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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수련에 열중하던 추남은 소녀가 갑자기 비명을 질러대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소녀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흐음.. 뭔가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가엾게도 저
어린나이에 집도 없이 떠돌다가 그런 낭패를 당했으니..
근데.. 아까 비명소리에 운이가 놀라 깨지는 않았을려나? '
추남은 혹시하는 마음에 강운에게 시선을 돌려 바라보았지만 특별한 반
응을 보이진 않았다.
실망한 추남이 이제 검술수련을 그만하고 잠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또 다시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추남은 이번에는 기필코 강운이 놀라는 모습을 꼭 보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강운이 자고 있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역시 이번에는 비명 소리가 조금 컸던지 강운이 졸린 눈을 부비부비 문지
르며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어! 일어났네? "
약간이라도 놀라는 기색을 보여 줄거라 굳게 믿고 썼던 추남은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소녀는 5년이 넘게 자신을 괴롭혀오던 악몽에서 깨어나 주변을 돌아보
면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악몽을 꾸고 일어나보면 음습한 골목 구석에 웅크리
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푹신푹신한 침대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 누구시죠? 여긴.. 어디? "
한참 동안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방안을 두리번거리던 소녀가 마침
내 입을 열었다.
"안녕! 나는 강운이라고 하고 저 사람은 추남형. 그리고 여기는 객점 안이
고 내가 쓰러져 있는 널 데리고 온 거야. "
"제가 쓰러져.. 아.. 그랬었지!... "
쓰러져 있었다는 말에 의문을 표시하던 소녀가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까지 자신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소녀는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낮의 일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 참! 넌 이름이 뭐야? "
강운이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물어오자 소녀는 잠시동안 당황해 했다.
거지로 생활한 이후 지금까지 5년이 넘도록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름 같은 게 있었던가 할 정도로 이름을 잊어먹고 살아왔
던 것이다.
소녀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강운은 자신이 한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들었나 싶어 한자 한자 끊어서 크게 소리쳐 물어봤다.
"야! 이.름.이.뭐.냐.니.까?"
소녀가 막 대답을 할려고 할 때 강운이 소리를 꽥꽥 질러대면서 말을 하
자 그만 겁을 집어먹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빠각-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손을 부여잡고 쓰러져 뒹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
니 바로 추남이었다.
"아이고! 손 뼈가 부러졌나 보다. 운아 너 머리가 왜 그렇게 단단한 거
야?"
강운은 추남이 내려친 뒤통수를 긁적이며 뾰루퉁한 표정으로 추남을 쳐
다봤다.
"그러는 형은 왜 운이 머리를 때리는 건데? 운이 머리 아프잖아~!"
아프다는 사람의 표정이 전혀 아픈 것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일반인
이 그렇게 맞았다면 머리가 터져 나가고 말 정도로 엄청나게 쎄게 때린
것은 사실이었다. 추남은 자신에게 2갑자의 내공이 생겼다는 걸 전혀 인
식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평소대로 힘을 썼고 운이가 평범한 아이였다
면 벌써 세상을 하직해야 마땅할 정도로 극히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운아.. 나이도 너보다 많아 보이는 누나한테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못쓰
는 거야!.. 이 말 해줄려고 그랬다.! 아이고.. 손 뼈가 정말 부러졌나봐."
추남이 엄살을 피우며 땅바닥을 뒹굴거리는 모습을 본 강운은 뾰루퉁한
표정을 풀고 소녀에게 자기 딴에는 최대한 다정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음.. 소리 질러서 미안. 하지만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누나 대접 받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이름 말하기 싫음 하지 말고. "
소녀는 처음에 강운이 소리를 질러대자 약간 겁을 집어먹었었지만 곧이
어 추남과 티격태격거리는 모습을 보니 이 사람들은 그렇게 나쁜사람들
같진 않구나.. 하고 다소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화린.. 진화린 이라고 하는데요... "
별로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대답을 들은 강운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
지 입을 크게 벌리고 싱글벙글했다. 좋은 말로 귀여워 보이는 거고 나쁜
말로 바보 같아 보이는 모습이라면 딱 알맞을 모습이다.
"화린이라고? 와~ 이름 되게 이쁘다.. 하하! 근데 왜 이렇게 이쁜 이름을
안 알려주려고 했을까나..어쨌든 화린아 앞으로 지낼 곳이 마땅치 않다면
나랑 추남형이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 "
강운의 뜻 밖의 제안에 어리둥절해 하던 화린이 추남을 돌아보면서
조심스럽게 되물어왔다.
"같이...다녀도 되요? "
특별한 상의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강운이 괘씸하긴
했지만 어차피 추남도 화린의 처지가 자신과 비슷한 것 같아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었던 터였기 때문에 순박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 하였다.
화린은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애써 감추며 기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화린은 17년동안 살아오면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이 처럼 큰
관심과 호의를 받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화린아 앞으로는 나를 오라버니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렴..
그리고 운이는 귀여운 동생으로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 "
추남은 화린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지냈으면 하는 바램으로 한 말이
었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강운은 뭔가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추남을 쳐다봤다.
"내가 왜 동생인데? "
"운이 너가 화린이보다 더 어리니까 당연히 동생이지!"
"내가 왜 어려? 화린이나 운이나 비슷해 보이는 구만... 나는 화린
이랑 친구할 꺼니까 그렇게 알어. "
추남은 한마디로 못을 박으며 말하는 강운을 쳐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에휴~ 운이 너가 고집을 부리면 누가 말리겠냐? 내가 졌다. 졌어.
동생을 하든 친구를 하든 너 맘대로 다 해라 다해. "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은 강운은 연신 싱글거리며 웃었고 추남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후우.. 전에 운이가 고집을 피워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뒷골이
쿡쿡 쑤셔오네.. 후~도대체 어떻게 된 애가 저렇게 고집이 센건지.. '
옆에서 가만히 추남과 강운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화린은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걸까? 이상하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실비실해서
건드리면 그냥 쓰러질 것 같았던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화린은 감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잘 몰랐었는데 지금 살펴보니까 키도
예전보다 많이 커진것 같고 몸매가 정상인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몸매로 변해있었다.
'이.. 이상한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 있는 화린을 보며
강운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추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화린아 왜 그러니?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야? "
"아, 아니요.. 몸이 좀 이상해 진것 같아서요. 그래도 아픈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
화린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을 해도 추남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 연약한 몸으로 거지생활을 했으니 몸이 상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화린이 걱정돼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추남에게 강운이 가까이 다가가서 넌지시 귓속말을
했다.
"형아! 내가 형아가 줬던 단환을 먹여서 그런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대신에 화린이한테 무공이나 알려줘. "
"내가 먹었던 단환을 화린이한테도 먹였다고? 흐음...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구나. "
추남은 아직도 단환의 정확한 효능을 알고 있진 못 했지만 확실한건
보통물건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자신의 늘어난 내공과
강운이 준 단환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흠.. 운이는 도대체 이렇게 귀한 물건을 어떻게 구한 걸까?.. 몇개가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림인들의 귀에 들어가면 운이가 위험해
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앞으로는 조심해야지 안 되겠는 걸. '
아직도 자신의 몸을 둘러보며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화린에게
다가간 추남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음.. 그러니까 화린아. 운이가 화린이를 처음봤을 때 무척 많이 다치고
몸이 안 좋은 상태였었다고 하거든. 그래서 운이가 아주 귀한 약을
구해서 먹였다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화린이 체형이 조금 변하지
않았나 싶은데.. 뭐 체형이 바뀌었다고 나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꺼야. 그리고 아직은 화린이 몸이 많이 약하니까 오늘부터
내가 몸이 건강해지는데 도움이 되는 걸 몇 가지 가르쳐 줄 테니까 잘
배워야 돼.. 알았지? "
아무리 귀한약을 먹였다고 해도 체형이 변한다는건 말도 안 되는 소리
였지만 화린은 그냥 그런 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말을 마친 추남은 곧장 화린에게 내공심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추남은 화린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면서 연신 감탄의 소리를 내질렀다.
무언가를 배우는데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만큼 빨리 이해하고
익히는 추남도 한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화린의 무공성취는 뛰어났던
것이다.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린 추남은 밤이 새는지도 모르고 화린
에게 그 동안 자신이 익힌 모든 것들을 가르쳤고 화린 역시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추남의 지도에 따랐다.
강운은 처음에는 화린이 추남에게 무공을 배우는 것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도 지루해져 버렸기 때문에 방안을 왔다갔다
거리며 시간을 때워야했다.
"추남형! 화린아! 나 심심해.."
결국 심심함을 참지못한 강운이 추남과 화린을 불러봤지만 둘 다
듣고도 대답이 없는 건지 아니면 못 들었는지 묵묵부답이었다.
"나 심심하다고! 안 들리는 거야? 응? 심. 심. 하. 다. 고~~!"
추남은 강운이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며 수련을 방해하자
조용히 좀 해달라는 말을 할려다가 생각을 바꿔서 이참에
강운도 같이 무공을 가르치기로 했다.
"운아. 너도 화린이랑 같이 무공을 배워보지 않으련? "
"그럴까? 음.. 까짓 거 심심한데 하지 뭐!"
평소때의 강운 같았으면 절대 무공을 배우려 하지 않았겠지만
심심함이 극에 달한 상태라서 그런지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참! 운이는 아직 글을 읽을 줄 모르지? 흐음.. 그래. 그럼 운이는
글부터 먼저 배우기로 하자. "
추남은 탁자위에다가 강운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고 바로 글을 가르치기 시작 했다.
강운도 혼자서 뒹굴거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글을 배우는 게 나았던지
군말 없이 열심히 글을 배웠다.
사실 말 같은 경우는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그 나라의 글만큼은 강운의 능력으로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강운은 차라리 이번기회에 글이나 한번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