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7-13절, 빌라델비아 교회: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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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장 7절에서 13절의 본문으로 '빌라델비아 교회: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할 때'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는 단지 과거 1세기 소아시아에 실재했던 지역 교회의 메시지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어지는 신약의 구속사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교회의 영적 여정과 그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청사진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다섯 번째 교회인 사대교회는 종교개혁 이후에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죽은 교리와 메마른 형식주의에 갇혀 버린 개신교의 타락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 있다, 정통이 있다고 불렀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죽음의 무덤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시 새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오늘 살펴보는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는 바로 그 죽음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강력한 성령을 통하여 참된 생명을 회복시키시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의 뜻은 헬라어로 '형제 사랑'입니다. 이것은 메마른 교리나 조항, 사람의 제도가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 안에서 거듭난 성도들이 서로를 진정 내 몸처럼 사랑하는 교회의 본질이 회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역사주의 예언 해석의 안목으로 볼 때 빌라델비아 교회는 18세기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복음주의 대각성 운동과 해외의 폭발적인 선교 부흥을 거쳐, 19세기 초부터 시작되어 1844년 역사적인 초기 재림 운동의 시대를 잘 상징합니다. 그 전까지는 재림에 대한 메시지가 설교 단상에서 거의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언을 연구하게 되고 재림에 대한 징조가 하나씩 성취되면서, 장로교나 감리교나 침례교 같은 교파의 담이 다 허물어지고 초교파적인 재림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예수님께서 곧 오시니 준비하자." 이렇게 재림의 기별 하나를 붙잡고 서로 사랑하며 기도하면서 주의 재림을 준비했던, 정말 뜨겁고 순결했던 부흥의 시대였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참 보잘것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계시록 3장 8절에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게는 거대한 교권의 조직이나 막강한 재력, 세상의 권세가 없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힘이 없고 연약한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가장 큰 역설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 주님께 단 한 마디의 책망도 듣지 않고 오직 칭찬과 사랑만 받은 두 교회 중 하나가 바로 이 연약한 빌라델비아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적은 능력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아무도 능히 닫을 수 없는 영원한 문을 열어 두셨습니다.
우리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위축되거나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적은 능력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삶 가운데 어떠한 기적을 행하시는지, 어떤 문을 여시는지를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7절과 8절 전반부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까?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구약 이사야 22장 22절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국의 모든 보고를 열고 닫는 권한을 위임받았던 국내 대신 엘리아김의 배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열쇠, 곧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 왕국의 모든 보화, 모든 축복, 그 구원의 역사를 주님께서 절대적으로 쥐고 계시며 주권적으로 열고 닫으시는 통치 권세를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권세는 오직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다윗의 보좌에 앉으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주님의 절대적인 권세이기에, 사탄이 아무리 방해하고 세상 권세가 교회를 가로막는다 해도 주님이 열어 놓으신 문은 그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
역사주의 예언 해석의 안목으로 볼 때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에 열어 두신 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계 선교의 문입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윌리엄 캐리를 필두로 하여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복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서공회가 설립되어 각 나라의 수많은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고, 복음의 빛이 지구촌 구석구석에 들어가며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두 번째는 하늘 지성소의 문입니다. 이것은 성소 기별의 가장 중요한 핵심 진리입니다. 다니엘 8장 14절에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때는 지성소의 문이 열릴 때입니다. 성경 예언의 2,300주야 끝인 1844년에 주님께서는 성소 첫째 칸 봉사를 마치시고 지성소 사역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위대한 문을 여셨습니다. 지성소의 문이 열리면서 마지막 재림 전 심판이 시작되었고, 언약궤 안에 담겨 있던 십계명의 중심이자 창조와 구원의 거룩한 표징인 제칠일 안식일의 진리가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주님의 재림을 준비시키는 셋째 천사의 기별이 증거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온 우주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영원한 진리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8절 후반부와 10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법칙은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은 큰 힘이나 많은 자원을 가진 사람을 찾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인정하고 주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 곧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통해 당신의 위대한 문을 여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병은 고치면서도 자신의 질병은 고치지 못하여 세 번이나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에 바울은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나의 연약함이 바로 그리스도의 전능하심이 머무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적은 능력을 가지고 큰 역사를 이룬 대표적인 인물들이 있습니다.
구약의 모세는 혈기가 넘치고 애굽의 모든 학문과 왕실의 권세를 가졌던 마흔 살에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지 못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려다 실패하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가 80세가 되었을 때, 모세 자신의 고백처럼 80세는 기력이 다하고 힘이 없을 때였습니다. 체력도, 말주변도, 애굽의 학문도 40년의 세월 속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며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때 그를 쓰셨습니다. 80세의 연약한 모세가 지팡이 하나 들고 주님을 의지했을 때 철옹성 같던 바로의 문이 열렸고, 애굽에 열 재앙이 내렸으며,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에서 하늘 문이 열려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생명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아진 모세를 위대한 능력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신약의 사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던 평범하고 투박한 어부들이었습니다. 문벌도 학벌도 없는 적은 능력의 사람들이었지만, 성령 충만함을 받았을 때 사도행전의 역사를 놀랍게 써 내려갔습니다. 유대교의 굳게 닫힌 문이 열리고, 로마 제국의 빗장이 풀렸으며,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방인을 향한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진 이들을 통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 비결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탁월함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적인 수단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했을 때, 내가 작아졌을 때 위대하신 주님이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온전히 머무는 거룩한 통로가 된 것입니다.
제 목회를 돌아보아도 부끄러운 일이 참 많습니다. 처음에는 내 힘과 내 젊음의 열정으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문이 닫히면 억지로 열어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해 사람의 마음과 닫힌 문을 열어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일이 잘되어 성공할 때면 교만해졌고, 인간의 힘으로 부딪히다 한계에 부딪히면 실패와 좌절, 탈진을 겪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주님께서 제 마음에 깊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아, 내 인생과 사역의 문은 내가 열 수 있는 영역이 아니구나. 사역의 열쇠를 내가 쥐고 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구나. 이 열쇠는 주님의 것이며 주님이 다윗의 열쇠를 쥐고 계시는데.'
그 후로 주님께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다윗의 열쇠를 갖고 계시니 주님이 열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험을 할수록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임하고, 주님이 친히 문을 여시는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복음 사역이란 내가 문을 억지로 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열어두시고 예비하신 자리에 참여하여 합당한 사람을 찾는 과정입니다.
인생에는 직장의 문제, 자녀의 문제, 영적인 문제, 교회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등 수많은 닫힌 문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힘으로 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열쇠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가장 선한 때에 가장 선한 방법으로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적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끝까지 말씀에 순종한 자들에게 주님은 놀라운 구속의 영광을 약속하십니다. 세상에서 적은 능력을 가졌다고 무시당했던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빌라델비아 지역은 지진이 잦은 도시였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성벽과 가옥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에 떨며 도시 밖으로 피난해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하나님의 성전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기둥으로 세우겠다." 불안 속에서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둥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 주님의 새 이름을 새겨 주겠다고 하십니다. 고대 로마 황제들은 지진 피해를 복구해 준 뒤 그 도시에 황제의 이름을 새겨 넣곤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신 성도들의 이마에 영원한 주님의 이름을 새겨 주십니다. "내가 피로 너를 샀고, 너는 내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다"라고 그 소유권을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첫째, 내 인생과 사역의 열쇠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 완전히 넘겨 드려야 합니다. 그분만이 닫을 자가 없는 하늘 문을 여십니다.
둘째, 나의 적은 능력을 탓하지 말고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모세와 갈릴리 어부들을 쓰셨듯이 주님께서는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셋째, 요동치는 세상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도, 건강도, 세상의 권세도 다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세상에 닻을 내리지 말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으로 세움 받은 자로서 주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소망 가운데 담대하게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핵심 요약 정리
빌라델비아 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영적 의미
명칭의 의미: '형제 사랑'을 뜻하며, 십자가 사랑 안에서 교회의 순결한 본질이 회복된 상태를 보여줌.
예언적 시기: 18세기 말 선교 대각성 운동부터 1844년 초기 재림 운동에 이르는 영적 부흥의 시대를 상징.
영적 특징: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와 대조적으로 책망 없이 오직 칭찬만 받은 교회.
다윗의 열쇠와 열린 문의 축복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절대적 구원과 통치의 권세를 가지신 분.
열어두신 두 가지 문:
세계 선교와 성경 보급의 문 (18~19세기 복음 전파).
하늘 지성소의 문 (1844년 이후 재림 전 심판, 안식일 진리의 회복 및 셋째 천사의 기별 선포).
적은 능력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은 세상의 강함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적은 능력'의 사람을 들어 쓰심 (사도 바울의 고백, 80세의 모세, 갈릴리 어부들의 역사).
인생과 사역의 문을 억지로 열려 하지 말고, 다윗의 열쇠를 쥐신 주님께 모든 주권을 맡길 때 참된 평안과 역사가 나타남.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성전의 기둥: 지진으로 늘 흔들리던 빌라델비아 도시의 불안을 넘어, 결코 요동치 않고 뽑히지 않는 영원한 반석 같은 존재로 세우심.
새겨진 이름: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주님의 새 이름을 새겨 주심으로써 주님의 존귀한 영원한 소유임을 확증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