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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익산향토문화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귀희
제126차 군산 근대문화답사. 2010년 3월 13일(토요일).
우리는 경첩이 지났어도 제법 쌀쌀한 봄날 아침 시청 앞에서 오전 8시 30분에 군산으로 출발하였다. 오늘의 답사지 해설은 이택회회장님께서 해주셨으며, 중간에 보조 설명은 최옥환원장님께서 수고해 주셨다. 군산의 일제강점기의 건물과 근대사는 군산의 원봉연해설사님이 해주셨다.
오늘의 답사지 : 옥구군 임피역 → 탑동 3층석탑 → 발산리 석등, 5층석탑, 구.시마타니농장 창고 → 이영춘가옥 → 군산시 진포해양테마공원 → 구.조선은행 → 구.군산세관 본관 → 꽃게장으로 점심 → 월명공원 → 동국사 → 히로쓰가옥 → 옥구향교. 일정이 일부 변경되었다. 채만식문학관과 상주사는 다음 기회로.
오늘 참석해주신 분은 모두 23명 이였으며, 군산에서 김관태 선생님이 합류하셔 총24명이 답사를 잘 마쳤다. 참석하신 선생님들은 강창경, 김관태, 김소현, 김이화, 김영자, 배홍선, 박광자, 소병기, 송호종, 전창기, 이종범, 이계숙, 이귀희, 이은영, 이윤옥, 이찬숙, 이택회, 안장숙, 채곤석, 채암석, 최옥환, 최옥님, 최평진, 한연호.
군산시의 연혁
군산의 근대문화를 보기 이전에 군산의 연혁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삼한시대 때는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 때 마한을 병합하여 마서량현(馬西良縣)· 부부리현(夫夫里縣)·시산군(屎山郡)으로 나누어졌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각각 옥구현으로 개칭되었고, 1015년(고려 현종 6) 임피현에 예속되었다. 1397년(태조 6) 고군산군도에 있던 군산진(群山鎭)이 옥구현의 군산포(群山浦)로 이전되었고, 1403년(조선 태종 3) 회미현이 옥구현에 통합되어 옥구·임피 두 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옥구현이 옥구군으로, 임피현이 임피군으로 개칭되었다. 1899년 군창항으로 개항되어 옥구군에 소속되면서 빠른 발전이 이루어져 1906년 옥구군이 옥구부로 승격되었다. 1910년 군산부가 신설되고 옥구부는 옥구군으로 개칭되었고, 1913년 군산선 철도가 개설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군산부와 옥구군으로 분리되면서 임피군과 함열군의 일부 및 고군산군도와 충청남도의 개야도·죽도·연도·어청도와 부안군의 비안도를 병합하여 옥구군이 되었다. 1949년 군산부가 군산시로 개칭되었고, 1995년 1월 군산시와 옥구군이 합쳐져 도농복합형(都農複合型) 통합시가 되었다.1998년 해망동과 신흥동을 통합해 해신동으로 하고, 명산동은 선양동에 통합되었으며, 중앙로 1·2·3·4동을 합해 중앙동으로, 미원동과 중동을 합해 중미동이 설치되었다. 2003년 현재 옥구읍과 옥산·회현·임피·서수·대야·개정· 성산·나포·옥도·옥서면, 해신·월명·오룡·신풍·삼학·선양·중앙·중미·흥남·조촌·경암·구암·개정·수송· 나운 1·나운 2·나운 3·소룡·미성동 등 1읍 10면 19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군산시내에는 일제강점기에 건축한 일본식 집이 많이 남아있다.
임피역[臨陂驛] 등록문화재 제208호
전북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 222-127번지에 있는 기차역이다.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에 속하였다가 2008년 1월 1일 장항선에 편입되었다. 1936년경 군산선의 철도역사로 건립되어 일제강점기에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5년 4월 1일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5년 9월30일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으며, 2008년 5월 1일부터 여객 취급도 중지되었다.
임피역사는 2005년 11월 11일 등록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임피면 읍내리에 만들어져야 했으나, 읍내리의 유림들이 풍수지리적 이유로 반대하여 술산리를 경유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탑동 삼층석탑[塔洞三層石塔] 유형문화재 제66호
전북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에 자리하고 있는 탑. 죽산리 탑동마을의 옛 청룡사 터에 자리한 이 석탑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양식을 일부 모방한 고려시대 탑으로 높이는 5.5m이다. 이 석탑은 단층 기단위에 3층탑을 조성했으며, 탑꼭대기 장식 일부분이 남아 있다. 탑신과 옥개석의 모든 부분을 서로 다른 돌로 만들었으며,2층과 3층에는 탑 몸 받침이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이 네 귀는 그 끝이 약간 들려있다.
군산 구 시마타니 농장(귀중품 창고) 등록문화재 제182호
1920년대 건립된 일본인 대지주의 창고 건물로 농장의 각종서류 및 현금, 한국에서 수집한 고 미술품 등을 보관하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당시에는 많이 쓰이지 않던 철근콘크리트조로 견고하게 지어졌다. 건립배경과 기능이 독특한 근대문화유산으로 당시 일본인 대지주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이다. 발산 초등학교 뒤 편에 있다.
옥구발산리석등[沃溝鉢山里石燈] 보물 제234호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45-1. 발산초등학교의 뒤편 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완주지역에 세워져 있던 석등으로, 일제시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의 가운데기둥은 사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깍은 모습으로, 표면에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의 모습을 새겼는데,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화사석은 4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깍아 8각을 이루게 하였으며, 각 면에는 4개의 창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번갈아 두었다.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화사석에 새겨놓아 등불을 보호하도록 하였다.지붕돌은 8각으로, 각 모서리선이 뚜렷하고, 밑면의 받침을 1단으로 새겼으며, 곡선을 그리는 처마는 여덟 귀퉁이에서의 치켜 올림이 시원하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된 머리장식 받침대를 마련해 놓았으나, 머리장식은 남아있지 않다. 화사석의 사천왕상, 지붕돌의 양식 등은 모두 통일신라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받침부분의 기둥이 4각으로 옮아가고, 화사석 역시 4각을 닮은 8각으로 이루어져, 8각에서 4각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다. 석등을 만든 시기도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으로 추측된다.
발산리오층석탑[鉢山里五層石塔] 보물 제276호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발산초등학교 뒤편 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완주(完州)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2층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였으나 지금은 탑신의 한 층이 없어지고 4층까지만 남아있다. 아래·위 기단 모두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기단 위로 4층의 탑신에는 각 층의 몸돌마다 네 모서리에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을 뿐 다른 꾸밈은 없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고, 추녀 끝이 약간 들려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밑에는 3단의 받침을 두어 고려시대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탑 머리부분에는 머리 장식이 일부 남아 있으나 훗날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으며 고려 탑의 간결한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다.
이영춘가옥[李永春家屋] 전북유형문화재 제200호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동 개정병원 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가옥. 군산시 개정동에 위치하는 이영춘 가옥은 현재 군산시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건물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건물이다. 일본인 농장주인 구마모토(熊本)가 1920년대에 건축하였는데, 건축 당시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별장처럼 지은 곳이다. 외부 형태는 유럽 양식을 띄며, 평면 구조는 일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의 온돌방이 결합된 한식, 양식, 일식의 복합 건축양식으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가 들어오는 양상을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때의 토지 수탈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雙泉) 이영춘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군산 진포해양테마공원
전북 군산시 내항의 진포해양테마공원에 거치된 위봉함(4200t급 해군함정)이 새로운 역사테마공간으로 내부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어 답사는 할 수 없었다.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최초로 화포를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고자 당시 전투 현장이었던 내항 일대에 육해공군의 퇴역장비 16대를 전시되어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띈 것은 4200톤급 위봉함인데, 이를 기념해서 군산시와 문화원은 2005년부터 매년 10월에 진포대첩 재현 행사를 벌이고 있다.
1910년 군산 앞바다에서 미곡반출 선적과정이다. 일본 정부는 근대화를 위한 공업 생산량을 지속시키며, 부족한 쌀을 보충하기 위해서 조선의 농토와 인력을 활용하였다. 1933년 전국 쌀 생산량의 53.4%라는 엄청난 양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시켰다. 군산항은 1934년에 200만석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우린 이곳에서 해설사 원봉연선생님의 도움으로 근대문화와 군산시가지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물들과 월명공원에 대한 해설을 약2시간에 걸쳐 걸으면서 들었다.
군산내항 부잔교(뜬다리)
군산내항은 금강하구와 중부 서해안에 자리한 지리적 특징으로 고려때는 진성창이 자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칠읍해창이 운영되던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해상교통로의 역할을 염두한 일본은 1899년 군산이 각국 조계지역으로 개항된 후 군산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1905년 제1차 축항공사를 시작으로 1921년까지 많은 공사를 통해 연 80만톤에 달하는 수출입화물 하역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부잔교는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뜬다리 부두라고도 하며 1918년 ~ 1921년, 1933년 준공되었다고 한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국가등록문화재 제374호 구.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 국가등록문화재 제372호
군산시 장미동 진포해양테마공원 앞에 자리하고 있다. 구, 조선은행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시설로서 1923년에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 채만식의 ‘탁류(濁流)’에 등잔하기도 한 이 건물은 군산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2층 건물로 지붕은 함석판을 이은 모임지붕으로 처리하였다.
구. 군산세관 본관[舊 群山稅關 本館] 도기념물 제87호
전북 군산시 장미동 49-38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 1905년 기울어가던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시작된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기간 (1905~1910) 중인 1908년(순종2년) 6월에 만들어졌다. 서양식 단층 건물로건평은 약 69평 이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불란서 또는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했다고 한다. 건물의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 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군산세관은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월명공원[月明公園]
전북 군산시 신흥동과 해망동에 걸쳐 있는 공원. 군산시의 상징인 월명산(月明山)을 비롯하여 장계산·설림산·점방산·석치산 등으로 이어져 있다. 능선과 골짜기 사이에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공원으로 올라가면 군산 시가지와 금강하굿둑·서해·외항·비행장·장항제련소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원 정상에는 전망대와 바다조각공원, 수시탑, 삼일운동기념비, 개항35주년 기념탑, 생각하는 시민상, 채만식 문인비가 있다. 수시탑은 타오르는 불꽃과 바람에 나부끼는 돛의 형상을 띠고 있다. 공원 서쪽 설림산 기슭에는 고찰 은적사가 있으며, 점방산과 설림산 사이를 막아 만든 제일수원지가 있다. 공원 안은 조경이 잘되어 있으며, 수령 30년 이상의 등나무와 벚나무가 우거져 경관이 수려하다. 매년 4월에는 전국 규모의 벚꽃사진 촬영대회가 열린단다.
동국사[東國寺] 등록문화재 제64호
전북 군산시 금광동에 있는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 우리는 이곳에서도 원봉연해설사와 이택회회장님의 해설을 들었다. 191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內田)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동국사는 한국의 전통사찰과는 다른 양식을 띠고 있다. 주요 건물은 대웅전, 요사채, 종각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8·15광복 뒤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사찰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대웅전은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일본 에도(江戶) 시대의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창문을 많이 달았고, 우리나라의 처마와 달리 처마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특징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은 모두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동국사 대웅전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히로쓰가옥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
군산시 신흥동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 가옥으로, 일제강점기에 군산의 영화동에서 포목상을 하던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건축한 전형적인 일식가옥이다. 우리나라 가옥으로 말하자면 김안균 가옥이나 이해영 가옥처럼 부자였던 집이다. 건물의 형태는 근세 일본 무가(武家)의 고급주택인 야시키 형식의 대규모 목조주택으로 2층의 본채 옆에 금고건물과 단층의 객실이 붙어 있으며, 두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옥구향교[沃溝鄕校] 전북 문화재자료 제96호
우리는 이것으로 오늘에 답사를 마무리 지으며, 해설해 주신 원봉연선생님과 오옥분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김관태 선생님으로부터 군산에서 염전을 했던 곳과 꽁보리 밭, ‘열대자(옛날 거리 측정을 정확히 하지 못했을 때 열댓~자 정도 된다는 뜻)’라는 뜻을 가진 푯말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마지막 옥구향교를 돌아보며, 즐겁고 행복했던 모든 답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오늘 24명 참석하신 선생님 모두 노란 산수유와 하얀 매화, 홍매화가 환하게 피는 봄날 건강하시고, 가족모두 행복하세요. 다음 답사에 뵙겠습니다. '나마스테!' 일부 회원님 사진은 회원 폰앨범으로 가시면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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