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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주신·삼신할머니·조왕신·터주대감·업신·측간신·제석,칠성·조상신·수문신
-가신신앙의 특징과 종류
우리와 가장 친근하지만 차차 잊혀지는 듯한 가신신앙은 말 그대로 집안에서 신앙되는 신앙으로 사제가 우리들 어머니, 아내, 누이동생이다. 10월 상달이면 늘 지내오던 고사가 어머니 대를 이어 아내가 주관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사라졌다. 도회지 가정에서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가신 신앙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는 동안 많은 점점 사라졌다. 많은 가옥들이 현대적으로 개량되면서 가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졌던 영역들이 사라지고 또한 가족 구조도 핵가족으로 변화하면서 가신 신앙의 영향이 급속도로 소멸되어 간 것이다. 우리 민속신앙의 뿌리인 가신신앙의 특징과 의미, 고사·성주신·삼신할머니·조왕신·터주대감· 업신 등 다양한 종류들을 되새겨 본다. 이 원고는 장정태 박사의 (사)한국동양운명철학인협회 특강용 교안을 옮겨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칼럼에 5회에 걸쳐 연재한 것이다.
자연적 발생인 가정주부가 사제인 민간신앙
우리들이 사는 공간도 종교적 상징물들이 존재하는 종교 시설
다음중 종교시설이 아닌 것은?
①사찰 ②성당 ③교회 ④우리집
사람들은 종교시설을 말하면 늘 자신들이 다니는 종교단체 혹은 남들이 말하는 종교가 소유하고 있는 공간(부동산)만을 말한다. 그러나 종교시설은 사찰, 성당, 교회는 물론 우리들이 사는 그 공간도 종교적 상징물들이 존재하는 종교 시설들이다.
제사를 지내기 전 제일 먼저 성주에게 제사를 지낸다. 성주는 하나님 즉 천주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성주는 가족 모두를 지켜주는 보호신의 역할을 하며 집을 처음 지으면 제일 먼저 성주를 모시는 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성주풀이를 통해 성주를 맞이한 이후 여타 신들이 함께 집안에 좌정하면서 우리들이 사는 공간은 신성한 성역이 되는 것이다. 제사는 가장이 집안 식구들을 모아놓고 올리는 종교의례라면 가정에 있는 신들은 가정주부가 사제자가 되어 집전을 하며 신들의 영역 그리고 역할에 맞추어 수시로 기도를 올리는 공간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민속」 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 「유리이사금」조다. 늙은 홀아비, 홀어미, 고아, 늙어서 아들이 없는 이, 늙고 병들어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이를 위문하고, 그들에게 식량을 주어 부양하게 하니, 이에 이웃나라 백성들이 듣고서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 이해에 <민속>이 즐겁고 편안하여 이것이 가악의 시작이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신화. 민담, 가요, 풍수, 무속, 인문지리와 풍속 등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민속학의 범위에 속한다.
민속학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예로부터 민간에 전승되어온 풍속, 제도, 습관, 신앙 따위를 조사 기록하여 민족의 전통적 문화를 구명하려는 학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으로 종교민속학, 민속불교, 기독교 민속학 등이다.
그 가운데 우리와 가장 친근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가신신앙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가신은 말 그대로 집안에서 신앙되는 신앙으로 사제가 우리들 어머니, 아내, 누이동생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장 큰 부침을 하였다. 언제 우리 곁을 떠나버린 신앙된 줄 모른채 우리는 살고 있다. 10월 상달이면 늘 지내오던 고사가 어머니 대를 이어 아내가 주관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사라졌다. 도회지 가정에서 얼마나 고사를 지내며 한 해를 감사하는지 이제는 알 수 없다.
* 여인들이 주가 되며 소박하고 현실적이며 정적인 가신신앙의 특징
가신신앙은 서민신앙이다. 현세의 부와 명예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내세, 사후세계를 준비한다. 그러나 팍팍한 현실문제가 급한 사람들은 아침을 먹으면 점심이, 점심을 먹으면 저녁이 걱정이다. 내세, 사후세계는 먼 나라이야기다. 그래서 인간적이며 다정다감한 면이 있다. 머리를 다듬다 “놀라게”했다는 이유로 벌을 주는 ‘칙간신’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의 개념과 너무 다른 ‘진노’의 모습은 너무 인간적이다.
가신신앙은 자연적으로 발생해서 전승되어온 민간신앙의 일종이다. 가신신앙은 여인들이 주가 되며 소박하고 현실적이며 정적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각별한 윤리관의 강조도 적고, 논리적인 구분의식도 많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민간신앙의 신관(神觀)은 흔히 다신다령교적(多神多靈敎的)인 성격을 띠는데, 이것은 가신신앙과 무속신앙, 그리고 동제를 비롯한 마을신앙이 모두 기본성격으로 공유하는 점이다.
가신 신앙은 하층민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민계급은 개인적인 인격의 성숙을 강조하는 신앙보다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꾸려가면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하소연할 수 있는 신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신 신앙은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의 삶을 희망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을 수행하며 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현세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사후에 영혼이 어떻게 되느냐는 것에는 관심이 적고 내세관이 불투명하다. 즉 출생 후 죽음 전까지 안전과 건강, 복을 추구하는 모습이 신앙의 핵심인 것이다.
지극 정성으로 가신들을 섬김으로써 집안과 자녀가 복을 받고 평안하기를 바라는 주부들의 열정과 사랑은 현재까지도 가신 신앙을 이어오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듯 가신 신앙을 통해 가족들은 화합을 도모하게 된다. 가신이 온 집안을 골고루 살펴준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고, 각자의 생활에 바쁜 가족들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을 통하여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합을 이룰 수 있다.
가신 신앙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는 동안 많은 부분 잊혀졌다. 많은 가옥들이 현대적으로 개량되면서 가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졌던 영역들이 사라지고 또한 가족 구조도 핵가족으로 변화하면서 가신 신앙의 영향이 급속도로 소멸되어 간 것이다.
산모가 아이를 낳거나 생일날 밥상에 나오는 미역국은 삼신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가신의 종류에 대한 학자의 분류는 다음과 같다.
이능화(李能和); 성주(城主)·터주·제석(帝釋)·업(業)·조왕·문신(門神) 등 6종
아키바(秋葉隆);성주·제석·대감(大監)·지신(地神)·터주·조왕·걸립(乞粒)·수문장·측신(厠神)등 9종
임동권(任東權); 성주·터주·제석·사창신(司倉神)·조왕·수문신·측신 등 8종
가신의 위치는 아랫목에 삼신, 윗목에 조상신, 부엌에 조왕신, 광에 업신, 마당에 터주신, 장독대에 천룡신, 문간에 문간신, 우물에 용왕신, 변소에 뒷간신이 있다.
경제권과 종교 의례 집행권까지 모두 소유한 조선의 주부
경제권과 종교 의례 집행권까지 모두 소유한 조선의 주부의 권한을 느끼게 하는 고사.
1)고사
고사란 집에 거주한다고 믿어지는 신들에게 지내는 것으로 이는 진적으로 주부가 관장하는 의례이다. 조선의 규범은 잘 알려진 것과 같이 남녀를 강하게 나누어 서로의 영역을 확실하게 했다. 그런 까닭에 바깥일은 남성이 주도했지만 집안의 일은 경제권을 포함해 전권을 주부에게 일임했다. 그 결과 집안과 관계되는 신앙은 주부의 몫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는 조선 시대의 주부들이 집안에서는 상당한 권력을 가졌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이웃나라인 중국과 비교해 보면 경제권과 종교 의례 집행권까지 모두 소유한 조선의 주부는 그 권한이 컸다고 하겠다. 이에 비해 경제권과 종교 의례 집행권까지 모두 소유한 조선의 주부는 그 권한이 컸다고 하겠다.
고사는 10월에 추수를 끝내고 지내는 게 보통이다. 많은 경우 주부가 혼자 집전하지만 여유가 있으면 무당을 초청해서 하기도 한다. 의례 형식은 단순하다. 고사떡이라고 해서 시루떡을 쪄서 각 신들이 소재한 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된다. 물론 떡만 올리는 것은 아니고 막걸리나 북어 같은 것도 같이 올린다. 고사 절차가 끝나면 그 떡은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그러면 조선의 주부들은 과연 어떤 가신을 어떻게 모셨을까?
가신들은 건물 안에 사는 신들과 집터 안에 사는 신들로 구별할 수 있다. 우선, 건물 안에 사는 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은 뭐니뭐니해도 집의 대들보에 산다고 믿어지는 성주신이다.
2)성주신(가옥의 수호신, 가내 평안 농사의 풍년기원, 부귀번영 및 병의 치유를 비는 신앙)
이 신이 중요한 이유는 그 집안의 가장을 수호하는 신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신이 거주하는 공간은 마루인데 마루라는 단어가 ㅡ‘산마루’,‘고개마루’의 경우처럼ㅡ꼭대기를 뜻하기 때문에 마루는 존장자가 머무는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주로 안방에서 이루어진다. 안방은 집안의 가장 어른의 공간이면서도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부부의 성 생활이 일어나는 곳이다. 성리학이 대세였던 조선은 생산을 목적하지 않는 부부생활은 아름다운 행위로 보지 않았다. 그런 사랑은 밖에서 다른 사람과 즐겼다. 그 결과 기생문화가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 소실이란 이름의 성욕배출구를 별도로 만들어 향우하기도 했다. 안방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먹고 자고 자식도 낳고 마지막에는 그곳에서 죽는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는 신위가 되어 마루에서 제사를 받아먹는다. 굿이나 결혼식 같은 신성한 의례는 모두 마루에서 이루어진다. 집안의 중심은 마루이며 깨끗한 공간으로 여겼다.
성주신은 이런 신성한 공간에 모셔지는 것이다. 성주신은 그 집안의 으뜸 신으로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이다.
성주신의 몸체는 지방마다 달라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종지(작은 그릇)에 쌀 같은 귀중한 곡식을 넣고 한지로 덮어 마루 귀퉁이에 놓거나 대들보에 올려놓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경우에는 동전을 넣는 경우도 있다. 어떤 집은 대청의 대들보 밑이나 상 기둥의 윗부분에 백지나 무명을 직사각형으로 접어서 실타래로 묶어 놓았다. 어떤 집은 막걸리에 적신 한지를 떡과 함께 손으로 주물러 반구형으로 만들어 붙여놓는다. 집이 한옥이 아니고 양옥인 경우에는 종지를 달아 놓을 곳이 없었다. 그때 주부는 한지를 접어서 봉투를 만들어 그 한 면에 쌀알을 붙이고 안에는 동전을 넣어서 벽 위쪽에 붙여 놓기도 한다. 그리고 무당이 와서 치성을 드렸는데 그것이 고사의 한 순서다.
무속에서 보면 성주풀이 같은 서사 무가가 있다. 집안에 기거하는 신령을 이렇게 노래한 것은 성주에게만 국한되는 것 같다. 고사는 이렇게 성주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모습이라야 아주 간단하다. 먼저 마루에 고사떡을 올려놓고 그 위에는 북어나 실타래 같은 것을 얹고 촛불을 켜놓는다. 그리고 떡 앞에 막걸리를 부어 놓고 거기다 절을 한 후 올 한해를 무사히 넘긴 것을 감사해 하며 소원을 빈다.
성주신에 대한 의례는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한 뒤에 성주맞이 굿을 하고 신체를 봉안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드리는 안택고사는 성주신을 대상으로 한다. 설날,추석과 같은 명절이나 재수굿을 할 때에도 성주신에게 제를 올리고 기원한다.
성주신을 새로 맞이하여 봉안할때는 세대주(가구주로 남자)의 나이가 27,37,47,57 등 7자가 들어가는 해 음력 10월에 성주맞이굿을 하게 된다. 이 나이는 지역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경상도 지방에서는 33,47,53 등 3과 7의 해에 하고, 충청도의 일부 지방에서는 29,39,49 등 9자가 드는 해에 하기도 한다. 쌀은 주로 음력 10월에 햇곡식으로 바꿔 넣는다. 이 속에 넣었던 곡식은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밥을지어 가족들만 먹는다. 그 곡식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복을 내보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3)삼신할머니(삼신제적)
삼신은 자녀를 점지(點指)하여 태어나게 하고 길러주는 신이다. 이 신이 있는 자리는 안방 아랫목이다. 신체는 그리 흔하지 않으나 삼신자루라 하여 한지로 만든 자루 속에 쌀을 넣어 아랫목 구석의 벽에 높직이 달아내 놓는다. 쌀을 바가지나 동이에 담고, 시렁을 만들어 거기에 얹어 놓기도 한다. 이를 각기 삼신바가지 또는 삼신동이라 한다. 삼신을 한자로 ‘三神’이라고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삼은‘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어서 이에 해당하는 한자는 없다. 그러므로 삼신을 한자로 쓰고자 할 때에는 ‘태신(胎神)’ 또는 ‘산신(産神)’이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 삼신은 일반적으로 ‘삼신할머니’로 불리는데 지역에 따라서 달리 부르기도 한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삼신을 ‘지앙’이라 하고, 경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세존할머니’라 일컫는다. 집안에 따라서는 삼신할머니와 삼신할아버지 부부를 함께 모시기도 한다.
어린아기가 태어나면 엉덩이에 파란 점이 있다. 이를 사람들은 아기를 점지해준 삼신할머니가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지낸 아기에게 ‘이제 그만 나가거라!’하고 엉덩이를 때려서 생긴 점이라고 한다. 이것은 몽골리안 반점이 생긴 내력을 설명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삼신에게는 기자(祈子)와 육아(育兒)의 제의를 올린다. 차례 때에 제를 올리기도 하고, 별식을 마련하였을 때에도 한 그릇 바친다.
삼신바가지(삼신단지)에 담긴 쌀은 일 년에 한 번씩 햇곡이 나면 갈아(교체) 넣는다. 묵은 쌀은 집안 식구끼리만 먹으며 절대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은 다른 가신과 마찬가지다.
삼신할머니의 주 업무는 아이들과 관계가 있다. 아이의 수태부터 시작해서 임신기간, 출산, 양육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주는 신이 바로 이 삼신할머니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이를 보호하는 수호 신령이다.
그래서 이 신은 여성이고 여성 중에서도 노련한 할머니로 묘사된다. 안방은 앞에서 잠깐 본 것처럼 출산이나 사망과 같은 부정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삼신할머니는 모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부정한 것을 너끈히 참아낼 수 있다. 이 신이 사는 곳은 안방 아랫목 윗벽에 있는 시렁 위의 작은 단지에 쌀이나 보리를 넣고 한지로 덮어 놓는다. 그리고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마루에서 성주신에게 떡을 바친 다음 안방에 와서 이 신에게 같은 일을 한다. 삼신할머니는 다른 때에도 이런 치성을 받는데 아이를 낳는 직후가 바로 그때이다. 삼신메라 일컫는 것으로 밥을 정갈하게 해서 이 신령에게 바치고 산모와 아이의 안전과 건강을 빈다.
삼신 신앙 중에 중요한 제물은 미역이다. 산모에게 먹일 미역은 값도 깎지 않으며, 산모 용 미역을 싸줄 때 가게 주인은 미역을 꺾지 않고 새끼줄로 묶어주는 풍습이 있다. 이는 미역의 값을 깍거나 그 줄기를 꺾으면 태어나는 아기의 수명이 줄고 산모가 난산을 한다 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돌잔치에 실, 칠성앞에 실, 중국인들의 냉면에 가위질하면 기겁을 한다. 길수록 장수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안방 바로 옆에 붙어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부엌이다. 부엌에는 불이 있다. 불은 많은 사회에서 신성시되어 왔다. 물과 함께 정화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불이란 모든 것을 태울 수 있기 때문에 정화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전에 장례식을 할 때 관이 집을 나가면 아궁이에서 불을 땠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불로써 시체의 부정을 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습속이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사 간 집에 성냥을 사가지고 갔다. 이것은 불이 타듯 재산이 불라는 의미가 있다. 예전에 불씨를 꺼뜨리는 며느리는 집안을 망하게 할것이라 하여 쫓아내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불과 재산을 직접적으로 관련시키는 의식 때문일 것이다. 성냥 대신 술술 풀리라는 의미로 두루마리 휴지나 세제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불이 이렇게 신성시되니 불신이 없을 수 없다. 이 신의 이름은 조왕신(竈王神)이다.
중국 도교의 신인 조왕신, 한국에 들어와 무당굿과 사찰에서도 모셔
4)조왕신(竈王神) (자손의 명과 안전, 복을 기원)
조왕신에 대한 의례는 주부가 매일 아침에 조그마한 주발에 정화수(井華水)를 떠서 부뚜막에 올려놓는다. 별식을 마련하였을 때에도 이를 부뚜막에 올려놓는다. 부뚜막은 조왕신의 자리여서 주부들이 부엌에서 일할 때 아무리 피곤해도 부뚜막에는 걸터앉지 않는다. 조왕신은 섣달그믐 무렵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를 찾아가서 지난 일년 동안의 일을 고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 각별히 말조심을 하고, 때론 부뚜막에 엿을 붙여두기도 한다. 혹 하늘에 가더라도 옥황상제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하지 말아달라고 미리 입을 막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대대적인 이사철 시구간(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까지)이 여기에 해당된다. 조왕신은 자녀들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에 평소 조왕을 모시지 않는 집에서도 아들이 군대에 가거나, 그밖에 자녀들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기면 조왕을 모셔 정화수를 올리며 기도한다. 그러다가 아들이 무사히 제대하면 조왕주발을 거둔다. 매우 실리적이고 공리적이라 할 수 있다. ‘부엌이 대체로 서쪽에 있다.’ 곧 주걱질을 집 안쪽으로 하면 복이 들어오지만, 반대가 되면 복을 쫓아내는 결과를 낳는다고 여긴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부엌을 서남쪽에 두면 좋지만, 서북쪽에 두면 나쁘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집 안쪽으로 밥을 푸는 것을 ‘들이 푼다’고 하고, 바깥쪽으로 푸는 것을 ‘내푼다’고 하여 복이 들고 난다고 여기기도 한다. 아침마당 청소도 아침에는 바깥쪽으로 저녁은 안쪽으로 쓰는 이유와 같다. 조왕 앞에서 옷을 벗거나, 노래를 하거나 욕을 하면 안된다. 부정한 나무를 때지 않고 아궁이 불에 향을 붙이지 않는다. 글씨 쓴 종이를 태우거나 사람을 꾸짖어도 나쁘다.
신발이나 의복을 말리거나 닭털과 짐승의 뼈를 태우지 않는다. 칼과 도끼를 올려놓지 않 고 생강 파, 마늘을 썰지도 않는다. 부엌 문턱을 밟지 않고 부엌을 향해 비질을 않으며, 소나 개고기도 먹지 않는다.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다른 가신 신앙과 함께 조왕 신앙 역시 완전히 사라졌지만 아직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사찰의 부엌 안을 보면 아궁이 위에 한문으로 몇 자 적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조왕신이라고 써놓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여염집처럼 그릇에 물을 담아 모시지는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부처님보다 형편없이 작은 신한테 그릇에 물을 떠놓고 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닌가 싶다. 공양간에 근무하는 공양주 보살 등에 의해 신앙되면서 탱화형태로 제작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초,향,시주함을 갖추어 놓기도 한다. 우리의 민속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불교는 그러기에 민족종교라는 말을 붙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불교계 역시 세상인심을 따르고 있다. 도심에 포교당들은 조왕신을 모시는 일이 없고 특히 젊은 스님들은 금기시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원래 조왕신은 도교의 신이었다. 그런데 이 중국의 도교신이 어떤 경우로 우리나라 부뚜막까지 왔는지는 전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중국 도교의 최고신인 옥황상제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민담에서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당이 집안의 운수를 비는 안택굿을 할 때 조왕굿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주부에게는 부엌이나 불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 도교의 신인 조왕신이 한국에 들어와 무당의 굿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불교 사찰에서도 모셔지는 등 종교간의 경계가 없이 신앙되는 경우도 찾기 힘들 것 같다.
성주신이 집안을 관장하는 신이라면 집에는 전체 터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 이름하여 ‘터주대감(신)’인데 지신(地神)이라고도 하는데 집터를 맡아보며 집안의 액운을 걷어주고, 재복(財福)을 주는 신이다.
5)터주대감(신,터대감) (터주 풍작과 번창을 의미한다.)
가정에 따라서는 터주대감, 또는 터 대감이라고도 한다. 터주를 상징하는 신체는 집의 뒤뜰 장독대 옆에 ‘터주가리’를 만들어 신체로 모신다. 터주가리는 서너 되들이 옹기나 질그릇 단지에 벼(쌀)를 담고 뚜껑을 덮은 다음, 짚을 원추형으로 덮는다. 이 터주가리에 담았던 곡물은 해마다 추수 때에 갈아 넣는데, 역시 묵은 곡식은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가족들이 먹으며 복을 빈다. 가을에 햅쌀로 갈아 넣을 때 메를지어 올리는 경우도 있다. 터주신에 대한 제의는 특별한 지신제(地神祭)를 올리는 경우가 있다. 정초나 그밖의 명절에 떡을 한 접시 올리고, 별식(別食)이 있을때에 한 그릇 올린다.
터주고사는 음력 10월에 드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보통 정월 15일,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칠석 등 세시적 절기에도 고사를 드릴때가 있으며 특히 집안에 동티가 나서 불상사가 생기게 되면 터주신의 노여움을 탔다고 하여서 길일을 잡고 3일전부터 대문에 금줄을 드리우고 황토를 편다음 제주는 냉수에 목욕을 하는 등 금기(禁忌)를 지키고 있다가 터주신께 축원을 하게된다. 일반적인 터주신의 형태는 항아리에 결실이 좋은 볍씨를 넣거나 곡식의 낱알을 넣어서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은 후에 짚으로 왼새끼를 꼬아서 만든 금줄을 두른다. 이 신령은 욕심이 많아 무엇이든지 밖의 것을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신을 잘 모시면 부자가 된다는 믿음이 있다. 이 신은 보통 뒤뜰 장독대에 모셔놓는데, 신체(神體)는 항아리에 햅쌀을 담고 그 위에 깔데기 모양으로 된 짚을 덮어놓는 다. 여기에 담아 놓은 쌀은 한 해가 지나 햅쌀로 바꿀 때 절대로 남에게 주지 않고 떡을 해서 먹는다고 한다. 안택굿을 할때에 대감거리가 포함되는데 이 거리의 주신이 바로 터주대감이다.
이로써 집안에 거주하는 큰 신들은 다 본 셈인데 이 외에도 작은 신이 여럿 있다. 우선 터주대감처럼 집안의 재산을 지키는 신이 있는데 이름하여 업신이 그것이다.
6)업신(업신)
업신은 다른 가신과 달리 유일하게 실물의 동물 형상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업 구렁,업족제비,업 두꺼비와 같은 동물을 신으로 상징한다. 사람도 인업이라 하여 ‘업둥이’,‘업 며느리’,라 부르며 재물운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광에 산다고 전해지는 데 신체는 터주대감과 비슷하게 해서 뒤뜰에 모시는 경우도 있고 혹은 지붕에 사는 뱀이나 구렁이를 업신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전에는 초가 지붕 안에 살던 뱀은 절대로 잡지 않았다고 한다. 도리여 여기에 살던 구렁이나 뱀이 집을 나가면 그 집은 다 망하다는 속설이 있었다. 혹 구렁이가 집을 떠난다면 상을 차려 앞에 놓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 잡아놓으려 애쓰던 모습도 있다.
뱀(능구렁이)이나 족제비는 업신의 심부름꾼으로 보기도 하는데 집안에 이러한 짐승이 나타나면 업을 소흘히 모신 탓이라고 하여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거나 집안의 주부가 떡을 해놓고 비손을 하기도 한다. 업은 따로 특별히 모시는 방법은 없지만 음력 2월 초하루에 집안을 청소하는 날 단지안에 넣어 둔 곡식을 꺼내 바꾸어 넣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음력 10월에 집안에서 떡을 했을때나 4월 초파일이나 7월 칠석때도 떡을 해서 신위 앞에 놓고 집안의 주부들이 비손을 한다. 업둥이는 원래 자기 집 앞에 버려진 아기를 지칭했던 단어다. 업둥이는 업이기 때문에 내보내면 화를 당하지만 잘 키우면 복을 얻는다고 해서 거두어들인다. 남자 업둥이는 주인의 성을 붙여 대를 잇게도 하였고 여자 업둥이는 좋은 가문에 시집도 보내주었다. 업둥이를 거두어 키우는 것은 명목상으로 업신으로 받아들이는 의미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쌍한 아이를 거두어 들이고자 하는 인간애가 숨겨있다. 또한 새로 맞이한 며느리가 들어온 다음부터 그 집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면 그 며느리를 업으로 여기고 어여삐 여겼다. 버려진 아이나 며느리를 ‘인업’으로 대했던 것은, 사람을 신으로 대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업에 빗대어 그 대상을 사랑해준다는 의미다.
고사덕담에 보면 다음과 같이 업의 형태가 나타난다.
이댁가중 일문귀속
금일금시 이정성에
인간오복을 점지한다
왼갖복을 점지할 때
구름복은 모여들고
바람복은 불어들고
물길복은 흘러든다
인간업은 걸어들고
부엉이업은 날아들고
구렁이업은 기어들고
두꺼비업은 넘어들고
도야지업은 몰려들고
족제비업은 뛰어든다
왼갖업이 다모였으니
자손축원 하여보자
부유하면서도 인색한 사람에게 ‘이 사람이 죽으면 꼭 뱀이 되어 재물 창고나 지킬 것이다.’는 말이있다. 이것은 영원암,범어사에 전해오는 전설인데 이 절 주지가 욕심이 많았는데 그가 죽어 뱀이 되었다는 전설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 다음에 집안에 있는 장소 가운데 중요한 곳으로 변소(측간)신이다.
주택구조 변화와 더불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조상들의 가신신앙
7)측간 신(변소각시) 공포의 대상,생활의 동티를 무서워함
인간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들어나는 곳이며 가장 중요한 곳이다. 그런 장소에 신령이 없을 리 없다. 이름하여 변소각시라 하는데 옷을 입고 머리를 무릎까지 풀어 내렸다고 한다. 이전에 시골에서 야간에 변소를 출입할 때 헛기침을 한 이유가 이 각시 신령에게 인기척을 낸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신령은 젊은 여인이라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문지방 같은 데에도 신령이 존재하고 빗 자루를 너무 아껴쓰면 몽당귀신이 붙는다고 하는 등 다양한 곳에 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의 신앙관이다. 그것은 단순히 두려움이나 경외심이 아니다. 모두를 신과 같이 알뜰하게 대하는 조상들의 지혜다. 좀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측간신은 옛 어르신들이 측간에서 볼일을 보면서 너무 힘(?)을 쓰는 통에 고혈압등으로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전혀 남들의 도움없이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일이 측간신의 노여움으로 생각했다. 그러기에 볼일을 보기 위해 찾을 때 꼭 남의 집을 방문하듯 예의를 갖춘것이라 생각한다. 이곳은 혼자만의 공간으로 몸가짐이나 생각이 흐트러지거나 경박하면 신경질적인 뒷간신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고 신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주당 맞는다”라고 한다. 주당은 뒷간신의 별칭이고 “주당 맞는다”는 신벌이 내려졌다는 뜻인데, 주당 맞은 사람은 얼굴이 갑자기 흙빛이 되면서 혼절하게 된다. 만약 이대로 놔두면 그대로 죽어버리므로 서둘러서 주당맥이 굿을 해야 한다. 왼새끼를 꼬아 환자의 몸을 일곱 매로 묶고 마당의 중앙에 짚을 깔아 환자를 뉘어 놓은 후 풍물을 치면서 절구공이, 쇠스랑, 괭이 등으로 환자 곁을 돈다. 이때 주변의 땅을 찧으며 “주당맥이 하자, 주당귀신 물러가라”고 주문을 외면 얼마 후 환자는 깊은 숨을 내쉬며 깨어난다고 한다. 측간 신은 좀 사악한 성정이 있다하여 우리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믿는 신이다.
8)제석(帝釋)․칠성(七星)
우리나라의 가신 신앙 중에서 주부들과 가장 가까운 것은 인간의 수명장수와 출산을 관장하는 가신들이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혼자서 삶을 영위할 때까지는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에 주부들은 늘 신에게 지성으로 자녀의 성공과 건강을 기원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에야 현대의학으로 병의 치료가 된다고 믿기 때문에 신에게 빈다는 것 자체도 미신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나라의 전통 민간신앙에는 어린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삼신(三神=産神)의 직능이며 명(命)은 칠성(七星)이 복(福)은 제석(帝釋)이 관장하여 아이가 태어나서 9세까지는 삼신할미가 책임진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의 신위는 가신신앙에서뿐만이 아니라 무의식인 굿에서도 함께 나타나고 있으며 모두가 인간이 태어남에서 죽음까지를 주관하고 보호하는 신격이다.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삼신과 유사한 생각은 일본 천리교에서도 보인다. 어버이신님이 어린아이를 일정기간 보호하기 때문에 사고없이 성장한다는 주장이다.
제석(帝釋)은 도리천의 임금이며 하늘의 수호신으로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이지만 무가(巫歌)의 제석풀이에 보면 인간에게 복을 접지해주는 신으로 특히 자손창성을 주관하는 신이다. 제석신의 신위는 쌀을 항아리에 담아놓거나 밥 주발에 쌀을 담고 한지로 덮어 놓기도 하고 제석주머니를 만들어 벽에 쌀을 걸어 놓기도 한다.
칠성(七星)은 북극성을 중심으로한 도교에서 말하는 탐랑(貪狼), 거문(巨文), 녹존(祿存), 문곡(文曲), 파군(破軍), 무곡, 염정 등 일곱별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의 인물적간과 수명장수를 담당하는 신이다. 칠성의 신표는 집 뒷켠에 칠성단을 만들어 놓거나 돌 일곱 개를 놓아서 신위를 만들기도 하고 칠월칠석이 되면 주부들이 밤에 장독대에 떡을 해놓고 정화수와 촛불을 켜고 북두칠성을 향해 가족의 건강과 수명장수를 축원한다.
9)조상신
조상신은 후손을 보살펴 주는 신이다. 이 신이 있는 자리는 안방의 윗목 벽 밑인데, 대체로 신체가 없다. 대개의 가정에서는 돌아가신 조상의 기일(忌日)에 제사를 지낼 때 안방 윗목 벽에 지방을 붙이고 제상(祭床)을 차린다. 이것은 윗목 벽 밑을 조상신이 있는 자리로 생각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가신으로서의 조상과 제사를 받는 조상은 차이가 있다. 유교식 제사를 받는 조상은 서열(序列)이 명확하다. 그러나 가신으로 모시는 조상은 서열이 확연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가신으로 모시는 조상은 가족들에게 자주 현몽(現夢)하여 모신 조상이다. 집안의 우환(憂患)이 있거나 좋지 않은 일이 계속되어 점사(占辭)에 따라 모신 조상도 있다. 이들은 주로 한(恨)을 품고 세상을 떠났거나 색다르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다.
조상신에 대한 의례를 보면, 차례 때 조상상(祖上床)을 따로 차려 제하고, 햇곡식이 나면 성주신과 함께 천신(薦新)한다. 굿을 할 때에도 조상상을 따로 차려 제하며, 별식(別食)을 하면 한 그릇을 바친다.
가신은 공간에 따라 상징하는 의미가 다르며, 형태 역시 각양각색으로 지방마다 다른 점을 보인다. 조령과 상신이 주로 단지에 쌀과 보리를 넣어 안벙에 놓는다. 성주는 지방의 특색에 의해 독과 한지에 곡물을 갈아 넣는다. 터주는 단지 속에 곡물,천 등을 놓고 짚 주저리를 씌웠으며 업에 형태 역시 주저리인 경우가 있지만, 형태와 위치가 각 지방마다 각기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측신과 수문신의 형태는 현재 찾아보기 어렵다. 칠성신앙은 뒷 꼍에 단을 모으고 정한수를 놓는다.
10)수문신(守門神)
『산해경(山海經)』 「대황북경(大荒北經)」에서 이르기를 “대황(大荒) 가운데 산이 있는데 이름을 형천(衡天)이라 한다. 또 선민산이 있는데, 가지가 천리에 뻗친 나무가 있다”했다. 또 선민산(先民山)이 있는데, 가지가 천리에 뻗친 나무가 있다.“했다. 이에 대한 학의행(郝懿行)의 대대례가 오제적관에서 동쪽으로는 반목(蟠木)에 이르렀다하 했고 『사기』 「오제가」에도 같은 말이 있는데, 이것이 『산해경(山海經)』에서 말하는 천리에 뻗친 나무가 아니가 한다. 유소의 예의지에서 이 경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동해 중에 도삭산이 있고, 그 위에는 큰 복숭아 나무가 있는데 꼬불꼬불 서린 것이 3천리이다. 그 낮은 가지에 난 문을 일컫어 동북귀문(東北鬼門)이라 하는데, 온갖 귀신이 출입한다. 문 위에는 신인(神人)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신도(神茶)라 하고, 다른 하나는 울뢰(鬱儡)라 한다. 주로 귀신의 무리들이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가려내고 다스려서 갈대로 만든 새끼에 묶어서 호랑이의 먹이로 썼다. 황제(皇帝)가 이것을 본받아서 귀신을 쫓아낸 다음에는 대문 위에 도경(挑梗)을 세우고 신도와 올뢰가 갈대로 꼰 새끼를 가지고 흉한 귀신을 막는 모습을 그렸으며, 또 호랑이를 문에 그려진 귀신을 잡아먹게 했다.’한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는 조상들의 가신신앙을 찾아 볼 수 없다. 마루가 없어지고 아파트에는 대들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병원에서 태어난다. 산모가 산청에 들면서 됫 돌위에 놓인 신을 보며 살아서 “다시 신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없다. 임의로 자신들이 원하는 날, 시간에 맟추어 태어나게 하는 마춤형도 다반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사라진 신앙이지만 그 의미마저 살펴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신신앙이 할발할 때는 대들보를 올리면서 상랑식을 거창하게 했다. 이제 그 자리에는 개신교의 축성기도회가 자리잡고 집은 이제 종교적 장소에서 무정물로 변화하고 있다.
성스러움과 속됨이 교차하는 집에 대한 예의
사찰이나 교회, 성당 이외에는 철저히 세속화시킨 집 등 여타 공간
현대인들에게 집은 하나의 무정물에 불과하다. 그저 모여서 밥을 먹고 잠만 자는 공간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고 최근에는 이동식 주택마저 등장하고 있다. 이제 더 정(情)도 갖지 않는다. 예전에는 대들보를 올리면서 상랑식을 거창하게 하고 동네 공부하신 어르신의 상랑문이 올라가는 일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개신교 신자라면 축성기도회(혹은 입당 감사예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꼭 좋은 현상일까?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처인 사찰이나 교회, 성당에 가면 성스러운 공간이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종교적인 행위를 한다. 그런 성스러운 행위는 사찰이나 교회, 성당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의식구조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행해지는 의식만이 성스러운 종교적인 의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가치관이다. 그 외에는 다른 공간은 철저하게 세속화시킨다. 그에 비해 옛사람들은 성스러운 공간과 속된 공간을 굳이 양분하지 않고 있다. 속되다고 생각하는 부부관계가 이루어지는 안방이란 공간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그곳에서 태어나고 죽음도 맞이한다. 성스러움과 속됨이 교차하는 것이다. 밖에서 죽는 것을 객사라 하여 금기시 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도 임종은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자손들을 불러놓고 마지막 고별의 인사(유언, 임종)를 하던 전통은 사라졌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으로 옮기고 영안실, 장례식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유언도 자손에서 의사․간호사 이제는 간병인이 임종을 맞이한다. 세태의 변화를 절감하는 것이다.
뒷산에 있는 산신당도 성스러운 공간이란 의식을 가지고 있듯이 지금 내가 사는 이 집도 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집이 일방적으로 성스럽거나 속된 공간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인간이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하는 인간의 모든 일이 집안에서 일어나니 성스러운 일과 부정한 일이 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은 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집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소중하다면 그것은 성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집은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옛사람들은 “집안에서는 이사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집이 들으면 서운해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집이 살아있다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중요한 장소에 신령이 있다고 상정한 것이다. 그래서 집안 어디에 있든지 항상 경건한 삶의 태도를 가졌다. 이런 삶이 어떠했는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메리 더글라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는 『깨끗함과 위험』이라는 책에서 유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지키는 종교적인 규범이나 금기를 분석했다. 가령 어떤 날에는 일정한 그릇만 사용할 수 있고 일정하게 처리된 음식만 먹을 수 있다는 등의 금기적인 규정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불합리하게 보일 수 있지만 거기에도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신실한 유대인들은 신을 잊어버리기 쉬운 일상생활에서조차 이런 금기를 도입함으로써 항상 신과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금기를 지키게 해 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해이해지기 쉬운 일상생활에서도 신령을 도입시켜 집안 곳곳에서 신성함을 느끼는 충일한 삶을 산것이다. 이러한 민간 신앙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옛사람들은 항상 현장을 넘어선 신적인 세계와 끊임없는 교류를 하면서 보다 더 전일적인 삶을 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조상 숭배와 가신 신앙으로 대별될 수 있는가하는 신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 두 가지 신앙은 남성 대 여성이라는 상보적인 위치에서 가신 신앙을 이루어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남은 것은 조상 숭배뿐이다. 이것은 주거 형태가 바뀐 데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을 테지만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그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지만 그런 상전벽해식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부장적인 원리와 내 가족 중심주의일 것이다. 한국 사회의 핵을 이루고 있는 단자는 다름 아닌 가족이다. 한국인들의 혈연에 대한 집착은 전 세계 어떤 민족도 능가할 수 없다. 아직도 종친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족보를 만들고 시제를 지내는 민족은 전 세계에 한국인 빼고는 없다. 지역에 따라서는 지방단체장,구·시·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 선거에서도 문중의 세력이 작용한다. 특정지역의 경우 순번제를 통해 권력 나누고 있다.
한국인이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 내부를 관통하고 있는 원리는 가부장제이다. 한국에서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 가부장적인 가족과 관계되는 가치가 항상 우위를 점해 왔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일이 추석이나 설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익히 알 수 있다. 설이나 추석은 가족과 관계된 축일인 것이다. 국가와 관계된 축일인 광복절이나 개천절은 한국인들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다. 조상 숭배는 바로 한국 가족의 내재적 가치인 가부장적인 원리를 신앙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가 없어지지 않은 오늘의 현실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상숭배 의식의 정점은 을사조약이 체결될 당시 유학자 이*영은 의병을 소집한다. 총대장으로 전국에서 모인 의병 1만명으로 서울 공략작전 직전 부친상 소식을 듣고 급거 고향 문경으로 내려갔다. 국가보다 보모에 대한 효가 우선한다는 의식이다. 동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년 상 후 재기를 다짐했지만 결국 일제에 의해 사형 당한다. 국가보다 가문(문중) 가족이 우선시되는 가족 중심사회다. 이와같은 가족중심 문중중심 사회가 된 것은 성리학의 영향과 함께 가신신앙에서 보듯 일년 이상 신체로 여겨지던 곡물을 밖으로 돌리기보다 집안 내 가족만으로 나누는 가족공동체 문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전에는 그래도 가족 내에서 제사라는 남성적인 원리와 고사라는 여성적인 원리가 균형을 잡고 있었는데 이제 여성적인 원리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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