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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6월 초 어느 날, 나는 여인숙 마루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무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은 횡성의 장날인지라, 장을 보러 오고가는 사람들로 다른 날보다 붐빈 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양복을 입은 중년 신사가 불쑥 들어오더니, 자고 갈 방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민 숙박계에 기입하는 것을 옆눈으로 보니 대강 이러하였다.
성명 : 박기풍
연령 : 47세
주소 : 충북 충주
직업 : 목사
이 여인숙 주인은 무식해서 숙박계 기록을 거의 나에게 맡기던 터라, 나는 여인숙에 손님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내 집안 일처럼 훤히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내 나이 26세, 기독교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도 없었고, 예배당에 발 한 번 들여놓지 않은 문외한이었으나 목사인 그 신사에게 묘한 호기심이 가면서 좀 골려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어려운 질문을 해서 대답도 할 수 없는 궁지에 한 번 몰아넣어 보자는 짖궂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 신사의 온유하고 인자한 얼굴을 대하니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 신사는 여인숙에서 삼 일을 머물렀다. 조반상을 물리면 어디론지 곧 나가서 저녁이면 돌아와 자고, 아침이 되면 또 가방을 들고 나가곤 했다. 하루는 조반 후에 출발하는 것이 아무래도 아주 떠나 버릴 것 같은 눈치여서
나는 엉겁결에 “오늘 떠나시렵니까?” 하고 물었다.
“예, 오늘은 떠나려고 합니다.”
“좀 물어 볼 말씀이 있었는데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군요.”
“물으실 말씀이 있으면 이제라도 물어 보시지요.”
그러나 그 질문은 머리에서만 빙빙 맴돌 뿐 좀처럼 그럴 듯한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머뭇머뭇하다가 나는 무뚝뚝하게 “선생님은 왜 예수를 믿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그가 대답할 바를 몰라 쩔쩔맬 줄 알았는데 뜻밖에 그 신사는 놀라는 기색 없이 오히려 반색하면서 내 옆에 바싹 다가앉았다. 그리고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반문하였다.
“예수 믿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까?” 그는, 상대를 골려 주려고 던졌던 질문을 이제는 내게로 돌리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구속의 경륜에 대해서 부드럽고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과,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구주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 그러나 구세주의 십자가의 공로와 사랑만이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내실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차근차근히 설명하였다.
그 횡성의 장날 파장처럼 공허하고 쓸쓸하던 내 마음에 갑자기 생명의 조수가 콸콸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은 환희와 감격에 나는 압도되었다. 캄캄한 밤에 환한 빛줄기를,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내게도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나는 목사님에게 물었다.
“나도 예수를 믿을 마음이 있는데 그분을 믿으려면 무슨 수속 절차를 밟아야 합니까?”
“수속은 별로 필요 없습니다. 다만 믿는다고만 하시면 됩니다.”
그런 훌륭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별 수속 절차 없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곧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박목사님의 믿으라는 재차 강권에 나는 반대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순순히 믿겠다고 수락하고 말았다. 그는 행구를 다시 풀면서 말하였다.
“오늘 떠나려고 하였는데 반 형이 믿겠다고 하니 아무래도 내가 하루를 더 묵고 가야겠소.”
“손님, 염려 마십시오. 손님이 가시더라도 여기에는 예배당이 여럿 있으니 거기 다니면 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믿는 교회는 감리교나 장로교가 아니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무엇이 다른가요?”
“예, 그 교회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경대로 제7일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박 목사님은 백지 한 장을 내 앞에 펴놓고 간단한 도표를 그려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창세로부터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님 당시까지 같은 안식일을 지킨 사실, 예수님 십자가 후에도 사도들이 지켰고, 주후 300여 년까지 지켜 내려오다가 주후 321년의 일요 휴업령이 반포되면서 본격적인 일요일 준수와 이교 풍습이 교회 안에 들어온 사실, 538년에 법왕권이 확립되면서 진리 교회가 박해를 받아 산과 광야로 망명한 사실, 1798년에 법왕권이 치명상을 받은 후 1830년 대에 세 천사의 기별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서 안식일교회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성경으로 이 모든 것을 증명할 때, 얼마나 정신 차려 들었던지 나는 그 때 그가 읽어 준 성경절을 한 절도 잊지 않고 오늘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종일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씨름하였다.
이윽고 저녁이 되자, 박 목사님은 나를 데리고 나가 한 가정을 소개해 주었다. 그 집은 남의 집 행랑 셋방인데, 조그마한 단간 방이요, 전기도 없이 램프 불을 켜고 노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니,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나와 우리를 영접하더니 들어오라고 말했다. 박 목사님은 벽에다 그림을 붙여 놓고 우리를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후에 알았지만, 그날 밤 그는 우리에게 다니엘 2장의 예언을 설명했던 것이다.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참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었다.
이튿날 아침, 목사님은 횡성을 떠나셨다. 한때 마음에 감동도 받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제까지 몸에 밴 구습을 얼른 벗어 던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나는 전이나 다름없이 여전히 술과 담배를
하면서 이웃 여인숙의 마루턱에 할 일 없이 앉아 있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있노라니 임병상 노인이 “내현이”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저녁은 예배일이니 예배드리러 가자”는 것이었다. 식사 후에 임병상 노인 집을 찾아갔다. 신자라고는 임병상 노인 부부와 나뿐이다. 그나마 할아버지는 설교단에 서야 하니 회중은 두 사람뿐이었다. 노인의 설교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말하고 있는 동안 줄곳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가 말이 끝나자 벌떡 일어나 나와 버렸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믿는 것이 가소롭게도 생각이 되어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1 주일 후 같은 날 저녁에 노인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연세 많은 노인이 먼 길에 오셨는데 대접으로라도 가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갔으나, 결과는 전과 다름없이 실망이었다. 예배가 끝난 후 돌아오면서 나는, 이제는 다시 가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흥미없는 예배였지만, 예배일인 화요일만 되면 자꾸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기만 하면 노인과 의견이 대립되어 실망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 후부터는 화요일 저녁뿐 아니라 저녁만 먹으면 매일 밤 그 노인 집을 찾아가서 이야기하다가는 의견이 대립되어 다투다가 돌아오곤 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였다. 이러는 중에 술친구와는 차차 멀어지게 되고, 노인과 점점 정이 들게 되었다.
1936년 8월 14일, 예의 그 여인숙 집에서 술이 한 병 들어왔다. 저녁 식사 중에, 아내가 방금 들어온 술을 따라 주면서 마시라고 권하여 한 모금 마셨다. 갑자기 가슴에서 주먹 같은 무엇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내가 술을 마시다니!” 술잔을 놓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이 술을 개천에 버리라고 말하였다.
“아니, 술이 변했나요?” 아내가 물었다.
“술이 변해서가 아니오. 나는 아무래도 술을 끊어야겠소. 예수 믿는 사람이 술을 마셔서야 되겠소?”
이 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내 마음속에 자라나는 믿음이 나를 어떻게 변
화시키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임 노인은 내게 구약 성경을 읽어 보라고 당부하였다. 몇 장을 들추어 읽어 보았으나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돌려주려고 저녁에 나가니, 나의 상점 앞에 친구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을 만나자 그 중 한 친구가 대들면서, “너 요사이 어디를 다니기에 전혀 볼 수가 없느냐”하며 옆에 끼고 있던 그 성경을 내게서 빼앗아 들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이 녀석 예수를 믿나? 웬 성경을 옆에 끼고 다니는 거야”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다른 한 명은 그 성경을 펼쳐 들고 큰 소리로 “예수 가라사대…아멘 소멘”하면서 야유하기 시작하였다.
말 한마디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실컷 당하고 나서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어찌하든지 성경을 열심히 배워서 이들에게 전도를 해야 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이튿날 즉시, 내게 전도한 박기풍 목사님에게 이런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박기풍 목사님은 그 당시 충청북도와 강원도 일부 지구를 담당하고 잇던 지방 교회 목사로서, 충주에 주재하고 있었다. 그의 지구 안에 있던 횡성군 상 산전리에 출장 왔다가 거기서 임병상 씨가 경기도 용인에서 횡성으로 이사왔다는 소식을 듣고 임병상 씨를 방문하였는데, 그의 아들이 순안 의명중학교를 2학년에 중퇴하고 횡성에서 사진업을 한다고 해서 그를 만나기 위해 삼 일을 유하는 중에, 그 아들은 만나지 못하고 뜻밖에 나를 만나서 전도하게 된 것이었다.
진리를 좀더 깊이 알기 원한다는 간절한 편지를 보낸 지 삼 일 만에 박목사님은 곧장 달려왔다. 가방을 들고 내 상점에 들어오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는 사람으로 보이지 아니하고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 여인숙 방에 마주 앉아서 삼 일동안 성경을 공부하였다. 그 말씀이 내 영혼에 어찌 그리 꿀처럼 달았는지, 삼 일을 공부하고 나니 성경 66권을 다 통달이라도 한 듯한 기쁨이 내 마음에 충만하였고, 온 횡성 사람들을 다 전도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열성과 용기가 나도 모르게 내 맘속에 솟구쳐 올라왔다.
박목사님은 떠나기 전날 오후에 나에게 산책하러 나가자고 권하여, 나는 횡성 뒷산 우거진 송림으로 그를 안내하였다. 이윽고 박 목사님은 “이 자리가 조용하니 여기서 기도를 드리자”고 하며 함께 무릎을 꿇자고 하였다. 나를 위해 얼마 동안 간절히 기도한 후 박 목사님은 일어나면서 “이 장소를 기도터로 지정해 주니 시간 있을 때마다 와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삼 일 후에 박 목사님은 다시 충주로 돌아갔다. 갓난아이가 젖 떨어진 것과같이 내 마음은 허전하였다.
교회도 없으니 발이 가 닿는 곳은 자연 임병상 노인 집이었다. 마치 직장 출근이라도 하듯 나는 매일 빠짐없이 노인 집에 들렀다. 나는 1원짜리 셋집을 얻어서 예배당 겸 임 노인의 거처로 정하고, 송판을 사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 간판을 걸고 즐거워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반내현을 찾는다는 것이다. 나가보니, 경찰에서 온 한 형사가, 달아 놓은 간판을 떼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게 청천 벽력과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간판을 떼고 충주 박기풍 목사님에게 기별을 했더니, 그분이 즉시 와서 경찰서를 찾아갔다. 박 목사님의 주선으로 다시 간판을 달아도 좋다는 허가가 나왔다.
하루는 큰 장마가 져서 밤새도록 비가 퍼부었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 두 노인이 비에 떠내려 가지는 않는지”하는 걱정 때문에 머리는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동이 틀 때를 기다려 밖에 나가니 온 횡성읍이 물 천지였다. 허겁지겁 달려가서 임 노인 부부를 찾으니 얼마나 반가와하는지.
폭우는 여전히 계속되어 횡성읍 앞 냇가의 여섯 집이 물에 잠겨 유실 직전에, 박근식이라는 순사가 이들을 구하려고 물 속에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물살이 세어 그 순사도 여섯 가족들과 함께 떠내려갔다. “이 일을 어쩌나! 이 일을 어쩌나!” 내 마음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나도 모르게 “하나님! 저들을 살려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후 처음 드리는 기도였다.
이 때부터 믿는 마음이 생기면서 사람을 대하면 전도할 생각이 들었다.
음력 8월 14일로 기억된다. 저녁 식사 후에 거리에 나가니, 여기저기서 장구를 치며 유행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이제 나는 이 세상과는 하직이구나! 이제 옛친구들도 다 끊어졌고, 나는 참으로 고독한 인생이 되었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겨 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발걸음은 횡성 뒷산 우거진 숲 속을 향하였다. 어떤 큰 소나무 밑에 앉아 나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할 말이 없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하고 있노라니까 기도 제목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소리 내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성경을 알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기도가 끊겼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였다. “하나님, 제가 성경을 알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성경 좀 알게 해주십시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간절한 마음으로 무수히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서 깜짝 놀라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밤 한시였다. 나는 또 기도할 마음이 생겨서 벌떡 일어나 다시 기도 장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 제목은 성경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와서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어갔다. 새벽 세시 반에 나는 다시 잠이 깼다. 옷을 또 주워 입고 같은 장소에 올라가 기도하다 보니 날이 훤히 새었다. 그후 2년 동안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 네 번씩 기도 장소를 찾아갔다.
날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목사님이 기도 장소로 정해 주신 곳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하루는 달 없는 그믐 밤의 일이다. 온 횡성 읍내가 잠이 든 밤중 한시 반, 인적이 끊어진 고요한 밤이었다. 내가 그 숲 속에서 큰소리로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내 뒤에서 갑자기 아름드리 나무가 벼락에 맞아 부러지기라도 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기도드리다 말고 뒤로 벌렁 넘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얼른 일어나 앉아 기도를 마치고 가만히 생각하니 이상하게 여겨졌다. 나는, 바람 한 점 안 부는 고요한 이 밤에 나무가 부러질 수 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날이 샌 후에 나는 기도 장소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으나 나뭇가지가 부러진 흔적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근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것은 여전히 풀리지 아니하는 수수께끼와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그러한 일이 나의 기도하는 습관을 좌절시키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얼마 후, 여름 장마가 나서 길이 패이고 구름이 낀 그믐 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데, 같은 장소에서 기도를 드리고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는 중에 갑자기 큰 짐승이 나 때문에 놀라 후다닥 튀어 도망가더니 다시 돌아서서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 주님의 능력은 위대하시다. 그 위경에서 주님은 나를 보호해 주셨다. 횡성 뒷산은 인적이 끊기면 낮에도 호랑이가 나온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날 밤의 그 짐승이 혹시 호랑이가 아니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돈 40전을 대회 서회에 보냈더니 10전짜리 성경 신약 보급판 두 권을 보내 왔다. 나는 날마다 이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근 이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성경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설교할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든지 사람만 만나면 전도를 시작했다. 임병상 노인이 권인호 씨를 인도하였고, 나는 모자 세탁업을 하는 김진수 씨를 인도하였다. 횡성에 이제 5, 6명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 당시는 일지사변이 발발한 때이라 종교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아주 좋지 않을 때였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소문이 횡성읍에 퍼지자 형사들이 간간이 찾아와 조용히 심문하고 갔다. 그러나 나는 천방 지축 영문도 모르고 태연하였다.
나는 고향인 충북 증평으로 가서 증평 광길양화점을 경영하는 이상기 씨를 만나 전도하였고, 이상기 씨는 자기 조카인 이경희 씨에게 전도하여 그가 또 믿게 되었다. 이경희 씨는 우리 교회 교육계의 유능한 교육자로 활약하였다. 그의 아들 이재룡 씨는 한국 교계에서 처음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로써, 현재 필리핀 세미나리에서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 참으로 이상기씨 마음 밭에 떨어진 씨는 옥토에 떨어진 씨처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가져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