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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어휘연구] 14. 성경과 성서 | 남대극 교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또다시 에스라 성경 강단 강의 시간을 맞이했습니다.에스라 성경 강단이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성경의 어휘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이미 13번의 횟수를 통하여 성경의 중요한 어휘를 연구했고,오늘은 또 다른 중요한 어휘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성경의 어휘 연구를 하는 목적은 이미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성경에 나오는 단어의 참된 성경적인 의미를 찾아서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성경 문맥 또는 성경 전체에 대한 건전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오늘은 14번째 시간으로서 '성경'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함께 연구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경'을 '성서'라고도 부릅니다.성경과 성서는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만 또 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오늘 그 차이를 좀 생각하고,우리가 어떤 용어를 사용하면 좋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성경과 성서,이 두 단어는 똑같은 의미를 가졌는가 아니면 서로 다른 의미를 가졌는가?이 단어들은 성경이라고 하는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기는 하지만,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과 성서할 때 '경(經)'과 '서(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경'은 '서'보다는 격이 높은 책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원칙적으로 '경'은 보통 종교적 진리를 담은 책들을 가리키는 말이고,'서'는 모든 종류의 책들을 두루 칭하는 문자입니다.그러므로 이 두 글자를 다르게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경'으로 일컬어지는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리스도교의 경전을 그야말로 성서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성경 구약의 처음 다섯 책을 우리는 '모세오경'이라고 부릅니다.불교에도 불경이 많습니다.대장경,화엄경,법구경 등 무슨 경이 아주 많습니다.이 모든 글들을 다 포함해서 불경이라고 부르지요.물론 '불서'라고도 합니다만 뉘앙스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중국의 고전 가운데 우리가 흔히 자주 언급하는 '사서삼경'이 있습니다.사서는 무엇이고 삼경은 무엇인가?왜 한쪽 부분은 경이라 부르고,한쪽 부분은 서라고 부르는 것일까요?사서에 속하는 책으로는 논어,맹자,중용,대학의 네 책이 있습니다.삼경에 속하는 것은 시경,서경,주역의 세 책을 말합니다.전문가들의 이해를 빌리면,사서는 옛날 선현들의 제자들이 스승들의 글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고,삼경은 위대한 인물들이 친히 지은 책들을 뜻한다고 합니다.즉 '서'는 제자들이나 후대 사람들이 편집하여 모아 놓은 책이고,'경'은 그 위인들이 직접 쓴 책이라는 것입니다.내용의 무게에는 차이가 없을지라도 만들어지는 과정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슬람교의 경전은 마호메트의 '코란' 혹은 '쿠란'이라고 부르는데,그 사람들은 쿠란을 성전이자 '경(經)'으로 여깁니다.힌두교의 경전도 '베다경'이라고 부르며,후기 성도 교회(예전에는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흔히 몰몬교라고 부름)의 또 다른 경전도 그들은 '몰몬경'이라고 부릅니다.이와 같이 종교적 중요성과 그 책에 두는 무게감을 고려하면,'경'은 총체적으로 위격이 높은 글들을 말하는 어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도 성경에 대한 호칭이 조금씩 다릅니다.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성경을 '생징(聖經,성경)'이라고 부릅니다.성서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그들은 이 책을 경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반면에 우리 동쪽에 있는 일본은 '성경'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전부 '성서(聖書)'라고 하며,일본말로 '세이쇼'라고 부릅니다.성경을 하나의 고대 문서나 역사적인 기록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일본 사람들이 '경'이라는 글자가 없어서 안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경과 성서를 공용합니다.대개 성도들은 '성경'을 주로 쓰고,성경 학자들은 '성서'를 자주 사용합니다.왜 그러냐면 우리나라의 초기 신학자나 성경 학자들이 주로 일본(아오야마 학원이나 도쿄 신학교 등)에서 공부하고 왔기 때문입니다.일본에서 성서라는 용어를 주로 썼기 때문에,한국에 와서도 성서라는 말을 전한 것입니다.그리하여 성서신학,성서해석학,성서고고학 등으로 칭하여 오늘날까지도 신학교의 과목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좀 더 깊이 따져보면,성서신학보다는 성경신학,성서해석학보다는 성경해석학,성서고고학보다는 성경고고학이 더 좋습니다.그 이유를 앞으로 밝혀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이들에게 물을 때 "얘야,너 오늘 성서 읽었니?" 하고 묻는 부모님을 보셨습니까?거의 없습니다."얘야,너 오늘 성경 읽었니?"라고 묻는 것이 자연스럽고 마땅합니다.우리는 일반적인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에서는 성서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다만 신학교에 가면 성서라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되는데,이는 앞서 말씀드린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성경과 성서는 위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하고,우리말 성경을 번역한 선조들이 이 책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보면 아주 자명해집니다.요한복음 5장 39절을 보겠습니다."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 한 절 안에서 '성경'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썼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인데,이를 번역한 사람들은 성서 대신 성경이라는 단어를 택했습니다."너희가 성서에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7장 2절에 보면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라고 나옵니다.바울이 다루던 구약 두루마리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도 '성경'을 택했습니다.디모데후서 3장 15절의 너무나 잘 아는 말씀도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라고 하여 성경이라 했습니다.여기에 성서라는 말을 넣으면 조금 어색해집니다.야고보서 2장 8절에도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라고 성경이라 칭했습니다.베드로전서 2장 6절(원고의 2장 1절은 문맥상 2장 6절의 오기)에도 "성경에 기록되었으되"라고 나오며,간혹 줄여서 "경에 일렀으되"라고도 표현합니다.이와 같이 우리말 성경 번역은 일관되게 이 책을 성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양 언어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십시다.영어로는 거룩한 책이라는 뜻의 '홀리 바이블(Holy Bible)'이나 '스크립처(Scripture)'라는 단어를 씁니다.'스크립처'는 단수로 쓰기도 하고,높여 부를 때는 정관사와 복수형을 써서 '더 홀리 스크립처스(The Holy Scriptures)'라고 합니다.독일어에서도 관사를 붙여 '디 비벨(Die Bibel)'이라고 하거나 거룩한 문서라는 뜻의 '디 하일리게 쉬리프트(Die Heilige Schrift)'라고 부릅니다.서양 언어에서는 '바이블'이라는 단어 자체에 격의 높낮이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이 단어들은 모두 '책들'을 뜻하는 헬라어 '비블리아(Biblia)'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한자 문화권인 우리에게는 '경'과 '서'에 엄연한 격조의 차이가 있습니다.'성경'이라고 하면 만고의 경전으로서 종교적인 최고의 권위를 지닌 책이라는 어감이 들고,'성서'라고 하면 고대의 거룩한 역사적 문서라는 어감을 먼저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어떤 책으로 생각하십니까?여기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미국의 한 대학교에 최고 권위를 가진 유명한 성경고고학자가 있었습니다.(보통 학계에서는 성서고고학이라 하지만 저는 성경고고학이라 부릅니다.) 그분은 현장에서 고대 유물을 발굴하면 그것이 구약 성경의 어느 구절과 연결되는지 바로 알아맞히는 해박한 분이었습니다.그 밑에서 고고학을 배워 학자가 된 재림교인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그런데 이 유명한 학자(윌리엄 올브라이트 교수)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습니다.단지 유대인의 고대 문서로 믿었습니다.고대 문서로서 성경을 대했기 때문에 성경 구절과 고고학적 지식에는 누구보다 해박했지만,그 성경을 우리식으로 치면 삼국유사 같은 고대 문헌으로 생각하고 연구한 것입니다.구원의 교과서로 믿은 것이 아니라 고대 문서가 흥미로워서 고고학자가 된 것인데,이것이 그의 영혼에 어떤 유익을 끼쳤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몇 년 전에 영국에서 한 여성 성서학자가 삼육대학교에 초청을 받아 특강을 했습니다.성경에 대하여 굉장히 흥미롭고 유익한 강의를 마친 후,청중석에 있던 삼육대학교의 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박사님,오늘 강의 참 잘 들었습니다.그런데 룻기는 성경의 일부로서 예수님의 조상을 다루는 아주 중요한 책인데,오늘 강의해 주신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룻기와 예수님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을 받은 강사님은 잠시 거북한 듯 시간을 보내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여러분 미안합니다.나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기보다 그저 하나의 고대 문서나 역사적 텍스트(성서)로 여기는 학자들도 존재합니다.그것이 신앙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지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성경은 과연 어떤 책입니까?유대인의 역사에 불과합니까?아니면 신비한 신앙적 경험을 한 사람들의 체험담이나 성현들의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는 고전 정도입니까?만약 고전 문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성서라고 부르든 성경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을 것이며,나에게 특별한 중요성도 없을 것입니다.인간 역사에는 그 정도의 고대 문서들이 얼마든지 더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여러분이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생명을 주는 진리의 책으로 여기신다면,'성경'이라 칭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경과 서에는 격의 차이가 있으므로 용어를 사용할 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지칭하느냐는 우리가 이 책을 어떤 가치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져온 성경책의 맨 첫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았습니다.자세히 보면 참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발행한 곳의 이름은 '대한성서공회'인데,찍어낸 책의 이름은 '성경전서(聖經全書)'입니다.공회 이름은 일본식을 따라서 성서공회라고 붙였지만,우리가 체감하는 이 책의 무게와 비중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책 이름은 '성경전서'라고 한 것입니다.그만큼 우리 한국 교회사 안에서는 두 가지가 혼용되면서도 책의 권위만큼은 성경으로 높여왔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사본들을 보면 참 정교하고 장엄합니다.그 유명한 이사야서 두루마리(사해 사본 중 하나)는 1947년에 발견되었는데,총 길이가 약 7.34m,폭이 약 26cm에 달합니다.이를 그대로 복제한 사본이 삼육대학교 박물관 4층에 있습니다.시간이 나실 때 와서 보시면 옛 성도들이 성경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볼 수 있습니다.또한 손으로 일일이 쓴 히브리어 성경 사본을 보면,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장면 등이 정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들은 성경을 필사하다가 글자 하나라도 잘못 쓰면 종이 전체를 버리고 붓을 빨아 처음부터 다시 썼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정성과 신중함이 지극히 컸던 것입니다.1300년경에 기록된 알레포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 등을 보아도 인쇄한 것처럼 아름답고 정성이 깃들어 있습니다.바울 사도가 성경을 기록할 때의 모습을 그린 성화를 보아도,하나님의 뜻을 한 자 한 자 친밀하고 신중하게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이런 분들이 계셨기에 하나님의 뜻이 오늘날 우리에게 온전히 전달된 것입니다.이후 15세기 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찍혀 나왔고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도 1887년에 최초의 우리말 복음서인 '예수성교전서'가 번역되었고,이어 1911년에는 구약전서가 출간되었습니다.우리 선조들이 정말 눈물겨운 고생을 하며 '성경전서'를 번역해 낸 것입니다.유대인 랍비들이 영어로 번역된 성경 두루마리를 대하는 존경심 또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이는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받들어야 할지를 잘 가르쳐 줍니다.
마지막으로 영감적인 말씀 구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성경을 존중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직접 접촉하게 되므로,어떠한 인간적인 철학이 가져다주는 가장 훌륭한 결과보다 더욱 고상한 원칙은 물론이요,더욱 강하고 적극적인 지성을 갖춘 인물이 되게 해줄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中) 성경을 존중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마땅한 태도입니다.
또한 다른 글에서는 "다른 모든 이유보다도 우리가 성경을 존중히 여기는 까닭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게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성경책 위에 모자나 잡지,신문 같은 것을 얹어놓는 행위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는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성경을 우상숭배 하듯 대하자는 차원이 아닙니다.비록 물질적으로는 종이와 가죽에 불과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내용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외적으로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조금 덜 존중하는 듯한 일본식 어감을 풍길 수 있으므로,우리의 삶과 신앙 고백 속에서는 '성경'이라고 일컫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귀한 음식이 담긴 그릇을 귀하게 여기듯,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존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나아가 외적인 존중을 넘어 그 내용을 열심히 연구함으로써,우리에게 문자로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성경을 존중히 여기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성경과 성서 중 어떤 용어를 택할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용어의 정의와 위격의 차이:
성서(聖書):'거룩한 문서/책'이라는 뜻으로,제자들이나 후대 사람들이 편집하여 모아 놓은 글이나 역사적 고대 문헌의 성격을 띱니다.(일본에서 주로 사용)
성경(聖經):종교적 최고의 진리와 권위를 담은 '만고의 경전'을 뜻하며,성인이나 위인이 친히 기록한 격이 높은 책을 가리킵니다.(중국과 한국에서 주로 사용)
우리말 성경 번역의 전통:우리말 성경(요한복음,사도행전,디모데후서 등)은 번역 초기부터 일관되게 '성서' 대신 '성경'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해 왔습니다.발행 기관은 일본식 명칭의 영향으로 '대한성서공회'이지만,책 이름은 '성경전서'로 발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학문적 대상 vs 신앙의 본질:성경을 단순한 역사적 문헌이나 고대 유물(성서)로만 취급하는 불신자 학자들의 사례(윌리엄 올브라이트,영국 학자)를 통해,성경을 구원의 교과서이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신앙적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합니다.
결론과 권고:언어는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은연중 태도를 드러냅니다.따라서 성경을 단순한 문학 고전이 아닌 생명과 진리를 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성서'보다는 '성경'으로 일컫고 외적·내적으로 존중하며 그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연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