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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노민영 시인의 첫 시집 『섬』이 《도서출판 두엄》에서 상재되었다. 1부(바닷물을 풀어 내리고) 21편, 2부(뱃길처럼 왔다가) 21편, 3부(하늘 비치는 저 바다에) 20편, 4부(바닷말을 키우고) 17편으로 구성된 총 79편의 주옥같은 시편들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시인의 말
사는 일이 만만치 않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서
가을이 오도록 시를 모았다
단풍이 들도록 시집을 엮었다
낙엽이 지도록 마음을 담았다
새봄을 위해
어둑한 나와
무거운 시집을 모두 내려놓는다
2024년 가을 고향에서
노민영
■ 서평
삶과 시를 떼어 놓을 수 있을까. 삶과 시가 한 몸이라는 그 기도문 같은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시를 써 온 시인이 있다. 그래서 시가 삶이고 삶이 시가 되고자 했으나 그늘진 삶이 늘 시 보다 빨라 시는 삶을 뒤쫓느라 바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슬픈 곡조’와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그리움’의 단어가 장마에 쓸려 내려온 자갈처럼 많다. 그렇다고 긴장할 이유는 찾지 마시라, 그가 살아온 삶에서 뚝뚝 떨어져 내린 땀방울이 시집 곳곳에 뿌리내려 꽃 몽우리를 만들어 언젠간 꽃을 활짝 피우는 날 ‘슬픈 곡조’도 ‘애간장’을 녹이는 그리움도 ‘눈 녹듯’ 사라지고 푸근한 햇살 같은 아침이 활짝 열리게 될 터이니. - 표성배(시인)
그의 발걸음은 늘 서성인다. 별꽃 천지 은하수 강 위에 뭇 생명들의 이름을 꽃처럼 흩뿌리고 섬이 되어 앉은 별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긴 그림자를 끌고 그는 구도자처럼 걷고 있지만 시시때때로 무너진다. 무너진 것들은 껴안아 다독다독 바다에 앉힌다. 다도해의 가슴에 파도가 칠 때마다 시는 울며 꽃을 기다린다. 더 단단히 서기 위하여 11월의 가로수처럼 걷자고 다짐하며 수평선이 된다. 잔잔한 기다림으로 도착한 꽃잎역에서 그는 또 기다린다. 별이 흩뿌려진 밤하늘 같은가 하면 망망대해 파도를 맞는 섬 같다. 장애의 울타리를 만든 자조에 등짝을 후려치며, 그 질긴 그림자의 한 올을 뽑아 오월의 떡갈나무 가지 같은 싱그런 노래를 달아주고 싶다. 그대 오래도록 펄럭이시라. - 박덕선(시인)
■ 시집 속의 시 한 편
섬
하루 종일 오가는 파도에 부대끼느라
외로울 겨를이 없다
파도처럼 왔다 간 누군가의 가슴에 있으니
고독할 틈이 없다
함께 살다가 떠난 영혼들을 보듬고
살이 녹아 한 덩어리가 되었으니
혼자가 아니다
아무리 짠 바다도
온 세상의 섬을 다 품고 있는데
오직 사람만이 홀로 섬을 만들어 외롭고 고독하다.
■ 발문
애틋하게 피어 따뜻한 섬
이응인(시인)
노민영 시인을 만난 지도 어언 17년쯤 되었다. 그동안 ‘객토문학’을 통해 마주하거나 경남작가회의에서 만나면서도, 그가 시집을 한 권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종종 얼굴을 대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겨서 물었다. “시집은 언제 나오나요?” 17년이면 두세 권 이상 시집이 나왔을 세월이다. 그는 수줍은 표정 속에 답을 숨긴 채 시원하게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데, 한 해가 기울어 가는 이즈음, 갑작스레 시집을 내겠다고 원고를 보내왔다.
그동안 『객토문학』 동인지나 『경남작가』에 발표되는 그의 시를 나름 관심을 가지고 봐 왔다고 자부했는데,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본 시는 노민영 시의 한 모퉁이에 불과했다. 그러니 나는 그의 시를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맨 먼저 나를 붙든 것은 아픔에 예민한 그의 촉수였다. 「빗방울」이란 시를 보자.
어디서 힘겹게 고인 빗물이
지붕에
뚝
적막한 밤 골목길에 울림이 찬다
삼킬 자신이 없었던지
또 한 방울
뚝
끝이구나 싶으면
뚜둑
한참을 참았다가
뚝
버리고 떠난 엄마를
꾹꾹 눌러 담던 아이도
혼자
빈속을 그렇게 채웠지 싶다
―「빗방울」 일부
이 시의 빗방울은 예사롭지 않다. “어디서 힘겹게 고인 빗물이/지붕에/뚝” 떨어지는데, “적막한 밤”이라 “골목길에 울림이 찬다.” 골목길을 울리는 그 빗방울은 “삼킬 자신이 없었던지/또 한 방울/뚝” 떨어진다는 것으로 보아, 안으로 삼키고 참았던 눈물을 연상케 한다. 이제 “끝이구나 싶으면/뚜둑” 떨어지고, “한참을 참았다가/뚝” 떨어진다. “삼킬 자신이 없었던지”를 거쳐 “한참을 참았다가”에 이르면, 빗방울은 누군가 삼키지 못한 눈물과 겹쳐진다. 그러면서 “버리고 떠난 엄마를/꾹꾹 눌러 담던 아이”에 이르면, 도무지 혼자서 눌러 담기에는 감당이 안 되는 눈물이 된다. 빗방울과 삼키고 있었던 화자의 눈물과 떠난 엄마를 눌러 담던 아이의 눈물이 겹겹이 울려 온다. 거꾸로, 아이의 아픔이 화자의 눈물이 되고, 화자의 눈물이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이처럼 노민영 시인은 아픔에 예민하다. 그래서 작고 여리고 버림받은 존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의 눈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어린이집 가방을 멘 여섯 살 아이가/취기가 올라 휘청거리는 할머니 손을 잡고/산모퉁이를 돌아 집으로 가는” 장면을 보고야 만다(「여섯 살의 크리스마스」).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맨날 붙어 있던 형아가 초등학교에 처음 간 날/마루에 앉아 종일 기다리고 있던/까무잡잡한 설해”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시 「천륜」도 마찬가지이다.
1. 가족사, 아픔의 뿌리
이번 시집 곳곳에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어 보면, 작고 여리고 버림받은 존재에 대해 애태우는 마음은 그의 어린 시절과 연결되는 듯하다.
늦둥이를 낳은 어머니는
마른 젖꼭지를 빨다가 우는 나를 안고
집안 손부 창촌댁을 찾아가 동냥젖을 물렸다
(……)
어린 기억을 채우지 못해 허기가 질 때
동네 어른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부모님 이야기를 실컷 귀동냥을 하고 온다.
―「동냥」 일부
얼마나 불렀는지 목이 쉬어 있었고
베개가 젖어 있었다
(……)
내 열아홉 살에 떠난 아버지와
늦둥이 막내아들은
아무도 모르는 새벽에 그렇게 그렇게
눈 녹듯이 만나고 또 기약 없이 헤어졌다.
―「새벽 눈」 일부
그는 2남 3녀 가운데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동냥젖’을 얻어먹고 자란 그에게는 늘 채우지 못한 사랑의 허기가 있었던 것 같다. “동네 어른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부모님 이야기를 실컷 귀동냥”이라도 해야, 그 허기가 조금이라도 채워졌던 모양이다.
「새벽 눈」은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 이야기이다. 꿈속에 아버지를 “얼마나 불렀는지 목이 쉬어 있었고/베개가 젖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늘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으나 이내 녹아서 “내가 서 있는 땅은 온통 젖어 있었다.” 꿈에서 깨었을 때, 하늘에서 떨어진 눈이 금세 녹듯이, 아버지의 모습은 이내 사라져갔다. 그렇게 꿈속에서나마 아버지와 “만나고 또 기약 없이 헤어졌다.”
해보다 일찍 밥벌이를 나섰다가
공장의 소굴을 벗어나 도시의 경계를 넘어서면
달빛에 젖은 산골을 거슬러 지친 연어처럼 돌아가던 집
그 멀고 먼 출퇴근길보다 더 멀리
다시 오지 않는 길을 가는 부모님을 배웅하느라
세상을 단절한 스물의 나이는
돌멩이에 깔린 새 쑥처럼
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허옇게 잎을 피우고 있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 일부
그는 열아홉 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곧이어 어머니마저 이별하게 된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으리라.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카들마저 떠맡아 키워야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그의 스무 살 시절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무렵 자신의 모습을 “돌멩이에 깔린 새 쑥처럼/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허옇게 잎을 피우고 있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미혼인 스물다섯 살 막내 누이와 스물두 살인 저와 둘이 두 조카를 키우면서 살았습니다. 막내 누이는 집에서 조카를 돌보고 저는 창원공단에 출퇴근을 하며 다녔습니다. 이른 아침 산골에서 오리 길을 자전거로 와서는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마산에 옵니다. 거기서 통근차를 타고 창원으로 갔습니다. 공장에서 잔업까지 마치면 저녁 9시, 다시 통근차를 타고 마산에 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내서에 내려 자전거를 타고 오리 밤길을 가서 집에 도착하면 11시가 넘습니다. 막내 누이와 가족 이야기랍시고 조카 이야기와 하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12시가 됩니다. 다음날 똑같이 반복되는 직장생활을 하고, 일요일이면 혼자 농사를 지었습니다.”
스물두 살 한 젊은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회고담은 짠하고 눈물겹다. 시 「감나무가 울던 밤」에서 그는, 도시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삿짐이 쌓인 찬 방에/엄마와 나는 겹겹이 솜이불을 덮고” 잤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서 더 쓸쓸했던 밤이었어도/고향은 엄마의 품처럼 따뜻했”다고 기억한다. 이처럼 그에게 어린 시절은 숱한 고통과 아픔으로 얼룩져 있으나, 그래도 고향이란 곳은 이름 그대로 돌아가 머물고 싶은 따뜻한 곳이기도 했다.
2. 가족, 세상에 던져진 별
앞에서 보았듯이, 노민영 시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짐작하겠지만, 그의 가족에 대한 애착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혼자 제 앞가림하며 시리게 살던 딸”이 “새벽차를 타고” 온다는 말을 듣고는 안절부절못하며 “생각만 하여도 손끝만 닿아도/스르르 녹아질 살붙이”라고 혼자서 뇐다(「진눈깨비」). 뿐만 아니다. 첫 출근하는 아들을 공장 문 앞까지 데려다 주면서, “처음 제 발로 살길을 나서는 아들/눈밭에 내던지는 것 같아/공장 문 앞까지 데려가는 길이/더디고 시려서 꽁꽁 얼어붙었다.”고 표현하고 있다(「마창대교를 건너며」).
정년을 바라보며
평생 놓았던 일터로 아내가 첫 출근을 하던 날
차를 뒤따라가며 길을 일러주고 돌아오다
강물이 지나는 다리 위에서 그만
떠내려가는 아내를 건지지 못한 자책의 통곡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 일부
정년을 맞으며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일터로 내보내는 심정을 토해낸 시이다. “떠내려가는 아내를 건지지 못한 자책의 통곡에/숨을 쉴 수가 없었다”에 이르면 그 충격이 읽는 이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는 스스로 가족의 행복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무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채 의식에 묶여 있다. 그가 가족들의 안위와 행복에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지,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가치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마음 조린다고 해서 가족의 안위와 행복이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네 삶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아들과 딸은 객지에, 아내는 직장에 나가 각각 섬이 되어 살고 있다.
제 둥지 살피기 급급한 아들은
벼랑을 깎으며 바위섬이 되어 가고
나 홀로 딸은
세상을 간보며 외딴섬이 되어 간다
고해를 건너는 아내는
어느새 고립된 섬이 되어 가고
무인도가 되어 가는 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파도치던 그 섬을 꿈꾼다
섬이 섬을 낳고 너도나도 섬이 되어 사는 곳.
―「다도해」 일부
요즘 우리네 삶이 다들 비슷비슷하니 그렇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민영의 시가 이렇게 절절한 데는 가족에 대한 특별한 애착과 말로 다할 수 없는 사연이 있어서이리라. 그래서 그는 꿈꾼다. 가족들은 지금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처럼, 집을 중심에 두고 돌고 있는 빛나는 별들일 거라고. 그렇게 위안과 꿈을 함께 엮고 있다.
모두 떨어져 혼자 있는 밤
떨어진 거리를 재듯
밤하늘에 흩어진 별을 따라 선을 그으며
우리 자리를 이어본다
수많은 별자리들이 맴도는 우주
항성 같은 집을 오가며
행성처럼 밤낮으로 맴돌다 보면
우리도 빛나는 별자리 하나 만들 수 있겠지.
―「별자리」 일부
3. 이웃, 사는 게 그렇듯
노민영 시인의 애틋하고 여린 마음은 이웃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로 확산된다. 이 지점이 노민영 시가 가진 특장이자 숨은 힘이다.
장례식장 한구석
낯선 망자의 이름
告 허이페
공장에서 보낸 화환 한 개
고개 숙인 상주처럼 지킬 뿐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다.
빈소 문패엔 그리운 이름들
처 위용정
자 허고정
부 허추안성
모 우쇼잉
남동생 허이펑
―「허이페」 일부
어느 장례식장에 문상을 갔다가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한 장면이다. 타국에서 온 낯선 망자의 이름과 “공장에서 보낸 화환 한 개” 덩그러니 놓여 있고, 상주도 문상객도 없는 모습이다. 이렇게 한 생이 끝나버린 낯선 이름 앞에서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으리라. 그는 이처럼 여리고 버림받은 존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픔에 예민한 촉수를 지녔다.
“요양병원 휠체어에 앉아 염불을 외우다/자꾸 웃으며/내가 죽을 날이 지났는데/구십이 되어도 그때를 알 수 없소.”라고 혼잣말처럼 뇌는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 주기도 하고(「당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시험 때면 독서실 단골이던 이슬이 발길이/뚝 끊어”지자 “몇 번이나 간판을 바꾸고 개업하더니/어느 날 굳게 닫힌 문에 폐업 현수막을/빗장처럼” 내건 이슬이네 가게를 떠올린다(「피뢰침 그림자」).
마지막 설을 쇠고
정든 곳을 떠나며 살얼음 눈물 흘리던
질부
버둥대던 빚진 삶 다 청산하고
타지 두 살림 떨어져 있던 남편에게로
어린 남매를 데리고 갔다
―「매화꽃 필 무렵」 일부
그에게는 “빚진 삶 다 청산하고/타지 두 살림 떨어져 있던 남편에게로/어린 남매를 데리고” 가는 조카며느리가 눈에 밟힌다. “정든 곳을 떠나며 살얼음 눈물 흘리던” 모습을 보고야 만다. 그들의 삶이 “추위를 무릅쓰고 기어이” 피는 매화처럼 “인고의 향 그윽하게” 피워 올리기를 기원한다. 이런 심성을 지니고 있는 그에게는, 힘든 하루하루를 벼텨내고 씨름하는 이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와 닿는다.
그제는 달랑 요양보호사 둘이서 야근을 하고
오늘은 휴일 조리사 대신 식당일을 하느라
혼자
요양원 식구들과 어르신들이 드실
삼시세끼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죽을 끓인다
맛이 있을까 간이 맞을까 식지 않을까
맛을 보고 또 보고 불 조절에 신경이 곤두선다
타국의 입맛을 가늠하며
집 밥의 열 배나 되는 식단을 만드는 일
처음도 그랬지만 날이 갈수록 힘에 부친다
내일도 휴일 쉬는 자 연차 야근자 빼고 나면
법정 인원 두 배의 어르신을 수발한다
허리에 생긴 고질병이 만성이 되어도
함께 힘든 동료들에게 짐을 지울 수 없어
며칠 쉬고 싶다는 말을 참고 또 참는다
몸은 전보다 더 수척하지만 언제나 밝고 씩씩한
요시코
이제는 가슴에 든든한 사직서를 품고 일을 한다.
―「요시코의 하루」 전문
그의 눈은 요양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요시코’에게 머물고 있다. 그제는 야근을 하고, 휴일인 오늘은 조리사 대신 혼자 식당일을 한다. “요양원 식구들과 어르신들이 드실/삼시세끼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죽을 끓인다.” 거기다가 “내일도 휴일 쉬는 자 연차 야근자 빼고 나면/법정 인원 두 배의 어르신을 수발”해야 한다. “허리에 생긴 고질병이 만성이 되어도” “며칠 쉬고 싶다는 말을 참고 또 참는” 요시코.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비정규직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시이다.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만난 간호 실습생이 “혈당 침을 몇 번이나 찌르며 난감해” 할 때도, “다시 침을 들고 내 손을 과감하게 찌르라고”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실습생」). 그의 눈에는 “비보호 표지판을 단 노란 점멸 신호등”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의 처지로 읽힌다.
비보호 표지판을 단 노란 점멸 신호등
빨간 신호도
파란 신호도 거세된 체
밤이고 낮이고
숨 가쁘게 맥박이 뛴다
기회와 틈이 얄팍한
보호가 담보되지 않은 구역
석 달씩 수습기간직을 이어가는
그 살얼음판 같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숨이 찬다.
―「비보호」 전문
비정규직이란 “밤이고 낮이고/숨 가쁘게 맥박”이 뛰는 “노란 점멸 신호등”이다. “보호가 담보되지 않”는 “살얼음판 같”은 길이다. 그는 자신이 만난 힘겨운 이웃들에게 이렇게 주술을 걸고 싶어한다.
파산 후유증으로 앓는 사람 겨울 잘 나라고
김장을 함께하며 주술을 걸었다
풀이 죽은 누런 속
벌리고 뒤집는 손길이 스칠 때마다
따갑고 쓰릴 겨를도 없이 벌겋게 달아오른 몸
처음은 다 그런 게지
숙성되면 아무것도 아닐 거야
(…)
김장독처럼
얼지 않을 만큼 이 겨울을 견디고 나면
서걱거리던 날도 삭아지겠지.
―「김장 주술」 일부
그의 주술이란 “파산 후유증으로 앓는 사람”과 “김장을 함께”하며 등을 두드려 주는 일이다. 지금은 따갑고 쓰리지만, “숙성되면 아무것도 아닐 거야” 하고 위로를 건네는 일이다. 그러면서 “얼지 않을 만큼 이 겨울을 견디고 나면/서걱거리던 날도 삭아지겠지” 하고 믿는 것이다.
4. 노동, 불꽃의 시너 향
그가 이웃을 향해 내보인 관심과 애틋한 마음은 그 자신의 삶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그 또한 이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꽃 속으로 파고들어
온몸에 가루를 뒤집어쓰고
코끝을 찌르는 진한 향을 맡는다
감당할 수 없는 짜릿함
참고 참았던 숨이 넘어갈 지경이면
머리 겨우 드나드는 공기탱크 속에서 기어 나와
연신 숨을 들이킨다
빨간 페인트 가루와
지독한 시너 냄새가 범벅이 된 몸
봄꽃 향기가 이보다 더 진할 수 없다
공장에서 사시사철 피는 노동의 꽃
휴일에도 빨갛게 혼자 부풀어 피어나니
봄꽃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저장된 내 꿀에는 아직도 시너 향이 난다.
―「꿀벌」 전문
“꽃 속으로 파고들어/온몸에 가루를 뒤집어쓰고/코끝을 찌르는 진한 향을” 맡으며 꿀을 모으는 일에 혼신을 다하는 꿀벌. 시인은 그 꿀벌의 모습에서 공기탱크 속에서 “빨간 페인트 가루와/지독한 시너 냄새가 범벅이 된 몸”으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참고 참았던 숨이 넘어갈 지경이면/머리 겨우 드나드는 공기탱크 속에서 기어 나와” 숨을 들이킨다. 여기에 이르면 꿀벌이 맡았던 “코끝을 찌르는 진한 향”은 “감당할 수 없는 짜릿함”으로 반전된다. “감당할 수 없는 짜릿함”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짜릿함’인 것이다. 어쩌면 꿀벌의 입장에서는 ‘코끝을 찌르는 진한 향’이 ‘감당할 수 없는 짜릿함’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꿀을 모으는 일만 하다 생을 마치는 꿀벌처럼, 노동자는 “공장에서 사시사철 노동의 꽃”을 피우다 생을 마친다. 그래서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는 역설로 읽힌다. 이 아름다움은 “아직도 시너 향이 난다”는 면에서 치명적인 아름다움이고, 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저장된 내 꿀”이란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달콤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할 수 없다.
레일을 타고 공중곡예를 하며 연주하는
천장 크레인의 독주
무게중심을 잃거나 줄이 끊어지면
운명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경고음
공장을 울리며 종일 수도 없이 메아리친다
(…)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바치는 노동 교향곡이다.
―「엘리제를 위하여」 일부
이 시는 베토벤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작곡했다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아차 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공장 크레인의 경고음으로 들려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속 터지는 일」에서는 “어느 공사장 공장에서 버려져/타이어에 박힌 작은 나사못”을 통해 “산재 치료가 끝나도/노동의 가치로는 기피 대상이 되어 떠돌던/한때 나”를 만나게 된다. 타이어에 박힌 이 나사못은 “함부로 거리에 버려”진 것에 대한 항의이고, 공장에서 버려진 노동자들의 분노를 박아놓은 듯하다. 시인은 고철장으로 몰려온 쇳조각들을 보고는 현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을 떠올리고는 “꽃다운 시절이 피고 또 졌다”고 내뱉는다(「쇠꽃」).
시간을 다투고 밤을 쪼개던 투잡도
정년에 저물어 적막하다
실탄도 없이
빈껍데기 같은 총처럼 우두커니 의자에 기대
생존교육을 받고 있는 정년퇴직 실업자들
탄창에 헐렁하게 채워 주는 실업급여 다 쏘고 나면
선택 폭이 좁아진 삶의 현장에 던져져
허술해진 경쟁력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마지막 기회를 위해 한 가닥 기대를 품고
먹잇감을 찾느라 호시탐탐 훑어보는 구직정보
경력도 능력도 우대하지 않는 단순직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조명탄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다시 방아쇠를 당기다」 전문
“시간을 다투고 밤을 쪼개” 투잡까지 하던 그도 이제 “정년에 저물어 적막하다.” “빈껍데기 같은 총처럼 우두커니 의자에 기대/생존교육을 받고 있는 정년퇴직 실업자”가 된 것이다. 이제는 기술이고 자존심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경력도 능력도 우대하지 않는 단순직”을 찾아나선다. 거기서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마지막까지 생존은 전투이다.
5. 돌아보고 관조하다
그도 이제 세상을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 파란만장을 겪은 그동안의 연륜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눈도 트이게 되었다.
무료 시식 코너를 지나는 아이가
엄마에게 먹어도 되냐고 묻는데
엄마는 점원의 눈치를 보며
아이의 손을 끌어 지나친다
덥석 무는 순간 바늘 끝이라도 닿는다면
뿌리치지 못할지도 모를 일
세상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럴싸한 이유」 일부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선 근처에 가면 냄새가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냥 맛 보고 가라는데 뭐 어때서?’ 하는 이도 있다. 시인은 이것을 ‘밑밥’이라고 말한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엄마의 경우, 아이가 “덥석 무는 순간” “뿌리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무심코 지나칠 법한 장면에서 시인은 이렇게 세상을 읽어낸다. “세상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그는 아득히 보이는 수평선에서도 숨은 이치를 읽어낸다. 고요하고 편안해 보이는 수평선도 “망망한 끝/그 선에서도 수평을 잡기 위해/파도를 달고 산다.”고 알려 준다.「수평선」).
밥상머리에서 젓가락을 놓쳤다
감이 툭 떨어졌다
인생의 가을이 왔다
홍시처럼 말랑말랑했던 한 철
꼭지가 빠진다
감이 다 떨어지고 나면
세상에 차려진 진수성찬은
그림에 떡
까치밥처럼 미끼를 매단 세상
늦은 감으로
벌겋게 달려들어도 낚이질 않는다.
―「감」 전문
시인은 “밥상머리에서 젓가락을” 놓치고는 “감이 툭 떨어졌다”고 말한다. “인생의 가을이” 온 것이다. 이 시는 “감이 떨어졌다”에서 ‘감’을 ‘홍시’와 ‘감(感)’의 중의적 의미로 풀어가고 있다. “감이 다 떨어지고 나면/세상에 차려진 진수성찬은/그림에 떡”이다. 뒤늦게 “까치밥처럼 미끼를 매단 세상”에 “늦은 감으로/벌겋게 달려들어” 보지만, 쉬 “낚이질 않는다.” 늙어가면서 느끼는 비애를 ‘감’이란 단어를 통해서 짧고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는 시이다.
6. 꿈꾸는 섬으로
노민영 시인이 꿈꾸는 곳은 섬이다. 그곳에는 “산 언덕배기 홀로/물끄러미 내려다보는/오래된 토담집”이 있다. “뒷산 노을이 들면/하얀 날개를 펼친 백로가/구름처럼 떼 지어 대숲으로 날아들고” 하는 “오두막집”이 있는 “그리운 섬”이다(「그 오두막집」). 즉, 고향처럼 포근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섬이다. 그는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한다.
고요한 아침 잔잔한 바다 위
솜이불 같은 물안개에 폭 쌓여
반쯤 얼굴을 가리고 곤히 잠든 아기섬
갓 난 이후
바다가 물린 젖으로 자라는 동안
점점 살이 내리고 작아졌을 몸
언제부터 어른이 되어
거친 파도와 바람을 버티며
바닷말을 키우고 물고기를 품어 기르며
아담한 보금자리가 되어
이름 모를 새들의 천국이 되었을까
내 아버지 어머니도
작은 몸이 되도록 나의 천국이 되었다가
다 큰 아기가 되어 물안개처럼 사라졌다.
―「아기섬」 전문
그곳 아기섬은 “솜이불 같은 물안개에 폭 쌓여” 있는 꿈속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바다가 물린 젖으로 자라”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어”서는 “바닷말을 키우고 물고기를 품어 기르며” “이름 모를 새들의 천국”으로 가꾸고 싶은 곳이다. 또한 “내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를 비우고 점점 작아져서 “다 큰 아기가 되어 물안개처럼” 사라진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그가 꿈꾸는 섬은 고향의 다른 이름이고, 가족들 함께 사는 “아담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빛이 드는 길을 찾고 싶을 때/아무리 멀어도 다시 숨어들고 싶은 그 섬”이기도 하고(「증도」), “섬이 섬을 낳고 너도나도 섬이 되어 사는 곳”이기도 하다(「다도해」).
노민영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온갖 어려움을 겪고 고통스럽고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그는 늘 작고 여리고 버림받은 존재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온기를 피워올리는 삶의 마술을 부려왔다. 그의 시도 그 무거운 짐을 함께 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만큼 우리 주변은 조금씩 밝아지고 따뜻해진 게 분명하다. 그는 이제 그 아득한 시련의 강을 다 건너온 듯하다. 한동안 젖은 옷을 말리고 주위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이제 좀 가볍게 길을 나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