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1세기 중국에서 활자가 만들어짐.
1041년경에 중국의 필승(畢昇)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도제의 교니활자는 당시 중국에서 마침 목판인쇄가 왕성한 시대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이고, 목판에는 다양한 한자가 조각되었던 것에 대하여 활자에는 한자의 종류가 적었기 때문에 폭넓게 보급이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그는 활판인쇄술의 발명자로 일컬어 진다.
필승의 교니활자는 점토를 아교로 고정시켜 문자를 조각하고 그것을 구워서 도기화한 것으로 인쇄는 이 활자에 밀납을 발라 철판에 배열하고, 아래에서 열을 가해 밀납을 녹이고, 식혀 활자가 고정된 것으로 먹을 발라 종이에 눌러 인쇄한다.
1230년에는 고려왕조가 금속활자로 “상정례문(詳定禮文)”을 인쇄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은 금속활자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일컬어 진다. 1377년에는 고려 말기의 “직지신체요절(直指身體要節)”이라고 하는 좌선(坐禪)의 해설서가 인쇄되었다. 이것이 현존하는 활자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되어 있다.
14세기말에는 왕정(王禎)이라는 사람이 나무 활자 3만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보급되지 않았다. 3만개의 활자에서 목적의 문자를 골라 내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었던 것이다.
1403년에 조선의 초대 이성계가 국가 사업으로서 동 활자를 주조하였다. 이것을 계미(癸未)활자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려의 궁정으로부터 이어진 기술을 계승한 것으로, 이후 조선에서는 활판인쇄가 융성하였고, 1420년대에는 피크를 맞아 경자(庚子)활자나 갑인(甲寅)활자가 주조되고 과거시험의 테스트나 불교서가 인쇄되었다. 그후 훈민정음이 제정되었는데, 한자를 올바른 문자라고 하는 양반층이 한글을 배척하였기 때문에, 한글의 활자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요점 BOX 1041년경 중국의 필승이 만들었던 도제의 교니 활자는 폭넓게 보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활판 인쇄술의 발명자로 불린다. |
용어해설
고려왕조: 918년 신라, 백제를 통일한 이후로 470년 지속되었다(1392년). 역대왕은 불교를 중시, 사원을 증설하였는데, 이것에 의해 나라의 피폐와 타락을 불렀고, 그렇게 때문에 유교파, 특히 송대의 주자학파가 대두되고, 숭유억불의 조선왕조 탄생에 연결되었다고 한다.
조선: 1392~1910년까지 이어진 한반도의 최후의 왕조. 1910년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조인에 의해 일본제국에 병합되었다.
#목판인쇄 #교니활자 #상정례문 #금속활자 #직지신체요절 #계미활자 #경자활자 #갑인활자 #훈민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