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김소월의 방법
브록스는 좋은 시의 특징이 일반적으로 역설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역설은 표면적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의 요소를 내포한 진술이라고 하였습니다.
표면적인 진술과 그 바닥에 깔린 참뜻 사이에 대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역설은 반어와 밀착되어 있다고 합니다.
역설의 발상법을 지닌 고려의 속요 「가시리」 한 편을 보겠습니다.
가시겠습니까 가시겠습니까
나를 버리고 가시겠습니까
나는 어찌 살아가라고
나를 버리고 가시는 겁니까
잡아 두고 싶지만 나는
서운해 하면 아니 오실까봐
서러운 님 보내오니
가시는 듯 돌아오세요
우리말로 쉽게 풀어본 가장 널리 알려진 고려가요인데요, 『악장가사』에 전합니다.
위 시는 노랫말에 사용됐던 가사입니다.
1연은 나를 버리고 가겠느냐의 반복으로 슬픈 심정을 강조합니다.
2연은 나를 버리고 떠나면 남아 있는 나는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이냐고 1연보다 감정을 고조시킵니다.
3연은 너무 붙잡아도 임이 서운해 할 수 있고, 어느 선에서 붙잡아야 될지 두려워합니다.
4연은 서러운 님을 할 수 없이 보내니 가시자마자,
아니면 가실 것처럼 하다가 돌아오라는 역설입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살아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전문
깨끗한 이별의 아름다움과 이별을 통한 영혼의 성숙을 노래한 이 시에서
시인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이라는 역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꽃이 나무에서 분분하게 흩어지면서 지는 모습을 이별의 순간으로 상상하고,
이렇게 꽃이 지고 난 후에는 무성한 잎이 나고 열매를 맺으니 오히려 이별이 축복이라는 겁니다.
꽃나무처럼 사람 역시 이별을 통해서 영혼이 성숙하게 된다는,
그러니 이별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시인의 의도가 담긴 시입니다.
술 취하신 님 날 사정없이 끌어당겨
끝내는 비단 저고리를 찢어 놓았어요
비단 저고리가 찢어진 것은 아깝지 않지만
맺은 정이 끊어질까 두렵습니다
―이매창, 「취하신 님」 전문
위 시조는 조선 선조 때 부안기생 이매창(1573~1610)의 한시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매창은 노래와 거문고, 시조와 한시에 빼어났다고 하는데, 38세로 생을 마쳤습니다.
술에 취한 님의 요구를 다 들어줄 경우 오히려 님이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화자의 심정이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김소월, 「먼 후일」 전문
역설은 먼저 의혹을 일으키게 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정반대의 상태,
곧 수긍으로 돌변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집니다.
이에 독자는 정신적 쾌감을 얻게 됩니다.
이런 즐거움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설명이나 설득은 대담하게 생략될 수 있습니다.
축약과 그를 통한 긴장이나 경이감, 신선한 발견의 장이 역설의 근본적 속성입니다.
위 작품은 첫 연에서부터 겉보기로는 모순되는 의미맥락 단면을 드러냅니다.
“잊었노라”는 이미 과거에 끝난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실제 이 말은 앞으로 닥쳐올 일을 염두에 둔 경우입니다.
“먼 훗날”의 일에 대한 단정이 잊었노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어법은 모순이 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애타는 간절한 연모의 감정이 지나쳐서 괴로우므로 먼 후일에는 잊고 싶다는 절실한 표현입니다.
겨울 강가에 갔었지요
흐르는 강물 앞
모가지 드리우고
마른 풀잎에 베여 신음하는
바람을 보았어요
강과 만나는 것들은
강물 따라 시늉하며
강 모습으로
바다를 만나고 싶어 하데요
속으로 타는 불기둥도
강에게 기울어
강물로 흘러들기를
하여, 어떤 평원과 만나기를
그리고 어머니
강 풀섶
마른 갈대도 보았지요
키 큰 몸짓으로
겨울을 태우는 모습은
끝까지 제 하늘 지키는
꽃보다 아름다운
반란이었어요.
―공광규, 「어머니께 1」 전문
위 시는 대화체 형식의 시입니다.
화자는 청자인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역사를 암시하는 것이고,
‘겨울 강’은 엄혹한 시대의 현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반란”이 역설적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