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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약물 복용과 다제약물관리사업
남두현 / 약학부
명예교수회에서 약에 대한 특강 요청을 받고 「노인과 약물」이라는 내용으로 발표하였다. 특강 후 늘푸른나무 편집위원장으로부터 발표 내용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았다.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물질은 신체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5대 영양소는 우리 체내에서 대사된 후 신체 구성성분이 되거나 에너지원으로 이용되지만, 그 이외 물질들도 신체 여러 부위에 여러 다양한 생리학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중 인체 세포에 유용하게 작용하여 그 기능을 개선하거나 향상시킴으로써 질병을 치유하는 성질을 약성(藥性)이라 하며, 이와 반대로 해롭거나 불리한 영향을 미쳐 그 기능을 해치는 성질을 독성(毒性)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 물질은 약성과 독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바, 그 물질의 약성이 독성보다 클 때 약(藥)이라고 하며, 반대로 독성이 약성보다 클 때 독(毒)이라고 부른다. 많은 경우 소량 섭취할 때는 약성을 보이지만 과량 섭취하면 독성을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질병 치료에 이용되는 다양한 약들도 질병을 치료하는 유효성(약성)이 인정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 독성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복용 시 여러 형태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새로운 물질이 약으로 승인받기 위해서는 전임상시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부작용(독성)이 거의 없음(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럼에도 모든 약은 영양소와 달리 100% 부작용이 없을 수가 없어서, 제약회사들은 의약품의 설명서에 사용상 주의사항, 부작용, 금기사항 등의 내용을 깨알같이 기술하여, 최악의 경우 책임을 면하려는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전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를 맞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여기에서는 노인의 약물 복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노인 신체는 기계가 노후화하듯이 노화 과정을 맞게 된다. 따라서 신체 곳곳이 서서히 퇴화하면서 여러 질병이 나타나게 되는데,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만성질환 수가 1개인 사람은 18%, 2개인 경우는 22%이며, 3개 이상의 만성질환자는 51%로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므로 90%에 달하는 노인들은 이러한 질환들을 극복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약물들을 복용하게 된다.
하지만 노인의 신체는 일반 성인들보다 약물의 흡수, 대사 및 배설 단계에서 취약한 면을 지니고 있기에 약물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노인의 경우 약물 경구 복용 시 성인보다 위장관 기능이 떨어져 위산 산도가 높고 연동운동이 떨어지며 약물 흡수 면적이 작기에, 약물이 혈류로 천천히 이행하여 약물의 체내 반감기가 늘어나고 생체이용률이 증가하게 되어 부작용 발생 확률이 커진다. 또한 약물 분포 면에서도 체내 총수분량이 적어 체지방율이 증가하면서 지용성 약물의 반감기가 길어지고, 또한 혈청 알부민 양도 낮아져 체액 내 유리형 약물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약물 부작용에 취약해진다. 간 대사 과정에서도 간 중량이 감소하고 혈류량도 작아져 약물의 간 초회 통과량이 낮기 때문에, 약물의 해독력이 떨어지고 체내 반감기가 증가한다. 나아가 신장 혈류량도 떨어지고 사구체 여과율과 세뇨관 분비량이 감소하는 등 신장 기능도 떨어져 약물의 체내 잔류시간이 길어진다. 따라서 노인들은 일반 성인들과 비교해 볼 때 일반적으로 약물에 취약한 신체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노인들은 여러 만성질환으로 인해 여러 약물을 동시에 복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여기에 한국인의 약물 선호 사상이 반영되면서, 환자에게 불필요하거나 과량의 약물이 처방되고 투여되는 경향을 보인다. 나아가 만성질환으로 인해 약물을 장기간 복용함에 따라 새로운 부작용 증상이 나타나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른 약물들이 추가되면서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현상으로 진행되게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땨르면 2022년 다제약물 복용 노인 환자 수는 1,175,130명에 달하는데, 특히 75세 이상 환자 중 5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노인 환자 비율은 64.2%에 달해 OECD 평균 48.6%보다 훨씬 높다. 이러한 수치는 포르투칼 73.0%, 이탈리아 64.7%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통계이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추적 연구 조사 결과, 1~2개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는 자에 비해 5개 이상 약물 복용하는 노안의 입원 위험률이 18%, 사망 위험률이 25% 증가하며, 10개 이상 약물 복용하는 경우 입원 위험률이 45%, 사망 위험률이 54%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약사회에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다제약물관리사업을 시작하였다. 다제약물관리사업은 '건강보험가입자 중 만성질환을 1개 이상 진단받고 상시(6개월간 투약 일수가 60일 이상)로 복용하는 약 개수가 10개 이상인 자'를 대상으로 대상자에게 약물 점검, 상담, 처방 조정 등을 진행해 중복, 과다 및 과소 약물 복용을 줄이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8년 '올바른 약물이용 지원사업'으로 시작하였던 것이었지만, 대한약사회와 2019년 협약을 체결하여 ‘다제약물관리사업’으로 확대 시행하게 되었고, 현재 7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 사업은 여러 건의 처방 조제 의약품,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등의 복용 상황을 총괄적으로 검토하여 여러 가지 만성질환이 있는 대상자가 가정에서 안심하고 약물을 복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빅데이터로부터 건강보험가입자 중 만성질환을 1개 이상 진단받고 상시로 복용하는 약 성분이 10개 이상이며 6개월간 투약일수가 60일 이상인 자를 발췌한 후 연락을 취하여 동의서를 회신하거나 또는 유선으로 신청한 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약물 관리가 필요하다고 추천한 의사나 약사 판단에 의해서도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다제약물관리사업 대상자를 등록하고, 상담 일정을 관리하며, 대상자의 가정방문을 지원하는 한편, 자문약사는 가정을 방문하거나 약국 내방 시 복약 상담하여 복용 상태를 모니터링하게 된다. 이에 자문약사는 약물 복용에 관한 상담기록지를 작성하고, 필요시 의사-약사 협업을 통해 약물 점검 및 중재를 실시한다. 또한 자문약사는 약물 복용 방법을 안내하며, 복용이 쉽도록 약물을 정리해 주고,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및 환자 보관 중인 기타 약에 대한 유효기간 경과 여부를 확인해 준다. 특히 지퍼백 및 용법 메모 라벨지를 이용하여 약물을 정리하고 필요시 복용 목적을 기재하도록 하여 잘못 복용하지 않게 교육한다.
다제약물관리사업에 참여하는 자문약사는 노인 대상자 상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노인 환자의 약물투여 지침(MASTER 전략)을 고려하여 약물 복용을 자문해 줘야 한다.
① 가능한 약물의 종류/수를 최소화 (Minimize number of durgs)
② 노인에 가장 적합한 약품을 고려 (Alternatives should be considered)
③ 낮은 용량에서 시작하여 점진적 증량 (Start low and go slow)
④ 환자 반응에 따라 용량 조절 (Titrate therapy)
⑤ 환자 교육 (Educate patient)
⑥ 정기적 모니터링과 재평가 (Review regularly)
이와 함께 자문약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공동으로 제공하는 노인 약물 복용 십계명을 명심하여 노인 환자들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 사용을 안내하게 된다.
① 의사나 약사의 지시에 따라 약물을 저용량부터 사용
② 의사의 처방에 의한 약 구입 권장
③ 여러 약물을 복용할 경우, 의료기관 방문 시 복용 중인 약물을 기록하여 제시하고 약물간 상호작용을 체크받도록 유도
④ 약물 복용을 중단하거나 추가로 복용 시 반드시 의사아 약사와 상의가 필요함을 주지
⑤ 약물복용표를 그려 잘 보이는 곳에 두어 복용을 잊지 않도록 관리
⑥ 외용제인지 내복약인지 확인하고 기록
⑦ 만성질환약은 꾸준히 복용하도록 지시
⑧ 이상반응 발현 시 즉시 의사 또는 약사에게 전달할 것을 요청
⑨ 약물은 직사광선이 비치지 않는 건조한 곳에 보관하며, 반드시 지시 사항에 따라 보관하도록 안내
⑩ 유효기간이 지난 약은 반드시 폐기하도록 고지
노인 환자들은 복약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복용하는 약물의 수가 많거나 식전, 식사 직후, 식후 30분 등 다양한 시간대에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약의 복용법이 까다롭거나 복잡할 경우 복용 여부를 잊어버리거나 빠뜨리기 쉽기 때문에, 일상생활과 연관하여 복용 시간과 용법을 최대한 간편하게 설명하고 약 보관용 박스, 용법 메모 라벨지를 제공하여 올바르게 약물을 복용하도록 안내해 준다. 필요시 보호자에게도 복약 방법을 알려주고, 복용을 잊었을 때 대처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 준다.
나아가 노인 환자의 약물치료 전 과정에서 올바르고 효과적인 약물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게 위험요인과 방해 요소를 파악하여 이에 대한 예방 및 해결책을 찾아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약물요법의 위해 요인, 환자 요인, 약물 요인, 질병 요인, 자기관리 및 건강행태 요인 등을 고려하여 환자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도록 교육하고 환자를 상담한다. 나아가 처방 검토를 통해 의학적 적응증 없는 경우, 중복약물, 회피 가능한 유해반응 여부, 약물중독, 남용 등 불필요한 약물을 파악하여 약물 변경이나 약물 조정을 추천할 수 있다. 그리고 환자의 연령 및 체격과 신장 및 간 기능 상태를 고려하여 과도한 용량, 이상반응, 부정확한 투여, 알레르기 반응, 환자에게 안전하지 않은 약물, 금기 약물 등을 검토하고, 약물 간, 질병 간, 음식 간, 건강기능식품 간 상호작용 등도 조사하는 등 약물요법을 적절히 관리하도록 상담해 준다.
자문약사는 노인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제대로 약물을 복용하는지를 확인하고, 처방전 용법과 비교하여 복용 상 어려움이나 문제점이 없는지를 파악하여 복약 지도하고 교육한다. 나아가 노인 환자가 복용하는 약물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상담해 준다. 약물상호작용(Drug interaction)이란 한 약물의 효과가 다른 약물, 음식물, 건강보조식품 등 다른 물질에 의해 변형되는 것으로 약물-질병 상호작용, 약물-약물 상호작용, 약물-음식물 및 약물-건강보조식품 상호작용 등으로 분류되며, 병용 시 약물 간 상호작용으로 그 작용이 증강(상승작용) 또는 감약(길항작용)하게 됨에 따라, 이상반응이 증가하거나, 새로운 이상반응이 발생하거나, 또는 원 질환이 악화되는 등의 임상적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환자의 임상적 상태에 유해하거나 불리한 약물상호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경우, 병용투여되는 약물의 숫자를 최소화하도록 권고해 준다. 그리고 약물 병용요법 중 환자 상태가 악화될 경우 유해 약물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주의깊게 관찰하여 확인해야 한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다제약물관리사업을 처음 지역약사 모형부터 시작하였으며 2019년 의원 모형을 실시하였고, 2022년에 이들을 통합하여 지역사회 모형으로 발전시켰다. 이와 함께 2020년에 7개 병원을 대상으로 병원 모형을 처음 도입한 이래 2025년 현재 전국 71개 병원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나아가 2025년 들어 22개소 장기요양시설 입소자를 대상으로 장기요양시설 모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제약물관리사업은 개선해 나가야 할 다양한 과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주요 한계점으로 △약사와 의사 간 연계 부족 △약력 확인의 어려움 △약물 개수 기준에 따른 대상자 선정의 한계 등이 지적되고 있다. 약사-의사 간 연계 부족으로 인해 약물 문제를 발견해도 처방 조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약사와 의사가 협업할 수 있는 공유 플랫폼이나 소통 창구 마련이 필요한 형편이다. 또한 다제약물관리사업은 건강보험 심사를 청구한 자료 중 심사가 완료된 데이터만 활용하고 있어, 현재 복용 중인 약을 확인이 안 될 수 있으므로, “내가 먹는 약 한눈에'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약물 복용 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이므로 대상자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전산 시스템을 개선하여 고령 대상자들의 개인정보 인증 절차를 간소화하여 약물 정보에의 접근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다제약물관리사업은 10개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10개 미만의 약물을 복용하는 대상자에서도 부적절한 약물 사용이 상당히 발견되고 있으므로, 5~6개 이상을 다제약물로 제시하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적용하여 대상자 선정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의 다제약물관리 체계는 대부분 의료인이 처방, 조제 단계에서 1차적으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Drug Utilization Review)를 통해 중복의약품과 약물 상호작용 및 용량을 점검하며, 이후 추가적으로 환자의 동의하에 개인 투약이력 정보를 통합적으로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약사는 처방 조정권이 없기에 대부분의 약물 중재활동은 약사의 처방 검토 후 처방의에게 일일이 유선으로 연락해야 하며, 그것도 처방 조정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형편에 있다.
호주는 의료인 간에 온라인으로 투약 정보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e-referral'이란 시스템을 통해 의사-약사가 함께 진료-처방-조제-복약의 각 단계에서 언제든 환자의 상태를 의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때 약사의 역할이 처방 이후에만 국한되지 않기에 중복처방을 방지하고, 그 과정에서 의사-약사 간에 공유된 내용으로 약물 중재를 요청할 대상 의료기관을 쉽게 특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약사가 약사공유의약품목록(Pharmacist shared medicine list)에 포함되지 않은 일반의약품을 비롯한 건강기능식품 유사 군에 대한 환자의 약물 복용을 기재하고, 다른 의료인들이 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단골약국 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 중인데, 주거지 인근 단골약사는 특정 환자를 전담하여 전주기적으로 세밀하게 약력관리를 하며, 복약 상담을 통해 관리가 필요한 환자를 발굴해 나가고 있다. 영국에서는 다제약물 복용 환자에게 환자의 의약품 이해도를 향상시키고 약물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운영하는 의료안전사용서비스(MUR; Medication Use Review)를 통해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처방 의약품, 일반의약품, 건강보조식품 등 모든 약물 복용 현황을 약사가 파악하여 포괄적인 약물 관리를 수행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SCR(Summary Care Report)를 활용하여 의사-약사 간 환자의 처방 정보와 임상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제 다제약물관리사업은 고령화 사회에서 필수적인 서비스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또한 이 사업은 환자가 실제로 약을 올바르게 복용할 수 있도록 돕는 '조제 후 복약관리 서비스'로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자리잡은 중요한 서비스이다. 그러므로 해외 사례에서 얻은 시사점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국내 실정에 맞는 제도 개선을 통해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실정을 고려하여 일본처럼 노인 주거지 인근 약국을 단골약국으로 지정하여 다제약물 복용을 상담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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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수님, 연말이라 바쁘실 터인데 기억하시고, 날짜 지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원고를 게재하면서, 제 이야기이구나 싶어 읽고 또 읽고 하였습니다. 강의하실 때도 크게 공감을 얻으셨던 내용임은 물론이지만, 지금의 우리들 생활에 꼭 필요한 이 글이 널리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숙제 터심에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