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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쌓기
핏줄 여행
채비하는 날
난생처음 어머니와 형제자매들만 함께하는 여행 일정을 잡았다.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을 며느리들이 힘들어할까? 염려하여 핏줄여행이라 이름 지었다.
속초 한전 연수원으로 계획하였으나, 여의치 못해 설악 한화리조트로 결정해 예약하고 동생들과 어머니께 일정을 알렸더니 이런 여행이 처음이라 그러신지 어머니께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모양이다.
궁금한 점 없이 자세히 말씀드렸는데도 수시로 전화하셔서 가는 날이 언제고부터 누가 함께 가지? 이제 며칠 남았구나. 등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 못하시고 몇 번째 되물으시고 동문서답을 하시면서도 수시로 전화를 주신다.
숙소를 예약한 날부터 손꼽아 기다리는 내 맘이 이렇게 설레는데
어머니께서는 얼마나 마음 설레실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왜 일찍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루 이틀만 짬을 내어도 되었음 직한 일인데삶이 바빴다는 핑계로 돌려버리기엔 그동안 해드리지 못한 회한이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어머니 연세를 생각하면 앞으로 몇 차례나 더이런 여행을 가질 수 있으려나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이곳에서 박 실 이와 출발하고 어머니는 동생들과 서울에서출발해서 목적지 한화리조트에서 만나자고 할까? 아니지, 차가 좀복잡하고 고생이 되더라도 함께 타고 부대끼면서 가는 것이 더 즐겁고 이번 여행의 뜻에 부합되지 않을까?”
곁에서 듣고 있던 반쪽이 거든다.
“내 생각에는 같은 차를 타고 가는 것이 더 즐거울 것 같은데요.”
“그렇지? 옛날얘기도 해가면서….”“그렇게 좋아요? 나 빼고 가는 여행이?”
많은 여행을 함께 하였는데도 이렇게 혼자서 훌쩍 떠나려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섭섭한 모양이다.
“아니, 이렇게 가는 여행이 생전 처음이잖아”
“아니잖아요?”
“내가 언제 이런 여행을 한 적이 있어.”
“가족들이 청송 주왕산에 갔었잖아요.”
“그땐 며느리들이 모두 참석했고, 이번엔 엄마와 자녀들만 가는 여
행이잖아.”
“그렇게 보면 처음이네요. 갈비와 상추 준비해 드릴 테니까 혁이보
고 차량용 냉장고 가져오라고 하세요.”
“내가 서울 가서 출발하게 되면 힘들어 들고 갈 수가 없어요. 될 수있는 한 여행지 맛집을 찾아 사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침은 숙소에서 먹어야 하잖아요?”
“그곳에도 슈퍼마켓이 있어요. 암튼 맘 써 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조금의 준비는 필요할 텐데….”‘아침은 숙소에서 먹을까?
밖에 나가서 먹을까? 메뉴는? 일정은 어떻게 짜는 것이 어머니가 덜 불편하실까? 또 어떻게 코스를 잡을까?’ 일정표와 함께 인터넷에 소개된 맛집을 뒤져 메뉴를 짰다가는지우고 다시 짜길 되풀이하면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일이진척되지 않는다. 벌써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 이러고 앉아 있다. 이렇게 또 기다림의 하루가 지나간다.
2016.4.13.
여는 날
박 실 이와 나는 어제 올라와 김 실 이와 함께 두런두런 지난 일들을 들추어내어 마름질하고 재단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엄마 곁에 잠들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가슴 설렌 그날이 왔다. 10시에 동생이 이번 여행을 위해 미리 준비했다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검 정색 아우디 Q7을 타고 남은 생에서 다시없을 즐거운 추 억들을 건져 오기 위해 금호동 큰집을 출발한다. 한차례 길을 잘못 들어 잠시 헤매긴 했으나, 가운데 좌석에 앉은 김실이가 내비 중계 책임을 맡고부턴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속초를 향해 동으로 동으로 내달린다.
뒷자리에 앉아 선루프를 통해 올려다보는 하늘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아름답다. 천문대에서 커다란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듯 한 파란 하늘 바탕 위로 옅은 회색을 머금은 구름 덩어리들이 연신 머리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많은 사람의 즐겁고 행복한 삶의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았을 저 하늘은 우리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이번 핏줄 여행을 통해 오랫동안 맘속에 간직할 좋은 추억을 많이 건져 오라는 하늘의 당부는 흐르는 바람 소리를 통해 마음속으로 듣는다.
나타났다간 사라지고, 사라진 자리엔 또다시 새로운 구름 덩이가나타난다. 이렇게 구름이 움직이며 바람을 일으킨다. 오늘 비가 내
린다고 해서 자연이 연출하는 속초 앞바다의 장엄한 일몰 광경을 볼 수 없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의 하늘을 보면 기대할 만할 것
같다.
“엄마 괜찮아?”
“그래, 자리가 편해서 괜찮다.”
“노래 한 곡 부르시지요.”
반응이 없으시다.
“몇 해 전 남해 다녀올 때 만해도 차를 타시면 노래를 1절부터 4절
까지, 신나게 부르셨는데.” “엄마, 총기도 좋은데 노래 한 곡 불러
봐.”
김 실 이가 다시 한번 권해 본다. 그래도 말씀이 없으시다. 곁에서 내가 한마디 거든다.
“엄마가 듣질 못하셔서 말씀이 없으신가 보다.”
“내 다 듣고 있다.”
“뭐라고 했는데요?”
“귀가 어두워 못 듣는다고 했잖아”
“허허, 하하. 맞아요.”
모두가 유쾌하게 손뼉을 쳐가며 웃는다.
“참 좋다. 너하고 이렇게 여행하는 것이 꿈같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부엌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머니가 거두어야할 몫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딸린 식구가 있다는 핑계로 한 많은 한 여인의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가슴이 미어진다.
“왜 일찍이 이런 여행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늘은 어머니께서 이럴게 즐거워하시는 일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게 어머니의 건강을 허락하시려나?”
이제 형제와 누이들도 모두 나이가 들어서 사물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기도 쉽지 않다. ‘메로’ 이름을 생각해 내지 못해서 맛으로 얘기하다가 토막 난 생선 덩이의 모양과 색깔을 얘기해도 이름을 생각해 내지 못하다가 결국 나이 어린 막내가 생각해 낼 때까지 온 가족이한참을 머리를 굴리면서 허둥대는 가운데 속초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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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위해 맛집으로 소개된 생선구이 식당을 찾아가니 평일이라 한산하다. 들어선 식당 메뉴판에 조금 전까지 서로서로 생각의 편린들을 꿰어맞추며 기억해 내려 애썼던 메로가 적혀 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생선구이 6인분과 메로구이 4인분을 주문했더니 양이 많다. 종업원이 바쁘게 움직이며 시중을 드나, 두 테이블을 옮겨 다니느라 더러는 타기도 한다. 어머니께서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니 생선이 가시도 많고 맛도 별로이신가보다. 추천할 만한음식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식후 일몰과 일출의 모습이 아름다워 속초 8경 중 하나로 불리며 드넓은 바다를 힘겹게 달려 온 파도가 마지막으로 온 몸을 던져 바위에 부딪히고 깨어져 사그라들면서 남기는 소리가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해서 거문고 금(琴)자를 써서 영금정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여졌다고 안내되어 있어 큰 기대를 안고 바다로 이어지는 50M 쯤 되는 콘크리트 다리 너머에 있는 정자를 찾아갔으나, 다리 끝 널찍한바위 위로 아름다운 주변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게 볼품없고 촌스럽게 덩그러니 선 콘크리트 구조물의 정자에 실망하고 돌아선다. 되돌아 나와 좌측 계단으로 오른 또 다른 영금정은 외관이 수려하다.
마지막으로 들른 설악씨네라마는 1,300년 전 고구려의 모습을 재편한 곳으로 드라마 대조영, 신의, 마의를 촬영한 오픈세트장이다.
천천히 걷다가 잘 다듬어진 잔디밭 군데군데 깨끗한 쑥이 자라있어 고구려 저잣거리 조형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톱으로 쑥을
뜯어 먹 손처럼 뭉쳐 들고 수로를 따라 전개되는 당나라 저잣거리를 쉬엄쉬엄 걷는다.
규모는 작으나 원형에 가깝게 지으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당나라 황궁을 지나 황궁 뒤편에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도록 화려하게꾸민 측천무후 후원을 지나 동산 위 정자에 오르니 흐드러지게 핀 꽃과 함께 황금빛 당나라 황궁의 뒷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국적이면서 참 아름답다.
“엄마”
“왜”
“이곳으로 올라와 보세요.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와요.”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몇 개의 계단만 오르시면 되는데요.”
같이 앉아 있던 여동생들과 함께 올라오신다.
“엄마, 무지 예쁘지요?
“그래, 야! 참 보기 좋구나.”
어머니께선 우리한테 피해를 줄까 꼬부라진 허리로 힘들 만도 하신데 지팡이의 도움을 받으며 쉬다 걷기를 반복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함께해 주셔서 참 고맙다.
대포항으로 가서 저녁에 먹을 광어와 우럭회를 사 숙소로 돌아와 거실 전면의 커튼을 열어젖히자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대자연의 서사시가 펼쳐진다. 손바닥만 한 호수를 머리에 이고 있는 파란 골프장 잔디 너머로 올망졸 망 키 대기를 하며 겹겹이 들어앉은 나지막한 산들이 눈이 없을뿐 알프스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어느 이름 모를 깊은 산자락에 들어와 앉은것 같아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창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자 멀리서 숲 향이 가득 실린 산뜻하고 향긋한 공기가 코끝을 통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준비해 온 회와 상추로 김실이가 비벼준 맛있는 회 밥을 먹으면서 60년의 세월을 넘나든다.
엄마는 오빠들만 생각했다는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가까운 사이라는 딸들의 하소연에서부터 그동안 서로의 가슴속에 꼬깃꼬깃 접어넣어 두었던 철없던 어린 시절의 즐겁고 힘들었던 과거를 들춰내고얘기하는 가운데 서롤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오랜만에 철부지 동심으로 돌아가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학교와 발령으로 일찍 고향을 떠나는 바람에 고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대화에 끼어들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고스톱과 윷 놀이도 즐기시면서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잠자리에 드셨다. 재밌고 즐거운 가운데 꿀 같은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2016.4.14.
펼치는 날
8시에 일어나니 동생이 없다. 골프장에 갔나보다 생각하고 더 자겠다는 김실이를 두고 우린 사우나로 향했다. 지하 1층에 있을 줄 알았던 사우나는 별관이 있는 설악워터피아 쪽에 있어 건물 밖으로나와서도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다.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셔서 쉬엄쉬엄 걸었다.
들어간 사우나는 규모가 엄청나다. 노천탕을 비롯한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탕이 있어 이곳저곳을 들락거리다가 한 사람이 겨우 들어
앉을 수 있는 거품 탕에 들어가 앉았는데 옆구리가 허전하다.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있다. 어릴 적에 앓은 백일해의 후유증으로 조금만 걸어도 숨을 가쁘게 몰아쉬셨고, 기침을 시작하면 오랫동안 멈추지 못하고 기침 끝엔 담을 뱉으시는 모습에 늘 아버지의 건강을걱정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생각이 난다.
사랑 모퉁이나 안마당에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커다랗게 떠 오른 정월대 보름달 앞에서나, 세상 모든 근심을 다 들어줄 것 같은 자비로운 모습의 부처님 앞에만 서면 나 때문에 아버지가 편찮으신 것 같다는 생각에 울 아버지 병환을 낫게 해주시고 대신 저를 데려가시라고 울먹이며 기도하던 철부지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힘 들어 하시던 아버지였는데 중년부터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커다란 불덩이 하나를 가슴에 안고 사셨으니 어쩌면 우리 가
족들 마음속엔 이만큼 살아주신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있는지도 모른다.
청천벽력 같은 폐암 선고에 매일 같이 퇴근길에 병실을 찾아가면서도 오늘처럼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진 않았다. 단지 자식으로서 도리를 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내 나이가 아버지의 연세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살아 계셨으면 지금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으셔서
"돈구야, 등 좀 밀어라" 하시곤
“아니 이쪽을 밀라니까.”
“여기요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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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 지지 못한 나를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보시면서
“아니, 좀 더 세게 싹싹 밀어봐라. 서구는 잘하던데”
하시던 음성과 꾸지람하시는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아버지는 내가 사는 곳에서 반대쪽으로 멀리 떨어져 계신다.
이번엔 대충대충 밀지 않고 꼼지게 빈틈없이 밀어드리고 싶은데 그이럴 수가 없다. 어리석은 인간은 이토록 소중한 것을 꼭 떠나보내고나서야 그 자취를 더듬고 기억하려 애쓰는 바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사다리가 산소라고 했던가? 돌아가면 산소에 들러 아버지를 만나 뵈어야겠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내가 일찍 가서 동생과 함께 차를 가지고 와서 함께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 어머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엄니와 함께 사우나 입구에서 만나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쉬고 걷기를 반복하며 숙소로 돌아오니 동생이 돌아와 있다.
“골프장 갔다 왔어?”
“아뇨. 동명항에요.”
“거긴 왜?”
“새벽 4시에 잠이 깨는 바람에 새벽에 들어오는 배로부터 대게를 사
러 갔다가 들어오는 배도 없고 어쩌다 들어 온 한 척의 배에는 작은 물고기만 있어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왔어요.”
“배는 날이 밝아서 들어오는데….”양압기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양압기 없이는 숙면하지 못해 힘들어 하면서도 가족들을 위해 애쓰는 동생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우면서
도 잠을 못 자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애처롭다. 어제 뜯어 온 쑥으로 끓인 국과 회밥으로 아침을 먹고 양양 낙산사
로 향한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와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 위에서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 어머니와 제수씨는 숲에서 쑥을 뜯으시고 박 실이와 김 실이는 해수관음상을 보기 위해 올라가고 나와 동생은 어머니를 찾아 내려오는 중에 어머니께서 경내에 들어오셨다는 전화가 왔다.
어떻게든 이번 여행에서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시려 애쓰신는 어머니의 마음이 보여 편치 않다. 하고 싶으신 데로 요구하셔도 되는데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왜소하고 가녀린 어머니의 두 어깨 위에 6남매를 키우며 내려앉은 천근 같은 세월이 무게가 전해져 온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다 그랬겠지만, 한 번도 햇볕 속에서 살아보지 못하고 그런데도 아직껏 그무게를 다 벗지 못하고 지고 가신다.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다. 90 노인이 아니신가? 20년 후의 내 모습인데 나는 이렇게 울 어머니만큼 자식을 배려할 수 있을까? 늙으면 아기 된다고 했는데.박 실 이와 김 실 이를 기다리면서 쑥을 뜯으시는 어머니 곁에 서 있다. 두어 걸음 떨어진 앞에서 제수씨 외치는 소리에 생각은 여기에서 멈춘다.
“여기 쑥 많아요.”
하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화단에 있는 국화다.
“그건 쑥이 아니라 국화예요.”
하면서 한바탕 웃는다. 어제 풀밭에서 처음 본 쑥과 잎 모양이 비슷한 국화가 잠시 헷갈리셨던 모양이다.
‘꿈이 이루어진다.’는 길로 들어선다.
가을 타작마당처럼 다듬고 깨끗하게 손질해 먼지 한 점 없이 부드러운 황톳길을 걷는다. 마음 같아서는 신을 벗어들고 양말도 벗어
버리고 맨발로 걸으면서 어린 시절처럼 뒹굴고 싶다. 티끌 하나 먼지 한 점 없이 다듬어 둔 길을 신발을 신고 걸으려니 길 한테 미안하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걷다가만나는 길 끝엔 어김없이 뱀이 똬리를 틀 듯 건물들이 자리하고 섰는데, 유서 깊은 건물인 의상대와 홍련암이다. 탁 트인 바다를 앞에다 두고 분홍빛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수액을 모으며 준비하는 해당화 군락과 다가오는 초 팔 일을 앞두고 신도들을 맞기 위해 내걸어 둔 수많은 연등을 스쳐 지나면서 사람들은 이 길 위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꿈이 있어 산다고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형제들과 엄니의 일상이 지속되길 꿈꿔본다.
점심은 여행 첫날부터 김 실 이가 먹고 싶다던 감자옹심이를 먹기위해 영금정 근처 맛집을 찾아갔다. 점심때가 지난 늦은 시각이라
준비해 두었던 양이 다 팔려 감자옹심이 외에는 되는 음식이 없어옹심이를 시켰더니 앙증맞은 옹기단지에 2인분씩 담겨 나온 옹심
이는 내가 생각하던 옹심이 와는 모양이 다른 감자수제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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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어렵던 시절 고향에서 작고 썩은 볼품없는 감자들을 물에넣어서 양달에 내어두고 역한 냄새를 맡아가며 여러 날에 걸쳐 물
을 갈아주고 주물럭거려 가며, 썩혀서 가라앉힌 앙금을 광주리에 천을 깔고 펴 말려서 가루를 얻어내는 엄니의 큰 노력 끝에만
들어 주셨던 감자떡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 깃든 음식이라 친근감이 더 든다. 한 숟가락을 떠서 넣으니, 혀끝을 간질이는 매끈한 느낌과 함께 입속 가득 감자 향이 번지면서 고향의 풀 내음과 함께 고향산천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래서 음식은 추억이라 했나 보다. 어머니와 제수씨와 누이들도 맛이 있는지 후후 불어가며 먹기에 여념이없다.
오후 일정으로 천연 암벽 요새지, 권금성으로 가기 위해 설악산으로 가는데 들어가는 길은 한 창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도로 양옆으로 줄줄이 늘어서서 옷깃을 꼭꼭 여미고, 혹독한 겨울바람을 이겨낸 주름투성이의 벚나무들이, 봄볕의 사랑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팝콘 터지듯 하얀 속 살을 드러내며, 주변을 환하게 밝히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꽃비가 되어 내린다. 참 아름다운 정경이다. 우리인생의 끝도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질없는 욕심도 부려 본다.
평일이라 기다림 없이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케이블카에 올랐다. 케이블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우아! 와!”
하는 감탄과 놀라움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내설악과 울산바위를 둘러보는 5분 남짓 사이에 케이블카는 목적지 권금성에 우리들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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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와 제수씨는 정류장에 남으시고 우리 셋은 10분 거리에 있는권금성을 오른다. 김실 이가 소리친다.
“와아아∼”
“너무 좋다.”
“처음 왔어?”
“응”
“설악산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어?”
“공룡능선과 울산바위 등 아름다운 곳이 많아”
“그렇구나! 와∼ 오빠 이리 와 봐. 여기도 멋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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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들이 눕거나 늘어서서 바위 숲을 이루고 있는 바위 위로 오르면서 외친다. 바위 등을 짚고 까치발을 하고 무서움에 고개만 겨우들고 건너다본 정경은 아찔하다. 바위너머 아득한 낭떠러지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속초에 자주 왔다면서?”
“매번 와서는 늦잠 자고 중앙시장 가서 회나 사다 먹고 놀다가 올라
가곤 했으니까.”
“김 실이 이번에 구경 제대로 하네.”
“맞아”
엄니가 지루하실 것 같아 서둘러 내려온다.중앙시장으로 갔다. 주문한 닭강정을 만들고 킹크랩을 찌는 등. 한 시간 남짓 동안 어머니는 시장 안 닭 강정집 앞 1인용 의자에 앉아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다리시느라 힘드셨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자 사 온 음식으로 잔치를 벌인다. 처음 먹어보는 닭강정이 매콤하며 달큰한 맛이 일품이다. 먹어도 먹어도 싫증 나지 않고 자꾸만 손이 간다. ‘이러다가 배탈이 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쉬 멈추지 못한다.
“와아∼ 맛있다. 이게 대게 맛이야?”
“맛있니?”
”응. 나는 러시아 대게 처음 먹어봐”
“참 맛이 있네. 우리나라 대게보다 단맛이 많이 나네.”
“엄마도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박 실 이가 이번엔 엄지 다리를 떼어드린다.
“오냐, 맛있다.”
“너도 먹어라.”
하시면서 게살을 뽑아 드신다. 어제저녁에 무리해서 피곤했던지 즐거운 식사를 마치곤 잠시 기대 앉았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들었던 모양이다. 두런두런 얘기 소리에 깨어보니 박 실이와 김 실이 그리고 제수씨가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세 노친넨 모두 자고 젊은이만 이렇게 앉았네요.”
하면서 박 실 이가 놀린다. 곁에서 김 실 이도 맞장구친다. 그래, 맞다. 또 언제 형제, 남매들이 엄니를 모시고 이런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이렇게 주어진 시간을 즐겨야 하는데 잠은 내일 자도 되는
데....... 아는데도 어쩔 수가 없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겨우 하룻저녁 설치곤 이 모양이다. 이 또한 나이 탓으로 돌릴 수밖에.
닫는 날
2016.4.14.
다시 일어났을 땐 벌써 날이 훤하게 밝은 뒤다. 해가 중천에 솟아있다. 창밖 골프장엔 벌써 골프를 치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께 나시더니 어지럽다시면서 사탕을 찾으신다. 박실이가 옆에서 말한다.
“엄마 어제저녁에 밥을 드시지 않아서 그래. 당뇨 환자들은 밥을 드
셔야 하거든.”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그랬으면 진지를 드렸을 텐데.”
“엄마, 괜찮으세요?”
“이렇게 사탕 먹고 조금 누워있으면 되더라.” 하시면서 자리에 누우
신다.
그렇게 한숨 주무시고 나시더니 아침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어제 저녁 먹다 남은 게딱지에 밥을 비비고 회밥에다 쑥국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윷놀이로 휴식을 취한 뒤 점심은 속초에서 산채만을 전문으로 하는 맛집에서 산채를 먹어보자면서 산채전문점인 점봉산나물 천국을 찾아 나섰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설악의 중심이 되는 산인 점봉산을 상호로 한 산채 요리 연구가의 식당이 있었는데 식당 앞에는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4대의 대형 관광버스에서 내린단체 손님들이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어서, 예약하지 않은 우리는
자리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내가 먼저 식당으로 갔더니 마침 1층에 우리들이 앉을 만한 자리가 비어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입구 홀에는 직접 채취한 각종 산채를 비롯하여 장아찌며 마른 산채들을 종류별로 가득 진열해 두고, ‘산나물에인생을 걸고 맛으로 승부한다.’는 주인의 경영방침이 눈에 들어온다.
주문한 산채비빔밥에 딸려 나온 음식은 보기만 해도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노루궁뎅이버섯, 맥문동 뿌리, 더덕과 이름
도 모르는 산채들이 동그랗게 놓여있는 곁자리에 예쁜 야생화로 장식 된 음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갖가지 나물들을 밥그릇에 옮겨 담아 젓가락으로 골고루 엇섞어 비빈 다음 한 숟가락을 떠서 입속에 넣자, 입속 가득 자연의 향이 넘쳐나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이것은 무슨맛? 또 이것은? 생각하며 먹는 식사 시간 내내 즐겁게 학습한다.
식사 후 마신 새콤한 발효음료와 함께 사장님께서 직접 설명도 주셨으나 나이 탓인지 돌아서면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이렇게 눈과 입이 한 것 호사를 하고 난 뒤 끝으로 맛있는 커피를 한잔씩 먹고 이곳을 떠나자면서 카페를 찾아 시내를 30여 분 가까이 헤맨 끝에 겨우 주차장이 딸린 그럴듯한 카페를 찾아 들어가 커피와 함께 그곳에서만 판다는 빵을 먹으면서 엄니의 표정을 살피니 잘 버티고 계시는 것 같다.
“엄니 몸 불편하지 않으세요?”
“괜찮다. 너 가 효도해 줘서 고맙다.”
“건강하세요. 어머니”
이렇게 서로의 감동을 가슴에 담은 2박 3일은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또 언제 있을지 모를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에필로그
엄니 힘들지 않으셨는지요? 엄니를 위한 여행이라면서 엄니의 연세를 생각지 않은 무리한 일정으로 건강을 해치지나 않으셨는지
우리에게 좋은 추억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삶에 지칠 때 꺼내놓고 오늘의 추억을 나누겠습니다.
어머니께선 우리 형제자매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엄마'라 부를 수 있도록지금껏 자릴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니가 아니면 누구도 앉을 수 없는 그 자리에서오랫동안 건강 하시길 빌어 봅니다.
이렇게 시작된 핏줄 여행은 두 번째 여행부터 며느리들의 요구로
문호를 개방하면서 가족 여행이 되었다.
제천 ES 리조트 2박 3일 충무 마리나 리조트 2박 3일 고군산 군도를 둘러보는 변산 대명리조트 2박 3일 일을 끝으로 엄니의 건강이좋지 않아서 이렇게 단하고 있다.
아들 부부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사막 어디엔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면,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가족 모두가 삭막한 도시를 떠나 대자연 속
에 풍덩 몸을 던질 수 있는 가족 여행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들 보배가 생일에 내려오려는 걸 평일이라 힘들 것 같아 못 오게 하였더니 어버이날과 합쳐 휴가를 내곤 기어이 함께 가족 여행을가자 한다. 작년에 딸아이가 자연휴양림에 함께 가자는 것을 거절한 뒤끝이라 완강히 만류하였으나, 새아기와 함께 추억을 남기자고 해서 마지못해 수락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몇 차례 장소가 바뀐 우여곡절 끝에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인월–금계)로 정해졌다.
2014년 5월 2일 금
기다리던 날이 밝았다.
88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울 가족의 첫 나들이를 축하하듯 온산의 소나무들이 축포를 쏘아댄다. 하나님께서 보낸 바람이 송화의 뇌관 을 건드렸나 보다. ‘쿵’‘쿵’하는 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소나무들은 ‘훅훅’ 송홧가루 포탄을 쏘아대고 있다. 처음보는 광경이다. 온산이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뿌옇다. 흩어진 송화는 바람을 타고 파아란 하늘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간다. 새아기는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대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연신 카메라에 옮겨담기 바쁘다.
함양 나들목 죽산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멈췄다. 새아기가 점심을 맛깔스럽게 여러 가지로( 방풍나물 말이, 베이컨초밥, 된장말이 김밥, 우엉잡채와 과일)준비해 왔다. 직장 나가면서‘이 음식을 만들려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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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풍에 방풍나물이 좋다고 하더라.’는 시어미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기억했다가 방풍나물 말이 김밥을 준비한 예쁜 마음이 읽힌다. ‘메뉴는?’ ‘재료는?’ ‘조리법은?’에서부터 시장 보고 조리하기까지의 힘들었을 과정들을 생각하자 몇 날 며칠 고생했을 모습이 눈에 밟힌다. ‘시집 일이라 그런가? 몸만 오면 되는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앞으론 이러지 말거라. 준비에 힘들면 나들이 자체가 싫어지지.
그냥 가서 여행지 음식 사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오면 돼. 아들도 꼭 기억하고”
“예, 그러지요.”
방풍나물 말이 김밥을 한 개 집어 입속으로 가져간다. 독특한 방풍향과 함께 새아기의 손맛과 고운 마음씨가 입속 가득 넘쳐난다. 보기에도 좋고 맛도 있다. 들깻잎에 말아 싼 된장 말이 밥은 깻잎 향과된장 맛이 어우러져 난생 처음 먹어보는 점심이 되었다. 여러 가지채소들이 곁들어진 형형색색의 우엉잡채는 아름다운 색감이 맛과함께 어우러져 건강식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주위에 구경꾼이 없어 아쉽다. 자랑하고 싶었는데.’
30분을 더 달려 남원시 인월 안내소에 들러 3코스에 대한 도움말을 들었다.
“3코스는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입니다.”
“완주 하는데 몇 시간쯤 걸리죠?”
“보통 8시간쯤이면 가능할 것입니다.”
“시작점은 어디죠?”
“50M쯤 올라간 지점에 있는 구 인월교가 출발점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아들 보배 부부는 일 년 뒤에 도착한다는 사랑의 엽서를 쓰고 나는안전 지도 한 장을 사 들고 밖으로 나오니 마을 어귀엔 아침 일찍 금계에서 출발했다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도보꾼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인월 금계 구간은 남원시 산내면 상황 마을과 함양군 마천면을 잇는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서북쪽의 주 능선을 조망하고, 산비탈에 펼쳐진 다랭이 논과 6개의 산촌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길’이라고 한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 인월의 구 인월교를 건너 출발점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중군 마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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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가을 들판을 떠올리며 즐거운 모습으로 트랙터를 몰아 무논을 갈아엎으며 모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바쁜 농촌의 들녘을걷고 또 돌아간다.
수성대 산길을 따라 오르다 장항마을 사람들이 이웃 마을로 풍개를 사 먹으러 다녔다는 추억이 깃든 고갯길, 배너미재를 넘어서자,
위풍당당한 낙락장송 한그루가 버티고 서서 가는 길을 막아선다.
거북등처럼 깊게 파인 등가죽을 덮고 있는 수많은 주름은 그동안살아온 날들만큼의 굴곡 많고 힘들었던 삶을 말하고 섰다. 근엄함
과 위엄이 보인다. 한자리에 서서 수백 년은 족히 우리의 삶의 모습을 지켜보고 선 살아 있는 역사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가르침을 받는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위엄 넘치는 소나무 앞에 서서 삶의 한 매듭을 짓고, 심호흡하면서장항마을의 전경을 내려다본다. 마을이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으로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매동마을 가는 길에 티베트고원을 떠올리게 하는 카페 히말라야가있어 들렀다. 카페 앞은 자연석으로 한껏 멋을 내었으나, 소박하고투박스럽기 짝이 없다. 주섬주섬 찍어 바른 딱 분으로 민낯을 겨우면한 소박한 모습으로 단장한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순박한 모습의 주인이 반가이 맞이한다. 카페 안에는 미리 온 손님 두 분이 차를마시면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 폭의 정경을 바라보며, 정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내겐 액자 속의 사진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벽면에는 어느 작가의 작품 전시회라면서 천에다 색 천을 덧대어무늬를 나타낸 크고 작은 작품들이 모빌이 되어 달려있다.
투박한 나무판에다 삐뚤삐뚤 시골스러움이 묻어나는 검은 매직글씨로 소개된 메뉴판에는 효소 차와 팥빙수에 인도식 밀크티인 짜
이와 인도식 요구르트 라씨까지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내부는 모두 목재로 마감되어 있어 자연 친화적으로, 분위기로 아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좋았으며, 차 맛도 일품이었다. 까페를 나서는 우리를 뒤따라오면서까지 가게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며 손님을 배웅하는 주인의 친절함이 인상에 남았다.
매동 마을을 지나고도 솔숲과 활엽수 숲길을 돌고 돌아 이어지는 둘레 길은 오롯이 우리 가족들만을 위한 길이었다. 이 넓은 산속에우리 네 사람밖에 없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풀벌레 소리마저끊긴 지 오래다.
이렇게 우리를 찾아가는 시간 여행 속에 푹 빠져들어 자연과 하나되어 걷다가 보니 어느새 오늘의 최종목적지에 도착했다. 중황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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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에 위치한 ‘별과 달’ 펜션은 아담한 미니 2층이고, 자그마한 앞마당은 토종 잔디로 가꾸어졌다. 그 가운데로 현관과 이어지는 길은 자연석을 박아 놓고, 앞마당 둘레로는 키가 나지막한 나무들로 한껏 멋을 내어 펜션을 꾸미고 있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앞· 뒤, 좌·우가 모두 정원인데,
2014년 5월 3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발코니로 나갔더니, 오월이라고는 하나 깊은 계곡을 품고 천왕봉을 훌쩍 뛰어넘어, 한기를 한가득 안고 달려오는
새벽바람은 준비 없이 나선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한다. 깜짝 놀라 뒤돌아서며 바람을 피해 옷깃을 꽁꽁 여미고 나서, 이번엔 바람과 맞서 보려 만반의 준비를 한다. 심호흡하며 서서히 가슴속 깊이 받아들인다. 싸한 냉기와 함께 맑은 산소 덩어리가 내 속을 뒤집으며,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정신이 또렷하고 맑아진다. 청정한 하늘과 지리산 영봉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섰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갑자기 떠오르는 나옹스님의 시조를 읊조려 본다. 2층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은 산골 마을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다. 고사리밭에서 고사리를 뜯고 있는 농부, 소 몰고 밭으로 나가는 남편 뒤를 따라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일터로 나가는 아낙. 산비탈 과 골짜기 군데군데 터전을 일군 장난감 같은 올망졸망한 밭떼기들이 한없는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오 육십 년 전 우리 농촌 들녘의 모습이다. 이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남아서 삶에 지쳐 정신적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재충전과 함께 힐링의 기회가 될 수 있
었으면 하고 부질없는 욕심을 부려 본다.
최종목적지 금계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이름이 바뀌기 전엔 ‘징검다리’라는 이 지방의 사투리인 ‘노디목’이 동네 이름이었다고 하는데, 난 옛 이름이 훨씬 더 예스럽고, 정겹게 어울리는 그리움으로 다가오는데......
나메스터 쉼터에서 팥빙수로 피로를 풀며 우리를 찾아가는 일정을 마무리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새아기가 우리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도 새아기 속으로 들어갔겠지. 이렇게 서로에게 녹아들며 우리가 되었다. 우리가 되면 한결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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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 5박 6일
2015년 7월 6일 월 첫째 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가족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가족은 핏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끈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우리 가족 카톡방을 끈으로 이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소중한 가족 중 아들 부부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대만으로 떠난다. 많은 여행을 다녀 보았으나 이번 여행이 내게 주는의미는 특별하다. ‘어느 여행 때보다 더 설레고 기다려지고 기대되는데 새아기도 이런 마음일까? 많이 긴장하고 있진 않을까?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을 설친다.
메르스의 영향으로 공항은 한 달 전에 비해 조용하다 못해 썰렁하다. 아시아나 항공 부스 앞에서 아들 부부를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 반바지에 플라스틱 물 신발, 둘의 복장이 동네 슈퍼마켓 가는 복장이다. 한창 명품에 관심을 가질 나이들이 아닌가?
두 시간 만에 타이페이 공항에 도착했다. 먼저 공항에서 6일 동안 쓸 유심칩을 사고, 행 천궁 행 버스를 타고
간다. 스치는 사람들 모습이 우리와 비슷하고 한자 간판에 콘크리트로지어진 건축물들의 외양이 우리나라 건축물들과 흡사해 차창 밖으로비치는 거리 모습은 낯설지 않으나 머릿속에 자리한 대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머릿속 대만은 40여 년 전 고등학교 시절에 멈춰있다. ‘고층 건물을 세우고 안락한 집을 짓고 생활이 편리해지면 본토 수복의 꿈을, 이룰 수 없다면서 이곳은 본토 수복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도시계획을 한다.’고 선생님께 배웠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이 나라 사람들이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음을 알있음인지 고층 건물들과 지하철을 비롯한 주민 편의시설들을 모두갖춘 완성된 나라다.
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장개석 총통기념관으로 갔다. 25만m2 나 되는 넓은 공원에 양옆으로 국립극장과 국악원을 거느리고 전면에는 널따란 광장과 잘 다듬어진 꽃밭으로 되어 있다. 동시대의 어느 정치가들보다도 책임감 있고 거짓 없고 매력적이었던 총통은 사후에도 국민들 사랑 속에 국민과 함께하는 것을 보면서 존경할 국부가 없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89개의 계단을 오르면 70m 높이의 기념 당이 앞을 가로막는데 에메랄드빛 기와와 하얀 대리석으로 된 아름다운 벽 앞에 6.3m 높이의 장제스 동상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대만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앉았고 그 앞을 두 사람의 위병이 지키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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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 5시가 되자 5명이 하는 위병 교대식은 웅장하진 않았으나, 나름의 절도를 지켜 가며 동상을 중심으로 10여 분간 행해졌는데 위병들을 뽑는 조건은 키, 몸무게, 생김새, 학력 등 선발의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고 하는데도 보수가 좋아 지원자가 넘쳐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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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전시회 작품과 장 총통의 유물들을 둘러보았는데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되었다. 총통의 유물 사진 속에서 우리나라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인터넷에 소개된 맛집 마라 훠거 해물 샤부샤부 집을 찾아가는데 길이 인파로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여행이 갖는 즐거움의 80%가사람 구경이고 사람을 통해 얻는 것이라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거리가 미어터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식당은 입구부터 대기 손님들이 줄을 섰다. 예약하지 않고 와서 20분을 기다리다가 예약 취소한 손님이 있으면 입장할 수 있다면서 무작정 기다려 보라고 한다. 대기석에 앉아 3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입장해서 1인당 우리돈 24,000원에 한 시간 반 동안 고기와 싱싱한 해물이 무한 리필 되는 만찬을 아들 부부의 도움을 받으며 이국땅에서의 즐거운 저녁간을 가졌다. 우리 가족에게 나온 도장이 네 개씩이나 찍힌 쿠폰을 혁이가 옆자리의 대만인 가족에게 건네주었더니 댕큐를 연발한다. 후식으로 애플망고와 마시멜로 향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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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스위스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면서 의미 있게 첫날을 마감한
다.
7월 7일 화 둘째 날
5시 30분 눈을 떴다. 태풍을 걱정했는데 날씨가 넘좋다.
커튼을 열어젖히자, 황금빛 맑은 햇살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9층에서 내려다보니 계획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8시 20분 버스를타고 200여 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숲속 온천으로 유명한 양명 산을향해 출발한다. 양명 산 주차장에 내려서 반쪽이 노점상에게 방울토마토를 사면서 값을 깎으려다가 깍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씻을사이도 없이 허둥지둥 양명 산 일주 버스에 오른다.
소유 갱에서 하차했는데, 점심 준비를 할 곳이 없다. 인터넷에서는물 한 병 사 먹을 곳이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지? 걱정하고 있는데 반쪽이 사무실에 들어가서 묻더니 사무실 아래층에 슈퍼마켓이 있다며 내려가자고 한다. 안내도 없는 계단을 내려 돌아가니 연세가 든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매점이 나타났다. 간식거리와 옥수수 잎에 싼 찰밥을 산 뒤 바위틈에서 하얀 화산가스를 내뿜으며 화산활동을 하는 현장을 찾아간다. 대여섯 홀에서 화산가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자연을 정복하려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만용에 경종을 울리듯 그중 한곳에선 간헐온천처럼 ‘솨’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산가스를 힘차게 내 뿜다간 힘에 부치는
지 바로 사그라지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 체 대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일을 반복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분화구 주변엔 노란 색깔의 유황이 묻어나와 조금씩 쌓여있고 뿜어져 나온 황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손으로 코를 감싸 보지만 소용없다. 깊은 맨틀 속 자연이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생각하면 인간이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지게 한다.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 트래킹 시작점으로 자리를 옮긴다.
시커먼 먹구름들이 칠성산 쪽으로 몰려들며 정상은 하늘 속으로 몸을 숨기더니 안개비를 뿌리면서 두 팔로 접근을 막는다. 원래 이곳에서부터 칠성산 주봉을 트래킹 하기로 계획하였으나, 태풍 예보에비까지 내려 포기하고 양명 산 산허리를 싸고 돌아가게 만들어 둔대나무 숲길을 걷기 위해 예쁘게 손질해 둔 대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숲 냄새와 산정의 맑은 공기에 취한 채 자연과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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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관광지임에도 평일이라 사람들이 없어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와 나무 자라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숲은 적막하고 조용하다. 이렇게 조용한 숲을 끊어질 듯 이어가던 길은 찻길이 나오면서 끊어지고 우린 조망대 위에 올라 주변 정경을 둘러본다. 멀리 검푸른산등성이로부터 이어져 나온 올망졸망 초록의 능선들이 서로에게어깨를 내어주며 오순도순 사이좋게 이어지면서 부드러운 곡선의 리도 다른가 봐.”하면서 호젓한 길을 오롯이 가족끼리 걸으면서 ‘언제 또 가족과 함께하는 이런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며 현재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혁이가
“새 소리가 아니라 매미 소리예요.” 하더니 잠시 뒤
“매미를 찾았어요. 빨리 와 보세요.”
하면서 난리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가만히 찾아보니 정말 나무에붙은 자그마한 매미가 그렇게 우렁찬 소리로 울어대고 있다.
순환버스를 타고 냉수 갱에 내려 미지근한 황톳빛 온천물에 발을담근다. 물이 여과되지 않은 原水라 더 좋은 것 같은데 아들은 그렇지 않나 보다. 덥다면서 신발을 신은 채 끝내 발을 담그지 않는다. 그렇게 20여 분이 흐른 뒤 다시 순환버스에 올라 일본식민지 시절목장으로 개발하였다는 경천강으로 갔다. 안내소를 지나 언덕으로 가는 계단을 따라 자그마한 언덕을 오르자 시야가 확 트인다. 작은 구릉을 감싼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참아아름답다. 녹색의 광활한 푸른 초원이 작은 구릉들과 어울리고 초원한가운데를 반으로 가르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 같은 산책로, 그 산책로 위에서 초원을 배경으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웨딩 촬영을 하는 아름다운 7월의 신부, 그 주변을 서성이면서 풀을뜯는 검은 소, 정말 아름답고 고요하여 어디선가 워낭소리와 함께 목동들의 피리 소리가 산골짜기마다 들여올 것만 같은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산책로 위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사진을 찍고 간 자리에 저마다의 모습으로 우리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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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번 순환버스를 타고 양명 산자락에 있는 타이페이 최대의 온천단지로 이름난 신 베이터우에서 대중온천탕에 가기로 하였으나, 호텔 가족탕이 좋겠다고 해서 Hot spring hotel 온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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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25개 중 하나로 알려졌다는 신북도서관 분관에 들렀다. 우거진 숲속에 숲과 어울리게 목재로 지어
진 우아한 모습의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목재의 향이 나를 사로잡는다. 적막 속에 독서 삼매경에 빠진 분위기에 압도된다. 책을 읽는 모습들과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아름답고 참 보기 좋다.
대만의 자존심, 101빌딩을 보러 가는 길에 다른 집보다 만두값이 비싸긴 해도 맛집으로 소문난 딘다이펑을 찾아갔으나 가게 앞은 인산인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의 안내원이 각기 따로서서 손님을 맞고 있다. 대기하는 줄이 길다. 음식을 주문해 두고 30분을 대기한 끝에 입장을 허락받고 들어섰는데 넓은 매장 안도 사람들로가득 찼다.
중앙조리실 유리 벽 너머에는 위생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많은 종업원이 그룹을 지어 둘러서서 서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게반죽하고, 빗고 소를 넣으면서 철저한 분업으로 만두를 빚어내고
있다.
종업원이 안내하는 식탁엔 벌써 세팅이 끝나 있었으며, 앉기 바쁘게 주문한 요리가 줄지어 나온다. 육즙이 든 샤오룽바오와 사오마이그리고 우육면과 돼지고기 새우볶음밥 대만 맥주 한 병으로 꼭꼭 씹 어가며 맛을 보는데 맛은 있으나, 비싼 만큼 더 맛이 있는 것 같진 않다.
101빌딩을 오르는 표를 사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정해진 시각에 입장권을 사서 순서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다. 89층, 이렇게 높은 곳엔 올라 본 적이 없어 두려움에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라더니 엘리베이터에 설치된모니터를 보는 사이 37초, 눈 깜짝할 사이 엘리베이터는 89층 전망대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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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5층 지상 101층, 높이 508m의 어마어마한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압권이다. 형형색색의 쏟아지는 별빛과 함께 전기 문명인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래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나 보다. 아름다운 시가지 동서남북을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바닥이 투명 유리로 깔린 구석 자리로 한 걸음 들어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짜릿짜릿 전해져 오는 전율에 오금을 펼 수가 없다. 아들과새아기는 선뜻 들어서는데 반쪽은 몇 차례 시도 끝에 겨우 한 발짝들어오다 만다. 내가 팔을 잡아 끌어들이려 하자 손사래 치면서 달아난다. 이렇게 한 바퀴 돌면서 사방을 둘러보고도 부족한 것 같아동전을 투입하고 망원경으로 살펴본다. 바로 대만 시가지가 손을뻗으면 잡힐 듯 바로 코앞에서 펼쳐진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과 자동차까지도 생생하게 보인다. 이번엔 비정기적으로 개방한다는 91층으로 걸어서 올라갔으나, 91층에선 철골로 가리어진 가림 사이로 그것도 사방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한쪽 면 일부만 개방하고 있다. 돌아서서 건물꼭대기의 첨탑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올려다보고 지진에 대비해서 만들어두었다는 101빌딩의 보물 중심추(윈도 댐퍼)를 보기 위해 88층으로내려와 커다란 둥근 공 앞에 섰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무게가 660톤 12.5cm 두께의 강판을 용접하여 만들었으며 직경이 5.5미터나 된다고 한다.
이렇게 일정을 끝내고 파김치가 되어 10시에 호텔에 도착하였는데 아들은 시원한 걸 먹겠다며 외출한다고 한다. 젊음이다.
7월 8일 수 셋째 날
태풍 예보로 타이루거 택시 관광을 오늘 하기로 하고 호텔 프런트에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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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택시를 소개받아 타이루거 협곡으로 가는데 갑작스레 일정을 변경하다가 보니 요금도 더 비싸고 거기다 기사가 영어가 안 된다. 자동 번역기를 동원하고 나서야 겨우 소통할 수 있었다. 아들 부부가애를 먹는다. 11시 10분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엄청나게긴 터널이 나타났다. 길이 아주 좁고 험하다. 대리석의 돌산을 비 집어 뚫고 바다 쪽 절벽 산허리를 깎아내고 쌓아 올려 길을 내느라 좁은 2차선에다 산이 생긴 모습대로 길을 만들다 보니 이리 구불 저리구불 굴곡이 심해 반대쪽 차선에서 오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거기다 화물트럭이 앞서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거북이가 된다.
한쪽은 수직에 가까운 대리석 원석의 돌산이 버티고 있고 다른 한쪽은 십 여길 낭떠러지 아래로 태평양이 넘실대고 있다. 아찔하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길이다. 까마득한 발아래로 펼쳐지는 바다빛깔이 예사롭지 않다.
두 시간을 달려갈 거리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제육볶음, 오징어, 생선탕 등을 주문하는데 땀을 뺀다. 주인아주머니가 나오고 아저씨가나오고 또 딸이 나와 온몸으로 말하다가 글로 쓰기도 하고 또 영어로 하다가 휴대폰 번역기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으나, 진전이 없다. 결국 우리가 들어올 때부터 건너편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먼저 음식을 먹고 있던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문제를 해결하고 자리에 앉는 아들 얼굴은 땀범벅이다. 연신 땀을 닦아낸다. 소통의 중요성도 절감했으나, 이 또한 이국여행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점심을 먹고 한 시간을 더 달려 오늘 일정의 첫 기착지이자 화련 가는 길에 있는 대만 8경 중 하나이고 절벽과 바다가 만나는청수 단애에 도착했다. 워낙 높은 절벽이라 이렇게 이름을 지었고나?
까마득한 절벽 아래 절벽과 거의 수직에 가깝게 만나는 바다. 바다는 내일 불어올 태풍에 대비하듯 잔잔한 파도로 숨 고르기를 하고있다. 먼바다로부터 밀려온 잔잔한 파도는 바닷가 모래를 간질이며 모래와 하나가 되는가 싶더니 이내 하얀 포말을 그리면서 흩어진다. 많은 중국인이 한바탕 소란을 떨고 간 자리에 우리가 서서 기념 사진을 남기고 한 시간을 더 달려 타이루거 협곡으로 들어서는데버스 앞 유리창에 보슬비가 내려앉는다. 이러다가 비가 많이 쏟아지는 것은 아닐까? 버스가 힘에 부쳐 헐떡거리며 올라가는데 앞서가는 버스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 정상을 향해 꿈틀거리며 느릿느릿 기어 올라가고 있다. 동서를 횡단하며 동과 서를 이어주는 이 도로는 군사 목적으로 장경국의 책임 아래 돌산의 허리 단단한 대리석 바위를 오직 정과 괭이만으로 뚫고 깎아내어 겨우 2차선 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의 의지가정말로 놀랍다.
내려서니 발아래로 3,000m급의 고봉 들이 만들어 내는 타이루거 협곡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이게 모두 대리석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대리석 사이사이에 석회석이 높은 압력을 받아 눌려있는 모습을 들어 내보이는데 크고 깊고 장쾌하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옥빛이다.
신은 위대하다. 이 말 밖에는 엄청난 규모의 대리석 협곡 앞에 할 말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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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벽에 가까운 대리석 암벽에는 침식작용으로 생긴 동그란 구멍들이 뚫려있었는데 그 속으로 작은 새가 들락거리는데 제비가 그
속에 살고 있어 燕子口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반드시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몸으로 체험해 보아야겠다. 걷다 보면 더 이상 길을 낼 수 없는 곳에선 돌산을 뚫어 가며 힘겹게 길은 이어지고 있다. 오랜 세월 둥글게 침식된 모습의 협곡을 둘러본 뒤 이 도로를 만들다가 희생된 212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둔 사당으로 간다. 무너지면 다시 세워 세
번째 세워졌다는 장춘사를 먼발치에서 보고 발길을 돌린다. 2시간 20분을 쉬지 않고 달려 대만에서 제일 큰 스린 야시장에 도착
했다.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뒤섞여 사람 바다다. 책에서 무덥고 여름이 긴 이 나라에서는 더위를 피해 사람들이 저녁 활동이 많아서 야시장이 발달하였다고 하더니 정말 사람이 많다. 우측은 쇼핑거리 왼쪽으론 오락 등 즐길 거리 거리가 차지하고
지하와 골목은 각기 독특한 맛을 지닌 먹거리들로 구획화되어 있
다.이름난 감자 치즈를 파는 왕자 치즈 가게 앞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엄두를 못 내고 나오는 길에 맛보기로 하고 시장으로 들어선다. 들어서면서부터 한눈을 팔다 보면 사람에게 부딪혀 가는 길이 지체된다. 너무 복잡하다. 길게 줄이 늘어선 가게는 영락없이 이름난 맛집이다. 이거 한번 먹어보고 싶다면서 새아기가 샀는데 두부를 식초에 절였는지 발효 향이 진해서 모두가 입에 넣었다간 삼키지 못하고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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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을까?” 하고 반쪽이 말하는데 옆에서 누가
“이 집 음식 먹을 만해요.” 하는 소리가 들려 둘러보았더니 우리처럼 가족이 함께 온 한국인이었다. 어떤 음식이 맛있었는지 확인한 다음에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을 먹는다. 먹을 만하다. 저녁을 먹고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시장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벌써 12시간째 이러고 있으려니 피곤하다. 11시 아들 부부는 야시장에 남 겨두고 둘만 먼저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7월 9일 목 넷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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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을 앞두고 아침부터 보슬비는 오락가락하나 바람 한 점 없는고요다. 예류 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편(예스진지)을 간다.
보슬비가 내려 대지가 촉촉이 젖으면서 낮은 구름이 대지를 포근하게 감싼 異國의 거리를 질주하며 느끼는 설레는 기분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거침없이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 해변을 따라가며 수 천만년 침식과풍화작용을 비롯한 지각운동과 햇볕 등, 자연이 만들어 낸 갖가지형태의 기암괴석을 품고 있는 예류 지질공원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우릴 괴롭힌다.
첫 번째 만나는 것이 파도에 섞여 밀려온 모래와 돌이 움푹하게 패인 암석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 오랜 세월 서로 부딪히고 깎아
내면서 만들어진 Pot holl이다. 우리나라 불영 계곡이나 거창계곡 등지에서 본 것보다 크기는 작았으나 섬세하다.
촛대바위는 둥근 원뿔 모형의 돌 위에 초를 꽂을 수 있는 침이 도드록으로 올라 온 모습이,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 볼 때 애국가 영상에등장하는 우리나라 촛대바위보다 더 촛대를 닮았다. 태풍의 영향으로 파도가 심하여 바다 쪽 길을 막는 바람에 바다 가까인 갈 수 없어 전망대를 오른다. 전망대에 오르니 바닷바람을 한없이 먹고 자란 건강한 야생화가 금방이라도 후드득 꽃물을 떨어뜨릴 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 불어오는 바람에 갖은 교태로 나를 꼬드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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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리던 용암이 굳고 오랜 세월 동안 풍화 침식되면서 만들어 놀은 자연의 힘을 확인하고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거대한 바위에구멍이 숭숭 나 있고 버섯모양의 암석들과 머리를 고추 세우고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들 것만 같은 살모사 모습을 닮은 용암, 꽃잎 모양의 성게 화석을 보고 여왕의 머리 바위 앞에 줄을 섰다. 차례에 따라 사진을 찍는데 안내자가 상주하며 여왕 머리 바위를 보호하고있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끝만 겨우 달려있다. 이 공원의 상징인 여왕 바위는 붕괴 이후를 대비해 모형을 만들어세워두고 있다. 선녀가 나들이와 인어들과 함께 바닷물에 자맥질하며 아름다운 주변 경치에 넋 놓고 놀다가 하늘의 부름에 서두르다가 깜박하고 놓고 간 선녀의 슬리퍼 한 짝이 오랜 비바람과 파도에 깎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오랜 세월을 오매불망 주인을 기다리며 하늘만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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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판 모양으로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검은 두부 암을 보면서 생각한다. 흐르는 세월에 몸을 맡긴 체 수 천만년 물과 바람과 모래에 씻기다가 미세하게 쌓고 빗고 깎아내면서, 부드럽고 섬세하게 흘러내리는 선의 아름다움으로 빚은 자연이 만든 예술이자 걸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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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흠뻑 젖어 지친 몸으로 주차장에 도착하니 운전기사가 기다란물티슈를 얼음에 재워두었다가 준다. 얼굴과 팔을 닦으니 정말 시원하다. 닦은 물티슈를 손에 들고 있으니 펴서 목에 걸어준다. 목에두르라는 뜻이다. 살 것 같다. 거기다 덤으로 시원한 밀크티를 한 캔씩 줘서 고맙다. 서비스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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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산골 마을버스편로 간다. 자그마한 산골 기차역이다. 작은마을 가운데를 기찻길이 가르고 지나가는데 철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론 풍등 가게와 기념품 가게들이 촘촘히 늘어섰고, 철길 한가운 데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풍등을 날린다. 날리다가 기차가오면 잠시 피했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다시 선로 안으로 우르르 몰쳐 나와 풍등을 날린다.
내세울 것도 보여줄 것도 하나 없는 한적한 산골 마을에 누군가의 앞선 생각하나가 이렇게 많은 세계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아이디어의 힘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작던, 크던 소원이 있고, 그 소원을이루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자 꿈이고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겠는가? 그 욕망을 최대한 하늘 가까이 띄워 보내면, 그 소원을 더 잘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수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있나보다.
소원 등을 날리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제각각이다. 장난기 가득한얼굴로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못 진지하며 엄숙한 저마다
의 종교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날리는 사람, 등 각자 꿈이다르듯 각기 다른 모습이다. 우리 가족은 다른 사람들에게 또 어떤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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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가게에서 네 가지 색깔의 종이를 선택하고 우리의 소원이 저멀리 하늘나라까지 전해지고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졌으면 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각 면에 소원을 적는다. 첫 면엔 ‘민기 할머니, 병환을 이겨낼 힘을 주세요. 힘, 힘, 힘주세요.’ 라 적고 한족엔 ‘내 여자 3급 공무원, 내 편 삼성디스플레이 임원 PS짱, 다른 한 면은 반쪽이 일일신, 우일신과 울 아들 집 사주고 싶다. 울 딸네 빌딩 올려주고 싶다.’라 적고 남은 면은 새아기가 ‘우리 부부 오래오래 깨소금질’이라 적은 다음 자녀 셋과 저들 부부를 그린다. 삽화를 그리는 솜씨가 제법이라 곁에서 지켜보던 중국인 아주머니가 엄지를 치켜세우고 만면에 웃음을 띠더니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우리가 꾸민 풍등 사진을 찍는다. 넷이 한 귀퉁이씩 잡고 불을 붙여 날린다. 우리의소원이 기류를 타고 두둥실 창공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른다. 우리 마음도 따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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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이 날아간 곳을 향해 철길을 따라 걷는다. 50년 전 기차 통학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외줄 타듯 철길 위를 걸으며 마주 보고 서서 균형 잡기 놀이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구름다리에 도착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황금 폭포를 지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포로의 슬픔과 아픔이 깃든 숲속 마을 진과스 황금박물관에 도착했다. 1층엔 당시 금을 채굴하고 제련하던 과정을 모형으로 만들어 재현했고, 2층엔 각종 금, 세공품들과 함께 시세에 따라 매일 값이 매겨진다는 중앙에 전시된 220Kg짜리 순금 덩어리가 압권이다. 황금을 만져보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려는 듯 만지고 잡아 볼 수 있게 양쪽으로 한 손이 겨우 들어갈 만큼 둥글게 구멍이 뚫려있다.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순금 덩어리를 만지고 안아본다. 금덩어리를 만지고선 사람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순금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image
이 지배하면서부터 죄수들을 이곳 외진 산속으로 끌고 와 철로건설 공사를 해 나가던 중, 금맥의 발견으로 한적했던 산골 마을이
금광 촌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면서, 많은 일본 사람이 찾아와 거주하게 되면서 들어섰던 일본식 집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억압당한 치욕의 현장을 대만 사람들은 발상의 전환으로 관광지로 개발해 세계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진 황태자 관 입구에 어쩌다 한번 초등학교때 들고 다녔던 것과 똑같은 기름종이 우산이 걸려 있다. 태자 관을둘러보다가 정원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절처럼 생긴 화려한 건물과 함께 거대한 조각상이 보이는데 진과스 마을의 수호신 관우상이다.
이곳의 명물 광부 도시락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으나, 다 팔리는 바람에 남들이 먹는 모습만 구경하고 택시에 올랐는데 잠시 달리더니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다면서 공동묘지 앞 주차장에 차를 멈추곤우리가 찾아갈 길을 지도를 가지고 또박또박 설명해 준다.
기사가 설명한 대로 10분쯤 가방을 끌고 내려왔더니 지우펀 입구좁은 골목길이 나타났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양옆으론 기념품
과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며 길게 이어지며 늘어섰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좁은 골목 안은 관광객들
로 넘친다. 예약해 둔 잠자리 산해관을 찾아가는 길은 울퉁불퉁 시멘트로 만든 사각형의 보도블록이 덮여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지는데, 끌고 있는 캐리어가 삐뚤삐뚤 춤을 춘다.
돌아가는 길의 끝머리에 있는 산해관 카페에서 열쇠를 받아 들고 산해관을 찾아가 방을 안내받는다.
19시 30분이면 청소차가 냄새를 심하게 풍기면서 오기 때문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서둘러 나와 갖가지 만두로 배를 채운뒤 불 밝힌 홍등가를 걷는다.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홍시처럼 잘 익은 홍등이 이국
이고 화려하다. 두 사람이 어깨를 붙이고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한골목 계단을 내려가는데 계단이 미어질 듯 밀고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내려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사진을 찍느라 중간중간 멈춰서는 바람에 움직임이 없다.비켜서서 한참 동안 기다린 끝에 겨우 한 계단 내려선다. 서로 어깰 부딪혀 가며 몸은 이미 상대방에 내맡긴 체 느긋하게 즐기고 섰다. 누구 하나 찌푸리는 사람 없이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가게 처마 끝 일본에서부터 거리로 이어지는 빨갛고 동그란 홍등 빛이 비바람에 흔들리며 반사되어 짙은 어둠 속으로 빗물을 따라 흘러내리는 모습이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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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붉은색과 폭죽이 악귀를 막아준다더니, 이렇게 집집마다 처마 끝에 붉은 등을 달아두고, 악귀로부터 집안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행위를 이렇게 볼거리로 만들고, 산골의 외진 이 작은 마을까지 세계의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이들의 상술이 놀랍다. 마주치는 관광객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이렇게 홍등가의 밤을즐기다가 아들 부부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 위해 서로 가고 싶은 곳을 따로 돌기로 하고 아들 부부는 아래쪽으로 가고 우린 숙소 쪽을향해 올라오면서, 기념품 가게를 차례차례 들락거리며 구경한다. 대패로 깎아주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곤 주인아주머니와 반쪽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아들 부부는 민기와 채연에게 줄 도자기로 만든 예쁘장한 오카리나 를 선물로 사 들고 10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왔다.
7월 10일 다섯째 날
바람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찍 눈을 뜬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더니 태풍에 앞서 태풍을 따라온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예보된 태풍이 밤사이 지나갔는지 바람이 잦아들고 있다. 방으로 들어와 다시 자리에 눕는다. 아직 이른 시각이다. 7시에 일어나 미닫이 창문을 열어젖혔더니 구름바다가 두 눈 가득들어와 앉는다. 깊은 산속 방 안에 앉아 코끝에 바다를 두고 즐긴다. 사이사이 검은빛 물결이 잔잔하다. 이런 아름다운 정경은 산해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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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볼 수 있는 특권이다.
다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새아기가 어제 택시 기사가 길을 일러줄 때 몇 번씩 되물으면서 자세히 안내받더니 길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제 올라온 길로 가지 않고 중간쯤에서 홍등가의 긴계단을 끝까지 내려오니 지우펀 파출소 건너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쉽고 빠르게 루이팡 역으로 올 수 있었다.20분의 시간 여유가 있어 루이팡 역 앞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일본 식민지 시절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되었다가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는 평시선이다. 9시 45분 발 타이페이행 기차에 올랐다. 자리가 많이 남아있어 순 방향의 자리를 골라서 앉는 여유까지 부렸다. 내부가 상쾌하고 깔끔하다. 의자가 배치된 모습과 색깔들이 흡사 우리나라 지하철 같아 친밀감이 든다. 50분 뒤 정확한 시각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융캉길에 있는 이름난 맛집을 찾아가 우육면과 제육볶음으로 점심을 먹는데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다. 후식으로 망과 황제에서 빙설을 먹는다. 우산을 쓴 채 융캉 공원길을 산책한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붐빈다는 융캉 길이 내리는 비로 인해 오늘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관관객뿐이다.
고궁 박물관을 가는 시내버스에 오른다. 타이페이 시내를 가로지르는 담수 강을 건너간다. 태풍이 몰고 온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우산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겨우 고궁 박물관에 도착했으나, 태풍으로 휴관이다. 난감하다. 태풍이 오면 협곡을 갈 수 없다고 해서 무리하게 일정을 바꿔 가면서까지 노력했는데 방법이 없다. 참 아쉽다. 국부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중심가로 나왔으나, 문 닫은 가게들이 많다. 태풍이 잦은 나라이다 보니 태풍에 대비하는 자세도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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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 공연 시각에 맞춰 서유기 공연을 보러 갔다. 관람객 대부분이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다 화장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우리도 거기에 함께 참여하며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옛날 학교 종처럼 생긴 종을 무대 앞으로 들고나와 ‘땡’하는 종소리와 함께 경극이 시작된다.
삼장법사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서역으로 경전을 찾아가는 길에 요괴의 술수에 넘어간 삼장법사를 제자들이 구출해 내는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연 사이사이 연기자들의 멋진 연기에박수와 환호를 보내면서 극 속으로 빠져든다. 무대 양쪽에 놓여있는 화면에서는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우리말로 된 자막이 뜨고 있어 공연을 보는 불편함은 없다. 다만 맞춤법이 틀린 자막으로 인해속은 상했다, 현관 입구에는 출연진들이 모두 나와 관람객 한 사람한 사람과 기념사진을 찍는 뒤풀이까지 해주고 있다.
추억은 쌓인다고 했던가?
뜻깊었던 이번 추억을 가슴에 쌓아두었다가 먼 훗날 그리움이 찾아오면 한 폭 한 폭 펼치면서 즐거운 추억을 끌어 올리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7월 11일 토. 돌아가는 날
추억만들기 마지막 날이다. 어젠 태풍이 몰고 온 강력한 비바람이 나뭇가지들을 부러뜨리고, 길 위의 행인을 날려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기세로 몰아쳤는데, 밤사이 태풍은 흔적만 남긴 채 떠나고 대지엔 정적이 깃든다. 개으름을 피다 일행으로부터 떨어져나와 본분을 잊은 체, 한량처럼 이곳저곳 기웃대는 몇 개의 작고 검은 구름 덩이 사이로 하늘은 맑은 햇살을 내려보내고 있다. 태풍의 일생도 사람의 일생과 별반 다를 게없나 보다.
9시 10분 호텔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행천궁으로 와서 공항 가는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며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은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제 힘을 주십사 하는 소원 등을 띄웠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가시다니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세요. 시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시댁을 은이가 어떻게 꾸려갈지 걱정이 앞선다. 아들도 서울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문상을 오기로 했다.
2014. 5. 7.
딸 보배 가족과 함께한
추억 쌓기
작년부터 휴양림에 함께 가자는 딸 보배의 청을 뿌리치다가 혁이내외와 함께 지리산 둘레 길을 걷고 나니 은이가 눈에 밟혀 함께 떠나기로 한 여행이다. 11시 10분 은이 가족과 함께 순창 회문산 자연휴양림을 향해 출발했다.
88고속도로를 달려 합천과 거창을 목적지 회문산 자연 휴양림엔 3시 10분경에 도착했다. 숙소인 ‘산벗나무’를 찾아 짐을 푼 뒤 난 등산코스를 선택하고 은이 가족은 산책로를 선택해 걷는다. 안내표지를 따라간 길에는 사색의 숲도 있고, 산 전체가 활엽수들
로 이루어져 있었다. 야영장을 지나 활엽수림을 따라 헬기장까지 올라갔으나, 시간이 늦어 정상 정복은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 내려
왔다.
다음 날 아침어제 못 오른 정상을 오르기 위해 출발한다. 어제저녁 내린 비로 공기가 산뜻하고 맑은데, 땅까지 검은빛을 띠며 촉촉이 젖어 있어 즐겁고 상쾌한 기분으로 숲속으로 들어선다. 숲속 가족들은 어제저녁 내린 비로 활짝 웃는 얼굴로 새 삶을 준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무들은 새로운 하늘의 기운을 받아 더욱 짙고 푸른 녹색으로 잎을 넓히고 키를 살찌우려 발돋움하고, 거미는 밤새 잡힌 먹이가 비에 의해 쓸려가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피면서 이곳저곳 비바람으로
상처 난 거미줄을 손질하고 있다.
‘딱 딱딱’, ‘딱 딱딱’,하는 소리가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뜨린다. 무슨
소리지? 귀를 기울이고 잔뜩 긴장해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지나가는 나를 반쪽이 돌려세운다. 되돌아오라고 손짓한다. 반쪽이 가
리키는 손끝에 텃새인 쇠딱따구리 한 마리가 상수리나무 등을 부지런히 부리로 쪼아대고 있다. ‘딱 딱딱’, ‘딱 딱딱’. 나무껍질이 벗겨진고 속살이 하얗게 드러났는데도 멈추지 않고 열심히 쪼고 있다. 나는 망원렌즈 카메라가 없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을 찍고 주변 나무에 앉아 있는 자그마한 이름 모를 산새 사진도 이런저런 구도를 잡아가며 몇 장을 남긴다.
정상 오르는 길에 회문산의 명물 여근목과 검은빛으로 꽃을 피운조릿대와 천근 원근 굴을 지나 해발 837m의 정상에 올랐다.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정경을 자욱한 물안개 속에 꼭꼭 숨겼다가, 맘이 변하면 그때마다 순간순간 나신을 남김없이 드러냈다간,이내 안개 속으로 불러들여 간다. 이런 순간의 즐거움도 환희도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딸이 어렵게 예약해 둔 식당엔 예약 시각에 맞춰 도착했다.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서니 이미 밥상이 차려져 있다. 자리에 앉자 밥과 국, 된장찌개, 돼지고기볶음이 나온다. 80여 가지의 반찬으로 상차림 된 전통 한정식으로 한 상에 12만 원이라는 음식은 대부분 이 장아찌다. 따뜻하게 조리되어 나온 음식은 북엇국 포함 네 가지다.
음식을 조리하고 나르는 종업원은 족히 여든은 된 듯한 할머니 두분이다. 그중 한 분은 허리가 기역 자로 꼬부라지셨다. 식당의 오랜 경륜을 말해주듯 물때가 묻어 누렇게 색이 바랜 플라스틱 물통, 허접한 접시, 불친절 80가지라는 찬 외에는 맛집으로 추천할 만한 이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순창군립공원인 강천산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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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세 시간이 걸린다는 왕자봉으로 가기 위해 병풍폭포 앞에서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병풍폭포에서 1.2Km 지점에 있는 깃대봉 삼거리까지는 길은 가팔랐으나, 주로 활엽수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늘이 두텁게 내려앉았다.
깃대봉 삼거리를 지나 왕자봉에 이르는 1.6Km 구간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어 지루한 줄 모르고 걸을 수 있었다. 정상에 올랐으나 정상이 정상 같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구름사다리가 있는 쪽으로 하산 길을 선택했다. 내려오는 길은 군데군데 경사가 급하고 돌이 많아 고생하며 내려왔다. 폰이 울린다.
“아빠 어디세요?”
“음, 구름다리 입구”
“우리 그 아래 있는데 안 보이는데요.”
“어디, 어디,”
“아, 보인다. 사진 찍어라.”
“옆으로 아니 더 옆으로 됐어요.”
“거기서 잠시 기다리세요. 저희가 올라갈게요.”
“아이들 데리고 여길 어떻게”
“이쪽 옆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요. 멀지 않은 것 같아요.”
잠시 뒤 민기와 손을 잡고 구름다리를 왕복했다. 다른 가족들은 무서워서 건너가지 못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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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한다.
“난, 안 무서운데” 하고 민기가 말한다.
“민기는 목마는 무서운데 그보다 더 높은 구름다리는 안 무서운가
봐.”
“예, 구름다리는 안 무서워요.”
“부모가 못 건너면 안 되지 무서워도 참고 건너갔다가 올 거야.”
하면서 은이 부부가 무서움을 무릅쓰고 건너갔다 돌아온다. 역시 자식 앞에서 엄마는 강했다. 내려오는 길에 민기를 데리고 구장군폭포 쪽을 거슬러 오른다. 깊은 계곡과 맑은 물, 120m 높이의 두 줄기 폭포와 구름다리, 단풍 나무가 하늘을 뒤덮은 산책로와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답게 펼쳐진다.
잘 가꿔진 주변 환경과 아름답게 어우러진 구장군 폭포수 앞 화단으로 가고 있는데 하늘은 태양을 통해 햇살을 소낙비처럼 내려 민
기를 감싸안으며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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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하고 있다. 하늘에 감사하며 걷는다.
약 2Km에 이르는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구장군 폭포길 산책로는 마사토를 깐 후 매끈하고 단단하게 다져놓아 찰떡을 굴려도
흙 한 점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고 깨끗하게 다듬어졌고, 단풍 나무가 작고 귀여운 잎들로 산책로의 하늘을 덮었다. 간간이 벌어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빠른 속도로 내려오면서,산책로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화려하게 물들 가을 단풍의 모습이머릿속에 그려진다. 자연과 한 몸이 된 민기는 아예 폭포수 앞 흐르는 물속으로 들어가 신발을 신은 채 첨벙거리며 자연과 한몸이 되어 놀고 있다. 자연에취해 자연에 스며드는 민기의 순수한 모습이 부럽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세상일 모두 잊고외 손주와 함께 무릉도원을 거닐었다.
5. 9 금
상림 숲
아침 일찍 보배 부부를 회문봉으로 보내고 민기, 채연이와 함께 아침 시간을 보냈다. 10시쯤 보배 부부가 돌아왔다.
“엄마, 아빠 고마워요.”
“뭘”
“산을 오를 수 있게 아이들을 맡아주셔서요.”
“함께 오니 좋은 점도 있네.”
이 산은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 위주 의 활엽수들로 덮여있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흔한 소나무가 없다,
역사적으론 동학군들의 활동무대였고, 구한말엔 의병 활동으로 치열한 항일투쟁의 현장이었고, 한국전쟁 땐 남부군의 사령부터로
700여 명의 빨치산이 주둔했던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가 이 골짝 저골짜기에 깃들여 있는 회문산에서의 추억이 역사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림 숲으로 향한다.
잠든 채연이를 김 서방이 등에 업고 녹음 짙은 상림 숲길을 걷는다. 빨갛게 핀 양귀비꽃을 배경으로 추억을 만든다. 이제 막 싹을 틔우려는 연밭 앞에 서서 만개할 백련이 모습을 떠올리며 연밭과 연리목을 지난다.
몇 번째 오는 곳이지만 오늘은 또 다른 감회가 새록새록 돋아난다. 아마 보배 가족과 함께한 여행길이라 그런가 보다. 잠에서 깨어난 채연이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달아난다.
“채연아, 안돼. 양말이라도 신고 걸어야지.”
하면서 따라가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잡는 손을 뿌리치고 앙증맞은 걸음으로 뒤뚱뒤뚱 달아난다. 넘어질까 두려워 잡길 포기한다. 신발 신기기도 포기한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간다. 무엇이 그렇게 신나는지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져서 해맑은 웃음으로 깔깔거리며 내 달린다. 채연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높고 맑은 오월의하늘 속으로 번져간다. 어린아이도 자유가 저렇게 좋은가보다. 겨우 신발을 벗었을 뿐인데….신났다. 재밌나 보다. 한 폭의 그림이다. 점심을 먹으려 안의 한옥 전통 갈빗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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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라 손님이 많지 않아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노는 것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밥상 앞에 붙어있는 부름 종을 마구 눌러댄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이 눌러서요. 앞으로 여기서 누른 종소리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채연인 밥을 먹다 말고 뒷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간다. 아빠한테 두번 잡혀 오며. 떼쓰더니 이젠 나가서 아예 문을 닫아버린다. 떨어질까? 걱정되어 먼저 먹은 내가 데리고 나왔다. 툇마루에서 오르락내리락 놀고 있다. 잠시 뒤 반쪽이 비눗방울 놀이기구를 가지고 나와한번 날리곤 들어가서 밥 한술을 먹고 다시 비눗방울을 만들어 주며 채연에게 밥을 먹인다. 밥을 먹이려고 하는 줄 알아채지 못하고놀이하듯 방을 드나들며 깔깔대며 밥을 받아먹는다.
“아빠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그래, 많이 먹었니?”
“예, 배부르게 실컷 먹었어요.”
“아빠, 고마워요.”
하면서 딸 부부가 배를 두드리며 배부른 시늉을 한다.
“그래, 고맙다. 맛있게 먹어줘서.”
이렇게 보배 가족과 함께한 2박 3일이 꿈결같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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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보배 가족과 함께한
추억 쌓기
초 한전 생활 연수원에 도착했다. 연수원은 넓고 환경이 쾌적하다. 숙소를 배정받고 방 열쇠와 사우나 열쇠, 그리고 4일간 가족들이 사 용한 식권을 받아 숙소로 올라와 여장을 풀었다. 숙소는 2층 온돌방 으로 방 2개와 거실 그리고 목욕탕과 자그마한 베란다가 딸린 아담하고 쓸모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냉장고 안엔 한전 노조에서 보낸과일 한 바구니가 ‘가족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라는글귀가 적힌카드와 함께 예쁘게 포장되어 들어있고, 신탁엔 4일간 먹을 커피와찬장엔 그릇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다.
사우나는 물이 맑고 깨끗하며 사람도 많지 않고 환경이 좋아 민기가 다른 탕의 물을 바가지로 옮겨 담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해도별문제는 없었다.
바다열차
서로의 관람 희망에 따라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연수원에서 내어준 버스로 1시간 20분을 달려 정동진역에서 바다
열차를 탔다. 원래 강릉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인데 강릉역 공사 관계로 정동진역에서 출발했다. 기다란 통유리창 앞에 바다 쪽을 향해 의자가 가 길게 두 줄로 놓여 있는데 자리가 앞줄이라 바다 경치를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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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동해의 넓고 푸른 바다가 가슴으로 달려든다. 잠시 철이가 되어 은하철도 999를 타고 바닷속으로, 우주공간으로 달리고 있다는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객차 안에는 사진 찍는 코너와 가족들을 위한 원탁형의 가족석, 연인석, 프러포즈실, 등 다양한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고 객실 안과연결 통로가 아름답게 디자인되었다. 각 객실을, 모니터를 통해 연결해 진행자와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자신들의 사연과 신청 음악을다른 객차 안 승객들과도 함께 들으면서 어울리는 시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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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맑은 바닷물과 잘 어울리는 100곳 중 한 곳이며, 애국가 1절첫 배경 일출 화면과 함께 등장하는 촛대바위를 찾아가는 추암 해변은 관광단지를 조성하느라 어수선하다.
울산바위
연수원에서 내어준 버스로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에 내려 울산 바위로 향한다.평일이고 겨울철이라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눈에 띌 뿐 신흥사를지나 흔들바위까지 가는 길은 자연의 소리를 즐기면서 호젓하게 걸을 수 있었다. 외설악 신흥사를 돌자, 왼쪽으로 설악의 서북 계곡이 나타났다. 서북 계곡을 끼고 오르다 보면 계조암 비켜 옆으로 두 남매의 슬픈 전설이 깃든 흔들바위가 외롭게 서 있다. 둘이 붙어 서서 있는 힘을 다해 밀어보았으나, 겨울 추위에 얼어붙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멀리 대청봉을 넘어 하얀 잔설 위를 스치며 달려 내려오는 매섭고찬 바람의 위력이 대단하다. 모자 위로 방한복의 모자를 덧쓰고, 목도리와 털장갑을 꼈는데도 콧등을 스치는 한기는 고스란히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흔들바위부터 울산바위까지는 철 계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예전에바위 사이로 올라가던 좁은 계단이 아니라 두 사람이 충분히 다닐수 있을 정도의 철 계단이 정상까지 새로운 길로 놓여있어서 오르내리기에 매우 편리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날려 갈 것만 같아 가장 자리 쪽으로 붙어 철 계단 손잡이를 꼭 잡고 걷기도 했다. 울산바위 못미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외설악과 멀리 대청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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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엔 힘이 오를 대로 오른 북풍이 매몰차게 몰아치며 얼굴을 때리고 옷깃 사이로 파고든다.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한기로 잠시 서있기도 힘겹다. 비좁은 정상에 커피 판매대까지 들어서고 보니 겨우 몇 사람만 들어차도 움직이기조차 힘이 든다. 바로 돌아서 하산한다.
신흥사를 지나 거의 다 내려왔는데 얼어붙은 잔설이 한 평쯤 붙은길 끝머리에서 반쪽이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더니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다. 다가가 일으켜 세웠더니 아이젠을 주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면서 일어선다. 괜찮아야 할 텐데......점심을 먹기 위해 설악동 입구에 있는 Kensington Star Hotel 9층으로 올라가 권금성이 바라보이는 쪽으로 희고 깨끗한 식탁보가 깔린 2인석 식탁에 자릴 잡았다. 벽엔 호텔 이름에 걸맞게 Star의 Golden Disk와 Original 음반들이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비빔밥 주문 후 30분을 기다려 음식이 나왔는데, 전문가가 만든 음식이라 확실히 눈요기에서부터 차이가 느껴진다.고급스러워 보이는 그릇이 정갈하고 깔끔하다. 눈을 즐겁게 해주면서도 충분한 양의 도라지, 더덕, 버섯과 각종 채소가 듬뿍 들어가 맛있다. 나물무침은 담백해 나물 본연의 맛이 살아나고, 무채를 곁들인 바닷말 무침은 바다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입속 가득 바다 향과 함께 바다가 들어와 앉았다.
헤어지기가 아쉬운지 돌아서지 않고 중국 아가씨와 서로 손을 흔들며인사하고 섰고, 아가씨 역시 그런 채연의 모습이 귀여운지 쉬 돌아서지 않아 이별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민기야, 엄마가 자랑스럽지?”
“예, 외할아버지 중국 사람이 뭐라고 했어요?”
“나는 중국말 못하는데”
“외할아버지 어른이잖아요.”
“어른이라고 다 할 줄 아는 것이 아니고, 엄마처럼 중국말을 배우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란다. 민기도 엄마처럼 공부
열심히 해야겠지?”
“예”
오늘 본 자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이 민기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