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사이, 1초도 빈틈없이 깨어 있으라.
욕망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삶의 모습이다. 부처님께서 “욕망의 버림, 욕망의 소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열반이다.(대념처경)”라고 강조하셨어도 불자들조차 욕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대다수가 다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열권 법사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명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기업(기아자동차 무역부, 대림산업 외자부)에서 시쳇말로 잘나가던 사람이 세속적 욕망을 훌훌 버린 것부터가 존경스럽다.
예사롭지 않은 태몽
나이가 들수록 전생부터 하던 놀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뭔가 남다른 사람을 만나면
늘 인연 이야기를 묻는다. ‘그러면 그렇지’ 하며 무릎을 친 적도 많다. 그도 그랬다. 아마도 전생부터
수행자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역시나 태몽부터 예사롭지 않다.
부처님 앞에서 스님이 참외 씨를 손에 쥐어주는 태몽을 꾼 뒤로 집에서 가까운 선산 도리사(아도 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를 찾았는데 꿈속에서 본 바로 그 절이었단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절에 다녔으니 태어나기 전부터 법을 전한 셈이다. 홍길동처럼 도인을 만나서 도를 닦아야겠다고 꿈꾸던 소년은 농삿일을 거들다가도 불현듯 가부좌 틀고 앉아있기를 좋아하였다.
부처님 원형 수행법을 배우기 위해 미얀마로 가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불교학생회 문을 두드렸다. 교리공부에 열중했다. 종범 스님, 이기영 박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환희로웠다. 하지만 깨달음은 멀기만 했다. 성철 스님을 찾아뵈었다. 마삼근 화두를 주셨다. 오매일여가 될 때까지 화두가 지속되어야 확철대오한다는 말씀을 듣고 화두 참구에 몰입했다. 해인사는 너무 멀어서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께 지도를 받았다.
“송담 스님께서 가나 오나 화두만 하라고 하셨지요.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의식하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굴러가더군요.”
하루에 열여덟 시간씩 화두 참구에 힘썼다. 가끔 잠잘 때도 화두가 이어졌다.
지구가 스스로 돌아가듯이 불성(佛性)이 스스로 돌아가는 자리를 느끼면서 곧 깨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혼한 지 1년 된 아내의 양해를 얻어 산으로 들어갔다.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위빠싸나로 깨달았다는 것과 미얀마에 부처님의 원형 수행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1990년 미얀마로 갔다. 한국인 최초로 마하시 선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1년간
수행하였다. 이틀에 한 번씩 스승의 점검을 받으며 수행하니 급진전하였다.
“사실 화두선으로 확철대오하겠노라는 자신감이 가득했었어요.”
6개월 만에 화두가 성성해졌으니 그럴 만하다.
그런데 더 이상 공부의 진전이 없으니 조급해졌으리라.
위빠싸나를 하면서 그 조급증이 사라졌다.
“위빠싸나는 현재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성냄, 욕망, 어리석음이 없어집니다.
화를 내는 것은 욕구 불만 때문입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도 욕구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지요. 그것을 잘 관찰하고 원인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성냄도 사라집니다.”
위빠싸나는 달빛이 호수를 투과하듯이 실상을 꿰뚫어 보게 한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에서 벗어나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기에 위빠싸나는 깨달음, 지혜와 동의어로 쓰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 정견에 바탕을 둔 실다운 발심입니다.
부처님의 유언은 ‘모든 조건지어진 것은 무상하다.
해탈을 이룰 때까지 불방일(不放逸)하라’입니다.
이때 조건지어진 것은 상대의 세계인 오온,
12연기의 고(苦)와 집(集)이고, 해탈은 절대의 세계인 열반, 성불입니다.
불방일은 8정도인 지혜이고,
이것의 실천수행법이 위빠싸나입니다.”
호흡지간에 마음을 챙기라
“수다원과에서는 오온이 나라는 유신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나함과에서는 성욕을 포함한 감각적 욕망, 성냄에서 벗어나야 하지요. 아라한과에서는 자만과 천상에 대한 욕망, 근본적인 미세한 불안정, 근본 무명이 없어집니다. 냉철하게 점검하면 자기가 어느 선에 가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점검하면서 1초도 빈틈없이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단다. 한편 그는 항상 『쌍윳따니까야』에서 “여명이 있은 후 태양이 떠오르듯이 참회와 용서 없이는 깨달음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산단다. 그래서 매일 아침 500배∼1,000배 오체투지를 하며 참회하고 서원하며 하루를 시작하고,위빠싸나 수행으로 순간순간 마음을 챙긴다.
그는 지난 달 초순 10여 년 전부터 준비해온 『붓다의 호흡법 아나빠나삿띠』를 번역 출간했다. 태국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영향력 있는 스님으로 존경받는 붓다다사 스님의 걸작이요, 아나빠나삿띠 수행에 관한 책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상세하고 종합적인 지침서다. 아나빠나삿띠는 숨을 내쉬고 숨을 들이쉬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한 마음 챙김을 뜻한다. 경전에서 설해진 그대로 완전한 부처님의 호흡법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은 후에도 아나빠나삿띠로 수행하였다는 것을 근본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남방에서는 아나빠나삿띠 수행이 사념처 위빠싸나 수행의 핵심이고 주류입니다. 특히 화두 타파 후 보림법으로 아나빠나삿띠 수행을 하면 아주 좋습니다.”
사람의 목숨도 깨달음도 한 호흡 사이에 있음을 알았으니 그저 수행할 일만 남아 있다. 날숨 들숨을 의식하며 꾸준히 마음을 챙기다 보면 이 몸이 공(空)함을 보고 생사가 없는 영원한 자유, 평화, 행복, 공존의 지혜가 열릴 것이다. 욕망의 시대가 빚은 숱한 문제들,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해 기쁘다. 들숨 날숨에 마음을 챙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