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만 해도 촌각 시절 이라서 낮선 객지 생활이 쓸쓸하고 외롭기만 하였다. 안동생활 2~3개월 정도 지났을까?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나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 안동에서는 시내 중심에 속하는 곳에서 근무 하면서 이웃 옆집 로라 의상실에서 일하던 지금의 나의 아내와 인연이 되여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된다. 나의 아내는 자기 직장에서 20분 거리가 떨어진 율세동 자기 집에서 출 퇴근 하였는데 그 때 당시 나는 아내가 출근하는 아침 시간이면 괜시리 몹씨 기다려지며 출근 하는 모습이 보고싶어 가슴이 두근 거리며 설래이는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아내의 젊은 시절의 모습은 머리숱도 길게 기루었으며 아주 얼굴도 잘 생겨 미인형이라 내가 아내의 그 모습에 흠뻑 빠졌던 것으로 기억 된다.
그로 부터 우리는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서로 만나 즐거운 데이트를 하면서 깊은 정이 들었다. 우리는 퇴근 시간이면 둘이 정답게 만나 안동시내 부근 낙동강변을 거닐며 오손도손 정다운 애기도 나누며 재미나게 지냈던 그 시절이 생각 난다. 어느 휴일날에 나는 아내와 함께 소백산 기슭에 위치한 영주 희방사 등산길에 올랐던 추억이 새롭다.
북위36.5도, 사람의 체온과 같은 위도에 위치한 영주시는 선비의 고장이자 힐링의 도시이다.그 중심에 국내 여행지 명소 소백산이 있다.시가지 어디에서나 멀리 올려다 보이는 소백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한 곳이다.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 들어하는 악(岳) 자가 들어간 산은 아니지만 작을소(小) 자가 들어 있다고 결코 만만하게 볼만한 산은 아니다. 예로부터 산 이름에 흰백(白) 자가 들어가는 산은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기곤 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풍수학의 대가 남사고 선생은 지금으로 부터 400여년 전 말을 타고 죽령고개를 넘어 오다가 별안간 말에서 내려 산을 바라보며 예를 갖춘 뒤 절을 하고는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 이라며 감탄 했다고 전 하였다. 이름은 비록 작은 소백이지만 신령스러운 소백산 정상은 한국의 알프스라 이름 붙여진 만큼 어머니 품 안 처럼 넓고 큰 산으로 사계절 등산객이 찾고 있는 산 이란다. 희방사는 지금도 관람료를 받는데 어른2천원,청소년1천원,어린이6백원을 받는다.여행지 추천 명소 희방사 매표소를 지나면 경사가 있는 시멘트 포장길이 시작되고 그 길을 걸어올라 안내판에서 오른쪽 연화봉 가는길 초임에 이르게 되는데,돌이 박힌 산길을 걸을 때에는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안전에 유의해서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올라가는 중턱에 계곡물이 흐르는 쉼터 벤치에 앉아 잠시 산이 내어주는 상쾌한 공기를 폐 깊숙이 들여 마시며 일상의 행복을 잠시나마 느껴본다.산길 옆 바위에 산행객들의 염원이 담긴 돌탑이 층층이 쌓인 곳에 살포시 돌 한 개를 얹으며 우리들의 안념과 건강을 기원해 본다.돌탑을 지나 철교에 올라서면 명소 희방계곡을 울리는 물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영남 제일의 희방폭포를 만난다.연화봉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된 물줄기는 계곡구비를 돌고돌아 28m 수직 암벽을 타고 흘러내려 용소로 떨어지는데 진경산수 한 폭을 보는 듯 하다.조선시대(경국대전) 등의 서문을 작성한 서거정(徐居正)은 희방폭포 물줄기를 바라보며 꿈에서 노니는 듯한 풍경 이라는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 글 귀를 남겼다고 한다.구름다리를 건너 계곡은 더깊어지고 은은한 풍경 소리는 혼란했던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손을 내미는데 신라 선덕여왕때 두운(杜雲)대사가 세웠다는 희방사로 내려왔다. 기쁜(喜), 마음으로 지은절(方),희방사(喜方寺)에 오면 모두가 기쁜 마음을 받을수 있으며 여기서 받은 기쁜 마음은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해피 바이러스가 되어 이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 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이 신령스러운 산 명소 소백산 희방사를 찾아 우울한 마음을 달래 보는 건 어떨까 생각 하며 나와 내 아내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며 그때의 추억을 간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