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하반야바라밀경_12. 구의품(句義品),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 온갖 법의 종류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구의 뜻이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니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가운데에는,
뜻[義]이 있는 곳도 없고
또한 나[我]도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어구의 뜻이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새가 허공을 날 적에 발자국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꿈속에서 보는 것이 처소(處所)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환(幻)에 진실한 뜻이 없고,
마치 아지랑이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부처님께서 변화시킨 것에 진실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여(如)와
법성(法性)과
법상(法相)과
법위(法位)와
실제(實際)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幻人]에게
물질은 뜻이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눈[眼]은 뜻이 없고,
나아가 뜻[意]은 뜻[義]이 없는 것처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빛깔[色]은 뜻이 없고
나아가 법(法)까지도 뜻이 없으며,
눈의 접촉[眼觸]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意觸因緣生受]까지도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 내공(內空)을 행할 때에 뜻이 없고
,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을 행할 때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 4념처(念處)에서 18불공법(不共法)에 이르기까지를 행할 때에도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ㆍ아라하(阿羅訶)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에게 물질이
뜻이 없음은 이 물질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에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뜻이 없음은,
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눈은 처소가 없고 나아가 뜻까지도 처소가 없으며,
빛깔에서 법에 이르기까지는 처소가 없고, 눈의 접촉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까지도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에게 내공(內空)은 처소가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가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에게 4념처는 처소가 없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가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유위의 성품[有爲性] 가운데에는 무위의 성품[無爲性]의 뜻[義]이 없고,
무위의 성품 가운데에는 유위의 성품의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不生不滅] 뜻에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짓지 않고[不作]
벗어나지 않고[不出]
얻지 않고[不得],
더럽지 않고[不垢]
깨끗하지 않다[不淨]는 뜻에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법이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으며,
어떤 법이 짓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얻지 않고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으며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까지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입(入)과 계(界)가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며,
4념처가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며,
18불공법이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나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4념처의 청정한 뜻[淨義]을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4정근(正勤) 내지 18불공법의 청정한 뜻을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청정함 가운데에서 나[我]를 얻을 수 없음은 나가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청정함 가운데에서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를 얻을 수 없음은 알거나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해가 나왔을 때는 어둡고 캄캄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겁의 불길로 태워질[劫燒] 때에는 온갖 물건이 남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계율[戒] 가운데에는 파계(破戒)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선정[定] 가운데에는 산란한 마음이 없고, 부처님의 지혜 가운데에는 어리석음이 없으며,
부처님의 해탈 가운데에는 해탈 아님이 없고, 해탈지견 가운데에는 해탈지견 아님이 없는 것처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부처님의 광명 가운데에는 해와 달의 광명이 나타나지 못하고,
부처님의 광명 가운데에는 사천왕천(四天王天)ㆍ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
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범중천(梵衆天) 내지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등의 광명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처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보살과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과 이 온갖 법은 모두가,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一相]이어서,
이른바 모양이 없기[無相]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의 막힘없는 모양[無礙相] 가운데에서 배워야만 하고 또한 알아야만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온갖 법이며, 어떻게 온갖 법 가운데에서
장애 없는 모양[無礙相]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법이라 함은,
착한 법[善法]ㆍ
착하지 않은 법[不善法],
기법(記法)ㆍ
무기의 법[無記法],
세간의 법[世間法]ㆍ
출세간의 법[出世間法],
유루의 법[有漏法]ㆍ
무루의 법[無漏法],
유위의 법[有爲法]과
무위의 법[無爲法],
공통하는 법[共法]과
공통하지 않은 법[不共法]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온갖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온갖 법의 장애 없는 모양[無礙相] 가운데에서 배워야 하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함은,
부모에게 효순(孝順)하고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에게 공양하며,
높은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면서,
보시로 복 짓는 곳[布施福處]ㆍ
계율을 지니어 복 짓는 곳[持戒福處]ㆍ
선정을 닦아 복 짓는 곳[修定福處]과
복 짓는 일을 권하고,
인도하며 방편으로 복덕을 내는 것과,
세간의 10선도(善道)이니라.
그리고 아홉 가지 모양이란,
창상(脹相)과
혈상(血相)과
괴상(壞相)과
농란상(濃爛相)과
청상(靑相)과
담상(噉相)과
산상(散相)과
골상(骨相)과
소상(燒相)이며,
4선(禪)ㆍ
4무량심(無量心)ㆍ
4무색정(無色定)과
염불(念佛)ㆍ
염법(念法)ㆍ
염승(念僧)ㆍ
염계(念戒)ㆍ
염사(念捨)ㆍ
염천(念天)ㆍ
염선(念善)ㆍ
염안반(念安般)ㆍ
염신(念身)ㆍ
염사(念死) 등이니,
이것을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착하지 않은 법인지요?”
“남의 목숨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이간질을 하고 거친 말을 하며,
때 아닌데도 말을 하고 탐욕을 내며,
괴롭히고 해치고 삿된 견해를 내는 등
이 10불선도(不善道) 등 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기법(記法)인지요?”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 등이니,
이것을 유기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기의 법[無記法]인지요?”
“무기의
신업(身業)ㆍ
구업(口業)ㆍ
의업(意業)과,
무기의 4대(大)와,
무기의 5중(衆)ㆍ
12입(入)ㆍ
18계(界)와 무기의 과보이니,
이것을 무기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세간의 법[世間法]인지요?”
“5중(衆)ㆍ
12입(入)ㆍ
18계(界)ㆍ
10선도(善道)와,
4선ㆍ
4무량심ㆍ
4무색정이니,
이것을 세간의 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출세간의 법[出世間法]이라 하는지요?”
“4념처(念處)ㆍ
4정근(正懃)ㆍ
4여의족(如意足)ㆍ
5근(根)ㆍ
5력(力)ㆍ
7각분(覺分)ㆍ
8성도분(聖道分)과
공해탈문(空解脫門)ㆍ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ㆍ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과,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
지근(知根)ㆍ
지이근(知已根)의 3무루근(無漏根)과,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ㆍ
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ㆍ
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의
3삼매(三昧)와
명(明)ㆍ
해탈(解脫)ㆍ
염(念)ㆍ
혜(慧)ㆍ
정억념(正憶念)이니라.
다시 8배사(背捨)가 있느니라.
무엇이 8배사인가?
안으로 물질의 모양[色相]이 있고 밖으로 물질을 관함은 첫 번째 배사요,
안으로는 물질의 모양이 없고 밖으로 물질을 관함은 두 번째 배사요,
청정한 해탈을 몸으로증득함은 세 번째 배사이니라.
온갖 물질의 모양을 초월하는 까닭에 온갖 대함이 있는 모양을 없애고,
일체의 다른 모양을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감은 네 번째 배사요,
온갖 무변허공처를 초월하여 온갖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들어감은 다섯 번째 배사요,
온갖 무변식처를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감은 여섯 번째 배사요,
온갖 무소유처를 초월하여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감은 일곱 번째 배사요,
온갖 비유상비무상처를 초월하여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감은 여덟 번째 배사이니라.
다시 9차제정(次第定)이 있느니라.
무엇이 아홉인가?
욕계(欲界)의 삿된 법을 떠나 거친 생각[覺]도 있고 세밀한 생각[觀]도 있으면서,
애욕을 여읨에 의해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느니라.
모든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없어지고 안으로 청정하기 때문에 한마음이 되면서,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이, 집중[定]에 의해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제2선(禪)에 들어가느니라.
기쁨을 여의는 까닭에 무관심[捨]을 행해 몸의 즐거움을 느끼는,
이른바 성인이라면 그 안에서 능히 말하기도 하고 능히 생각을 버리기도 하면서,
몸의 즐거움을 행하는, 제3선에 들어가느니라.
즐거움과 괴로움이 끊어지는 까닭에, 이전에 있었던 기쁨과 근심이 없어져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채 무관심한 염만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가느니라.
일체의 물질의 모양[色相]을 초월하고 대하는 모양을 없애며,
일체의 다른 모양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가느니라.
일체의 무변허공처를 초월하여 일체의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무변식처를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무소유처를 초월하여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초월하여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가느니라.
다시 출세간의 법이 있나니,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와
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ㆍ일체지(一切智)이니,
이것을 출세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루의 법[有漏法]인지요?”
“5수중(受衆)과,
12입(入)과,
18계(界)와,
6종(種)ㆍ
6촉(觸)ㆍ
6수(受)와
선(禪) 내지,
4무색정(無色定)이니,
이것을 유루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루의 법[無漏法]인지요?”
“4념처 내지,
18불공법과
일체종지(一切種智)이니,
이것을 무루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위의 법[有爲法]인지요?”
“법으로서,
나고[生]ㆍ
머무르고[住]ㆍ
없어지는[滅]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5중(衆)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과,
4념처로부터 18불공법까지와,
일체지(一切智)이니,이것을 유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위의 법[無爲法]인지요?”
“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과, 음욕의 마음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한 것과,
여(如)ㆍ불이(不二)ㆍ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실제(實際)이니,
이것을 무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공통되는 법[共法]인지요?”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의 이와 같은 것 등이니.
이것을 공통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공통되지 않는 법[不共法]인지요?”
“4념처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이니, 이것을 공통되지 않는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자상이 공한 법 가운데에서 집착하지 않아야 하나니,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또한 온갖 법의 둘이 아닌 모양[不二相]을 알아야 하나니,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이것을 보살의 이치[義]라 하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