쓰였다. 비익조는 남방에 살고, 비목어는 동방인 우리나라에 사는 물고기이니 믿음의 상징이고 사랑의 표상인 가자미의 땅이라는 별명이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도다리쑥국의 또 다른 재료인 쑥 역시 보통 식물이 아니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가 쑥을 먹고 곰에서 인간이 됐을 정도다. 그렇다면 곰은 왜 인간이 되기 위해 쑥을 먹었을까?
신화를 창조한 고대인들은 곰이 쑥을 매개물로 삼아 야성을 버리고 인성을 찾았다고 기술했다. 쑥은 나쁜 기운을 쫓는 힘이 있고, 생명력과 다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속담에 “애쑥국에 산골 처자 속살 찐다”는 말이 있다. 산골 아가씨가 새봄을 맞아 성숙해져 여인으로 거듭났다는 표현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여자의 성인식 때 쑥 연기를 쐬게 하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이다.
제철 도다리와 햇쑥으로 끓인 도다리쑥국은 언제나 입맛을 자극한다. 거기다 부부, 연인과 함께 비목어인 도다리를 먹으면 맛과 함께 정까지 돋아나지 않을까?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