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重本館 장중한 본관
士林憂國振儒風 영남사림 나라 위해 유가풍을 진작시켜 繼往開來建學宮 계왕개래 정신으로 대학을 창건함에 莊重規模義遠大 장중한 규모에 뜻 더욱 원대하니 弘揚正氣培英雄 민족정기 널리 떨쳐 영웅을 기르리라
시간을 건네는 길 — 영남대학교에서, 계왕개래의 뜻을 생각하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영남대학교의 오래된 기둥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빛은 서두르지 않는다.
마치 이곳에 쌓인 시간을 알기라도 하듯,
돌계단의 모서리와 나무 그림자의 결을 오래 더듬으며 천천히 교정을 건넌다.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길 위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바람은 계절의 냄새를 옷깃에 묻힌 채 캠퍼스를 가로지른다.
그 풍경 앞에 서면 나는 늘 같은 생각에 잠긴다.
이곳은 단지 젊음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영남대학교는 시간 위에 세워진 대학이다.
수많은 스승의 가르침과 선배들의 발자취,
시대를 건너온 교육의 염원과 지역의 정신이 서로 겹겹이 포개져 오늘의 교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대학의 캠퍼스를 지나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뜻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를 조심스레 건너는 일처럼 느껴진다.
영남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한 지역의 지리적 이름을 넘어, 오랜 세월 학문과 예의,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품어 온 정신의 이름. 낙동강과 금호강이 흐르는 들녘, 산과 물이 서로 기대어 계절을 바꾸는 이 땅에는,
배움을 단지 출세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바로 세우는 일로 여겼던 오랜 마음이 스며 있다.
선비들은 자연 속에서 글을 읽고 세상을 논했으며,
배움이란 끝내 인간과 공동체를 밝히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영남대학교는 바로 그 정신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듯하다.
교정을 걷다 보면, 이 대학이 품고 있는 상징들이 하나둘 마음속에 떠오른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내달리는 *천마의 상징*은 단지 역동성과 기백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높이 오르려는 젊음의 열망이면서도,
동시에 땅을 딛고 전통을 잊지 않으려는 의지의 형상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아가되 뿌리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남대학교가 오랜 시간 학생들에게 조용히 가르쳐 온 한 가지 자세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곳의 상징은 화려한 표어로만 남아 있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의 벽면에도, 언덕을 오르는 길의 침묵 속에도,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나무들 사이에도 그 정신은 스며 있다. 어떤 대학은 새로움으로 자신을 증명하지만,
어떤 대학은 시간을 견딘 깊이로 자신을 말한다. 영남대학교는 후자에 가까운 곳처럼 보인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
교육에는 유행을 넘어서는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 교정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캠퍼스 한편에 자리한 오래된 서원과 민속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문득 걸음을 늦춘다.
그곳의 나무 기둥과 마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배움이란 무엇이었는가.
사람을 기른다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지켜야 다음 세대가 흔들리지 않는가. 저 고즈넉한 공간은 대답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상하게도 낡지 않는다.
수십 년 전에도 유효했을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붙잡는다.
민속촌과 서원이 이 교정 안에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경관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것은 영남대학교가 단지 현대적 지식 생산의 공간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뿌리와 전통적 가치의 결을 함께 품은 장소임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오늘의 강의실과 오래된 마루가 한 교정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가장 앞선 배움이 가장 오래된 질문과 만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가.’
이 질문은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이루는 모든 사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지는 질문이다. 배움이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일이라면
대학은 이토록 깊은 울림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배움이 사람을 더 사람답게 세우고,
공동체를 더 따뜻하게 밝히는 일이라면
대학은 하나의 거대한 건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양심이 된다.
영남대학교의 교육이념인 *계왕개래(繼往開來)*는 그래서 유난히 깊게 다가온다.
지나온 시간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를 연다는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한 대학이 자기 존재 이유를 가장 간결하고도 품위 있게 드러내는 문장이다.
과거를 잇는다는 것은 낡은 것을 붙드는 일이 아니라,
선현들의 지혜와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다. 미래를 연다는 것은 더 높은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더 깊은 사유와 더 따뜻한 품성을 가진 사람을 길러 내는 일이다.
이 네 글자 속에는 영남대학교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함께 깃들어 있다.
‘계(繼)’에는 전통의 무게가 있고, ‘개(開)’에는 미래의 용기가 있다.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되 뿌리를 잃지 않는 것. 영남대학교의 교정과 건물, 자연과 사람들은
마치 그 뜻을 각자의 방식으로 말없이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해가 기울 무렵, 교정을 오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더욱 눈부시다.
젊은 얼굴들은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처럼 맑고,
걸음에는 저마다의 불안과 희망이 함께 묻어 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대학은 결국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건물은 대학의 몸일 수 있지만, 사람은 대학의 마음이다.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 도서관에서 쌓은 사유, 스승에게 받은 격려, 친구와 나눈 토론,
실패와 회복의 시간들이 한 사람 안에서 천천히 인격이 되어 갈 때,
비로소 대학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증명한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유산은 건물이 아니다. 가장 위대한 유산은 사람이다.
영남대학교가 긴 시간 동안 지역과 시대 속에서 지켜 온 것도 결국 이것일 것이다.
지식을 넘어 사람을 세우는 일, 경쟁을 넘어 품격을 가르치는 일, 성취를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게 하는 일. 한 사람의 진심 어린 가르침이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사람이 다시 다음 세대에게 빛을 건네는 일. 교육은 그렇게 제도보다 깊게, 문장보다 오래 사람 안에 남는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다시 기둥 위에 머문다.
수많은 계절이 지나도 이 교정에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길러 내고자 하는 교육의 마음일 것이다. 영남대학교의 역사성은 오래되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그 오래됨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며 오늘의 젊음과 만나고 있다는 데 있다. 상징은 박제된 문양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이어지는 정신일 때 비로소 빛난다. 계왕개래(繼往開來).
지나온 시간을 이어받아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여는 일.
그 시작은 거창한 선언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한 스승의 따뜻한 눈빛에서, 한 학생의 성실한 걸음에서,
한 대학이 오랜 세월 지켜 온 품위와 책임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그리고 어쩌면, 영남대학교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가르침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대학은 시간을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건네는 곳이라는 것.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정신을 전하고,
한 사람의 배움이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밝히는 곳이라는 것.
그래서 이 길을 걷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건네받고 있다.
이름 없는 빛 하나, 그러나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마음의 유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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