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품1 | 결핍에 대하여 |
대표작품2 | |
수상년도 | 2020년 |
수상횟수 | 13회 |
출생지 | |
결핍에 대하여
황보 노
세상에 태어나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좋은 학교에 다니고 출세하여 평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평생을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질병을 친구 삼아 사는 사람도 있으며, 불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결핍을 메워가는 과정일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남보다 조금 더 한 결핍을 안고 살아왔다. 세살 때 방이 추워 난방용으로 갖다 놓은 숯불 화로에 왼손을 짚어 손가락 셋을 절단하는 화상을 입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 곁에서 불편함을 모르고 자랐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연필을 깎을 때 나는 나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마땅한 놀이 기구가 없어 쉬는 시간이면 남녀 구분 없이 공기놀이를 했다. 손가락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서 던졌다 받는 놀이였다. 나는 손을 감추고 옆에서 구경만 했다.
4학년 때 선생님이 송구 (핸드볼)를 가르쳐 주셨다. 볼을 주고받으며 뛰어다니는 운동이라 나는 왼손의 불편함도 잊은 채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재미 삼아 나의 볼 잡는 손놀림을 흉내내니 다른 친구들도 모두 손가락이 모자라는 나의 손 놀림을 흉내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늘 손을 숨기고 살았다. 손은 나의 수치였고 결핍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의 일이다. 졸업 기념으로 반지를 받게 되었다. 반지는 통상적으로 왼손에 끼게 되어 있다. 진행자가 내 손에 반지를 끼워 주려 할 때 그도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왼손에는 반지 낄 장소가 없었다.
대마도 졸업 여행을 갔을 때였다. 입국 신고를 하고 지문을 찍는데 내 왼손에는 지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관계자는 내 손을 잡고 이리 저리 살피더니 손을 놓아 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나 때문에 줄이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사업을 경영하면서도 왼손의 결핍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운전도 못하고 경영자들과 취미 생활도 못했다. 부부생활에도 자다가 나의 왼손이 아내애개 부딪치면 죄인인 듯 깜짝 놀랐다. 우리 아이들도 중학생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손가락 결핍을 알았다고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내 죄인양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애들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인간의 신체는 대칭으로 되어 있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비대칭이 생기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두 손으로 모든 것을 만들고 물체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만약에 한쪽 손이 사고로 인한 비대칭이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경중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사과를 깎아 친구나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어도 장애의 손을 남한테 보이기 싫어 할 수가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는 자랑스러운 상장 위임장 감사장 등등을 받아야 할 때도 한 손으로 받지 못하니 불편한 왼손을 노출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육체에는 묘한 신비가 있다고 한다. 결핍의 한 쪽을 다른 한 쪽이 보완하는 능력이다. 왼쪽 눈이 시력을 잃으면 오른 쪽 눈의 시력이 좋아지고 한쪽 귀가 청력을 잃으면 다른 귀의 청력이 좋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 뿐인가. 다른 감각과의 협력에도 신비가 있다고 한다. 지팡이를 짚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각 장애인에게는 정상인 보다 이마 쪽 신경이 상대적으로 발달돨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경우도 결핌의 신비가 작용하지 읺았나 싶다. 아이들이 나의 손 놀림을 흉내낼 때는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다. 내가 어떻게 이런 장애를 입게 되어서 친구들에 놀림을 봤나 하는 생각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 마음 다짐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너희들의 기를 꺾을 것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잠을 설치면서 공부를 했다. 선생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반 아이들에 우등생이라는 본보기가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집이 가난하여 중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소년 가장이 되었다. 만약에 그때 나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남과 같이 공부하고 싶어 집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장애인이 정상인들과 같이 승승장구 성공하는 예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나는 일찍 포기를 하고 나의 모든 정열을 부모님 편히 모시고 어린 조카들을 잘 키우는 일에 쏟았다.
훗날 고생 끝에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내 인생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삶에는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나 자신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애는 불편할 따름이지 범죄도 아니고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었다. 나의 경우 남보다 조금 더 한 결핍이 장애를 부른 것뿐이었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을 믿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결핍에도 저마다의 일정 수준과 분량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삶을 돌아볼 때 나는 참 어지간히도 억울하고 서러웠다. 출생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삶이 치욕스러웠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결혼도 했고 자식도 얻었고 재물을 모으기도 했다. 웃기도 했고 박수도 받았고 남을 위로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나의 결핍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이 또한 삶의 신비가 아니겠는가.
*약력
2020년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경북 안동 출생,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계명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2009년 경북대학교 경영 대학원 졸업(석사). 건설 시공 특 기술자 자격증 흭득. (전)신태양 종합건설(주) 대표이사
심사평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의 제13회 신인작가상 후보작가들에게 격려인사와 측하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이런 배려의 자리를 만들어주시는 수필가협회 장호병 이사장님 이하 최원현 사무처장 겸 편집주간 님께 무한감사를 드립니다.
월간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작품들은 패기가 보이고 신선했습니다. 특히 신인대상 후보작품으로 올라온 10여편의 글들은 의미부여가 뚜렷하고 스토리가 뛰어나고
갈수록 작가들의 수준이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공부하고 책 읽으며 글을 연마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신인작가들께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앞으로 구성이나 어휘 정선에 시간을 투자하면서 내공을 쌓도록 부탁드립니다.
대상작품 <결핍에 대하여>는 숯불화로에 화상을 입고 손가락 셋을 잃은 뒤 살아온 평범하지 않았던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감동 넘치는 강력한 스토리는 잔잔한 문장으로 끌고나간 작품들을 앞지르지요.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요구하는 N 프로필을(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구조의 이야기) 이루고 있는 이 글은 독자들 가슴을 감동으로 적셔줍니다. 굴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목이 직접적이고 교훈적인 부분은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인생의 회전목마>는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면서 부모의 마음을 헤이랄 줄 알게 된 진짜어른의 세계를 회전목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품성이 보이는 글입니다.
<B카페> 는 대학시절 추억을 쌓았던 양수리 호젓한 카페를 다시 찾아 마음을 가다듬는 글입니다. 당시의 풍경을 낭만적으로 잘 그려내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했습니다.
<파도가 들려주었다> 는 태풍 링링을 통해 결혼 초기 시절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잘 견디며 지혜롭게 살아낸 흔적을 바다에서 찾고 있어 구성이 돋보입니다.
<덧 들린 상처>는 북한의 개성남북 연락소 건물을 폭파하는 장면을 Tv뉴스로 보면서 70년이 된 조국의 휴전상태를 새삼 인지하며 역사의 순환을 돌아보고 있다. 특히 평안남도가 고향인 아버지가 치유하지 못한 상흔을 안고 돌아가시고 나니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것이다.
소재도 다양하고 필력도 뛰어난 신인들에게 축하를 드리며 마라토너의 길로 들어섰으니 인내로 버티시며 승승장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심사위원 권남희 최원현 김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