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월은 푸르구나
양 규 태 <수필가. 한국 예총 부안 지부장>
축제의 4월이 가고 푸른 5월이 열렸다. 이 달을 가정의 달 또는 청소년의 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꼭 이 달을 들어서서 가정을 생각하고 청소년을 챙겨보자는 것은 아닐 테지만 생활이 분주하다보면 소흘하기 쉬운 것이 가정이다. 더욱이나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생각에서 소외 될 수 있다는 걱정에서 한달 만이라도 어른과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들이 어울려서 지내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어린이날, 팽이치기, 딱지치기, 굴렁쇠 궁글리기등을 어른과 함께 어울리는 마당행사를 가졌었다. 그날, 행사장 밖에서 재미나게 뛰어 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유년 시절이 되짚어 졌다.
부안 초등학교는 나의 모교다. 이 학교는 50년대 초반 무렵까지 시내의 변두리 쪽 이었다. 너른 운동장 앞쪽으로 공동 산이 있었고 산자락 끝의 억세 밭을 빠져나가면 줄 풀로 덮혀 있는 방죽의 근방에 몇 그루의 키 큰 소나무가 무리져 있는 동산이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굴렁쇠를 궁글리면서 친구들과 방죽의 언저리 들길을 힘차게 내달리면서 놀았다. 굴렁쇠는 나무물통에 씌워진 대나무 테가 보통이었으나 어쩌다 운 좋게 자전거포에서 폐기처분 된 자전거 쇠 바퀴를 구하게 되면 그건 더 없는 행운이었다. 쇠 바퀴 굴렁쇠 궁글리기와 대나무 테 굴렁쇠 궁글리기의 재미는 하늘과 땅 차이의 간격이 있었다. 대나무 테는 굴러가는 속도도 그저 그럴 뿐만이 아니라 별소리가 없어 신명이 없다. 그러나 쇠 바퀴 굴렁쇠는 달그랑거리는 쇠 소리가 어린이의 기를 살린다. 그런 굴렁쇠 궁글리기 놀이는 해가 살풋하게 변산 너머를 기울 때까지 이어져갔다. 지금이 나이에도 굴렁쇠의 추억은 버릴 수가 없다. 그때는 시대가 놀이 따위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한 경제적 시간적 배려를 하기까지는 너무나 허기진 시절이었다. 기껏해야 심심한 아이들들끼리 버려진 먹물 먹은 백지를 주어서 동전에 구멍을 뚫어 재기를 만든 다음 동구 밖의 적당한 공간에서 재기 차기를 했고 사랑방 양지바른 마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팽이를 깎아 만들어 마당의 귀퉁이 땅에서 팽이치기를 하는 게 고작이었었다.
지금 아이들은 그때에 비하면 호강을 하고 지낸 샘이다. 피시방에 들어앉아 한 손으로는 컴퓨터 자판기를 두들기고 있고 한 손에는 햄버거 들려있다. 그리고 지방마다 ‘청소년문화의 집’이란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문화의 혜택을 입을 수가 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아이들은 무언가 부족하다고 불만스럽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오는 정신적 빈곤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바른 길을 잡아주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로 할 때인 것 같다. 이는 이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세대의 어른들의 몫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뒷받침하는 시책으로 도처에서 학생들을 위한 학생회관을 건립하는가하면 청소년 놀이문화에 적지 않는 지방예산을 투자하고 있으나 주민들은 이를 두고 예산의 낭비라 보지 않고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5월 한 달 반짝 행사로써 비어있는 청소년들의 가슴을 채우기는 어렵다. 장기적 안목에서 폭넓은 아량의 애정 어린 뒤치다꺼리가 이루어 질 때 청소년들이 가고있는 방황의 길을 잡아 줄 수가 있을 것이다.
거 년 연말경, 올해의 청소년 문화 창출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몇 건의 청소년 놀이 사업을 구상하여 예술단체의 이름으로 예산을 다루는 곳에 요구한 바 있었다. 그러나 가타부타 말도 없이 칼질을 당했다. 기껏해야 기천에 불과한 예산이다. 청소년에 대한 예산을 아이들 군것질 따위를 시켜주는 치졸한 말장난으로 치부해버린 어른들을 문화 세기로 가는 이 시대의 식견 있는 어른으로 모시기에는 그저 그렇다는 것이 뜻 있는 분들의 중론이다. 자신의 출신인 고향 길 한 토막 포장을 못해서 보행에 불편한 것은 얼마간 참고 지내면 그만이지만 한창 발랄하게 성장해야할 어린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을 땐 미래 세기의 불행을 심는 거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 걸핏하면 대중 앞에서 ‘청소년은 나라의 보배’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어르신들의 속사정을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다.
아그들아. 그리고 청소년들아! 집안 사정이 그래서 별 수 없이 그랬다하니 어찌하겠냐?. 그래도 ‘ 오월은 푸르구나’ 하는 노래는 너랑 나랑 불러야하지 않겠니? 좀 더 기다려 보자꾸나................(2003.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