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가 만난 문인들 14
수당 이수화 시인
김 송 배
1970년 후반부터 1980년 중반까지 약 10년간 『心象』은 원효로 시절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목월 선생님이 계실 때까지는 박남수, 김종길, 황금찬, 김광림 시인을 비롯한 시인들의 지적인 사랑방의 주축이 시내 쪽에서 형성되었으나 목월 선생님이 작고하신 뒤 언제부터인가 젊은 시인들이 원효로 4가로 옮겨지게 되었다.
당시 시골 다방 커피의 전문인 ‘영일다방’과 생맥주집 ‘오투’에서 자주 만나서 차를 마시거나 생맥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여기에는 수당(樹堂) 이수화(李秀和), 전재수(작고), 신규호, 유승우 시인 네 분이 뭉친 [시와 육성] 동인들이 항상 시운동에 대한 담론이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수화 형이라고 불렀다. 그는 모 방송국에서 작가를 겸하고 있었기에 그의 헤어 스타일이나 옷맵시가 보편을 초월하는 전형적인 신사였다. 그와의 교분은 그의 시집 『그윽한 슬픔의 經典』서평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이수화 시인과의 교분은 십수 년전 원효로『心象』사 근처 영일다방 시낭송의 개척자적 역할을 자임했던 [시와 육성]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가 중견시인으로 독자들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병아리처럼 말석에서 끈끈하게 추구하던 시를 통한 우정도 우정이려니와 그의 탁월한 역사 인식을 풍자적 기법으로 승화시키는 언어의 연금술에 매혹되어 교유는 더욱 두터워져서 지금은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로 시와 우정을 동시에 향유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와 나는 많은 문단 행사에 동참을 하게 되고 행사가 끝나면 문인들과 술을 마시면서 시와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언젠가는 종로 골목에서 술을 마시다가 통행금지에 걸려는데 그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삿다 내리세요’라는 한 마디로 새벽 통행이 해제될 때까지 마셨다.
그는 취중휘담(醉中諱談)에 열을 올리다가 곧잘 유행가도 잘 불러서 좌중을 휘어잡는다. 주인은 자정을 넘어 몽중(夢中)이었으나 밤새도록 마신 술병 숫자로 술값을 계산하고 약간 부족하면 다음날 갚는 단골집이었다.
그는 1939년 기묘생이다. 그러나 그의 주민등록증은 1940년생이다.(다른 연유가 있으리라) 서울 만리동에서 출생하여 1963년에 작품「바람의 노래」「토천비결」「모창사 비곡」이 『現代文學』에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시단에 데뷔하게 된다.
그후, 시집으로 『모창사 비곡』『칸타타 코레아』『그윽한 슬픔의 경전』『은유집』『허무제』『절창』『존재의 우수』『반가사유상』과 시선집『허사초』『응향집』이 있으며 평론집 『길항적 은유의 정신사』등 편역 저서가 31권이 넘는 다재다능한 우리의 지적 시인군에 속한다.
또한 그는 라디오 연속극과 TV극, 시나리오 등에도 「붉은 백조」「석화」「벚꽃 동산」「사춘기」「아벨의 반항」「그대들의 천국」「훈풍」「머나먼 귀로」「피어린 귀향」「대투혼」등을 발표하거나 방영이 되어 방송극작가의 세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전형적인 문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그는 자유시인협회 상임부회장과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펜부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공초 오상순 선생 숭모회 부회장,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그리고 미당 서정주 시맥회 회장을 역임했거나 현재 문단의 일도 맡고 있어서 그의 역량은 우리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시간 현상학, 즉 아직 경험하지 않은 시간(삶)에 대한 희망을 지닌 김송배 시인의 이 시집이 우리 시단에, 죽음이 모든 철학의 중심 테마가 됨은 결국 인간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티야 말로 인류의 구원의식이란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듯이 그렇게 출발하고 이른바 ‘시집 거품시대’의 향긋한 청량제가 되리라 희망해본다.
그는 나의 제7시집『시간의 빛깔, 시간의 향기』에 맞추어 ‘김송배 시간의 현상학’이라는 서평을 집필하고 『心象』지에 수록한 글이다. 그는 이렇게 내 작품에 대한 차원 높은 평설도 아끼지 않는데 첫 시집『서울허수아비의 수화』에서도 ‘김송배의 시각이 부단하게 객관화하고자 하는 시점은 자신의 내면적 고뇌이다. 이는 대개의 깨어있는 동시대 시인들과 다를 바 없겠으나 그가 그 고뇌의 코아로 보이는 삶의 바람직한 정체에 개한 완결성을 추구하는 치열한 포에지를 지녔다’는 극찬으로 항상 후배들이나 후학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오더라, 風葬木 간살안의 蘭이 살아 / 墨香으로 눈멀은 雲峴宮의 / 雲峴宮의 쌍미닫이는 굳게 닫혔지만(「모창사 비곡」중에서)
내 눈 맞출 색한을 / 어서 좀 불러 주어요 / 세버들허리 낭창거리며 / 세버들허리 낭창거리며 / 암구정동으로 가야것쓰나 / 나 지금(‘93) 패드중이거들랑요(「패러디 : 어우동. 2-93」전문)
그의 시풍이나 경향은 대체로 시나리오나 방송극에서 엿볼 수 있는 극시적인 효과를 최대한 증폭시키면서 인간 내면에 잠재한 성정(性情)의 진실을 구현하는 새로운 창작기법으로 감동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비구니 금지장면 초’라든지 ‘어우동 염시’ 등은 역사적 인식에서 반추하면서 현실과의 교감을 통해서 다양한 주제를 구현하여 인간의 본능이 고뇌로 형상화하는 조화의 ‘패러디’를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는 40수년의 문학, 특히 시와 평론을 통해서 시문학상과 영랑문학대상, 동포문학상, 시예술상, 방송극작가상 등을 수상하고 지금도 인사동 어느 까페에서 ‘서울시낭송클럽’ 대표로 활동하는 열정이 넘치고 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고 전화를 했다. 이젠 펜클럽 부이사장 임기도 끝나서 조용히 마포 삼개나루 수당헌(樹堂軒)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 제8시집 『반가사유상』을 상재하고 ‘인간 존재의 그윽한 유현성(幽玄性)이 신비롭게 구조적으로 형상화한 형이상학파시(形而上學派詩)’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또한 작년에는 중국 텐진(天津)에서 열린 한중세미나에서 ‘세계문학 속의 우리 시’라는 주제를 발표하여 우리 시가 당면한 현실적 문제를 깊이 있게 조감함으로써 한중 양국에서 많은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항상 ‘시=사람=삶’이라는 등식이 체질화하고 있어서 오늘도 문단 선후배와 동료들과의 부담 없는 교감으로 인간적, 시적 진실의 동질성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2009. 7월호 <문학공간>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