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태초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우주, 자연현상, 인간, 문화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신화는 신비적인 논리와 상징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어 자칫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류학의 발달로 신화는 결코 거짓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기원을 안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신화를 통하여 고대인이 언어로써 사물에 이름을 붙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개념을 형성해간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곧 신화는 고대인의 사고방식과 세계인식, 그리고 문화발달 과정을 알려주는 면에서 아주 중요한 인류의 유산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는 모순에 가득 차 있다.’ 고 지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신화는 고대인의 종교이면서 과학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인들은 그들의 눈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개념을 형성하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그것을 후대에 물려주어 인류는 발전해 왔던 것입니다.
고대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신화(神話)는 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신화를 아주 중요하였습니다. 그것은 고대인들이 종교적인 의식을 통하여 소위 기적(奇蹟)이라고 불리는 초자연적인(超自然的)인 힘을 통제하고 공동의 안전과 번영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의식(儀式)은 시로 낭송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신화였던 것입니다. 즉 인류 최초의 문명이었던 수메르, 뒤를 이은 바빌론, 히브리의 제사장들은 신년 축제 때 그들 고유의 창조 신화를 주술적으로 암송하면서 신화적인 사건을 재연(再演)하여 만물의 재창조와 재생산의 힘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예컨대 <에니마 엘리쉬>라는 서사시를 보면 바빌로니아 인들은 최고신 마르둑의 창조 신화를 낭송하면서 신의 축복을 바랐으며, 히브리인들은 구약의 천지 창조 신화를 낭송하면서 민족의 무궁한 안전을 기원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원시 부족들은 성인식을 할 때 청년들에게 그들의 신화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족 구성원들이 함께 태초의 창조 행동 속에 다시 들어가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신화는 창조신화(創造神話), 기원신화(起源神話), 의례신화(儀禮神話), 영웅신화(英雄神話), 종말론신화(終末論神話) 등이 있습니다. 창조신화(創造神話)는 세계창조 신화입니다. 바빌로니아의 ‘에니마 엘리쉬’, 히브리의 ‘구약 창세기’ 등입니다. 기원신화(起源神話)는 어떤 관습이나 이름의 유래 곧 기원이 되는 시초를 설명하려던 신화입니다. 히브리의 ‘야곱의 음식 규정’, 그리스의 ‘향나무와 아네모네 신화’가 그 예입니다. 의례신화(儀禮神話)는 어떤 사건을 기념하려던 신화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출애급기를 기념하려고 유월절 축제를 지냈는데, 우리가 단군이 나라를 연 개천절을 기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영웅신화(英雄神話)는 히브리의 모세, 로마의 건설자인 레물루스,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우리나라의 단군, 주몽 등의 신화입니다. 종말론신화(終末論神話) 는 기독교의 요한계시록에 완벽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할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인데, 부활한 예수는 이 세상이 멸망하는 최후의 심판을 주재할 것이라는 신화입니다. 미륵불 사상도 종말론적인 신화입니다.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 시집에서 이조의 정신과 가치를 탐구한 뒤에 1960년에 <신라초>라는 시집을 간행하였는데, 이 시집에는 삼국유사의 신화적인 인물이나 전설적인 인물 등을 시로 써서 영원과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신라초(新羅抄)>는 ‘신라초(新羅抄)’, ‘고조(古調)’, ‘귓속말’, ‘무제(無題)’, ‘인연설화조(因緣說話調)’의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라초’에 등장하는 사소, 선덕여왕, 백결 선생, 수로부인, 연오랑과 세오녀 등은 모두 <삼국유사>에서 다룬 인물들입니다.
자, 이제 서정주가 <삼국유사>에서 만난 인물들을 통해서 그의 영원주의를 추적해 볼까요.
서정주의 사랑시 7-1 신화적인 인물들과의 사랑
우리나라의 신화는 수메르, 이집트, 히브리, 그리스 등의 창조신화나 개벽신화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시조신화가 강조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즉 신화적 인물인 조선의 시조 단군, 고구려의 동명성왕, 신라의 박혁거세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자손이거나 알에서 태어난 점에서 신비로운 면이 강하고 신화적인 요소가 뚜렷합니다.
원래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에는 창조신화나 개벽신화가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기록에 남아있지 않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직 무당들에게 구전되어 온 서사무가(敍事巫歌)에 그런 신화의 흔적을 보이고 있는데, 제주도의 천지개벽 신화, 함경도의 창세신화가 바로 이와 흡사한 신화입니다. 또 신(神)의 탄생신화로는 제주의 천지왕, 무속의 조상신인 바리데기, 저승신인 청천각씨, 기타 마을신인 당신, 삼신할미 같은 출산의 신, 질병신인 마마신, 조상신이 있습니다. 그 외에 집의 신인 터줏대감, 부엌신의 조왕신 등 무수히 다양한 신들이 있는 점을 볼 때 본다면 우리 민족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단군 신조신화 외에 고구려, 신라 등 나라의 시조인 동명성왕과 박혁거세 등의 출생에 대한 신화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정사(正史)이고 사대주의적인 <삼국사기>와는 달리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는 스님이라서인지 신기(神奇)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즉 단군신화에 보면,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여성으로 변한 곰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든지, 천부인(天符印) 세 개, 태백산(太伯山)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 내려와 연 신시(神市),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 농사․생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 살면서 정치와 교화를 베풀면서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아사달에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그 나이가 1904살이었다는 점’ 등은 신화적인 단군조선 개국의 영웅 신화의 성격이 강합니다.
일연 스님은 이를 ‘다른 나라처럼 우리 민족의 시조들이 보통 사람과 달라서 신기(神奇)하게 나셨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처럼 단군 신화와 함께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사소(娑蘇)는 신기한 인물인데,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도성모(仙桃聖母)는 본디 중국 제실(帝室)의 딸로 이름을 사소(娑蘇)라 하고 일찍이 신선(神仙)의 술법을 배워 해동(海東)에 와서 머무른지 오래나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부왕(父王)이 편지를 소리개의 발에 매어 부쳐 이르기를, ‘소리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지으라.’고 하였다. 사소가 편지를 보고 소리개를 놓으니 이 산에 날아와 멈추므로 쫒아와 집을 짓고 지신(地神)이 되었다. <중략> 사소가 처음 진한(辰韓)에 오자 성자(聖者)를 낳아 동국(東國)의 처음 임금이 되었으니, 아마 혁거세와 알영일 것이다.
1. 사소의 편지 서정주는 사소를 소재로 ‘사소의 편지 1’, ‘사소의 두 번째 편지 단편’, ‘꽃밭의 독백’이란 세 편의 시를 썼습니다.
꽃밭의 독백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게도 /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저자 주- 사소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 수행을 간 일이 있는데, 이 글은 그 떠나기 전 그의 집 꽃밭에서의 독백.)
이 시는 시인이 여성인 사소가 되어 사랑을 예찬하는 독백체의 작품입니다. 왜냐하면 꽃은 보통 여성의 비유인데, 문을 열라고 한 것은 바로 여성인 자기 육체의 사랑의 문을 열라는 뜻이고, 벼락과 해일의 길은 성행위의 쾌감을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표현은 ‘사소의 편지 1.’에서 문을 열고 신방을 들어가듯‘, 혹은 여기는 잊었던 내 살이라고’ 같은 표현에도 보입니다. 그런데 서정주는 단순한 육욕적인 애정에 끝나지 않고 영원으로 승화시키는 자세를 보입니다. 즉 ‘사소의 두 번째 편지 단편’에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를 썼습니다.
사소의 두 번째 편지 단편 서정주 피가 잉잉거리던 병은 이제는 다 나았습니다. // 올 봄에 / 매는 / 진갈매의 향수의 강물과 같은 / 한 섬지기 남짓한 이내의 밭을 찾아내서 // 대 여섯 달 가꾸어 지낸 오늘엔 / 홍싸리의 수풀마냥 피는 서걱이다가 / 비취의 별빛 불들을 켜고 / 요즈막엔 다시 생명의 광맥을 하늘에 폅니다. // 아버지. / 아버지에게로도, / 내 어린 것 불거내에게로도, 숨은 불거내의 애비에게로도, / 생명 광맥을 하늘에 폅니다.
지은이는 사소의 신선 수행 시절의 두 번째 편지라는 주를 달면서, ‘진갈매’는 진한 녹색 갈매, ‘이내’는 산기운 증청(蒸淸)한 하늘의 특수한 기운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는 화투장의 홍싸리 같이 괴롭히는 사랑의 피가 비취빛 불들을 켜면서 영원을 뜻하는 하늘의 이내로 승화시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광백입니다.
고대의 신화에서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는 모르는 경우가 아주 흔합니다. 이는 다른 동물들처럼 모계사회에서 부친이 누구인지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가장 힘센 수컷이 암컷과 교미를 하듯이 고대엔 부족장이나 추장, 혹은 영주(領主)나 도시국가의 왕이 신랑을 대신하여 신부의 초야권(初夜權), 즉 첫날밤을 치르는 사랑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 황진이를 사랑하다가 상사병에 걸려서 끝내 죽고 말았던 어느 가엾은 서생처럼 신라에서 선덕여왕을 사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이 걸린 뒤에 미쳐 버린 지귀(志鬼)라는 사내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신라 활리역 사람인데, 어느 날 서라벌에 나왔다가 여왕을 보고 사모의 정이 넘쳐, “아름다운 선덕여왕, 내 사랑이여!” 그처럼 외치고 다니다가, 어느 날 선덕여왕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가던 중에 여왕의 행차를 가로막은 지귀를 병정들이 잡았답니다. 그 소란을 들은 여왕은 지귀를 불러 알아보고, “나를 좋아한다니 참으로 고맙구나.” 하면서 행차를 따라오게 하였답니다. 하지만 여왕이 오래도록 기도를 올리는 동안 지귀는 지쳐서 탑 아래서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를 측은하게 여긴 여왕은 금팔찌를 벗어 지귀의 가슴에 놓아 병든 마음을 위로하였는데, 잠에서 깬 지귀는 금팔찌를 보고 가슴이 타 온몸에 불이 붙었고, 간신히 부여잡은 탑도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 뒤로 지귀는 화신(火神)이 되어 불을 지르면서 서라벌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선덕여왕은 주문을 지어 백성들이 대문에 붙이게 하여 화재를 막았답니다. 즉, ‘지귀의 마음의 불이 제 몸을 태워 불귀신이 되었으니, 마땅히 바다 밖에 추방하여 이제 다시 돌보지 않겠노라.’
1. 욕망의 상징인 불 지귀설화는 박인량의 <수이전>에 전하다가 지금은 <대동운부군옥>에 전합니다만 당시 신라에 불교적인 ‘술파가 설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면, 평민이 여왕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본래 ‘사랑 자체가 허망하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사랑을 불로 비유하여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니면 선덕여왕 때 일어난 영묘사의 화재사건과 관련해서 화재의 유래와 그 퇴치를 민간신앙과 연결지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최초로 왕이 된 여자지만 여왕의 능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서정주는 이 지귀와 선덕여왕을 소재로 <선덕여왕의 말씀>이란 시를 썼습니다.
선덕여왕의 말씀 서정주 짐의 무덤은 푸른 영(嶺) 위의 욕계(欲界) 제2천(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어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 데 - 그런 하늘 속.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어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데 - 그런 하늘 속.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너무들 인색치 말고 있는 사람은 병약자한테 자량(資糧)도 더러 노느고 홀어미 홀아비들도 더러 찾아 위로코 첨성대 위엔 첨성대 위엔 그중 실한 사내를 놔라.
하지만 사랑이거든 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 서라벌 천년 지혜가 가꾼 국법보다도 국법이 불보다도 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살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닿는 것 그중 빛나는 황금 팔찌를 그 가슴 위에, 다스리는 노래는 바다 넘어서 하늘 끝까지.
짐의 무덤은 푸른 영(嶺) 위의 욕계(欲界) 제2천(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어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데 -그런 하늘 속.
내 못 떠난다.
(지은이의 주 - 선덕여왕은 지귀라는 자의, 여왕에 대한 짝사랑을 위로해, 그 누워 자는 데 가까이 가 그의 팔지를 벗어 놓은 일이 있은 일이 있다. )
이 시는 시정주 자신이 실제 선덕여왕이 되어 참사랑을 예찬한 작품입니다. 즉 참사랑은 국법(國法)을 뛰어 넘는다는 표현이 그것인데, 이는 김유신의 누이동생이 결혼 전에 김춘추의 아이를 잉태한 죄를 선덕여왕이 용서한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면서 서정주는 여왕을 통하여 신라의 정신을 예찬하였는데, 그것은 자비심과 영원에 대한 탐구로 나타납니다. 바로 사회적인 약자인 병약자, 홀아비와 홀어미를 돌보아야 하는 것은 대승적인 불교정신입니다. 또한 서정주의 영원주의적인 표현은 ‘푸른 영 위의 욕계 제2천’, ‘첨성대’, ‘가슴 위의 금팔찌’, ‘바다 넘어 하늘 끝까지’ 등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인물을 찾아 영원한 사랑을 예찬하는 시를 써 보세요.
쑥부쟁이교실 1. 선덕여왕의 지혜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이야기가 전합니다.
신라 27대 덕만의 시호는 선덕여왕이요, 성은 김씨니 부친은 진평왕이었다. 정관 6년 임진에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린 지 16년 동안에 앞일을 미리 안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당 태종이 보낸 모란꽃 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을 것을 알아챈 일, 둘째는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서 겨울에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여근곡(女根谷)에 잠복한 백제의 병력들을 격퇴시켰고, 셋째는 자기가 죽을 해와 날짜를 대면서, “내가 죽으면 도리천 가운데 묻어라. 그 곳은 낭산 남쪽이다.”고 말하여 낭산 남쪽에 장사지냈더니, 10여년 뒤에 문무왕이 사천왕사를 여왕의 왕릉 아래에 세웠다. 불경에 이르기를 ‘사천왕 위에 도리천이 있었다.’ 고 하였으니, 과연 여왕의 영성(靈聖)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선덕여왕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자비로워서 백성들의 칭송과 찬사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진평왕이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신라 최초로 나이 43살에 여왕이 되어 가난한 백성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또한 선덕여왕은 자장율사를 국사(國師)로 모시는 등 불심(佛心)이 남달랐다고 하며, 거대한 황룡사를 세워 국력으로 백성들을 단합시켜 나라를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선덕여왕은 세 명의 남편이 있었으나 자식이 없어서 백성들에게 그 사랑을 쏟았는지도 모르며, 거대한 불사(佛事)와 가난한 자들에게 치우치는 것에 반대한 신하들이 두 번이나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