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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마하연론 제8권釋摩訶衍論 卷第八
용수 지음
벌제마다 한역
이인혜 번역龍樹菩薩造 姚秦三藏筏提摩多奉 詔譯
【論】 이제까시 해석분(解釋分)을 설해 마쳤다.
다음으로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을 설하겠다.
【釋】 이 수행신심분은 일곱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교화의 방법과 교화의 대상을 짝 지워 보는 문[能治所治契當門],
둘째는 신심의 종류를 구분하는 문[信心品類分剖門],
셋째는 수행의 선교방편을 제시하는 문[修行方便善巧門],
넷째는 마의 양상을 자세히 해석하고 퇴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문[廣釋魔事對治門],
다섯째는 삼매의 공덕을 찬탄하는 문[讚歎三昧功德門],
여섯째는 양쪽 수레바퀴 같은 두 가지 수행을 동시에 갖추느냐
빼먹느냐에 따른 이익과 손길을 밝히는 문[兩輪具闕益損門],
일곱째는 열등한 무리들에게 수승한 곳으로 향상하여 물러남이 없기를 권하는 문[勸劣向勝不退門]이다.
이상이 수행신실분의 일곱 가지 문이다.
능치소치계당문은 어떤 내용을 갖는가?
【論】 여기서는 정정취(正定聚)에 들지 못한 중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수행신심분을 설한다.
【釋】 ‘여기서는 정정취에 들지 못한 중생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 구절은 교회의 대상[所治]에 해당한다.
이른바 교화될 바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행신심분을 설한다’고 한 구절은 교화의 방법[能治]에
해당한다. 교화의 수단이 되는 교법을 뜻하기 때문이다. 교화될 바의 경계에는 어느 만큼이 해당하는가?
두 가지 취에 속하는 중생을 다 거두어들여 교화함을 말한다.
무엇이 두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사정취중생(邪定聚衆生)이고
둘째는 부정취중생(不定聚衆生)이다.
이것이 교화될 바 경계가 되는 두 가지 취의 중생이다. 어째서 그런가?
이 두 가지 중생은 다 아직 정정취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화의 방법과 교화의 대상을 짝지어 본다[契當]고 한 것은 어떤 내용인가?
두 가지 중생에게는 각기 맞는 교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어떤 중생에게 어떤 법문이 맞는다는 말인가?
사정취중생을 위해서는 신심문(信心門)을 설하고,
부정취중생을 위해서는 수행문(修行門)을 설한다. 어째서 그런가?
정진해 들어가는 순서가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즉, 신심을 성취하지 못한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심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며,
이미 신위에 들어간 자는 바로 수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두 가지 중생에게 공통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능치소치계당문을 설하였다.
다음으로 신심품류분부문을 설하겠다.
【論】 어떤 것이 신심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신심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법을 즐겨 사념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부처님에게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항상 가까이 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므로 선근을 일으켜
일체지(一切智)를 구하고자 발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세 번째는 법에는 커다란 이익이 있다는 점을 믿는 것으로서,
갖가지 바라밀을 수행할 것을 항상 염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스님은 바르게 수행해서 자리와 이타를 행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니, 모든 보살의 무리를 가까이 하기를 항상 즐겨하여 여실행
공부하기를 구하기 때문이다.
【釋】 위 본론은 세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신심의 종류를 직접적으로 묻는 문[直問信心品類門]이고,
둘째는 수행의 종류를 직접적으로 묻는 문[直問修行品類門]이고,
셋째는 간략히 답함으로써 신신을 밝히는 문[略答顯示信心門]이다. 이것이 세 가지다.
직문신심품류문은 신심의 양에 대해 전체적으로 묻는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어떤 것이 신실이며’라고 하였다. 직문수행품류문은 수행의 양에
대해 전체적으로 묻는다다는 뜻에서 시설한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세 번째 문은 다시 세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전체적으로 답을 내리는 문[總答門]이고,
둘째는 전체적인 내용을 묻는 문[總問門]이고,
셋째는 자세히 답하는 문[廣答門]이다.
총답문이란 설한 내용을 전체적으로 답한다는 뜻에서 시설된 것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신심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고 하였다.
총문문은 설하는 내용 전체를 묻는다는 뜻에서 시설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무엇이 네 가지인가?’라고 하였다.
세 번째 문은 다시 네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근관을 믿어 마음을 평등하게 하는 문[信本令心平等門]이고,
둘째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에게 있는 공덕을 기꺼워하는 문[信佛欣有功德門],
셋째는 법을 믿어 정진하고 수행해 나가는 문 [信法精進修行門]이고,
넷째는 스님을 믿어 마음에 다툼이 없게 하는 문[信僧令心無諍門]이다. 이상 네 가지다.
신본령심평등문은 자신의 근본이 되는 진여의 이법(理法)을 즐겨 믿음으로써 무명의 힘에 의해 갖가지로
차별된 모든 마음들을 하나로 모아 평등하게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첫 번째는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법을 즐겨 사념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신불흔유공덕문은 무상의 대각이신 여래세존을 즐겨 믿어서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기꺼이 구하고자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두 번째는 부처님께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항상 가까이 하여 공양하고 공경함으로써 선근을 일으켜 일체지를 구하고자 발원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신법 정진수행문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자신의 은혜로운 아비가 되고 자신의 은혜로운 어머니가 되고 자신의 은혜로운 스승이 된다는 사실을 즐겨 믿으며, 그것은 바꾸거나 무너뜨릴 수 없고 생하거나 멸하게 할 수도 없으며, 허공이나 금강처럼 움직이지 않는 법칙이라서 불가사의한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하고 수승한 이익이 된다는 점을 즐겨 믿음으로써 어느 곳이나 어느 때나 항상 전전(轉轉)하는 가운데 도를 얻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행[助道品]을 닦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세 번째는 법에는 커다란 이익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갖가지 바라밀을 수행할 것을 항상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신승렬심무쟁문은 셀 수 없이 많은 모든 스님들과 보살들이 두 가지 뛰어난 행을 사신의 내면적인 덕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즐겨 믿음으로써 멀거나 가깝거나를 막론하고 듣는 대로 보는 대로 사유한 대로 스님이 거처하는 곳으로 가서 갖가지 깊은 법과 갖가지 깊은 경과 갖가지 깊은 논과 갖가지 깊은 이치와 갖가지 묘한 일을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그런 일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네 번째는 스님은 바르게 수행해서 자리와 이타를 행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니,
모든 보살의 무리를 가까이 하기를 항상 즐겨하여 여실행 공부하기를 구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제까지 신심품류분부문을 설하였고,
다음으로 (세 번째) 수행방편선교문을 설하겠다.
【論】 수행에는 다섯 가지 문이 있으니
이 문을 닦아야 신심을 성취할 수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베푸는 것[施門],
둘째는 계를 지키는 것[戒門],
셋째는 참는 것[忍門],
넷째는 정진하는 것[進門],
다섯째는 지와 관을 닦는 것[止觀門]이다.
시문(施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와서 구하거나 찾는 중생을 보면 가지고 있는 재물을 힘닿는 대로 내줌으로써 자신의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남을 기쁘게 하며, 횡액이나 곤란에 빠져 두려움과 위급함을 느끼는 중생을 보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대로 두려움을 없애 준다. 와서 법을 구하는 중생이 있으면 자신이 능력껏 이해한 대로 방편을 써서 그를 위해 설명을 하되, 명리나 남의 공경을 탐해서는 안 되고 오직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할 것 만을 생각하여 이 공덕을 깨달음으로 회향해야 한다.
계문(戒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살생[煞]과 도둑질[盜]과 간음[婬]을 하지 않고
이간질[兩舌]이 나 욕설[惡口]이나 헛된 말[妄言]이나
꾸미는 말[綺語]을 하지 않음으로써
탐욕[貪]ㆍ질투[嫉]ㆍ속임수[欺]ㆍ거짓말[詐]ㆍ아첨 [諂]ㆍ
왜곡[曲]ㆍ성냄[瞋恚]ㆍ그릇된 견해[邪見]를 멀리 떠난다.
게다가 출가한 자라면 번뇌를 꺾어 조복받기 위해 마땅히 시끄러운 곳을 멀리 떠나 항상 고요한 곳에 거처하면서 적은 욕심으로 만족할 줄 아는 두타행(頭陁行) 등을 끊임없이 닦아야 한다. 나아가 조그마한 죄에도 두려운 마음을 내어 부끄러움을 알고 개선하도록 뉘우치며, 여래께서 하지 말라고 정해 주신 금기법[禁戒]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그 암기법을 비방타거나 꺼리지 않도록 보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함부로 허물이나 쇠를 짓지 않도록 한다.
인문(忍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남에게 시달림을 당해도 참고 보복하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으며, 이익[利]이나 손실[衰]ㆍ훼손[毁]과 명예[譽]ㆍ칭찬[稱]이나 조롱[譏]ㆍ괴로움[苦]이나 즐거움[樂] 등의 법에 대해 참을성을 갖는 것이다.
진문(進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모든 선한 일에 대하여 나태하거나 물러서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굳세게 뜻을 세워 겁을 먹거나 나약한 마음을 멀리 떠난다. 그리고는 과거 아주 오래 전부터 모든 몸과 마음에 헛되이 큰 고통을 받아 온 일이 아무 쓸모없음을 염하기 때문에 모든 공덕을 닦을 것을 권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는 동시에 남을 이롭게 하여 갖가지 고통에서 속히 떠난다.
진문을 닦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신심을 수행하더라도 숙세로
부터 내려오면서 중지와 악업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삿된 마귀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세간의 일에 갖가지로 얽매이기도 하고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는 등 이렇게 많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일이 필요하다.
밤낮으로 여섯 차례 여러 부처님께 예배하고 성심껏 참회하여 법을 권청하고 따라 기뻐하며 깨달음[菩提]으로
회향하는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일 없이 항상한다면 갖가지 장애에서 면제되어 선근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지관문(止觀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지(止)란
경계로 나타난 모든 상을 쉬어서
사마타(奢摩他)에 수순(隨順)하는 관을 뜻한다.
관(觀)이란
생멸하는 인연의 상을 분별하여
비발사나(毘鉢舍那)에 수순하는 관을 뜻한다.
어떻게 수순한다는 말인가?
이 두 가지 뜻을 점차로 수습(修習)하여 분리되지 않게 하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현전한다.
지(止)를 수행하는 자는 조용한 곳에 머물러 반듯이 앉아서 마음을 바로 하되 기식(氣息)에 의존하지도 않고
형색(形色)에 의존하지도 않으며 공(空)에 의존하지도 않고 지수화풍(地水火風)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나아가 견문각지(見聞覺知)에도 의존하지 않아서 모든 생각[想]이 염하는 대로 다 없어지며, 없앤다는 생각까지도 떨어버린다. 일체법은 본래가 상(相)이 없는 것이라서 염념에 생하지 않고 염념에 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따라 바깥으로 경계를 염하다가 뒤에 가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제거해서도 안 되니,
마음이 만일 바깥을 망해 치닫거든 즉시 거두어들여서 정념(正念)에 머물게 해야 한다.
이 정념이란 무엇인가?
오직 마음일 뿐[唯心]이라서 바깥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니,
이 마음이란 것 역시 자제의 상이 없어서 염념에 얻을 수 없다.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 갔다 하고 가고 머무는 사이에 무엇인가 하게 되면 언제라도 항상 방편을 생각하고 수순하여 관찰해야 한다. 오래도록 익혀서 순수하게 익어지면 그 마음이 안주를 얻게 된다. 마음이 안주를 얻게 됨으로써 점점 날카롭고 강성해져서 진여삼매(眞如三昧)에 수순(隨順)하여 깨달아 들어갈 수 있으며, 번뇌를 깊이 조복 받고 신심이 더욱 늘어나 속히 물러남이 없는 경지를 성취한다. 그러나 의혹을 갖는 사람, 믿지 못하는 사람, 법을 비방하는 사람, 중죄를 지어 업장이 두터운 사람, 아만심이 있는 사람, 나태한 사람은 여기서 제외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다.그런가 하면 이 삼매에 의지하기 때문에 법계가 한 모습임을 안다. 즉,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중생신과 평등하여 둘이 아님을 아는 것으로서, 이를 두고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진여가 바로 이 삼매의 근본이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수행하면 점점 무량한 삼매를 낼 수 있다.
【釋】 위 본론은 다섯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수행의 종류를전체적으로제시하면서 앞서 던졌던 물음에 답하는 문 [摠標答前所問門]이고,
둘째는 전체적으로 물은 내용을 통괄하는 문[通達摠問所說門]이며,
셋째는 간략한 답을 제시하면서 수행의 가지 수를 건립하는 문[略答建立門數門]이고,
넷째는 간략한 질문에 자세히 답하면서 이런 저런 각도에서 설명하는 문 [略問廣答散說門]이며,
다섯째는 삼매의 수승한 점을 찬탄하는 문 [讚歎三昧殊勝門]이다.
총표답전소문문은 저 앞에서 한 질문에 대해 전체적으로 답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수행에는 다섯 가지 문이 있으니
이 문을 닦아야 신심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통달총문소설문은 설하는 내용을 통괄적으로 물었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본론에서는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라고 하였다.
약답건립문수문은 대료적인 수행의 수를 들어 건립했기 때문에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첫째는 베푸는 것[施門],
둘째는 계를 지키는 것[戒門],
셋째는 참는 것[忍門],
넷째는 정진하는 것[進門],
다섯째는 지와 관을 닦는 것[止觀門]이다’라고 하였다.
무슨 이유로 이러한 차례로 시설하는가?
여섯 가지 바라밀을 수행하는 차례가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약문광답산설문에는 본디 다섯 가지 문이 있기 때문에
다섯 가지로 나누니, 잘 관찰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문은 각각 두 가지 문을 구비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간략히 묻는 것[略問門]이고,
둘째는 자세히 답하는 것[廣問門]이다. 이것이 두 가지다.
순서에 맞추어 그 수량이 섞이는 일이 없으니,
자세히 사유해서 가려 보아야 한다.
첫 번째로 시문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설하겠다.‘시문(施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하는 구절은 간략히 물은 것에 해당한다. 즉, 질문을 터놓는 대목이니,
계속해서 뒤로 이어지는 갖가지 문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광답문은 세 가지 보시[施]로 나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재물을 주는 것[財物施]이고,
둘째는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주는 것[隨應施]이고,
셋째는 교법을 주는 것[敎法施]이다.
재물을 준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떤 중생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내가 가진 것을 달라고 하면
즉시 의심해 볼 것도 없이,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다시 생각해 보지 않고 아낌없이 다 내주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재물이라고 하며, 몇 가지나 있는가?
두 가지 재물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안에 속하는 재물[內物]이고,
둘째는 바깥에 속하는 재물[外物]이다. 이것이 두 가지 재물이다.
안에 속하는 재물에도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형태를 갖지 않는 물건[無色]이고,
둘째는 형태를 갖는 물건[有色]이다.
형태를 갖지 않는 재물이란
심식(心識)을 말하며,
형태를 갖는 재물이란
갖가지 근[諸根]을 말한다.
어떤 중생이 내 처소에 와서 나의 심식을 구걸하면 그 자리에서 아낌없이 언제라도 제공하여
그를 기쁘게 하며, 어떤 중생이 내 처소로 와서 그가 필요한 대로 나에게 유색(有色)의 묘한 근[妙根]을 하나하나 구걸하면 그 자리에서 아낌없이 언제라도 제공하여 그를 기쁘게 한다. 이것이 안에 속하는 두 가지 재물을 보시하는 일이다.
바깥에 속하는 재물에도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식이 있는 것[有識]이고,
둘째는 식이 없는 것[無識]이다.
식이 있는 재물이란 처자나 노비 등을 말하고,
식이 없는 재물이란 궁전이나 집ㆍ옷ㆍ장식품 따위를 말한다.
어떤 중생이 내 처소에 와서 이러한 물건을 구걸하면 그 자리에서 아낌없이 언제라도 제공하여 그를 기쁘게 한다. 이것이 바깥에 속하는 두 가지 재물로 보시하는 것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와서 구하거나 찾는 중생을 보면 가지고 있는 재물을 힘닿는 대로 내줌으로써 자신의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남을 기쁘게 하며’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수응시(隨應施)에 대해 설명하겠다. 무엇을 수응시라고 하는가?
오근(五根)이 손상되어서 온전하지 못한 중생이나 한없는 병고에 시달리느라고
편안치 못한 중생이나 마음이 어리석어 똑똑하지 못한 중생이 있으면,
이때 수행하는 이는 어진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맞는 것, 그들에게 적당한 것,
그들의 편의에 맞는 것,
그들에게 소유되는 것을 잘 선택하고 분별해서 저들의 고뇌를 없애고 기쁨을 준다.
이런 뜻에서 수응시라고 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횡액이나 곤란에 빠져 두려움과 위급함을 느끼는
보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대로 두려움을 없애 준다’고 하였다.
이상이 수응시에 관한 설명이다.다음으로 교법시(敎法施)에 관해 설명하겠다.
무엇을 교법시라고 하는가?
어떤 중생이 적당한 때든 아니든, 친하든 친하지 않든, 귀한 사람이든 아니든,
어리석든 아니든, 남자든 아니든, 여자든 아니든, 악인이든 아니든, 사람이든 아니든,
이러한 갖가지 무리들이 내 처소로 와서 법을 구할 때는 즉시 아낌없이 무량무변하고
광대원만한 대자비심을 내서 그들의 의심을 결단하여 부분적으로나마 번뇌를 세거하여
서서히 지혜를 늘려주며 저들을 다 거두어들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위없는 대보리에 이르도록 한다.
이런 뜻에서 교법시라고 이름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와서 법을 구하는 중생이 있으면 자신이 능력껏 이해한 대로 방편을 써서 그를 위해 설명을 해주되, 명리나 남의 공경을 탐해서는 안 되고 오직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할 것 만을 생각하여 이 공덕을 깨달음으로 회향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까지 수행시문을 설하였고,
다음으로 수행계문을 설하겠다.
이 문은 네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계상을 건립하여 계를 설한 목적을 표방하는 문[建立戒相標宗門]이고,
둘째는 계품을 성취하려면 수승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문[成就戒品勝處門]이며,
셋째는 계행을 구족히 닦아 계를 가볍 여기지 않는 문[具足戒行不輕門]이고,
넷째는 계를 수호하여 비방이 일지 않도록 하는 문[守護不令誹謗門]이다.
이상이 네 가지다.
건립계상표종문이란
열 가지 청정한 방전계(防轉戒)를 건립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계문(戒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살생과 도둑질과 간음을 하지 않고 이간질이나 욕설이나 헛된 말이나 꾸미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탐욕ㆍ질투ㆍ속임수ㆍ거짓말ㆍ아첨ㆍ왜곡ㆍ성냄ㆍ그릇된 견해를 멀리 떠난다’고 하였다.
성취계품승처문이란 계품을 구조하려면 산란스럽고 잡된 처소를 항상 멀리 떠나야 되며,
조용하고 수승한 처소를 항상 가까이 해서 거기서 멀어지지 않고 안주해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게다가 출가한 자라면 번뇌를 꺾어 조복받기 위해 마땅히 시끄러운 곳을 멀리 떠나
항상 고요한 곳에 거처하면서’라고 하였다.
구족계행불경문이란
갖가지 묘한 행을 닦을 때 신심을 일으켜 여래께서 정해주신 바 스승이 되고 어머니가 될 만한 계[師母戒]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적은 욕심으로 만족할 줄 아는 두타행(頭陀行) 등을 끊임없이 닦아야 한다. 나아가 조그마한 죄에도 두려운 마음을 내어 부끄러움을 알고 개선하도록 뉘우치며 여래께서 하지 말라고 정해 주신 금기법[禁戒]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수호불령비방문이란 부처님의 눈동자가 될 만한 계[佛眼晴戒]를 보호하고
지켜서 결코 파괴되거나 유실되는 인이 없도록 하여 자리(自利)를 갖추며, 방일하여 금계(禁戒)를 비방하거나 싫어하는 중생들이 망상의 죄과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여 이타(利他)를 갖춤으로써 대각의 바다를 원만하게 장엄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상대방이 그 금기법을 비방하거나 꺼리지 않도록 보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함부로 허물이나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까지 수행계문을 설하였다.
다음으로 수행인문을 설하겠다.
이 문은 두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간략히 인욕을 밝힘으로써 아집을 조복받는 문[顯示略忍伏我門]이고,
둘째는 자세히 인욕을 밝힘으로써 무아가 되게 하는 문[顯示廣忍無我門]이다. 이것이 두 가지다.
현시약인복아문이란 어떤 중생이 악한 아세야(阿世耶)의 경계를 지어서 내 마음을 괴롭힌다면,
이때 행자는 자신의 마음을 참아서 그 괴롭힘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인문(忍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남에게 시달림을 당해도 참고 보복하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으며’라고 하였다.
현시광인무아문은 무슨 뜻에서 시설한 문인가?
음식이나 의복 등 갖가지 재물을 내 처소로 가져와서 주면서 이익과 환락을 꾀하는 중생이 있는가 하면,
칼이나 몽둥이 등 갖가지 무서운 것을 내 처소로 가져와서 나의 환경[依]과 나의 몸[正]을 손상시키거나
없애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려는 중생도 있고, 거칠고 악한 말과 비방 등 갖가지 더러운 말의 먼 데서나
가까운 데서 와서 나를 헐뜯고 나에게 혐의를 씌우는 중생도 있으며, 혹은 바른 일을 하는 등 갖가지 덕으로
나의 몸을 찬탄하는 중생도 있다. 인욕을 닦는 자는 이러한 갖가지 일에 대해 수미산처럼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고 마음에 평정을 유지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이익이나 손실ㆍ훼손과 명예ㆍ칭찬이나 조롱ㆍ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의 법에대해 참을성을 갖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제까지 수행인문을 설하였고,
다음으로 수행진문을 설하겠다.
이 문은 두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정진을 수행하는 것을 전체적으로 제시하는 문[通示修行精進門]이고,
둘째는 정진을 수행하는 것을 각각 해석하는 문[別釋修行精進門]이다.
통시수행정진문은 갖가지 묘한 일에 임해서 수행자의 마음이 점점 더 수승해져서 열심히 정진하려는
욕구를 내어 결코 쉬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진문(進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모든 선한 일에 대하여 나태하거나 물러서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굳세게 뜻을 세워 겁을 먹거나 나약한 마음을 멀리 떠난다’고 하였다.
별석수행정진문은 본디 두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장애 없이 정신을 닦는 문[無障修行精進門]이고,
둘째는 장애를 결으면서 정진을 닦는 문[有障修行精進門]이다.
무장수행정진문이란 어떤 것인가?
수행자가 생각하기를, ‘나는 시작도 없는 오랜 과거로부터 오로지 허망하여 실답지 못한 몸과 마음만을 받았을 뿐, 금강처럼 무너지지 않는 몸과 마음은 도대체 받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오직 묘한 행을 열심히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태만해서 이제껏 해 왔던 것처럼 닦지 않는다면 미래로 갈수록 역시 도대체 득될 것이라고는 없는 허망한 몸과 마음만을 받아서 빠져나올 기약이 없다. 나 자신도 빠져나을 수 없어서 자신을 이익되게 하는 일마저 잃어버릴 터에, 하물며 갖가지로 고통받는 다른 중생을 구제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구족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크게 정진할 마음을 일으켜 행인(行因)의 바다를 닦아서
공덕으로 가득 찬 과(果)를 장엄함으로써 자리와 이타 양쪽을 건립하여
그 중에 빠지거나 치우치는 것이 없게 한다. 이런 뜻에서 무장수행정진문을 시설하였다. 이를 본론에서는, ‘그리고는 과거 아주 오래 전부터 모든 몸과 마음에 헛되이 큰 고통을 받아온 일이 아무 쓸모없음을 염하기 때문에, 모든 공덕을 닦을 것을 권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는 동시에 남을 이롭게 하여 갖가지 고통에서 속히 떠난다’고 하였다.
유장수행정진문이란 어떤 것인가?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쌓아온 남은 업장 때문에 마군이나 외도 나쁜 귀신에게 시달려서 수행을 할 수 없는 중생이 있는가 하면. 현세에 해야 하는 갖가지 사무에 매여서 수행할 수 없는 중생도 있고, 갖가지 온갖 병고에 쫓기느라고 수행하지 못하는 중생도 있다. 이러한 중생들은 비록 귀로는 법칙과 훌륭한 말씀을 듣고 눈으로는 문자로 베풀어진 가르침을 본다 해도 부지런히 수행하시 못하므로 생사를 싫어하고 해탈을 구하려는 마음을 내지 못한다. 만일 그런 사람이 마음을 내서 용맹스럽게 정진하고, 갖가지 뛰어나고 오로만 방편을 일으켜서 감당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지킨다면, 바다 같은 업장이 파도가 자듯 점차 수그러들고 산악 같은 공덕이 봉우리
처럼 점점 높아진다. 그리하여 팔풍(八風)에도 날아가지 않고 구결(九結)
얽히지 않는다. 이런 뜻에서 유장수행정진문을 시설하였다. 이를 본론에서는, ‘진문을 닦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신심을 수행하더라도 숙세로부터 내려오면서 중죄와 악업을 만이 지었기 때문에 삿된 마귀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세간의 일에 갖가지로 얽매이기도 하고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는 등 이렇게 많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일이 필요하다. 밤낮으로 여섯 차례 여러 부처님들께 예배하고 성심껏 참회하여 법을 권청하고 따라 기뻐하며 깨달음[菩提]으로 회향하는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일 없이 항상한다면 갖가지 장애에서 면제되어 선근이 자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제까지 수행정진문을 설하였다.
다음으로 수행지관문을 설하겠다.
이 문은 네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지에 관해 전체적인 표제를 내걸고 전체적인 해석을 내리는 문[摠標摠釋止輪門]이고,
둘째는 관에 대해 전체적인 표제를 내걸고 전체적인 해석을 내리는 문[摠標摠釋觀輪門]이며,
셋째는 지관에 수순해 들어가는 방법을 간략히 해석하고 결택을 내리는 문 [略釋決擇隨順門]이고,
넷째는 지에 대해 자세히 해석하고 결택하는 문[廣釋決擇止輪門]이다. 이것이 네 가지다.
총표총석지륜문은 사려를 통해 아는 마음을 그치고[止] 산란한 사유를 막아서 하나[一]이면서 중심[中]이 되는
적정한 성품에 안주하여 모든 경계상을 내지 않고 정표타아라관(定標陀阿羅觀)으로써 근본에 수순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지관문(止觀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지(止)란 경계로 나타난 모든 상을 쉬어서 사마타(奢摩他)에 수순(隨順)
하는 관을 뜻한다’고 하였다.
총표총석관륜문은 인연의 도리를 분명히 간택하고 그 인연이 무상(無常)한
형상이라는 점을 자세히 분별하여 잘 통달하고 빠짐없이 잘 알아서 수순
관인 표타아라관에 수순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관(觀)이란 생멸하는 인연의 상을 분별하여
비발사나(毘鉢舍那)에 수순하는 관을 뜻한다’고 하였다.
약석결택수순문이란 정(定)이 수시로 될 때에는 관(觀)이 따라오고
관이 수시로 될 때에는 정이 따라와서 두 가지가 동시에 구족하여 분리되지 않고
작동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어떻게 수순한다는 말인가?
이 두 가지 뜻을 점차로 수습(修習)하여 분리되지 않게 하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현전한다’고 하였다.
광석결택지륜문에 네 가지 문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지를 성취하는 인연을 밝힌 문[成就止輪因緣門]이고,
둘째는 지를 수행하는 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문[直示修行止輪門]이며,
셋째는 지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밝히는 문[修行止輪得益門]이고,
넷째는 취에 들어갔느냐 아니냐의 구분을 가리는 문[揀入不入分際門]이다. 이상이 네 가지다.
첫 번째인 성취지륜인연문에는 열다섯 가지가 있다. 무엇이 열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고요한 곳에 거처하는 법 [住處寂靜因緣],
둘째는 혼자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과 공동생활하지 않는 법[獨一不共因緣],
셋째는 거처하는 방위를 잘 선택하는 법[所居方善因緣],
넷째는 옷을 갖추어 입는 법 [衣服具足因緣],
다섯째는 음식을 갖추는 법 [飮食具足因緣],
여섯째는 결계 밀교에서 불법을 닦는 데 장애가 될 만한 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일정 지역을 한정하는 것을 결호(結護)라고 한다.
를 해서 청정함을 유지하는 법 [結界護淨因緣],
일곱째는 집을 짓는 법 [舍宅造立因緣],
여덟째는 말을 내지 않는 법 [言語不出因緣],
아홉째는 좌상을 조성하는 법 [坐像造立因緣],
열째는 자리에 앉는 법 [坐其座中因緣],
열한째는 드나드는 때를 가리는 법 [出入時節因緣],
열두째는 선지식과 좋은 도반을 만나는 법 [知識善友因緣],
열셋째는 옳고 그름을 확실히 아는 법 [印知邪正因緣],
열넷째는 좋은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는 법[植善林樹因緣],
열다섯째는 자륜을 복응하는 법 [字輪服膺因緣]이다.
이상이 지를 닦는 일을 자세히 풀이하고 결택하는 문에 속하는 열다섯 가지 큰 인연이다.
고요한 곳에 거처하는 법은, 저 지문(止門)을 닦고자 한다면 산림 같은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에 거처하며
산란한 마을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산란한 곳에서는 저 지문을 성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혼자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과 공동생활하지 않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한 구역 안에
두 사람이 거처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서로 간에 번거로움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거처하는 방위를 잘 선택하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동쪽과 서쪽 방향에 머물러야지 남쪽과 북쪽에 거처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동쪽과 서쪽에 각륜(覺輪)이 있기 때문이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으로서 신령스럽고 밝은 본각(本覺)을 나타내며,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서 어두운 무명(無明)을 나타낸다.
수행자는 진(眞)을 관하여 망(妄)을 대치하는 사람이므로
동서쪽에 머문다고 한 것이다.
또 남쪽은 너무 덥고 독충이 많으며 북쪽은 춥고 바람이 심하며 눈이 와서
수행하기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7하)
옷을 갖추어 입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 가지 옷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세 가지 옷인가?
황색과 적색과 백색, 이것이 세 가지 옷으로서 한꺼번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비차라(毘叉羅) 벌레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갖추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말려서 정제한 가마이타야(伽摩伊陀耶)가
반드시 필요하고 다른 곡식들은 사용할 수가 없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저 가마이타야에는 선성(仙性)이 있기 때문이며,
사용하지 않는다면 파니라(婆尼羅) 등은 수용하는 시한에서 오직 자체의 것만을 써야 하기에
일정함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계를 해서 청정함을 유지하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자신의
방을 떠나서 일 구로사(俱盧舍)쯤 되는 곳에서 대신주를 백열 번 외운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떻게 외우는가? 외우는 신주는 다음과 같다.
다냐타나라제 바차니 아마야가타제바 바아아바바미타 사거나 오가이타
▼(口*恒)▼(口*絰)咃那羅帝 婆叉尼 阿摩㖿迦陀帝 婆婆阿阿婆婆𡄣陀 闍佉那 鄔呵伊陀
제 옴옴옴옴제 다발타타야 마나시지제 사타니발 차라니구하아하구다시
帝 奄奄奄奄帝 哆跋陀陀㖿 摩那尸只帝 奢陀尼筏 叉羅尼鳩訶阿訶鳩多㕧
옴아타타제 마하가야제 마하아가야제 건다니 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奄囂陀陀帝 摩訶伽耶帝 摩訶阿伽耶帝 鍵多尼 阿羅羅羅羅羅羅羅羅羅羅羅
아제사바하
阿帝娑婆呵
이 주문을 다 외우고 나서 결계(結界)를 하고 깨끗함을 유지한다.
어째서 그렇게 하는가?
갖가지 독충의 무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집을 짓는 법은,
집을 짓는 데 열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문을 만드는 일인데,
반드시 동쪽으로 내야하며 다른 방향으로 내서는 안 된다.
둘째는 높이를 정하는 일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높게 서쪽으로 갈수록 낮게 세운다.
셋째는 넓이를 정하는 일인데,
사방을 각각 한 길[丈] 정도 되게 한다.
넷째는 품중(品重)을 정하는 일인데,
열 겹으로 짓는다.
다섯째는 물건을 쓰는 일인데,
반드시 다섯 가지로 제한하고 다른 것은 쓰지 않는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금, 둘째는 은, 셋째는 구리, 넷째는 쇠, 다섯째는 소나무 목재, 이것이 다섯 가지다.
여섯째는 문턱을 만드는 일인데
지면과 차이가 없게 한다. 일곱째는 문을 몇 겹으로 만드느냐 하는 일인데, 열 겹으로 만든다.
여덟째는 문의 지도리를 만드는 일인데,
문을 열고 닫을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만든다. 아홉째는 벽과 담장을 만드는 일인데, 높이는 한 길[丈], 담장의
두께는 열 겹으로 한다. 열째는 드나드는 일인데, 각각의 문을 드나들 때마다 주문을 외운다. 어떤 주문인가?
남마야제 마하구비나아 아라바제 타타아가타 반지아지니 차사니락제
喃嚤㖡帝 摩訶鳩毘那呵 阿羅婆提 陀陀阿伽度 般枳阿枳尸 遮娑䛏諾帝
파지마비마 파지마아나 아나시지니시지 사바하
婆枳摩毘摩 婆枳摩阿那 阿那尸枳尼尸枳 娑婆呵
이 신주(神呪)를 천 번 외우면 수시로 길이 뚫린다.
들어갈 때는 이 주문을 외워야 한다.
나무남지나 나무벌시타 나무남하제 나무남아리나 나무건타니사바하
南無喃枳那 南無筏尸陀 南無諵阿帝 南無諵阿唎那 南無鍵陀尼娑婆呵
이 신주를 천오백 번 외우면 어느 때라도 문이 열리고 닫힌다.
말을 내지 않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어느 때건
어느 곳에서건 말을 내뱉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말이 나오는 대로 심식(心識)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좌상(坐像)을 조성하는 법은,
정에 들어 있는 좌상을 조성하고자 한다면
다섯 가지를 구비해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무엇으로 만드느냐 인데, 소나무를 쓴다.
둘째는 높이와 크기를 정하는 일인데,
자기 몸의 반 장도로 하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한다.
셋째는 앉히는 자리의 크기를 정하는 일인데,
한 자리[一方]가 각각 넉 자가 되게 한다.
넷째는 상을 앉히는 방향을 정하는 일인데,
반드시 동쪽으로 앉히며 다른 쪽으로 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는 자리 위에 갖추어야 할 물건인데,
반드시 노란색 타라제(陁羅帝)와 노란색 좌구(坐具)를 써야 한다.
이상이 좌상을 조성하는 데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일이다.
자리에 앉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하면 열 가지를 갖추어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발의 자세인데,
양쪽 무릎 끝에 엄지발가락이 오게 하여 흐트러짐 없이 딱 맞추도록 한다.
둘째는 무릎의 자세인데,
양쪽 무릎이 오차 없이 평행을 이루도록 한다.
셋째는 허리를 반듯이 하는 자세인데,
허리가 굽거나 튀어나오지 않도록 곧은 자세를 유지한다.
넷째는 손을 포개는 일인데,
양손을 마주해서 오른손이 위로 가면 왼손은 아래로, 왼손이 위로 가면 오른손은 아래로 하며,
하루씩 위치 바꾸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손을 근(根) 위에 놓는다.
다섯째는 목의 자세인데,
목을 반듯이 해서 움직임 없이 곧게 세운다.
여섯째는 얼굴의 자세인데,
얼굴이 위를 보거나 아래를 보지 않고 평행이 되게 한다.
일곱째는 입 안의 모양인데,
쉽게 하지도 말고 좁게 하지도 말며 가운데는 열린 상태로 둔다.
여덟째는 코에 관한 것인데,
숨을 내쉬는 데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며
한 번이라도 어긋나가서는 안 된다.
아홉째는 눈의 모양인데,
눈을 치켜뜨지도 말고 내리깔지도 말며 눈동자를 편히 한다.
열째는 눈을 어디에 그쳐 머물게 하느냐인데,
대허공자륜(大虛空字輪)에 두고 언제나 떼지 않도록 한다.
이상이 자리에 앉을 때 갖추어야 할 열 가지다.
드나드는 때를 가리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진시(辰時)와 오시(午時) 두 때를 이용해야 하며
다른 때는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선지식과 좋은 도반을 만나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지혜가 깊은 사람을 벗 삼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옳고 그름을 확실히 아는 법은, 저 지물을 닦고자 한다면 상(像)의 형태에 따라 금강인(金剛印)을 지어서
옳고 그름을 착실히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떻게 상을 짓는가? 다음 주문을 외운다.
다냐타만나오타제 바라지타니 차시미다야 옴아시제나사바하
坦咥咃▼(口*曼)那鄔陀帝 婆羅枳陀尼 遮㕧𡄣哆耶 掩阿尸帝那娑婆呵
이 신주를 사천 육백오십 번을 외우면 저 상에 두 가지 자륜(字輪)이 붙는다.
즉, 삿된 사람에게는 삿된 자륜이 붙고 바른 사람에게는 바른 자륜이 붇는다.
이로써 옳고 그름이 가려진다.
좋은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자신이 거처하는 방 앞에 길상(吉祥)을 나타내는
두 가지 풀을 심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소나무고, 또 하나는 석류나무다. 이것이 두 가지 길상초다.
자륜을 복응(服膺)하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囗$(王/(王*王))]자륜을 복응해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디에 복응하는가?
방촌처(方寸處)에 복응한다.
무슨 이유로 반드시 이 자륜을 붙여야 하는가?
이 자륜은 삼세 여러 부처님과 무량무변한 보살의 은혜로운 큰 스승이며 은혜로운 큰 부모이며
은혜로운 큰 대지이며 은혜로운 큰 바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저 지를
닦는 자라면 당연히 이 자륜을 붙여야 한다. 이러한 인연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 『마하연론』에서는 첫 번째 인연만을 밝힌 것이다.
다른 인연을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첫 번째 것을 들어서 뒤의 것들까지 포함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지(止)를 수행하는 자는 조용한 곳에 머물러’라고 하였다.
이제까지 지를 성취하는 인연을 밝힌 문[成就止輪因緣門]을 설했고,
다음으로 지를 수행하는 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문[直示修行止輪門]을 설하겠다.
이 문은 일곱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어디에 마음을 확고히 두느냐는 문제[存心決定門]로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진공(眞空)의 이치 가운데 마음을 확고히 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반듯이 앉아서 마음을 바로 하되’라고 하였다.
둘째는 신체에 집착하지 않는 문[不着身體門]으로서,
이 몸은 공무(空無)하여 그 성품을 본래적으로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통달하고 있기
때문에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기식(氣息)에 의존하지도 않고 형색(形色)에 의존하지도 않으며
공(空)에 의존하지도 않고 지수화풍(地水火風)에 의존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셋째는 심식에 집착하지 않는 문[不着心識門]으로서,
사려를 통해 아는 마음은 자성이 공무하여 있다 할 바가 없음을 아주 잘 통달했기 때문에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나아가 견문각지(見聞覺知)에도 의존하지 않아서 모든 생각[想]이 염하는 대로 다 없어지며,
없앤다는 생각까지도 떨어버린다’고 하였다. 이 아래로는 그 신체(身體)와 심식(心識)이 공무한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일체법은 본래가 상(相)이 없는 것이라서 염념에 생하지 않고 염념에 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따라 바깥으로 경계를 염하다가’라고 하였다.
넷째는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문[不着不着門]으로서,
능히 떨어보내는 마음마저 떨어 없애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나.
이를 본론에서는, ‘뒤에 가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제거해서도 안 되니’라고 하였다.
다섯째는 흩어지는 것을 모아서 하나로 되돌리는 문[集散會一門]으로서,
뜯어져 움직이는 마음을 거두어 모아 하나에 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마음이 만일 바깥을 향해 치닫거든 즉시 거두어들여서
정념(正念)에 머물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여섯째는 정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문[顯示正念門]으로서,
제법이 오직 일실임을 밝히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이 정념이란 무엇인가? 오직 마음일 뿐[唯心]이라서 바깥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니, 이 마음이란 것 역시 자체의 상이
없어서 염념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일곱째는 떠나지 않고 항상 상속함을 밝히는 문[不離恒行門]으로서,
이러한 정심(定心)이 어느 때건 어느 곳에서건 떠날 사이없이 항상 이어진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 갔다 하고 가고 머물고 하는 사이에 무엇인가 하게 되면
언제라도 항상 방편을 생각하고 수순하여 관찰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까지 지를 수행하는 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문을 설했고,
다음으로 지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밝히는 문[修行止輪得益門]을 설하겠다.
어떤 사람이 능히 이 정(定)을 수행할 수 있다면 점점 나아가 바다 같은 번뇌가 말라버리고
산악 같은 업장이 무너져 진여의 삼매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일체법을 통달하여 물러남이 없는 자리에 도달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오래도록 익혀서 순수하게 익어지면 그 마음이 안주를 얻게 된다.
마음이 안주를 얻게 됨으로써 점점 날카롭고 강성해져서 진여삼매(眞如三昧)에 수순하여 깨달아
들어갈 수 있으며, 번뇌를 깊이 조복받고 신심이 늘어나 속히 물러남이 없는 경지를 성취한다’고 하였다.
이제까지 지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밝히는 문을 설했고,
다음으로 취에 들어갔는지 아닌지의 구분을 가리는 문[簡入不入分際門]을 설하겠다.
이 문은 두 가지 뜻에서 시설했다. 무엇이 두 가지 뜻인가?
첫째는 취에 들어간다는 뜻[入趣意]이고,
둘째는 취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不入意]이다.
취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아무 의심도 없이 길은 법에 들어가며, 어떤 중생은 아주 길은 법을 듣고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어떤 중생은 깊은 법을 듣고는 존중하는 마음을 내서 비방을 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은 무거운 업장이 없으며, 어떤 중생은 아만심이 없으며, 어떤 중생은 게으른 마을을 내지 않는다.
이상 여섯 종류에 해당하는 사람은 불(佛)의 종성(種性)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의심할 여지없이 착실하니,
이런 것을 두고 취에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취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와 어긋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삼보의 종자를 영원히 단절한다는 사실이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니, 이런 것을 두고 취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그러나 의혹을
갖는 사람, 믿지 못하는 사람, 법을 비방하는 사람, 중죄를 지어 업장이 두터운 사람, 아만심이 있는 사람,
나태한 사람은 여기서 제외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제까지는 간략한 질문에 대해 자세히 답하면서 이런 저런 각도에서
그것을 설명하는 문[略問廣答散說門]을 설하였고,
다음으로 삼매의 수승함을 찬탄하는 문[讚歎三昧殊勝門]을 설하겠다.
이 문은 두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체대가 한량없고 수승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문[體大無邊殊勝門]이고,
둘째는 진여삼매의 권속이 다함이 없고 수승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문[眷屬無盡殊勝門]이다.
이것이 두 가지 문이다.
체대무변수승문은, 이 삼매를 닦음으로써 한량없는 모든 불법이 동일한 체이며 한 모습이라
차별 없음을 통달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것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그런가 하면 이 삼매에 의지하기 때문에 법계가 한 모습임을
안다. 즉,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중생신과 평등하여 둘이 아님을 아는 것으로서,
이를 두고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한다’고 하였다.
권속무진수승문은, 이 진여삼매가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금강삼매(金剛三昧)에게 근본이 되어
이 모든 삼매를 낳고 자라게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것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진여가 바로 이 삼매의 근본이 된다.
이렇게 수행하는 자라면 점점 무량한 삼매를 낼 수 있다’라고 하였다.
已說解釋分,次說修行信心分。就此分中,卽有七門。
云何爲七?
一者能治所治契當門,
二者信心品類分剖門,
三者修行方便善巧門,
四者廣釋魔事對治門,
五者讚歎三昧功德門,
六者兩輪具闕益損門,
七者勸劣向勝不退門。是名爲七。
能治所治契當門者,其相云何?本曰:‘ 是中依未入正定聚衆生故,說修行信心分。
’ 論曰:言是中依未入正定聚衆生者,卽是所治。所謂所化之境界故故,說修行信心分者,
卽是能治。所謂能化之教法故。所化境界其量云何?謂攝二聚之衆生故。云何爲二?
一者邪定聚,
二者不定聚。是名爲二。所以者何?此二衆生,皆悉未入正定聚故。言契當者,其相云何?謂二衆生中,
各契教說故。契相云何?謂欲邪定聚衆生故,說信心門,欲彼不定聚衆生故,說修行門。所以者何?
進入次第,其法爾故。謂未信人先起信故,其已信人,直修行故。復次,通利益故,已說能治、所治契當門。
次說信心品類分剖門。
本曰:‘ 何等信心,云何修行?略說信心,有四種。云何爲四?
一者信根本,所謂樂念眞如法故;
二者信佛,有無量功德,常念親近供養恭敬,發起善根,願求一切智故;
三者信法,有大利益,常念修行諸波羅蜜故;
四者信僧,能正修行自利利他,常樂親近諸菩薩衆,求學如實行故
’論曰:就此文中,卽有三門。云何爲三?
一者直問信心品類門,
二者直問修行品類門,
三者略荅顯示信心門。是名爲三。
言直問信心品類門者,所謂摠問信心量故。如本‘何等信心故,’言直問修行品類門者,所謂摠問修行量故。
如本‘云何修行故,’就第三門中,卽有三門。云何爲三?
一者摠荅門,
二者摠問門,
三者廣荅門。
言摠荅門者,所謂摠荅其所說故。如本‘略說信心,有四種故。’言摠問門者,所謂摠問其所說故。
如本‘云何爲四’故,就第三門中,故有四種門。云何爲四?
一者信本令心平等門,
二者信佛欣有功德門,
三者信法精進修行門,
四者信僧令心無諍門。是名爲四。
言信本令心平等門者,所謂樂信爲自根本眞如理法,由無明力,種種差別,
一切諸心皆悉會一,令平等故。如本‘一者信根本,所謂樂念眞如法故’故。
言信佛欣有功德門者,所謂樂信無上大覺如來世尊,欣求所有無量無邊一切功德故。
如本‘二者信佛、有無量功德,常念親近供養恭敬,發起善根,願求一切智故’故。
言信法精進修行門者,所謂樂信三世諸佛,爲自恩父,爲自恩母,爲自恩師,不能改壞,不能生滅,
虛空金剛不動軌則。有不可思議中,不可思議殊勝利益,常恒轉轉,於一切時,於一切處,
修行一切助道品故。如本‘三者信法有大利益,常念修行諸波羅蜜故’故。
言信僧令心無諍門者,所謂樂信一切無量菩薩僧衆,以兩勝行,爲自內德,若遠若近,隨自聞時,隨自見時,
隨自思時,往詣僧所,至心聽受種種深法,種種深經、種種深論、種種深理、種種妙事,不斷絕故。
如本‘四者信僧能正修行自利利他,常樂親近諸菩薩衆,求學如實行故故。
已說信心品類分剖門,次說修行方便善巧門。
本曰:‘修行有五門,能成此信。云何爲五?
一者施門,
二者戒門,
三者忍門,
四者進門,
五者止觀門。
云何修行施門?若見一切來求索者,所有財物隨力施與,以自捨慳貪,令彼歡喜,若見厄難、恐怖、危逼,
隨己堪任,施與無畏。若有衆生,來求法者,隨己能解,方便爲說,不應貪求名利恭敬,唯念自利利他,
迴向菩提故。
云何修行戒門?所謂不殺,不盜,不婬,不兩舌,不惡口,不妄言,不綺語,遠離貪嫉、欺詐、諂曲、瞋恚、邪見,若出家者,爲折伏煩惱故,亦應遠離憒鬧,常處寂靜,修習少欲知足頭陁等行。乃至小罪心生怖畏,慚愧改悔,不得輕於如來所制禁戒,當護譏嫌,不令衆生,妄起過罪故。
云何修行忍門?所謂應忍他人之惱心,不懷報,亦當忍於利衰、毀譽、稱譏、苦樂等法故。
云何修行進門?所謂於諸善事,心不懈退,立志堅强,遠離怯弱,當念過去久遠已來,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是故應勤修諸功德自利利他,遠離衆苦。復次,若人雖修行信心,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爲魔邪諸鬼之所惱亂,或爲世閒事務種種牽纏,或爲病苦所惱。有如是等衆多障㝵。是故應當勇猛精進,
晝夜六時,禮拜諸佛,誠心懺悔勸請,隨喜迴向菩提,常不休廢,得免諸障善根增長故。
云何修行止觀門?所言止者,謂止一切境界相,隨順奢摩他觀義故。
所言觀者,謂分別因緣生滅相,隨順毘跋舍那觀義故。
云何隨順?以此二義,漸漸修習,不相捨離,雙現前故。若修止者,住於靜處,端坐正意,不依氣息,
不依形色,不依於空,不依地、水、火、風,乃至不依見聞覺知,一切諸想隨念皆除,亦遣除想,
以一切法本來無相,念念不生,念念不滅,亦不得隨心外念境界,後以心除心。心若馳散,卽當攝來,
住於正念。是正念者,當知唯心無外境界。
卽復此心,亦無自相,念念不可得。若從坐起去來,進止所作,於一切時,常念方便,隨順觀察,久習淳熟,
其心得住。以心住故,漸漸猛利,隨順得入眞如三昧,深伏煩惱,信心增長,速成不退,唯除疑惑、不信、
誹謗、重罪業障、我慢、懈怠。如是等人,所不能入。
復次,依是三昧故,則知法界一相。謂一切諸佛法身與衆生身,平等無二,卽名一行三昧。
當知眞如是三昧根本,若人修行,漸漸能生無量三昧。
’論曰:就此文中,卽有五門。云何爲五?
一者摠標荅前所問門,
二者通達摠問所說門,
三者略荅建立門數門,
四者略問廣荅散說門,
五者讚歎三昧殊勝門,是名爲五。
言摠標荅前所問門者,所謂摠荅彼前問故。如本‘修行有五門,能成此信故,
言通達摠問。所說門者,所謂摠問其所說故。如本‘云何爲五’故,
言略荅建立門數門者,所謂建立大門數故。
如本‘
一者施門,
二者戒門,
三者忍門,
四者進門
五者止觀門故何故次第如是謂修行
六度次第法如是故次就略問廣荅散說門中故有五門故,故有五門。
應審觀察。此五種門中,各各具二門。云何爲二?
一者略問門,
二者廣荅門。是名爲二。
如其次第,不亂數量,應審思擇。第一修行施門中,
言云何修行施門者,卽是略問門。所謂開問故,後後諸門,應如是知。
就廣答門中,卽有三種施。云何爲三?
一者財物施,
二者隨應施,
三者教法施。
言財物施者,所謂若有衆生,來到我所,乞我所有,卽便不疑,隨時,隨處,
皆悉施與,無所顧惜故。何等物名爲財物耶?有幾種物?所謂有二種財物故,云何爲二?
一者內物,
二者外物。是名爲二。
就內物中,亦有二種。云何爲二?
一者無色,
二者有色。言無色者,卽是心識。言有色者,卽是諸根。
若有衆生,來到我所,乞我心識,卽便不惜,隨時施與,令彼歡喜。若有衆生,
來到我所,隨其所用,乞我一一有色妙根,卽便不惜,隨時施與,令彼歡喜。
是名爲二種內財物。就外物中,亦有二種。云何爲二?
一者有識,
二者無識。言有識者,卽是妻子、奴婢等類。言無識者,卽是宮殿、舍宅、衣服、嚴具等類。若有衆生,
來到我所,乞此等物,卽便不惜,隨時施與,令彼歡喜。是名爲二種外財物。如本‘若見一切來求索者,
所有財物隨力施與,以自捨慳貪,令彼歡喜’故。已說財物施,次說隨應施。
云何名爲隨應施耶?謂或有衆生,五根壞失,
不能具足。或有衆生,病苦無量,不得安隱。或有衆生,其心愚癡,不能明了。行者爾時,以賢士,
則隨其所應,隨其所當,隨其所宜,隨其所用,能善揀擇,能善分別,除彼苦惱,令歡喜故。
是故說言隨應施焉。如本若見厄難、恐怖、危逼,隨己堪任,施與無畏故。
已說隨應施,次說教法施。云何名爲教法施耶?
謂有衆生,若時不時,若親不親,若貴不貴,若愚不愚,若夫不夫,若女不女,
若惡不惡,若人不人,如是等類,來到我所,欲求法時,卽便不惜,發起無量無邊廣大圓滿大慈悲心,
決斷彼疑,分除煩惱,徐增智慧,攝取彼人,不墮惡道,令到無上大菩提故。是故說言教法施焉。
如本‘若有衆生,來求法者,隨己能解,方便爲說,不應貪求名利恭敬,唯念自利利他,迴向菩提故’故。
已說修行施門,次說修行戒門。就此門中,卽有四門。
云何爲四?
一者建立戒相,標宗門,
二者成就戒品勝處門,
三者具足戒行不輕門,
四者守護不令誹謗門。是名爲四。
言建立戒相標宗門者,所謂建立十種淸淨防轉戒故。
如本‘云何修行戒門?所謂不殺,不盜,不婬,不兩舌,不惡口,不妄言,
不綺語,遠離貪嫉、欺詐、諂曲、瞋恚、邪見故。言成就戒品勝處門者,所謂若爲具足戒品,
常當遠離散亂雜處,常當親近寂靜勝處,安住其中,不捨離故。如本‘若出家者,爲折伏煩惱故,
亦應遠離憒鬧,常處寂靜故。
’言具足戒行不輕門者,所謂修行種種妙行,起深信心,不得輕賤如來所制師母戒故。如本‘修習少欲知足、
頭陁等行,乃至小罪心生怖畏,慚愧改悔,不得輕於如來所制禁戒故。’言守護不令誹謗門者,
所謂護持佛眼睛戒,終不破失,具足自利,種種放逸譏嫌衆生,不令發起妄想過罪,具足利他,
圓滿莊嚴大覺海故。如本‘當護譏嫌,不令衆生妄起過罪故’故。已說修行戒門,次說修行忍門。
就此門中,卽有二門。云何爲二?
一者顯示略忍伏我門,
二者顯示廣忍無我門。是名爲二。
言顯示略忍伏我門者,所謂若有衆生,造作惡阿世耶之境,令惱我心行者。
爾時,其心能忍不動惱故。如本‘云何修行忍門?所謂應忍他人之惱心,不懷報故。
’言顯示廣忍無我門者,所謂或有衆生,以飮食、衣服等種種財物,施與我所,利益歡樂。或有衆生,
以劍杖等種種怖相,來到我所,損滅我依正,令不得自在。或有衆生,以麤惡誹謗等種種穢語,若遠若近,
毀嫌於我。或有衆生,以正作等種種之德,讚歎我身。於如是等種種事中,其心平等,堅固不動,如須彌故。
如本‘亦當忍於利衰、毀譽、稱譏、苦樂等法,故’故。已說修行忍門,次說修行進門。
就此門中,卽有二門。云何爲二?
一者通示修行精進門,
二者別釋修行精進門。言通示修行精進門者,所謂於諸種種妙事,其心轉勝,勤欲精進,
終不息故。如本‘云何修行進門?所謂於諸善事,心不懈退,立志堅强,遠離怯弱故。
’就別釋修行精進門中,故有二門,云何爲二?
一者無障修行精進門,
二者有障修行精進門。言無障修行精進門者,所謂行者作如是念:我從無始過去時來,唯受虛妄不實身心
都不能受金剛不壞之身心者,無餘因緣,唯妙行中,不勤行故。我若懈怠,如前不行,向未來去,
亦復受都無有利益虛妄身心,無出離期。我自身尚不得出離,都失自利,何況救濟所餘種種有苦衆生,
具足利他?作是念已,卽便發起大精進心,修行行因之海,莊嚴滿德之果。建立兩利,無闕偏故。
如本‘當念過去久遠已來,虛受一切身心大苦,無有利益。是故應勤修諸功德,自利利他,速離衆苦故。
’言有障修行精進門者,所謂若有衆生,有無始過去之餘業障故,爲魔外道及惡鬼神之所惱亂,不能修行。
或有衆生,爲現在世種種事務之所牽纏,不能修行。或有衆生,爲一切諸種種病苦之所逼惱,不能修行。
如是等諸衆生雖耳聽聞軌則尊辭,眼中觀見文教說相,而不能勤修行,生厭求心。然若其心勇猛精進,
發起種種勝妙方便,存堪任心,業障之海漸漸波息,功德之嶽彌彌峯高,八風不飄,九結不縛故,如本‘復次,
若人雖修行信心,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爲魔邪諸鬼之所惱亂,或爲世閒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有如是等衆多障㝵。是故應當勇猛精勤,晝夜六時,禮拜諸佛,誠心懺悔勸請,
隨喜迴向菩提,常不休廢,得免諸障,善根增長故’故。已說修行精進門,次說修行止觀門。
就此門中,卽有四門。云何爲四?
一者摠標摠釋止輪門,
二者摠標摠釋觀輪門,
三者略釋決擇隨順門,
四者廣釋決擇止輪門。是名爲四。
言摠標摠釋止輪門者,謂止慮知之心,㝵散亂之思,安住於一中寂靜性,不出於一切境界、相,隨順定標陁,
阿羅觀義故。如本‘云何修行止觀門?所言止者,謂止一切境界相,隨順奢摩他觀義故’故。
言摠標摠釋觀輪門者,謂明揀擇因緣之道理,審分別無常之形相,能善通達,能善遍知,
隨順觀標陁#阿羅觀義故。如本‘所言觀者,謂分別因緣生滅相,隨順毘跋舍那觀義故’故。
言略釋決擇隨順門者,謂定隨時,彼觀卽順,觀隨時中,彼定卽順,具足具足,不離轉故。如本‘云何隨順?
以此二義,漸漸修習,不相捨離,雙現前故’故。
就廣釋決擇止輪門中,卽有四門。云何爲四?
一者成就止輪因緣門,
二者直示修行止輪門,
三者修行止輪得益門,
四者揀入不入分際門。是名爲四。
就第一成就止輪因緣門中,卽有十五種。云何爲十五?
一者住處寂靜因緣,
二者獨一不共因緣,
三者所居方善因緣,
四者衣服具足因緣,
五者飮食具足因緣,
六者結界護淨因緣,
七者舍宅造立因緣,
八者言語不出因緣,
九者坐像造立因緣,
十者坐其座中因緣,
十一者出入時節因緣,
十二者知識善友因緣,
十三者印知邪正因緣,
十四者植善林樹因緣,
十五者字輪服膺因緣。是名十五種大因緣。
言住處寂靜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居山林等空閑處中,遠離散亂聚落處故,所以者何?散亂處中,
彼止輪門難成就故。言獨一不共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一界內中,二人共住,不得理故。所以者何?
互動煩故。言所居方善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居止東西之兩方中,南北方中,不得居故。所以者何?
有覺輪故。言衣服具足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必當用三種衣故。
云何爲三?
一者黃色,
二者赤色,
三者白色。
如是三衣一時用故。所以者何?毘叉羅虫不能入故。言飮食具足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
必當用乾練伽摩伊陁耶所餘穀等,不能用故。所以者何?彼伽摩伊陁耶有仙性故。復次,若無用婆尼羅等故,
受用時節,唯用自中,無有定故。言結界護淨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離自居室一俱盧舍量中,
誦一百十遍大神呪。其相云何?謂卽誦呪言:咃那羅帝 婆叉尼 阿摩㖿迦陁帝婆婆阿阿婆婆𡄣陁 闍佉那 鄔呵伊陁帝奄奄奄奄帝 哆跋陁陁㖿 摩那尸只帝奢陁尼筏 叉羅尼鳩訶阿訶鳩多㕧奄啊陁陁帝 摩訶伽耶帝 摩訶阿伽耶帝鍵多尼 阿羅羅羅羅羅羅羅羅羅羅羅阿帝娑婆呵若誦此呪已訖,卽便結界護淨。
所以者何?種種毒類不能入故。
言舍宅造立因緣者,謂若爲造修定舍宅,當具十事。云何爲十?
一者門戶事,唯向東方,非餘方故。
二者高下事,東方漸高,西方漸下故。
三者方角事,於一方中,各一丈故。
四者品重事,重十重故。
五者作物事,唯用五種,非餘種故。
云何爲五?
一者金,
二者銀,
三者銅,
四者鐵,
五者松木。是名爲五。
六者戶塌事,等其地量,無差別故。
七者戶重事,重十戶故。
八者戶樞事,無音聲故。
九者壁牆事,其高一丈,重十重故。
十者出入事,彼諸戶中,各誦呪故。
其相云何?謂若爲出,卽誦呪言:喃嚤㖡帝 摩訶鳩毘那 呵阿羅婆提陁陁阿伽度 般枳阿枳尼 遮娑䛏諾帝婆枳摩毘摩 婆枳摩阿那 阿那尸枳尼尸枳 娑婆呵。若此神呪誦一千遍,卽便順時,皆悉開通,若爲入時,
卽誦呪言:南旡喃枳那 南旡筏尸陁 南旡諵何帝南無諵阿唎那 南旡鍵陁尼娑婆呵。
若此神呪誦一千五百遍已訖,卽便順時,皆悉關閉。 言言語不出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於一切時,
於一切處,不出言故。所以者何?隨其言說,心識出故。 言坐像造立因緣者,謂若爲造修定,坐像當具五事。
云何爲五?一者作物事,用松木故;
二者高量事,如自身半不增減故,
三者方角事,於一方中,各四尺故;
四者方向事,唯向東方,非餘方故;
五者坐上具事,唯用黃陁羅帝及黃坐具故。是名爲五。
言坐其座中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當具十事,坐其座中。云何爲十?
一者足等事兩膝末中,其兩母指互相契,當令無差故;
二者膝等事兩膝平攝,令無差故;
三者腰端事其腰端直,無𤰭▼(出+面)故
四者手累事兩手相對,右手爲下,左手爲上,左手爲下,
右手爲上,經一日已,互互易變,不忘失故,亦復其手置根上故;
五者頸端事其頸之質端直,不動定建立故;
六者面端事其面相貌,不仰不俯,令平相故;
七者口相事其口之相不癀不狹,開中閒故;
八者鼻相事出其氣息,令無差違,不出一故;
九者眼相事其眼根量,不上不下,平等舒故;
十者止眼事置其眼處,安置大虛空字輪中,恒不離故。是名爲十。
言出入時,節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唯用辰及午之二時,此餘時中,不出入故。言知識善友因緣者,
謂若爲修彼止輪門,深智慧,人以爲友故。言印知邪正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隨至像量須金剛印,
卽便了知邪及正故,其相云何?謂卽誦呪言:怛姪咃謾那鄔陁帝 婆羅枳陁尼 遮㕧𡄣哆耶掩阿尸帝那娑婆呵若此神呪誦四千六百五十遍已訖,卽彼像中,付二字輪。謂若邪人,付邪字輪,若正直人,付正字輪,以之爲別。
言植善林樹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人,自室前中,植二種大吉祥草故。云何爲二?
一者松木,
二者石榴木。是名爲二。言字輪服膺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人,必當服▼(囗*(王/玨))字輪而已,服何處耶?謂方寸處故。以何義故,必付此輪?謂此字輪三世諸佛、無量無邊一切菩薩大恩師長、大恩父母、大恩天地、
大恩海故,此因緣故,爲修止人當付此輪。如是因緣,雖有無量,而今此摩訶衍論中,明第一因緣,不明餘者。擧初攝後故,如是而已。如本‘若修止者,住於靜處故。’已說成就止輪因緣門,次說直示修行止輪門。就此門中,卽有七門。
云何爲七?
一者存心決定門,不生不滅,眞空理中,其心定故。如本‘端坐正意故。
’二者不著身體門,能善通達此身空無,其本自性不可得故。如本‘不依氣息,
不依形色,不依於空,不依地、水、火、風故。
’三者不著心識門,能善通達慮知之心,自性空無,無所有故。如本‘乃至不依見聞覺知,一切諸想隨念皆除
,亦遣除想’故。自此已下,作其身心空無因緣。如本‘以一切法本來無相,念念不生,念念不滅,
亦不得隨心,外念境界故。
’四者不著不著門,能遣之心亦遣除故。如本‘後以心除心故。
’五者集散會一門,攝散動心,置一中故。如本‘心若馳散,卽當攝來,住於正念故。
’六者顯示正念門,顯示諸法唯一心故。如本‘是正念者,當知唯心無外境界,卽復此心亦無自相,念念不可得故。
’七者不離恒行門,如是定心於一切時,於一切處,常恒相續,不捨離故。如本‘若從坐起去來進止所作,
於一切時,常念方便,隨順觀察’故。已說直示修行止輪門,次說修行止輪得益門。謂若有人,能修此定,
漸漸轉轉,竭煩惱海,崩業障嶽,入眞如定,達一切法,到不退故。如本‘久習淳熟,其心得住,以心住故,
漸漸猛利,隨順得入眞如三昧,深伏煩惱,信心增長,速成不退故。’已說修行止輪得益門,次說簡入不入分際門。就此門中,卽有二意。云何爲二?
一者入趣意,
二者不入意。言入趣意者,所謂或有衆生,趣入深法,心無所疑。或有衆生,聞甚深法,其心決定,不生不信。或有衆生,聞甚深法,卽便尊重,不生誹謗。或有衆生,無重業障。或有衆生,無我慢心。或有衆生,
無懈怠心。如是六人,入佛種性,決定不疑。是名入趣意焉。言不入意者,所謂若有衆生,此六相違,
永斷絕三寶之種子#決定不疑。是名不入意焉。如本‘唯除疑惑、不信、誹謗、重罪業障、我慢、懈怠,
如是等人所不能入故。已說略問廣答散說門,次說讚歎三昧殊勝門。
就此門中,卽有二門。云何爲二?
一者體大無邊殊勝門,
二者眷屬無盡殊勝門。是名爲二。
言體大無邊殊勝門者,修此三昧,通達一切無量諸佛法,同體一相,無差別故。如本‘復次,依此三昧故,
則知法界一相。謂一切諸佛法身與衆生身,平等無二,卽名一行三昧故。’言眷屬無盡殊勝門者,
所謂卽是眞如三昧,能爲一切無量無邊金剛三昧,作正根本,而能出生增長故。如本‘當知眞如是三昧根本,
若人修行,漸漸能生無量三昧’故。釋摩訶衍論卷第八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석마하연론』 8권(ABC, K1397 v37, p.1059a01-1064b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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