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80호나되는 자연부락으로서는 큰 마을이었으나 삶은 어려운 시절이었다.라디오가 있는집은 5~6세대정도,그외는 집집마다 엠프를설치하여 뉴스 음악을 들을수있었다.동생들은 ((라디오 사기를 원이었다,그래서 첫 봉급(1966넌도 6000환)으로 양키시장에서 금성라디오(네모난 호마이크,건전지용)를 5300환주고샀다. 시골집에가니 어머니는 포장을뜯어면서,그렇게 좋아하시면서,너 아버지는 월급타면 비료값주려고 한다고했다.동생들은 라디오를안고 방안을 돌아다녔다.밤이면 동생친구들이 놀러와서 늦도륵 음악 연속극듣는것이유일한 낙이었다.동해바다지역에서 처음근무할때 ,바다위에 둥근바가지모양한것이 둥둥뜨있는데 가끔,쉬쉬하는 휘파람소리가들렸다.그것은 해녀들이 미역,소라,전복,성기등을 따기위해 물속에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숨쉬는소리,처음보는것이라 참, 신기했다.그당시 박봉이라 하숙비2500환을 절약하기위해서 자취를하니 반이면충분했으며.시골 부모님께 보내기위해서였다.자취를하니 한끼굶는것이보통이었다.그러던중 인심좋은 어머니같은분이 김치등반찬도해다주고 특별한 음식을 할때는 꼭 초대했으며 때로는 그당시로서는귀한 닭도 잡아주었다.어머니같이 그렇게 자상한 분이었다.그러던사이 부산에서 직장을다니던 딸이 집에오기되었다.시장에다녀오면 더좋은반찬을해서 나를초대했다.어느날 나에게 딸하고 결혼하면어떠냐하면서 오래전부터 사위감으로 마음두고있었다고했다.그래서 나는 아직 가정형편상 결혼은 못한다고하니 모든것은 다할태니 걱정하지말라고했다.너무나 나에게 잘해줘서 대답하기에 참 힘들었다.내가살고있는 집주인할머니가 그집처녀는 과거행실이아주좋지않았다며 면서 절대결혼하지말라고했다.지금까지 나에게배푼 은혜을생각하니 너무괴로웠다.하는수없이 그곳을뜨나 먼곳 다른곳으로 근무처를 옮겼다. 그후 오랜세월동안 그분의따뜻한 情 ,잊을수없어 한때는죄송스럽고 어느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그래서 한평생사는동안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대인관계에 너무가까이도,너무멀리도하지말라는말,그래야만 한 없이 온화하고 평화롭게 살지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