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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내소사
2022년 11월 06일(일요일)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石浦里)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末寺)입니다.
관음봉 아래 있습니다. 관음봉을 일명 능가산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보통 '능가산 내소사'로 부르기도 합니다. 일주문에도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633년(백제 무왕 34년) 백제의 승려 혜구(惠丘) 두타(頭陀)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습니다. 일설에는 중국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와서 세웠기 때문에 '내소(來蘇)'라 하였다고도 하나 이는 와전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후대에 내소사로 개칭되었습니다.
절에 딸린 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 지장암(地藏庵)이 있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월정사에서처럼, 절 초입부의 일주문(一柱門)부터 천왕문(天王門)에 걸쳐 약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합니다.
현재 이 절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법화경절본사경(보물 제278호),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8호)가 있고 그밖에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연래루(蓮萊樓)·3층석탑 등이 있습니다.

세봉에서 내소가로 가는 길에 탐방로 아님
청련암 가는 비지정길입니다. 예전에는 등산로로 이용하였습니다.

급경사 하산길


화려하게 차려입은 단풍이 산행길을 행복하게 합니다.

청련암 가는 임도를 따라 내려갑니다.
청련암(靑蓮庵)
청련암은 내소사(來蘇寺)의 부속암자로 내소사 관음암 위쪽 관음봉과 세봉 기슭에 있는 암자입니다.
청련암(靑蓮庵) 편액
청련암 암자에 7언절구 한시를 적어 놓은 편액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청련암(靑蓮庵)
寺號靑蓮蓮孰採(사호청련연숙채) 절이름은 청련인데 연꽃은 누가 캐고 없는가?
靑靑緣竹好成林(청청연죽호성림) 아름답고 푸르른 대나무들이 보기좋게 숲을 이루었구나
連天碧海橫門入(연천백해횡문입) 하늘과 맞닿은 푸른바다는 문을 비껴 들어오고
滿地白雲歸洞深(만지자운귀동심) 땅위에 가득한 흰구름은 산고을에 들어 깊이 머물렀도다.
淡白精神恭念佛(담백정신공염불) 깨끗한 마음과 정신은 공손하게 부처님께 염불을 하고
幽閒身勢足存心(유한신세족재심) 깊숙히 숨어 있는 한가한 신세가 넉넉히 본심을 보존하도다.
客來莫道世間事(객래막도세간사) 사람들아 이곳에 와서 세상 일을 이르지 마소
時間鐘聲滌世音(시간종성척세음) 때때로 들리는 종소리가 속세의 일들을 씻는도다.
辛巳淸和月 談山(신사청화월 담산) 신사년(2001)음력4월에 담산이라는 분이 쓴 시 입니다.
7언시 구절이 너무 좋아 읽다가 보면 저절로 그 속에 묻히는 것 같습니다.


노란색, 빨강색 단풍이 이쁜 길입니다.




단풍이 빨갛게 물이 들어 눈이 황홀합니다.



내소사가 보입니다.

봉래선원(불이문)과 그 뒤로 관음봉, 세봉
옛터에 세운 32평 규모의 목조한와 팔작지붕의 양식으로 1998년 우암 혜산선사가 스승이신 해안선사의 뜻을 계승하여, 스님들의 참선정진과 호남불교의 선풍을 진작하려는 원력으로 건립하였습니다.
불이문(不二門) 편액

설선당(전북 유형문화재 제125호)
전북 유형문화재 제125호인 설선당은 내소사의 대중 요사채로서 승려들의 수행 정진과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입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폐쇄적인 평면을 하고 있으며, 정면 6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맞배건물로 1640년(인조 18년)에 청민대사(靑旻大師)가 창건하였습니다. 배치는 전면 중앙의 설선당을 중심으로 4면을 건물로 연결하고, 내부에 안마당을 둔 회자형(回字形)의 특이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설선당은 1993년에 중수한 것으로 건물 어칸에는 조선시대 명필가인 이광사(圓嶠 李匡師1705~1777)가 쓴 ‘설선당(說禪堂)’ 편액 1기가 걸려 있고 측면에는 '내소사(來蘇寺)'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내소사(來蘇寺) 편액
정면에는 내소사(來蘇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을해년에 'O伽'라는 분이 썼다(書)는 관지가 붙어 있습니다.
을해년에 썼다는 내소사 편액은 설선당과 요사 건립 이후 을해년이 60년 만에 돌아오기에 1695, 1755, 1815, 1995년까지 6번이나 있어서 언제 쓴것인지 기록이 없습니다.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액은 64.5X156cm 규모입니다.
설선당(說禪堂) 편액
서예가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1705~1777)의 글씨입니다.
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조선 후기 명필 원교 이광사의 달관한 듯한 수체(水體)입니다.
설선당 왼쪽 북쪽 끝에 북쪽 요사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나 있습니다.
일각문에 자비문이라는 편액이 있습니다.
해여(海如) 김보영(金普榮)이라는 분인데, 그리 유명한 서예가는 아닌 듯합니다.
설선당 내부에 아미타삼존불
목조 아미타삼존불 좌상은 원래 대웅보전에 있던건데 불전의 형식에 맞춰 석가삼존을 봉안하면서 최근 개금한 아미타삼존불은 현재 설선당에 있습니다.
내소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5호)
조성 발원문이 나오지 않아 명확한 조성 시기나 제작자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인, 몸에 비해 큰 머리와 움추린 듯한 어깨, 숙인 머리 등의 형태를 보입니다.
본존인 아미타불좌상의 높이는 125cm, 무릎 폭은 98cm입니다. 아미타불은 본조그로 좌우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설법인을 취하고 있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하였습니다.
아미타불의 얼굴은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형태인 사각형이며,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고 턱이 두드져 있습니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모두 표현되어 있는데, 머리 정상부에는 정상 계주만 돌출되었습니다.
어깨는 당당하지만, 머리의 크기가 커 넓어 보이지 않습니다. 설법인을 맺은 양손은 거의 발 위에 닿을 정도로 낮은 쪽에 위치합니다. 왼쪽 어깨 위에는 둥근 옷 주름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대의(大衣) 안에 입은 승지기 상단에는 여러 겹으로 접힌 옷 주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두 다리 중앙에서 양 무릎 쪽으로 넓게 3단의 옷 주름이 층을 이루며 새겨져 있습니다. 두 다리 사이에는 좌우 대칭으로 옷자락이 펼쳐져 있는데, 특히 왼쪽 무릎위에는 남은 옷자작이 Ω형태로 올려져 있습니다.
보현보살(우협시) 문수보살(좌협시)
좌우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썼을 뿐 본존불과 거의 같은 수법을 보입니다. 다만 그 크기가 본존불에 비해 10cm정도 작습니다. 또 무릎위에 올린 손은 맨살을 드러낸 본존불과 달리 대의 자락이 한 번 감싸고 있으며, 승지기 상단 옷주룸이 좀 더 자연스럽고 양다리에서 무릎 쪽으로 새겨진 옷주름이 촘촘합니다.
내소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5호)
본존인 아미타불좌상의 높이는 125cm, 무릎 폭은 98cm입니다
보현보살좌상(우협시) 높이 115cm, 무릎 폭 82.5cm입니다.
문수보살좌상(좌협시) 높이 115.6cm, 무릎 폭 82cm로 좌협시 보살과 거의 비슷합니니다.

봉래루
부안 내소사 봉래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2층 누각 건물로 조선 태종 12년(141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봉래루는 다른 사찰의 만세루, 보재루, 보광루, 안양루의 역할을 하는데, 본당 정면에 위치하여 탐방객들의 '누하진입' 또는 '우각진입'을 하게끔 하며, 강당과 법회 장소로도 활용됩니다. 통상 뒷마당과 연결되어 앞에서는 2층이지만 뒤에서는 1층의 건물로 지어지는데, 내소사 봉래루는 뒷마당과 이격되어 있고, 나무 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게 특징입니다.
"내소사 봉래루(蓬萊樓) 조선 태종 12년 (1414)에 건립한 전면 5칸, 측면 3칸, 2층 누각의 맞배지붕의 건축물 1987년 우암혜산(愚岩慧山) 스님이 복원한 것입니다. 자연석을 초석으로 사용하였는데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아 2층 누각을 받치는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수평을 취하게 하였습니다. 이들 초석의 배치는 전면 5칸 12.23m로 각 기둥 사이가 215-244-305-244-215cm로 중앙의 칸으로 갈수록 넓어지고 있습니다.
측면은 외열 기둥 사이가 3칸으로 6.20m이며 각 기둥 사이는 215-190-215cm의 간격으로되어 있지만 내부는 2칸으로 각 칸이 310cm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봉래루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1821년에 기록된 “내소사 만세루 상량문”, 1823년에 걸어 놓은 “내소사 만세루 중건기”현판과 특히 최남선의 <심춘순례>의 “변산의 사대사”에 기록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각 정면에 있는 봉래루(蓬萊樓) 편액은 좌측 세로된 글자에 歲在丁酉秋七月旣望州潭州人書(세재정유추칠월설망담주인서) 판각되어 있으며, 해석하면 여기서 정유년 가을 칠월 16일 담주사람이 쓰다. 기망(旣望)은 음력(陰曆)으로 매달 16일을 말합니다.정유(丁酉)는 1837년(헌종3년), 1897년(고종34년)에 해당되면, 크기는 70x136cm입니다.
낙관 없이 왼쪽에 '세재 정유 추칠월 기망 담주인 서(歲在 丁酉 秋七月 旣望 潭州人 書)'라고 시기와 서명을 새긴 관지(款識)만 있습니다.
여기서 '세재'는 세차(歲次)처럼 육십갑자의 간지(干支)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어서 '간지의 순서로 정유년'이라는 뜻이니까 봉래루를 다시 지은 1865년 뒤에 오는 첫 정유년 1897년 고종 때, 가을 7월, 보름(望日)에서 이미(旣) 하루 지난 16일에 담주 사람이 썼다는 얘기입니다.
필자(筆者)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담주는 담양(潭陽)의 옛 이름이어서 담양 사람이라는 것 쯤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담(潭)자를 단(潬)자로 보는 분이 없지 않던데요.
자세히 보면 맨위에 가로 획이 하나 더 있어서, 못 담(潭)자의 중간 가로 曰을 밭 田으로 쓴 속자로 보는 게 타당하겠습니다.

백의관음보살상

대웅보전과 삼층석탑(전북 유형문화재 제124호)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위치한 3층석탑은 2중기단으로서 화강암질로 되어있습니다. 하층기단은 전고 3.46m, 폭 1.43m이며 1장의 석재에 지대석, 면석, 갑석을 각출하였고, 면석에 우주와 장주를 각하였습니다. 이갑석의 상면은 상대중석 받침쪽의 높은 경사를 이루고 중석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내소사는 전나무 숲도 좋지만 조선 인조 11년 (1633)에 만들어진 대웅보전이 유명합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운 옆면에서 볼 때 팔(八)자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우측에 보현보살님, 좌측에 문수보살님을 모신 내소사의 본전입니다. 조선후기에 건립하였으며, 철못을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었습니다.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연꽃과 국화꽃을 가득 수놓아 화사한 꽃반을 생각나게 한 문살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이 문살은 법당 안에서 보면 단정한 마름모꼴 살 그림자만 비출 뿐입니다.
이 대운전은 화려하지만 시끄럽지 않은, 그리고 장중함보다는 다정함을 느끼게 하는 건물입니다. 불상 뒤 벽에 그린 관음보살상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합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은 1633년 조선 인조11년 계유년에 조선 후기 동국진체로 당대 서단을 풍미했던 양명학자이자 서예가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1705~1777)의 글씨입니다. 이광사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쳤으며, 많은 편액을 남겼습니다.
원교 이광사의 편액 글씨는 호남지방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大雄寶殿)
내소사 설선당(說禪堂)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
대흥사 천불전(千佛殿)
대흥사 침계루(枕溪樓)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大雄寶殿)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極樂寶殿)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一柱門)
천은사 명부전(冥府殿)
강진 백련사 만경루(萬景樓)
고창 선운사 천왕문(天王門)
원교 이광사는 당대의 뛰어난 명필(名筆)입니다.
안평대군,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4대 명필에 꼽히는 인물입니다.
이광사는 나주벽서사건(羅州僻書事件)으로 23년을 유배지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내소사 대웅전 꽃문살
빗국확꽃살문, 빗모란연꽃살문, 솟을연꽃살문
내소사 대웅보전 문에는 연꽃과 국화, 모란 문양 등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조각되어 있습니다. 연꽃 문양은 번뇌에서 피어난 지혜를 뜻하고, 국화는 고고히 수행하는 수행자의 기풍은 나타내며, 윗쪽의 금강저 문양(파랑색 화살표)은 번뇌를 깨뜨리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연꽃이 아래에서는 봉오리였다가 위로 올라가면서 꽃이 활짝 피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목조아미타삼존불상(전북 유형문화재 제255호)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 보현보살, 우 문수보살
내소사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좌협시)에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과 왼쪽(우협시)에 실천의 상징 보현보살이 협시로 모셔져 있고 후불화는 영산회상탱화가 있습니다. 후불탱화의 복장에 파랑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보현보살, 문수보살이 협시(夾侍)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삼존불상
현대에 조성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본존불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석가여래좌상입니다.
보현보살(우협시), 문수보살(좌협시)
협시보살의 특징은 보관의 중앙에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손에는 연꽃이나 감로수병을 들고 있습니다.
큰 자비심의 관세음보살 큰 특징은 보관의 중앙에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손에는 연꽃이나 감로수병을 들고 있습니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짓고 보리심을 닦게 하는 지혜의 보살님입니다.
오른손에 지혜의칼을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사자를 타기도 하며 지혜의 상징으로 손에 책을 갖고 계신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소사 대웅보전 천장 용머리와 석가래 빠진부분
용이 여의주(如意珠)와 잉어(鯉魚)를 물고 있습니다.
대웅보전 신중탱화
내소사 대웅보전의 단청이 빠진 창방 아래에는 신중탱화가 걸려 있습니다. 신중탱화는 중앙에 날개달린 투구와 갑옷을 입은 호법신, 위태천을 비롯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들을 그린 불화입니다.
대웅보전 지장탱화
내소사 대웅보전의 다른 한쪽 벽에는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그리고 명부의 시왕을 그린 지장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얼굴과 손을 제외하고 거의 같은 색으로 그린 특이한 탱화인데, 색이 날아간 것인지, 원래 그렇게 그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웅보전 백의관음보살좌상 벽화
내소사 대웅보전 후불벽 뒷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좌상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반야용선의 뒤에서 어둠에 허우적 거리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라는 의미에서, 비좁은 법당의 뒷좌리에 좌정해 있는 듯 합니다. 백의관음좌상의 눈길은 절 뒤 산중턱의 관음전을 향하고 있다고 하는데, 관음보살의 눈을 보고 옆으로 걸어가면 관음보살의 눈이 따라 옵니다.
백의관음보살좌상 부분도
대웅보전 불단 후불벽면에는 우리나라 백의관음상 가운데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관음상의 눈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면 꼭 들어준다 합니다.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 (來蘇寺 靈山會 掛佛幀)
세로 9.95m, 가로 9.13m의 크기로 삼베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보물 제1268호이며 화원(畵員)은 가선대부(嘉善大夫) 천신(天信)과 5명의 승려가 그렸습니다.
이 괘불화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다보여래(多寶如來), 아미타불(阿彌陀佛),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관음보살(觀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7존의 모습을 도상화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산회괘불은 영산교주(靈山敎主)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법화경(法華經)』의 설법에 참여한 보살과 성문, 호위하는 무리 등을 도상화하지만 이 불화의 경우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7존(七尊)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러한 칠존(七尊)의 도상은 불교의식집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1661년)에서 그 전거(典據)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의식의 진행단계 중에는 의식도량의 교주로 삼고자하는 불보살의 명호를 불러 도량에 강림하기를 청하는 절차인 ‘거불(擧佛)’의 절차가 있는데, 의식의 주존인 석가모니불과 석가의 설법이 진리임을 찬탄했던 다보불,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인 세 여래가 청해지고 여기에 문수· 보현보살, 관음· 세지보살이 결합해 영산회상의 대표적인 불보살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이 불화는 의식집의 거불절차를 도상화한 가장 이른 예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후 18세기 대표적인 불화승(佛畵僧) 의겸(義謙)이 제작한 괘불화의 도상에 영향을 미쳐 경남 진주 청곡사(靑谷寺) 괘불화(1722)에서부터 전북 무주 안국사(安國寺) 괘불화(1728), 운흥사(雲興寺) 괘불화(1730), 전남 나주 다보사(多寶寺) 괘불화(1745), 전북 부안 개암사(開巖寺) 괘불화(1749)에서 동일한 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각각의 인물이 이루는 크기나 원형의 구도는 설법회상의 구성을 보여주나, 영축산의 설법회를 재현하던 도상은 생략되고 의식집에 수록된 불보살만을 묘사한데서 도상적 변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불화의 수화사(首畵師) 천신(天信)은 이 불화 외에도 경남 쌍계사 영산회후불화(1687년)와 전남 여수 흥국사 영산회후불화(1693년, 보물 제578호)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습니다. 천신 작품의 특징으로는 불·보살상의 얼굴과 머리모양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데 둥근 얼굴에 양 볼은 홍조를 띄고 있으며 반달형의 눈썹과 반개(半開)한 눈, 작은 입의 천진한 얼굴 등의 인물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색채는 붉은색과 남색, 녹색이 주조색으로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밝고 파스텔톤의 색조를 띤다. 존명의 옆으로는 각 존명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영산교주석가모니불(靈山敎主釋迦牟尼佛) 등의 방제(旁題)를 붙여 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인물표현의 특징으로는 둥근 얼굴에 코와 입이 중앙으로 몰려 작게 표현되었습니다.
이 불화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칠존의 도상의 전거가 불교의식집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으로 의식도량에 강림하기를 청하는 절차인 ‘거불(擧佛)’의 절차에 있음을 보여주는 첫 괘불화로 의미가 있습니다. 숙종 26년(1700)에 조성된 이 불화는 콧속의 털까지 묘사하는 필선의 정밀함, 화려한 옷의 무늬와 채색으로 더욱 돋보이는 작품으로 불화승 천신의 화풍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조사당
부안 내소사 조사당은 내소사의 도량을 일신하고 법풍을 새롭게 일으킨 고승들의 진영을 모신 전각입니다.
조사당(祖師堂) 편액
조사당 진영
내소사 조사당 내부에는 왼쪽부터 우암 혜산스님, 해안당 봉수(1901~1974)스님, 관해당 인주스님, 만허당 경화(1856~1935)스님, 학명당 계종(1867~1929)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사진에서 오른쪽 스님이 왼쪽 스님의 은사스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영의 오른쪽 세 분의 의상은 스님들이 입는 가사가 아니라, 동정이 달린 유교식 도포라는 지적이 있고, 옷차림이나 색깔이 매우 유사하여, 비용 절약의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지장전(地藏殿)
부안 내소사 지장전은 지장보살과 명부의 시왕을 모신 전각으로 다른 사찰의 '명부전', '시왕전'과 같습니다. 이 전각에서는 죽은 이의 영가가 극락에서 왕생하도록 기원을 합니다.
지장전(地藏殿) 편액은 성균관대 명예교수이자 서예가 우산 송하경(友山 宋河璟, 1942년 전북 김제 출생)선생의 글씨입니다. 송하경 선생은 무주 안국사 일주문 편액을 쓴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 1913~1999) 선생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지장보살과 명부10왕을 봉안하였습니다.
내소사 지장전에는 주불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좌우에 명부의 열 분의 시왕과 판관, 녹사, 인왕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오른쪽 세번째의 금강경을 머리에 쓰고 있는 분이 시왕중의 왕인 염라대왕입니다.
지장보살
삼성각
1941년 능파스님이 건립하였으며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봉안하기 위하여 6평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1986년과 1993년 2차에 걸쳐 우암혜산선사가 보수, 해체 복원하였는데 원래는 법당을 바라보고 동향(東向)으로 건립하였습니다.
삼성각 편액
삼성각(三聖閣) 편액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구당 여원구(丘堂 呂元九 1932~ )선생이 무진(戊辰 1988 新正) 새해에 쓴 글씨입니다. 구당 선생은 서예가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의 동생인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1927~2007)선생에게 글씨를 사사했으며, 1995년 KBS2 <장녹수>의 드라마 속 글씨를 쓰기도 했습니다.
삼성각
내소사 삼성각에는 치성광여래상과 칠성탱, 나반존자를 그린 독성탱, 산왕대신을 그린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치성광여래

보종각(寶鍾閣)
정면과 측면 각1칸의 팔작지붕으로 봉래루 우측에 있는 고려 동종을 봉안한 종각입니다.
3단의 계단식 기단으로 낮은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두고 그 위로 8각형의 석재주좌(石材柱座)를 깎아 짧은 원형기둥을 세운 모습입니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올려 5포로 구성된 다포를 떠받들게 하였으며,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지붕의 구조가 하부의 구조보다 훨씬 커서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사면에서 처마를 받드는 작은 활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건물 외부는 개방된 모습으로 사면에 창살이 둘러져 있습니다. 어칸에 걸려있는 편액은 일중거사가 쓴 것이라고 합니다.
보종각의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1880년경 태인에 세워졌던 것을 어떤 연유에서인지 부안군 상서면 김상기의 누각으로 사용하다가 다시 만화동 구병서가 사용하였는데, 1965년 내소사 주지 원경(圓鏡)스님이 이곳으로 옮겨지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법당 앞마당에 서남향으로 설치되어 있었으나 우암혜산(愚岩慧山) 스님이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합니다.
보종각(寶鍾閣) 편액은 우암혜산(愚岩 慧山 1933~2005)의 글씨라고도 하고,
왼쪽 관지에 쓴 호는 지초 지(芝)자 쓰는 지산(芝山)인 듯한데, 아래쪽 도장의 호에는 구릿대 지(芷)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가운데 도장의 이름은 성은 김(金), 이름 첫자는 상(相)이지만 마지막 글자는 잘 안 보입니다.
편액 글씨가 누가 쓴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고려동종 (2023년 12월 26일 국보로 지정)
내소사 동종은 고려 후기 동종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꼽힙니다.
높이 104.8㎝, 입지름(원통 모양으로 된 물건의 지름) 67.2㎝인 종은 1963년 보물(제277호)로 지정됐다가 2023년 말 국보로 승격됐습니다. 동종으로는 우리나라의 5번째 국보입니다.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큰 이 종은 고려의 예술혼이 깃든 본보기로 이름나 있습니다.
종 아랫부분과 윗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고, 어깨 부분에는 연꽃 문양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꼭대기의 용 모양 걸이(용뉴)는 입을 쩍 벌린 모습이 역동적입니다.
특히 몸체에는 부처가 설법할 때 그 주변에서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는 존재인 천인상(天人像) 대신 삼존상(三尊像)을 배치해 장식성과 조형성도 더했습니다.
내소사 동종은 역사적 변천사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큽니다.
종신에 "貞祐壬子六月初七日邊山靑林寺金鐘鑄成入重七百斤"과 "餘己酉九月七日卜居靑林翌年九月七日鑿此金鐘移懸于來蘇寺"라는 명문이 있어 종이 청림사에서 만들어진 후 내소사로 옮겨진 경위를 알 수 있습니다.
종을 만든 내력이 적힌 주종기(鑄鍾記)에 따르면 이 종은 '한중서(韓仲敍)'라는 이름의 장인이 1222년 약 700근(약 420㎏)의 무게로 만든 것으로 파악됩니다. 시위군(侍衛軍)이안 말단직에서 정7품으로 출세한 이라고 합니다.한중서는 13세기 전반부터 중엽까지 활동한 장인으로 고령사 청동 북(1213년), 복천사 청동 북(1238년), 신룡사명 소종(1238년) 등 여러 작품을 남긴 인물로 확인됩니다.
당초 동종은 '청림사(靑林寺)'라는 절에 봉안됐다가 1850년 내소사로 옮겨졌는데, 이런 내용을 담은 이안기(移安記)가 몸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연곽과 연곽 사이의 아래 부분에 삼존불이 새겨져 있는데, 본존불은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에 협시불이 서 있습니다. 특히 삼존불의 두광 뒤쪽으로 구름꼬리가 S자로 휘날리고 그 위에 장식을 흩날리는 보개(일종의 닫집)가 있어 무척이나 장엄합니다.
내소사 동종 용뉴(龍鈕)
잘 아시듯, 종을 거는 용 모양 끈(紐)이라는 뜻이고요.
가운데 솟은 대나무 모양 관, 음통(音筒)을 한 마리 용이 감싸고 있는 형상입니다.
울림을 좋게 하는 울림구멍, 명동(鳴洞)이 종 정수리에 뚫려 있습니다.
그 구멍 위에 세워 음향 효과를 더하고 장식도 겸하는 음통이 한국 종에만 있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종을 매다는 고리에는 용무늬를 새겼고, 종의 윗부분과 아래부분에는 화려한 식물 모양을 조각하였습니다.
종 고리를 용의 형상으로 만드는 연유는 포뢰(蒲牢)의 전설에서 전해 내려옵니다.
용에게는 다양한 특성과 능력을 지닌 아홉 마리 아들, 구룡자(九龍子)가 있었고, 그중 하나인 포뢰는 목소리가 우렁차서 울기도 좋아했습니다.
지옥 중생에게까지 부처님의 범음(法音) 종소리를 전달하고자 했던 불가에서는 포뢰의 목소리처럼 크고 우렁찬 종소리를 갖기를 염원해 종에 용을 조각하게 된 것입니다.
종을 치는 종메(당목 撞木)를 고래 모양으로 깎아 쓰는 것도 포뢰와 관계가 있습니다.
바닷가에 살던 포뢰는 고래를 특히 무서워했기에 고래 종메로 때리면 겁에 질려 더 크게 울기는 바랐던 겁니다.^^;;
그래서 용뉴의 용도 이렇게 입을 한껏 벌려 크게 포효하는 형상으로 빚은 것이고요.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앞발 하나를 하늘로 치켜들어 발바닥으로 용을 받쳐들고 있습니다.
그 발톱과 근육, 비늘까지 아주 섬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몸통 중앙에는 빙둘러 세 곳에 삼존상을 하나씩 돋을 새김했습니다.
본존보살은 구름 위에 활짝 핀 연꽃 형상 연화좌대에 앉아 각기 다른 모양의 손갖춤을 하고 있고, 삼존 모두 둥근 두광(頭光)을 지녔으며 본존 두광 뒤로 길게 솟아 휘날리는 구름 꼬리, 운미(雲尾)를 새겨 장엄을 더했습니다.
양쪽 협시상은 두 손을 모아 합창하고 서 있습니다.
또 다른 삼존상도 구성과 묘사가 같습니다만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릅니다
종의 가운데에는 세 분의 부처를 조각하였습니다. 가운데 본존불은 연꽃 위에 앉은 모습이며, 좌우의 협시불은 서있는 모습입니다.
종신 중단 면에는 흩날리는 천개(天蓋) 아래로 연화와 구름의 화려한 대좌 위에 표현된 삼존상 (三尊像)이 사면에 높게 부조되었습니다.이 삼존상은 결가부좌한 여래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 합장한 보살입상을 1조로 배치한 모습으로서 머리 뒤로는 유연하게 율동치며 솟아오른 천의가 묘사되었습니다. 대체로 두 구씩 표현되는 합장형의 보살좌상이 삼존상으로 바뀌면서 사방에 배치하였고 당좌도 네 개로 늘어난 화려한 장식성은 이후 고려 범종의 모본이 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종 주종기(鑄鍾記)
명문은 몸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크게 원명과 추각명 부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원명의 2째 줄부터 7째 줄은 청림사명(靑林寺銘)으로 시작되는 발원문으로서 임오(壬午) 6일 사주 선사담묵(禪師湛黙)이 기록하였다는 내용입니다 (靑林寺銘, 扶寧邊山中有靑林 三韓前寺革古鼎今, 堂宇宏麗禪侶盍, 命白公等鑄發鯨音, 停離輪苦警悟昏沉, 几有耳者開覺本心, 壬午六月日社主禪師湛黙誌). (청림사명, 부녕변산중유청림, 삼한전사혁고정금, 당우굉여선려합, 명백고등주발경음, 정리윤고경오오혼심, 궤유이자개각본심, 임오육월일사주선사담묵지)
그리고 다음 줄 9째 줄부터 17째 줄까지는 정우 16년 6월 초 7일에 역시 사주 선사담묵(禪師湛黙)이 기록하였다는 것과 그 다음 줄에는 정우 임오 6월초 7일에 변산 청림사 금종으로 700근의 중량을 들여 주성한 것으로서 동량도인 허백, 도인 종익, 장인 한중서란 내용으로 파악됩니다(貞祐十年六月日社主禪師湛黙記, 貞祐壬午六, 月初七日邊山, 靑林寺金鍾, 鑄成入重七百, 斤 棟梁, 道人 虛白, 道人宗益(?), 匠 韓冲敍). (정우십년육월일사주선사담묵기, 정우임오육, 월초칠일변산, 청림사금종, 주성입중칠백, 근 동량 도인 허백 도인 종익(?) 장 한중서
동종 이안기(移安記)
여기에 추각명으로 보이는 다음의 명문은 기유년 다음 해인 9월 7일에 지금의 내소사로 옮겨온 내용과 숭정기원후 4계축 해인 1853년에 9월27일에 김성규란 선비(隱士)가 기록한 것이란 내용입니다(余己酉九月七日卜居, 靑林翌年九月七日鑿, 此金鐘移懸于來蘇寺, 銘曰性保金剛體法轉. 輪聞聲悟心花開實新, 崇禎紀元後四癸丑九月, 二十七日隱士金性圭記, 而施焉 持殿完岩正宇). (여기유구월칠일복거, 청림익년구월칠일착, 차금종이현우내소사, 명왈성보금강체법전, 윤문성오심화개실신, 숭정기원후사계축구월, 이십칠일은사김성규기, 능시언,지전완암정우)
따라서 이 종은 원래 변산(邊山)의 청림사(靑林寺) 종으로 1222년에 만들어져 오랜 기간 내려오다가 조선시대 1853년에 지금의 내소사로 그 거처가 옮겨지게 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종을 만든 내력이 적힌 주종기(鑄鍾記)를 통해 장인 한중서(韓冲敍)가 1222년(貞祐 10) 제작하였음과, 종을 옮긴 내력이 담긴 이안기(移安記)를 통해 본래 청림사에 봉안되었다가 1850년(철종 1) 내소사로 옮겨졌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범종각
부안 내소사 범종각은 13평의 넓이에 팔작지붕 건물로 1955년에 당시 주지 철산스님이 건립하여 대범종과 대법고, 운판, 목어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범종은 지옥중생, 법고는 축생, 운판은 조류, 목어는 어류를 제도합니다.
범종각(梵鍾閣) 편액
범종각 편액은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 선생의 글씨입니다.
범종

당산나무
높이 20m에 둘레가 7.8m인 느티나무는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당시 수령 1,000년 정도였습니다.

천왕문(天王門)
부안 능가산 내소사 천왕문은 사천왕상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로서 사찰 경내 출입문의 역할도 겸하고 있으며, 17평의 목조 한와 맞배지붕으로 1986년에 우암 혜산 선사가 신축하였다고 안내합니다.
'천왕문(天王門)' 편액은 1986년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縣 1921~2006) 선생의 글씨입니다.
일주문(1984) 편액을 써준 게 천왕문(1986) 세우기 2년 전이니까 2~3년 뒤 또다시 써준 것같습니다.
일중 김충현과 내소사가 무슨 깊은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주련 글귀는 해안선사의 오도송(悟道頌)입니다.
천왕문 주련
鐸鳴鍾落又竹篦(탁명종낙우죽비) 목탁소리 나자 종 울리고 또 죽비소리에
鳳飛銀山鐵壁外(봉비은산철벽외) 봉황은 은산철벽 밖으로 날았도다
若人問我喜消息(약인문아희소식) 만약 나에게 기쁜 소식을 묻는다면
會僧堂裏滿鉢供(회승당이만발공) 회승당 안에 만발공양이라 하리라

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
동방지국천왕은 비파를 들고 동방을 관장하며, 백성을 안심하고 편히 살게 해주는 신으로 사업성취와 성불을 이루게 해줍니다. 남방증장천왕은 보검을 들고 남방을 관장하며, 삼독심(탐욕심·진에심·우치심)을 없애주고, 지혜를 증장시켜주는 신으로 지혜총명과 학업성취를 이루게 해줍니다.

서방광목천왕, 북방다문천왕
서방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들고 서방을 관장하며, 악한 사람에게는 용을 보내 비를 내리고, 선한사람에게는 여의주를 주는 신으로 업장소멸(말과 행동으로 지은 죄를 소멸시킴)을 이루게 해줍니다. 북방다문천왕은 보탑과 보당을 들고 북방을 관장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사업성취와 성불을 이루게 해줍니다.
연지
드라마 대장금 촬영장소로 나와서 인기있는 장소입니다. 조그만 수련이 있습니다.
수련은 여느 꽃처럼 밤잦으로 피어 있는 꽃이 아닌데 낮에는 피고 밤에는 오므려 '睡'(잠 수)를 사용해 수련(睡蓮)이라고 합니다.
양옆으로는 전나무 숲이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오대산 월정사, 포천 광릉의 전나무 숲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유명합니다.
전나무 숲길
600m의 전나무 숲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계졀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이 길은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만큼 장관을 이루는 명소입니다.

내소사일주문
사찰 입구에 있는 출입문으로, 1982년 원조스님이 3평의 팔작건물로 건립한 것을 1984년 우암혜산 스님이 단청하여 중수하였습니다
능가산 내소사(楞伽山 來蘇寺) 편액은 1984년(甲子年)에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 선생의 글씨입니다. 김충현 선생은 여초 김응현 선생의 형으로 7세때 안진경체를 쓰기 시작하여 전·예·해·행·초의 한문 5체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김충현체'를 만들었습니다.

내소사 상가지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