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장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
바울 서신들이 신학적 논증과 생활의 적용을 병행하듯이 본 히브리서는 논증 적용, 논증 적용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기자는 2장 5절에서부터 3장 5절까지 긴 논증을 이어왔다. 그 논증의 대상은 당연히 구원의 창시자요 인류의 형제가 되시고 고난받음으로 고난받는 자들을 도우실 수 있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3장에 와서 기자는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요 믿는 도리의 사도로 제시한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성경의 기자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호소한다. 여기서 카타노에오(κατανοέω)는 깊이 생각하다, 곰곰이 생각하다, 연구하다, 주목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장과 2장에서 더 좋은 이름을 가지신 분으로 예수님을 조명한 이후 3장에서는 그 예수를 모세와 비교하여 더 좋은 지도자라는 사실을 부각 시킨다.
(히 3: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모세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충성스럽게 섬겼지만 이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충성스럽게 섬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는 그리스도가 모세보다 더 좋은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지도자란 어떤 지도자인가? 히브리서 기자가 좋은 지도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오직 하나 믿음이다. 본 3장의 핵심 단어는 믿음이다.
(히 3: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그것과 같이하셨으니
본장과 이어지는 4장에서 믿음, 불신, 신실함 등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우리말은 여러 모양이지만 헬라어는 기본형이 동일한 피스티스(믿음, pistis), 피스튜오(믿음을 가지다), 아피스티아(불신), 피스토스(신실한)뿐이다. 그러므로 신실하다는 말은 믿음직하고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되다”라는 뜻이다.
좋은 지도자로서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신뢰하고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일꾼이었다. 모세도, 그리스도도 오직 믿음으로 굳게 잡고 굳게 섰다. 좋은 지도자는 머리가 좋거나, 능력이 있거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지도자는 신실한 사람, 곧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그 믿음은 단순히 지적 믿음이 아니라 순종으로 직결되는 믿음 곧 충성된 믿음이다.
더 좋은 지도자에 대한 논증을 마치고 기자는 7절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과 삶에 적용을 이어간다. 너희도 믿음 위에 굳게 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모세를 따라 나왔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불신하지 말고, 불신앙에 빠지지 말고 굳게 서라고 강권한다.
(히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히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우리의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날마다 그분께 골몰할 때에 우리는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함으로 그들은 불순종의 길을 걸었고
결국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완고하게 되어 불순종함으로
인생 광야를 방황합니다.
이 교훈을 저희에게 주셨으니 오직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처럼 우리도 신실한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