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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거룩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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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과 자복*
그러나 우리들은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골방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며 마치 루터가 하나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행한 것처럼 우리 자신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하여 우리들 자신에게 고행을 치르게 할 필요가 없다. 다음과 같은 문답의 말씀이 있다.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7, 8).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라고 말하였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요일 1:9)신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죄의 사유하심을 받지 못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범죄로 상함을 받으시고 우리의 허물로 찔림을 받으신 주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죄가 있다는 것과 주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의 깊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자복은 무한하신 동정심에 이르는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통회하는 자의 영혼을 구원하신다.
죄의 자복이 저희 인격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며 저희 동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감소되리라고 상상하는 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이러한 모순된 생각을 고집하므로 허물을 발견하고도 자복하지 않으며 오히려 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잘못된 행실을 묵과해 버린다면 저들은 자신의 생애에 고통을 가중(加重)시키는 것이 되며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 어두운 그늘을 던지는 것이 된다. 죄를 자복하는 일은 그대들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거짓된 위신을 떨쳐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거룩하신 바위이신 주님께 떨어져 부서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에게 참되고 신령한 위신을 주실 것이다. 교만, 자존심 및 독선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자복하지 못하고 허락의 말씀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하나님께 아무것도 숨기지 말 것이며 그대들의 형제들에게 범한 죄를 자복하는 일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아직도 많은 죄들이 자복하지 않은 채 마지막 심판의 날을 위하여 죄인에게 맞서고 있다. 오히려 지금 거룩한 희생자께서 그대들을 위하여 대속의 탄원을 하고 계실 때에 그대들에게 맞서고 있는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드시 배우도록 해야 한다. 그대들의 영혼의 건강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은 그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따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6, 7). 겸비하고 상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갈바리의 십자가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참여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이행하는 자들은 풍성한 축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항복을 명함
우리들은 하나님께 우리들의 심령을 항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새롭게 하시고 성화하게 하시며 하늘 궁전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은 어떤 특별한 시기를 위해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죄의 종이 되기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여러 번에 걸쳐서 매번 조금씩 죄를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아, 그 가증한 죄를 당장 버리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미워하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것들을 사랑하라. 주님께서 그대들을 죄에서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죽으심과 고난으로써 이미 섭리를 베풀어놓지 않으셨는가? 우리들이 죄인이며 신령하신 바위에 떨어져 부서진다는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때에 영원하신 팔이 우리들을 안아 주시며 우리들을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이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주님의 사랑에 매혹될 것이며 우리들 자신의 의에 대하여 지긋지긋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십자가의 바로 밑까지 가까이 갈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들 자신이 겸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고상하게 드러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하다고 느끼며 상당히 선하며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만족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거룩한 빛과 도우심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실 자리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가 있으시며 우리들은 당신의 영과 권능을 큰 분량으로 받을 수 있다. 독선의 찌꺼기를 주워먹지 말고 주님께로 가라. 주님께서는 그대들에게 입힐 가장 좋은 예복을 가지고 계시며 그대들을 받으시기 위하여 팔을 넓게 벌리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더러운 두루마기를 그에게서 벗겨버리고 새옷으로 갈아입히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회개한 죄인으로 나아가라
그러면 우리들이 정결함을 입었다는 느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것(요일 1:9)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확증을 받게 된다.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믿기 이전에 어떤 놀라운 감정의 변화가 있기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감정이란 구름처럼 변하기 쉬운 것이어서 감정을 그대들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신앙의 기초로서 확고한 무엇을 가져야만 한다. 주님의 말씀은 그대들이 의뢰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의 말씀이며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갈바리를 바라보라. 주님께서 그대들의 대언자가 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무엇이든지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면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대들은 결코 그대들 자신의 선이나 선행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 의탁하기 위하여 나와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의 죄를 씻겨 주셨고 당신의 의를 그대들에게 전가(轉嫁)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대들은 거룩하신 대언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회개한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나와야 하며 자비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늘 아버지에게 나올 때에 당신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행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자들은 문을 두드리고 자비의 보좌에서 기다리며 확고한 보장을 가지고 아,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나이다라고 말하라.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당신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갖기 원하신다.
주님께서는 가장 통속적이며 보편적인 사건을 인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요구를 얼마나 기꺼이 들으시며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하여 나타내 보여주시려고 애쓰셨다.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나타내는 육신적인 애정을 설명하심으로써 인간을 도우시려는 하나님의 자발적인 심령에 관하여 우리들에게 호소하셨다. 과연 어떤 아버지가 떡을 달라는 자기 아들의 요청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마치 당신의 자녀들의 요청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는 분처럼 상상하므로 하나님께 욕을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은 과연 부모를 마치 자기 자녀에게 잔뜩 기대만을 안겨 주었다가 실망시킴으로써 자기 자녀를 희롱하며 애태우는 자로 생각해도 좋을 것인가? 어떤 아버지가 맛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그의 자녀에게 주기로 약속했다가 돌을 줄 것이란 말인가? 만약 그대들이 비록 악한 인간들일지라도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주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당신께 구하는 자들에게 더욱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을 것인가? 주님께서는 당신께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보장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고 믿는 죄인의 자복을 당신 자신의 의와 혼합하시며 타락한 인간의 기도가 하늘 아버지 앞에 이르는 분향처럼 상달케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믿는 영혼에게 전가(轉嫁)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떨며 회개하는 영혼에게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그대들을 설득하도록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은 진실하신 창조주에게 그대들의 영혼을 보호해 달라고 주님께 맡기지 않을 것인가? 우리들은 다같이 나아가 주님의 얼굴의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할 것이며 마치 다윗처럼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하고 기도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그대들을 눈보다 더 희게 해줄 수 있으므로 믿음으로써 그대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라. 그러나 그대들은 이처럼 나의 모든 우상들을 깨끗이 포기한다면 나의 마음은 찢어질 것이다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의 자세를 신령하신 반석 위에 떨어져 부서지는 것으로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라. 그대들이 부서지지 않는 한 그대들은 무가치한 자들이 될 것이다.
그대들이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렘 2:13)에서 돌아설 때, 그대들의 대언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나아와 그대들이 필요한 것들을 간구할 때, 그리스도의 의는 그대들의 의로 나타날 것이며 그리스도의 공로는 그대들의 공로로 나타날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그대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며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품성의 완전하심이 나타나 있고 주님의 생애 가운데 신성의 원칙들의 작용하심이 나타나 있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피를 힘입음으로써만 속박과 신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오직 죄가 없으신 대치물과 담보물이 되시는 주님의 완전성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경주(競走)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인간은 언제나 율법의 정죄 밑에 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서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거룩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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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구하고 찾으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에 관하여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는지 모르나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인간의 구원을 가능케 할 수 있으며 이 의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이 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환영받을 손님으로서 나타날 때 입어야 할 예복이다. 지체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에 그대들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이며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렘 23:6)시며 믿음을 통하여 각자는 여호와는 나의 의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이 하나님의 은사를 굳게 붙잡을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우리 입술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우리들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세상이 죄의 저주 밑에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타락하고 소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자비의 조건들을 제시하셨으며 당신의 은혜의 가치와 의미를 나타내 보이셨다. 은혜란 공로가 없이 받는 호의(好意)이다. 죄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천사들은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며 다만 우리들의 범죄한 상태만이 자비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의 역사하심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 구세주께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들을 찾아나서시고 양우리로 다시 데려오신 것은 은혜로운 행위였다.
그대들의 영혼 속에 어떤 부족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대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지 않은가? 만약 그러한 느낌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필요성을 느끼게 하셨다는 증거이며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까닭은 그대들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그대들을 위하여 행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시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주님의 자비를 갈급하고 주님의 권고를 바라며 주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 외에 아무런 까다로운 조건을 명세(明細)하지 않으셨다. 구하라! 구하는 태도는 그대들이 필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며 만약 그대들이 믿음으로 구한다면 구하는 바를 얻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은 어김이 없는 약속이다. 그대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아는 것만으로도 주님의 자비와 동정을 구할 수 있는 충분한 논증이 된다. 그대들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조건은 그대들이 거룩하게 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대들이 모든 죄에서 정결함을 받고 모든 악에서 순결함을 입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더 기다릴 것인가? 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는가?
오 주여, 당신께 이 몸을 바치나이다.
이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이옵니다.
만약 사단이 와서 그대들과 하나님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그대들의 죄를 비난하며 하나님과 그분의 자비를 불신하고 의심하도록 유혹한다면 그대들은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나의 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나 사이가 벌어지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시다. 비록 나의 죄들이 많지마는 나의 거룩한 대치물이시며 희생 제물이신 예수님께 이 모든 죄들이 지워졌다.
내 손으로 가져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다만 나는 십자가에 매달릴 뿐이옵니다.
인간은 아무도 자기 안에 있는 것이나 품성 가운데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자랑스럽게 천거할 수 있거나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없다. 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주신 바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다. 오직 예수님께서만이 우리들의 구원자이시며 우리들의 대언자이시다. 중보자이신 주님 안에 사유하심과 화평과 의를 바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의 공로에 의해서 죄의 상처를 입은 영혼이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향기이시며 그대들의 탄원을 하늘 아버지께서 받으시게 하는 것은 거룩한 분향이다. 그 때에 그대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단 한 번의 탄원도 없이, 내 모습 그대로 나왔나이다.
그러나 주님의 피가 나를 위하여 흘려진 바 되었으니,
그리고 나를 당신께로 오라고 부르시므로,
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여, 나는 왔나이다.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일은 엄격한 정신적 노력이나 번민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밝히신 구원의 조건들을 수락하는 것이다. 축복은 모든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보내신 초청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1, 2)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의
그러면 와서 구하고 찾으라. 능력의 저장소는 공개되어 있으며 가득차 있고 값없이 얻을 수 있다. 겸비한 마음으로 나아오되 그대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공로를 세우기 위하여 어떤 선행을 쌓아야 한다거나 혹은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기 이전에 그대들 자신이 나아져야 하리라고 생각지 말 것이다. 그대들에게는 선을 행할 힘이 없으며 그대들의 상태를 개선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도 없으며 의도 없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흠 없으신 의를 옷 입지 않는 한 우리들의 죄상, 우리들의 연약성, 우리들의 인간적인 불완전성은 우리들로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를 가지고 주님 안에 거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에 모든 이름보다도 뛰어나고 인간에게 주신 이름 중에서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허락들을 주장하면서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당신의 도움을 얻기 위하여 당신의 손을 붙잡나이다. 당신의 손을 붙잡지 않으면 저는 멸망할 것이옵니다. 저는 지금 믿사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구세주께서는 회개한 죄인에게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나는 네 구원이라(시 35:3)고 말씀하신다.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이끄심에 호응하고 그대들 자신을 주님께 연합할 때 그대들은 구원하는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물들에 대하여 부주의한 태도로 말하고 진정한 영혼의 굶주림과 산 믿음이 없이 신령한 축복을 받기 위하여 기도한다면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호기심에 찬 군중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해 있었으나 저들은 접촉에서 오는 아무런 강한 능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12년 동안 병 중에 있던 불쌍하고 괴로워하는 여인이 간절한 필요를 느끼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 여인은 치유의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인이 만진 것은 믿음의 접촉이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손을 댄 자가 있는 것을 아셨다. 주님께서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으며 따르는 무리를 돌아보시고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눅 8:45)고 물으셨다. 그 질문에 놀란 제자들은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눅 8:45-48).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 접촉을 가지므로 유익을 얻게 하는 믿음은 우리들에게 지상(至上)의 선택과 완전한 신뢰와 전적인 헌신을 나타내게 한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이 믿음이야말로 영혼을 순결케 한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참된 순종을 보이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생애 가운데서 역사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게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와 산 연합을 이루는 결과로서 생기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롬 8:9)다.
예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요 15:5)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내포된 뜻보다 더욱 밀접한 관계를 생각할 수 있을까? 가지의 섬유질은 포도나무의 섬유질과 동질의 것이다. 원줄기에서 가지에 이르는 생명과 힘과 영양의 유통은 막을 수 없는 것이며 지속적인 것이다. 뿌리에서 공급하는 영양소는 모든 가지에 이른다. 만약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주님에게서 영양소를 공급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가져야 할 신자의 마땅한 관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영혼 사이의 영적 관계는 오직 개인적 신앙을 통해서만 성립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히 11:6)한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만이 우리들을 하늘의 능력과 연결케하며 흑암의 권세 잡은 자들과 대항하여 싸우는 싸움을 위하여 능력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임재하심에 관하여 영혼으로 쉽게 깨닫게 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여 그의 생애를 유지하게 한다. 따라서 믿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은혜의 탁월성을 밝히 식별하게 한다. 믿음이 있는 영혼은 천국의 분위기에서 호흡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우편에 계시므로 우리들이 요동치 않게 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들은 세속에서 벗어나게 되며 만유의 으뜸이 되시며 온전히 사랑스러우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며 주님을 바라보는 생애를 통하여 우리들은 당신의 형상으로 화하게 된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거룩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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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포도나무와 연합함*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인간의 마음을 거듭나게 하고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젖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거룩한 능력밖에 없으며 그 능력은 주님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에게 언제나 사랑을 나타낸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회개할 때에 그에게 새로운 도덕적인 감각이 생기게 되고 새로운 동기의 힘이 주어지며 그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물들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의 생애는 예수님의 생명에 이르는 불변의 약속들의 금사슬로 묶이게 될 것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형언할 수 없는 감사함이 그의 영혼 안에 충만하게 될 것이며 축복을 받은 자의 언어는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라고 찬양할 것이다.
그러나 죄를 이기려는 저들 자신의 결정적인 노력이 없이 요행을 따라 품성이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자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주님께 나오는 모든 영혼들을 모두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옛 성품이 다시 지배권을 얻어 사단이 우리들을 그의 포로가 될 올무들을 펴는 일이다. 우리들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므로(빌 2:13 참고) 우리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들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역 안에서 거룩하심같이 우리들 자신의 영역 안에서 우리들의 제한된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우리들은 진리와 사랑과 거룩한 품성의 탁월성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밀초로 인장을 찍는 것처럼 영혼은 하나님의 영의 인을 받게 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된다.
우리들은 매일 영적 사랑스러움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우리들은 때때로 거룩하신 모본을 닮는 노력에 있어서 실패하게 될 것이다. 또한 때때로 우리들의 허물들과 실수로 인하여 예수님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흘릴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실망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전보다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야 하며 더욱 든든히 믿어야 하고 우리 주님을 닮는 일에 성장하기 위하여 더욱 강한 견인성을 가지고 또다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자신의 능력을 불신하게 될 때에 우리 구세주의 능력을 의존하게 될 것이며 우리 힘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구세주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사랑이 있다. 우리들이 아무리 다른 열매들을 많이 맺는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 열매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본질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는 그분의 자녀들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게 된다. 순결함과 사랑이 품성을 빛나게 할 것이며 온유함과 진리가 생애를 주관하게 될 것이다. 얼굴의 표정 자체도 변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영혼 안에 거하실 때에 변화케 하시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며 그의 외모에도 마음 속에 있는 화평과 기쁨을 증거하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들은 마치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영양소를 흡수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시게 된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게 되고 산 포도나무가 되시는 주심과 연합함으로 섬유질로 이어질 때 우리들은 풍성한 산 열매로서 그 사실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빛과 연결될 때 우리들은 빛의 통로가 될 것이며 우리들의 말과 행실로써 세상의 빛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땅을 하늘에 잇는 사랑의 줄로 묶이게 될 것이며 유한한 인간을 무한하신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사랑의 줄로 결박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취는 빛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에도 비췰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들은 바라봄으로 변하게 된다. 거룩한 모본이신 주님의 완전하심을 명상할 때에 우리들은 완전한 변화를 입으려는 욕망을 품게 될 것이며 주님의 순결하신 형상을 따라 새로 지음을 입게 될 것이다. 품성의 변화가 이루어지며 진노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인 것이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가게 되며 신령하게 되어 신령한 사물들을 분별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정신을 일깨워 주며 하나님의 율법의 기이한 이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사람이 진리로 말미암아 회개하게 될 때에 품성이 변화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또한 그에게는 이해력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며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성령의 지도하심에 전적으로 맡길 때에 그의 정신이 확장되고 계발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가운데서 편벽되지 않고 결함이 없는 교육을 받게 될 것이며 오직 균형과 완전을 추구하는 계발된 품성을 갖게 될 것이다. 흔들리는 의지와 무기력한 품성에 나타나는 유약성은 극복하게 되고 계속적인 헌신과 경건의 생애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게 한다. 그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건전한 정신과 원칙적인 사상을 갖게 된다. 그의 식별력은 투철하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나타내게 된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 18)고 말하였다. 이러한 지혜야말로 구원의 잔을 받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지혜일 것이다. 죄를 범한 자에게 사유하심을 주는 이 구원은 그에게 전능하신 주님의 엄밀한 검사를 받게 될 의를 나타낼 것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강한 원수를 이기는 승리를 안겨 주고 구원을 받는 자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며 따라서 이 구원은 기별을 듣고 기뻐하는 겸손한 자에게 즐거움의 주제가 될 것이다.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
목자가 아흔 아흡 마리를 버려두고 잃어버린 단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하여 나선 잃어버린 양에 대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비유는 그리스도의 사업과 죄인의 상태와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온 우주가 기뻐하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목자는 양 무리에 대하여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나에게 아흔 아흡 마리가 있는데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나선다는 것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다. 내버려두면 혼자 돌아올 터이므로 양 우리의 문만 열어 두면 언젠가는 들어올 테지 … 그러나 내가 나서서 그 놈을 찾을 수는 없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목자는 결코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목자의 얼굴에는 슬픔과 근심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는 양의 수를 세고 또 세보며 확실히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될 때에 그는 편히 쉴 수 없다. 그는 아흔 아홉 마리를 양우리에 남겨두고 아무리 그 밤이 캄캄하고 격렬한 광풍이 불지라도, 그의 갈 길이 아무리 위험하고 사나울지라도, 그의 수고가 아무리 지루하고 고달픈 것일지라도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그는 지칠 줄 모르고 뒤로 물어서지 않는다. 그가 잃었던 양을 찾게 되었을 때에 지치고 기진맥진한 양을 자기 어깨에 메고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몹시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돌아와서 그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눅 15:6)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위대하신 목자께서 죄 가운데서 방황하는 죄인을 찾게 되었을 때에 하늘의 천사들은 목자의 즐거운 노래에 화답할 것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았을 때에 하늘과 땅은 감사와 기쁨으로 연합하게 된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거룩하신 그리스도
52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공의는 단순히 사유함을 허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형언도를 집행하도록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은사로 허락하심으로 이 두 가지 요구에 대처하셨다.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형벌을 그치게 하셨고 용서의 길을 터놓으셨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끓어졌다. 인간의 영혼은 죄의 창시자인 사단의 음모로 인하여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만 가지고서는 죄를 깨달을 힘조차 없으며 거룩한 성품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삼는 길을 찾을 수 없다. 비록 자신이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 거룩한 성품이 있을지라도 그의 육신에 속한 마음은 거룩한 성품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사단의 매혹적인 세력이 그를 지배하게 된다. 마귀는 모든 정교한 속임수를 꾸며내어 인간의 모든 선한 동기를 저지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바 모든 재능과 능력은 거룩한 혜택자이신 하나님을 대항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비록 인간을 사랑하실지라도 당신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모든 은사와 축복을 마음놓고 베풀어 주실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패배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인간의 형체와 성품을 취하게 하셨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인성과 신성이 결합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도덕적인 가치를 다루시는 저울에 인간을 높이 올려 놓으시려고 하셨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다른 방도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요 15:5)다고 말씀하셨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통하여서 생명의 샘이 인간의 성품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으며 그의 체험들을 새롭게 해주고 그의 애정이 하늘로 향하여 흐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신성이 인성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지식을 밝혀 주실 수 있었으며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에게 생명을 주시는 특성을 불어넣어 주실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이 갈바리의 십자가에 이끌리게 될 때에 불완전한 안목으로 보면 그 십자가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실 수 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죄의 결과 때문이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에 인간의 눈은 죄의 특성을 밝히 보게 된다. 비록 율법은 깨어진 바 되나 죄를 범한자를 용서할 수는 없다. 율법은 우리들의 몽학 선생이며 형벌을 받도록 정죄한다. 그러면 이에 대한 구제책은 어디에 있는가? 율법은 타락하고 죄지은 인간에게 당신의 의를 나누어주시며 당신의 의로운 품성을 통하여 하늘 아버지를 인간에게 나타내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인도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과 먼저 회개케 하신 자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회개하도록 이끄실 뿐만 아니라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며 당신 자신을 대속물로 바치셨다. 주님의 흘리신 피와 상처를 입으신 몸은 깨어진 바 된 율법의 요구들을 만족시킴으로써 죄가 만들어 놓은 웅덩이를 메꾸어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무방비 상태의 죄인을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육신으로 고난을 받으셨고 당신의 몸에 상처를 입게 되었으며 그 몸이 부서졌다. 갈바리에서 당신의 죽으심으로 얻으신 승리는 온 우주에 미친 사단의 비난하는 세력을 영원히 박멸하였으며 하나님께는 자제함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인간에게도 본질적으로 자제력이 없다고 한 사단의 비난들을 잠잠케 하였다.
천국에서의 사단의 지위는 하나님의 아들의 다음가는 것이었다. 그는 천사들 중에 으뜸이었다. 사단의 세력은 자신의 품위를 저하시켰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세력의 정체를 나타내실 수 없었으며 따라서 사단과 그의 악한 감화력들을 제거함으로써 온 하늘의 조화를 유지할 수도 없으셨다. 사단의 세력은 점점 증가하였으나 그 악한 본질은 아직도 노출되지 않았다. 그의 세력은 온 우주에 있어서 치명적인 것이었으며 세계들과 하늘 정부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이었으므로 그 전체가 점점 노출되어 그 진상이 드러날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의 극기하심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그 몸이 부서지게 하고 갈바리의 십자가에 매달리게까지 자신의 적의(敵意)를 그리스도에게 행사함으로써 사단은 자기 자신을 우주의 애정으로부터 완전히 근절시켜 버렸다.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극기하신 것과 인류를 사랑하셨으므로 세상의 죄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셨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창조주께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나타내신 바 되었다. 하나님의 극기하심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이 질문에 대하여 영원한 답변이 제공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셨으며 육신을 쓰시기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셨고 무한한 희생을 치루시기 위하여 인성을 취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비록 사단은 온갖 시험으로 주님을 유혹하려고 노력을 기울였을지라도 인간으로서 치를 수 있는 희생은 어떤 것이든지 참고 치르셨다. 유혹이 강하면 강할수록 주님의 희생 역시 더욱더 완전한 것이었다. 사단과의 투쟁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인성과 신성이 합한 능력으로 이길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인간에게도 가능하였다. 순종적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죄가 없으셨던 주님은 인간이 거룩한 품성의 참여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대치물과 담보물로서 인간을 위해 죽으셨고 인간이 기만하는 유혹자에게서 받아야 할 모든 시험을 이기셨다.
진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며 그리스도처럼 생명까지라도 바치기를 서슴치 않는 자에게 있어서 순결한 진리는 거짓된 것과 완전한 대조가 되며 정직성과 성실성은 교활성과 음모에 필적하는 것임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사단의 욕망을 물리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투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룩한 성품을 고수하는 일이 요구되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사단을 물리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바리의 십자가상에서 당신 자신의 죽으심으로 쟁취하신 승리를 통하여 인류를 위한 길을 트셨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그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리스도의 의는 죄인이 받아들일 때에 거저 주시는 은사로서 상징되었다. 인간은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몹시 불쾌감을 주는 더럽고 타락한 것과 죄로 오염된 것 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을 통해서만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휘장 안에 계신 대제사장으로서 갈바리를 영원하게 하시므로 당신 자신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사시고 죄에 대하여는 계속적으로 죽으신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면 하늘 아버지께 대하여 대변해 주실 분을 갖게 된다.
주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기이한 권능과 영광 가운데서 허다한 천사들에게 옹위되어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단이 자신의 합법적인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 이 세상을 당신의 손에 쥐셨으며 당신의 생명을 내놓으신 놀라운 사업을 통해서 온 인류가 하나님의 은총을 얻도록 회복하셨다. …
아무도 인간의 어떤 공적이 자신이 지은 죄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제한되고 편협한 견해를 주장하지 말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치명적인 기만이다. 만약 그대들이 이 뜻을 이해하려면 그대들은 반드시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언쟁하는 일을 그쳐야 할 것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대속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문제를 밝히 깨닫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수천 수만의 영혼들이 저들 자신의 행함을 의존함으로 마귀의 자녀들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선한 행실을 요구하셨고 율법 역시 선한 행실을 요구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선행이 전혀 무가치한 죄 가운데 처하므로 오직 예수님의 의만이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중보하시기 위하여 항상 살아 계시므로 모든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오로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는 초청을 수락하는 일뿐이다. 인간이 범하는 어떤 죄든지 갈바리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열렬한 호소로서 계속적으로 죄인에게 철저한 속죄를 제공하고 있다.
회개와 용서
그대들이 갈바리의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갈 때에 그곳에서 비할 데 없는 사랑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들이 믿음을 가지고 희생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에 그대들 자신이 깨어진 바 된 율법으로 정죄를 받은 죄인임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이 회개이다. 그대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에 사유하심을 얻게 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으로 단 앞에 서 계셔서 간단없이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을 바치는 자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치지 않고 주님께서 치신 참 성전에서 봉사하시는 분이시다. 유대인의 성막의 상징적인 그림자는 지금에 와서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하다. 날마다 드리는 것과 해마다 드리는 상징적인 속죄는 이 이상 더 드릴 필요가 없으나 끊임없는 범죄로 말미암아 중재자를 통하여 속죄 제물을 바칠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의식을 집행하고 계시며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셨던 것처럼 당신의 흘리신 피를 바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모든 범죄와 모든 사소한 실수를 위해서 희생 제물을 바치고 계신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중재하고 계시는데 성령께서는 태초로부터 흘리신 당신의 피를 바치는 그리스도처럼 우리들을 위하여 탄원하시지 않으시며 우리들의 심령에 역사하셔서 우리들의 기도와 참회를 자아내며 찬송과 감사를 불러일으키신다. 우리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감사의 표현은 성령께서 거룩하신 기억력으로 영혼의 심금을 울려 마음의 음악을 상기시킨 결과이다.
참된 신자가 드리는 종교적 의식, 기도, 찬송 및 죄의 자복은 분향처럼 하늘 성전으로 올라가기는 하나 그것들이 인간의 타락한 통로를 통과하므로 피로 정결함을 입지 않는 한 더러워져서 결코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이 되지 못한다. 흠없는 순결성으로 드리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며 모든 것을 당신의 의로써 나타내시고 순결케 하시는 중보자가 없이는 하나님께 받으시는 바 되지 못한다. 이 지상 성막에서 피우는 모든 분향은 그리스도의 깨끗케 하시는 핏방울에 젖어야 한다. 하늘 아버지 앞에서 당신 자신의 공로를 담은 향로를 들고 계시는데 그 가운데는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 더러워진 것은 하나도 없다. 주님께서는 이 향로 안에 성도의 기도와 찬송과 자복을 모아 담으시며 이 가운데 당신 자신의 흠없는 의를 담으신다. 그렇게 할 때에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의 공로로서 향기를 풍기며 하나님 앞에 분향할 때에 전체적으로 완전히 받으시는 바 된다. 또한 그 때에 은혜로운 응답이 내리게 된다.
아, 순종과 회개와 찬송과 감사로 드리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의의 달아오른 불 앞에 놓여져야 한다는 것을 모든 영혼이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이 의의 향기는 자비의 보좌를 둘러싼 구름처럼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거룩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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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순종에 의한 변화*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교훈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교훈과 완전히 일치한다. 사도들이 신약 시대에 주님의 기별을 전한 것만큼 선지자들도 구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사자들을 통하여 말하였으며 저들의 교훈 가운데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사단은 지금껏 활동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하게 하기 위하여 불의한 모든 속임수로 아직도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단순하고 분명한 것을 마치 신비한 것처럼 꾸며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일에 노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으며 그의 교활한 계책으로 세상을 사로잡고 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하게 만듦으로써였다. 아담은 사단의 거짓말을 믿었으며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되게 나타내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감으로 아담의 생애는 변화되었고 망쳐진 바 되었다.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였으며 주님께서 그에게 하지 말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행하였다. 아담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였다. 그러나 만약 그가 시험을 견디고 하나님께 충성하였다면 이 세상에 재앙의 수문(水門)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단의 오전(誤傳)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인간의 품성과 운명이 변화되었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저들은 정신과 품성이 변화될 것이며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말씀을 믿는 것은 곧 마음을 변화케 하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재현시킬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바울도(회개 이전에) 유전적인 경건성에 매우 독선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자부심이 거짓된 것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믿음이었으며 그는 형식과 의식을 신뢰하였다. 율법을 위한 그의 열정은 그리스도에게서 분리시켰으며 그 열정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었다. 그는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볼 때에 아무런 흠이 없었다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율법을 가치 있게 만드신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다. 그는 자기가 옳았다고 자신 만만해 하였다. 바울은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행 26:9, 10)다고 말하였다. 바울은 한동안 매우 잔인한 일을 하면서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는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딤전 1:13)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성실성이 그의 행실을 정당화하지 못하였으며 오류를 진리로 만들지 못하였다.
믿음은 진리나 혹은 오류가 마음 속에서 거처를 잡을 수 있게 해 주는 매개물이다. 진리나 혹은 오류를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작용은 동일한 것이지만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지 혹은 인간의 유전들을 믿는지에 따라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바울에게 나타내셨을 때 그는 자기가 주님의 성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는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받아들였다. 변화케 하시는 한 능력이 그의 정신과 품성에 나타났으며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진리를 완전히 받았으므로 이 세상이나 지옥도 그의 믿음을 흔들 수 없었다.
믿어라 다만 믿기만 하면 된다고 부르짖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대들이 무엇을 믿어야 할는지 저들에게 물어보라. 그대들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율법에 대하여 사단이 꾸며낸 거짓말들을 믿어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무력하게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위대하고 보배로운 은혜를 사용치 않으시며 오히려 당신의 율법을 완전케 하시기 위하여 그 은혜를 사용하신다. 과연 바울은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가? 그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그러면 계명이 폐하였는가?-결코 그렇지 않다.] … 이로 보건대 율법도 [나의 자유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가로막는 것이 되는가?-결코 아니다.]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7-12)라고 말하였다.
율법은 사유할 수 없음
바울은 율법 가운데 율법을 범한 자를 용서할 권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 4).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타락한 상태를 아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아셨으며 우리 영혼들을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셨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와 버림받은 자에게 베푸는 진정한 호의(好意)를 뜻한다. 우리들이 죄인이어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버리는 대신에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행사하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요 15:16) 였다고 말씀하셨다.
아담이 타락하였을 때에 그의 회복을 위한 섭리가 마련되었다. 때가 이르러 생명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흑암의 권세와 싸우시기 위하여 우리들의 세상에 오셨다. 이 세상에서 사단은 모든 율법과 그리스도에게서 떠난 자기의 원칙을 수행한 결과가 어떠함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계명에 대한 변치 않는 당신의 순종심을 보이시므로 의의 원칙을 실행한 결과가 어떠함을 나타내 보이셨다. 사단은 악의 원칙을 따라서 극렬한 시험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을 괴롭혔으며 드디어 주님을 법정으로 끌고가 정당한 이유가 없이 사망의 선고를 받게 하였다. 악의 동맹한 세력은 악의 원칙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을 선동시켰다. 군중들 앞에 그리스도와 바나바를 내세웠다. 바나바는 유명한 절도자요 살인자였으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빌라도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으며 그는 쉽사리 예수를 선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예수님의 용모에는 고결하심과 지능과 순결하신 표적이 밝히 드러나 있었으며, 현저한 대조로서 바나바의 모습은 야비한 표정을 나타내 보였다. 빌라도는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마 27:21)라고 물어보았다. 그 때에 격분한 군중들의 사나운 울부짖음이 들렸는데 바나바로소이다라고 외쳤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마 27:22, 23).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사단이 패배함
이 선택 가운데서 사단의 사상이 노출되었다. 하늘의 천군 천사들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들은 사단을 형제를 비난하는 자, 거짓말장이 또는 살인자로서 판단하였다. 천국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서는 사단의 기만적인 세력과 그의 악독한 원칙들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었으며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시험과 시련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결과 거룩하심이 영원히 증명되었다. 사단의 품성과 사상이 발전함에 따라 그는 타락하지 않은 세계 주민들의 애정에서 영원히 근절되었으며 사단의 주장과 그리스도의 주장에 관한 투쟁은 하늘에서 영원히 종결되었다. 그리스도의 품성에 나타난 의는 영원토록 세상 사람들의 닻이 되며 구원의 소망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모든 영혼은 믿음으로 여호와는 나의 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3-5).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의 율법은 분리할 수 없다. 예수님 안에서 자비와 진리는 서로 만나며 의와 화평은 서로 입맞춘다. 주님의 생애와 품성으로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알려주고 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을 대표하신 분이었으며 인류의 모본이시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믿음과 신성이 연합할 때에 인간이 어떻게 될 수 있는가를 온 세상에 증거해 보이셨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친히 인간의 성품을 취하셨고 이세상과 하늘 사이에 당신의 십자가를 세우셨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에서 공의가 만족함을 입었으므로 공의는 그 높고 두려운 위치에서 내려왔으며 하늘의 천군 천사들과 거룩한 무리들은 십자가에 가까이 이르러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죄인은 죄의 본거지로부터 떠날 수 있으며 악의 동맹한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매번 십자가에 접근할 때마다 그의 심령은 순화(純花)되고 그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나의 죄였다고 외치게 될 것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죄들을 버리게 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그의 품성이 변화된다. 구세주께서는 죄인을 티끌에서 일으키사 성령의 지도 밑에 두신다. 죄인이 구세주를 바라볼 때 그는 소망과 보장과 기쁨을 찾게 된다. 믿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는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영혼을 순결케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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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에 제시된 문제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죄를 자백하고 당신 앞에서 우리들의 심령을 겸비하게 가지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저버리지 않을 친절하신 하늘 아버지처럼 주님을 신뢰하여야 한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며 믿음으로 행치 않는다.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은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들에게 주신 귀중한 허락들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불신하며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심을 보이시는지 아니면 우리들을 속이시는지, 의심하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욕돌리는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로 인해서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들이 혹 실수를 범하고 성령을 슬프시게 할 수 있으나 우리들이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당신께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물리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버려야 할 장애물들이 있다. 그릇된 감정들을 품고 있었으며 교만, 자만심, 조급함 및 불평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한다. 죄들은 자복해야만 하며 심령 가운데 은혜의 깊은 역사하심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연약하다고 느끼고 실망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강한 사람들이 될 것이며 주님을 위하여 고귀한 사업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고상한 표준을 세우고 일해야 하며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유일한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공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주님의 의 외에 다른 아무것도, 은혜의 축복 가운데 있는 단 한 가지도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축복들을 얻으려고 바랐으며 노력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축복들로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도모하려는 사상을 품고 있으므로 축복들을 받지 못하였다. 우리들은 예수께서 살아계신 구세주이심을 믿음으로 우리들 자신만을 돌보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은혜와 공로가 우리들을 구원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고 약속하셨다. 우리들은 적나라(赤裸裸)한 허락들을 믿어야 하며 감정을 믿음으로 잘못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세주로서 예수님의 공로를 의뢰할 때 우리들은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마치 우리들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나 있듯이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아무 능력이 없으므로 우리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우리들의 소망과 우리들의 공의와 우리들의 의는 모두 주님 안에 있다. 우리들은 마치 우리들에게 구세주가 계시지 않거나 또한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낙담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한 당신의 사업을 수행하고 계시며 우리들의 무식한 상태 그대로 당신께 나아와 구원받도록 초청하신다. 우리들은 불신으로 인해서 주님께 욕돌리게 된다.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시고 우리들에게 당신의 위대하신 사랑에 대한 모든 증거를 주신 주님께 대하여 우리들의 믿음이 얼마나 적으며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시는 주님을 취급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볼 때에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없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공로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하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면서 주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믿기도 전에 죄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하는가? 만약 그대들의 마음 가운데 이러한 투쟁이 있다면 그대들은 아무런 힘도 얻지 못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실망하게 되고 말 것이다.
바라보고 살라
광야에 있을 때에 주님께서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독사에게 물리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모세에게 구리 뱀을 높은 장대에 매달아 뱀에 물린 사람들이 그 구리 뱀을 바라보고 살도록 지시하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늘이 제정해 준 이 치료제에서 아무런 도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미 죽은 자들과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으며 저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저들의 운명이 틀림없이 종말을 고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저희 힘이 다 빠지고 눈이 완전히 흐려질 때까지 금방 나을 수 있는 치유제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상처만을 비탄하며 고통과 확실한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고만 있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 만약 그대들이 자신의 죄들을 의식한다면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일에만 모든 기력을 다 바칠 것이 아니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다.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는 단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으련만 치유를 받아야 할 수백 수천에 달하는 인류는 주님께서 주신 자비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들이 얼마나 무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지를 인식할지라도 우리들은 실망하지 말 것이며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구세주에게 의뢰해야만 한다. 불쌍하고 죄로 병들었으며 실망한 영혼들이여, 바라보고 살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약속하셨다.
예수님께 나아와 휴식과 평안을 얻으라. 그대들은 바로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단은 그대들이 무력한 존재이며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유혹한다. 그대들이 무력한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단의 앞에서 예수님만을 쳐다보며 나에게는 부활하신 구세주가 계시다. 주님께서는 결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고난을 주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주님 안에서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나의 의시며 나의 기쁨의 면류관이시다 라고 말하라. 이 세상의 아무도 절망 가운데 있지 않으므로 자신의 경우만은 소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말 것이다. 그대들은 자신이 죄인이며 타락한 인간임을 깨닫게 될지라도 이것은 다만 그대들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줄 뿐이다. 만약 그대들에게 자복할 죄가 있다면 시간을 놓치지 말라. 이러한 순간들은 황금과 같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의에 주린 자는 배불림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셨다. 아, 얼마나 고귀한 구세주이신가? 주님의 크신 팔은 우리들을 영접하시기 위하여 활짝 벌려 있으며 주님의 위대하신 사랑의 마음은 우리들은 축복하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저들은 반드시 집행 유예 기간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할 수 있기 이전에 저들 자신이 개심했다는 사실을 주님께 증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스러운 영혼들은 바로 지금 축복을 주장할 수 있다. 저들은 주님의 은혜 곧 저들의 연약함을 보충해 주실 수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가져야만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 저들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형성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죄 있고 무력하며 의존해야 할 상태 그대로를 가지고 당신께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임
회개는 용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들이 죄를 깨닫게 하고 용서의 필요를 느끼게 하는 것은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는 것이다. 통회하는 자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회개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과 약점들을 잘 알고 계시므로 우리들을 분명히 도우실 것이다.
회개와 자복으로 하나님께 나오고 저희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아직 하나님의 허락들을 마땅히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항상 존재하여 계시는 구세주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저들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지 않으며 저희 마음 가운데 완전케하는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도록 의탁하지 않는다. 비록 저들은 생각으로는 자신들을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자기를 신뢰하는 경향이 많다.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 다른 부분으로는 저들 자신을 신뢰하는 양심적인 영혼들이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받기 위하여 바라보지 않고 다만 시험 거리만을 살피며 주님의 가납하심을 받기 위한 의무 수행만을 의존한다. 이러한 종류의 믿음에는 승리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자들은 목적이 없는 고달픈 수고만을 할 뿐이다. 저들의 영혼은 계속적으로 속박 가운데 있으며 저들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을 때까지 쉼을 얻지 못한다.
끊임없는 징계와 열렬하고 사랑스러운 헌신을 할 필요가 있기는 하나 이것들은 영혼이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받게 될 때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힘으로 거룩한 은총을 얻기 위하여 결단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들은 전혀 우리들 자신이나 우리들의 선한 행실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들이 실수를 저지르고 죄 있는 존재로서 그리스도께 나올 때 우리들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쉼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의 공로를 전적으로 믿고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받으실 것이다. 저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용솟음칠 것이다. 거기에는 환상적인 감각이 없을 것이며 다만 영속적이며 평화스러운 신뢰심이 있을 따름이다. 모든 멍에는 가벼우며 그리스도께서 메워주시는 멍에는 쉽다. 의무는 즐거움이 되고 희생은 유쾌한 것이 될 것이다. 흑암에 싸인 듯이 보였던 길은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서 비취는 빛으로 말미암아 밝아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빛 가운데서 행하는 생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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