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부분의 합에는 없고 전체에는 있는 것은 동력전달 경로다. 내부에 자체 에너지를 생산하는 엔진과 전달하는 변속기가 있다. 객체 내부의 자체 질서다. 구조가 메커니즘을 이루고 있다. 축과 대칭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동력전달구조는 복제되므로 인간을 흥분시킨다.
1차원이든, 2차원이든, 3차원이든 관점이 인간을 흥분시키고 집중시키는 것은 같다. 1차원이 음식을 보고 흥분하는 것이라면, 2차원은 다른 사람을 질투하여 흥분하는 것이다. 인간을 격동시키는 점은 같다. 1차원과 나와 직접 연결되고, 2차원은 나와 간접 연결되고, 3차원은 나를 배제한다.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 우리는 왜 메시의 드리블에 환호하고 이강인의 어시스트에 감동하는가? 영화든 소설이든 남의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 인간을 격동시키는 엔진이 있다. 배웠다가 다른 곳에 써먹어야 한다.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복제하는 능력이 있다. 자연의 패턴에 반응하는 능력이 있다.
패턴은 도장이 반복적으로 찍히는 것이다. 찍힌 자국이 있으면 찍는 엔진도 있다. 인간은 패턴을 발견하면 흥분한다. 원시인이라도 동물의 발자국을 보면 흥분한다. 발자국을 추적하여 사냥에 성공한다. 흥분이 인간을 살아남게 한 것이다. 흥분할 일에 흥분하지 않는 인간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생각은 흥분에서 시작된다. 나는 인간들이 도무지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을 기폭시키는 흥분장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순을 봐도 흥분하지 않는다.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 김민석의 반칙을 봐도 소 닭보듯 시큰둥하다. 흥분하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 생각을 강요할 수 없다.
지구가 둥근 것은 백 미터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보인다. 눈으로 보고도 못봤다는데 어쩌겠는가? 보이는 것에 반응하지 않는다. 다섯살 때 경주남산에 올라 처음 시내를 내려다봤을 때의 감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하고 공감해야 대화가 된다.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다.
공룡만 해도 그렇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복원도는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 앞으로 고꾸라지도록 그려져 있다. 어색하지 않은가? 불편하지 않나? 공룡의 복원도는 사후의 근육경직을 고려하지 않았다. 재래시장에서 파는 생닭처럼 다리가 곧게 뻗어져 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흥분되지 않는가?
나는 이발소 그림을 싫어한다. 짜증난다. 사계절이 공존하는가 하면 밤과 낮이 공존하기도 한다. 잘못된 것을 보면 화가 나야 한다. 왜 동양화의 소실점에 맞지 않는 비뚤어진 선을 보고 화를 내지 않는가? 인심 좋게 대충 넘어가서야 어찌 과학이 발전하겠나? 동양이 서구에 먹힌 데는 이유가 있다.
찌그러진 것을 가까이 두면 마음도 찌그러진다. 괴목 따위 귀신 나오는 물건을 두면 인생도 괴목처럼 꼬인다. 분재를 한다며 나무의 목을 조른다. 동물을 사랑한다며 TNR을 한다. 물고기를 한뼘 어항에 가두고 새를 비좁은 새장에 가두어 둔다. 답답하지 않은가? 물고기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