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전(羅漢殿)
나한전은 약사전에 비하여 규모가 약간 작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입니다. 나한전은 잘 다듬어진 화강석의 기단 위에 4개의 배수구가 있는 직사각형의 초석을 두르고 있으며, 정면 가운데 계단을 두었습니다. 나한전은 광서 4년(1878)에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기둥은 배흘림이 거의 없으며 머리에는 평방과 창방을 돌리고 그 위에 여러개의 공포를 짜 맞춘 맞배지붕 건물로 19세기 후반의 일반적인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한전(羅漢殿) 편액
편액은 봉선사 주지을 지낸 한암 정수(閑庵 正修) 스님이 썼습니다.
남양주 흥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16 나한상 일괄(보물)
나한전(羅漢殿)에 모셔진 삼존불과 16명의 나한은, 이미 수행으로 지혜를 갈고닦아 생로병사를 초월한 분들입니다.
여기 모셔진 나한들은 1650년에 세번째로 고쳤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일괄 문화재로 전해오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수락산 흥국사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1650년에 세 번째로 고쳤다는 것과 고친 화원의 이름이 적힌 발원문이 발견되어 1650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전라도 고산(高山, 현재는 완주) 안심사(安心寺) 약사암(藥師庵)에 모셔져 있던 것을 1891년에 흥국사로 옮겨와 다시 고치고 이듬해부터 모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한전의 한가운데에는 흙으로 빚은(소조) 석가삼존불(석가모니불, 좌보처 미륵보살, 우보처 제화갈라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석가여래상은 신체가 날씬하고 얼굴이 갸름해, 수행자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듯싶습니다.
불상들의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이 좁은 역삼각형이며 얼굴이 작고 몸이 늘씬하여 신체의 비례가 알맞은 편입니다. 석가여래 삼존 좌상의 옷주름은 간결하지만 굴곡이 깊어 입체감이 있는데 이는 흙의 재질적 특성을 잘 살린 것입니다.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흥국사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및 16 나한상 일괄은 총 23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석가삼존불 주변에 나한상, 제석천상, 사자상, 인왕상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불상들의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이 좁은 역삼각형이며 얼굴이 작고 몸이 늘씬하여 신체의 비례가 알맞은 편이다. 석가여래 삼존 좌상의 옷주름은 간결하지만 굴곡이 깊어 입체감이 있는데 이는 흙의 재질적 특성을 잘 살린 것입니다.
나한상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사자, 호랑이 등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 경책을 들고 있는 모습, 합장을 한 모습 등 독특하고 다채로운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염주, 파초 등과 함께 표현된 나한상도 있습니다. 제석천상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며 사자상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고 인왕상은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인데 이들은 모두 작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자상
제석천황
제1 빈도락존자
제3 발리타사존자
제5 낙구라존자
제7 카리카존자
제9 수박가존자
제11 라호라존자
제13 인게타존자
제16 아시다존자
흥국사 나한전에는 열여섯 분의 나한과 함께 제석천, 사자, 인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나한의 표정과 얼굴 주름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한과 제석천에서 나온 기록을 통해 1650년 중수 사실과 1891년 고산 안심사 약사암에서 모셔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한상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사자, 호랑이 등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 경책을 들고 있는 모습, 합장을 한 모습 등 독특하고 다채로운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염주, 파초 등과 함께 표현된 나한상도 있습니다. 제석천상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며 사자상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고 인왕상은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인데 이들은 모두 작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자상
인왕상
제2 가락가존자
제4 소빈다존자
제6 발다라존자
제8 벌사라불다라존자
제10 반탁가존자
제12 나가서나존자
제14 벌나파사존자
제16 주다반탁가존자
단하각은 정면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최근에 단청을 다시 해서 산뜻하게 보입니다.
단하각(丹霞閣)은 산신을 모시는 전각입니다. 여기서 단하(丹霞)는 글자 그대로라면 '붉은 노을'이란 뜻이지만, 어떻게 산신하고 연결이 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단하각(丹霞閣) 편액
산신과 호랑이
산신은 칠성(七星)과 더불어 민간신앙에서 존중받던 토착신이었으나, 불교가 이를 포용하고 수용하여 도량내 호법신중(護法神衆)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무산왕대신지위(南無山王大神之位)라고 쓰여진 위패가 놓여 있고, 산신 양갹과 산신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산신탱은 화면 중앙에 위치한산신은 흰 눈썹에 인자한 모습으로 바위에 걸터 앉아서 오른손으로 희고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왼손에는 흰부채를 둘고 있습니다. 산신의 왼쪽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있고 그 아래에 호랑이가 앉아 있으며, 오른쪽에는 천도복숭아를 쟁반에 받쳐든 동자와 차를 끓이는 동자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흥국사 삼층석탑
지대석(地臺石) 위에 2중 기단(基壇)을 세우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는데, 옥개석(屋蓋石) 위에 상륜(相輪)과 보주로 장식한 석탑입니다. 기단부에는 빙둘러 8부 신중(八部 神衆)을 돋을새김하고, 탑신 1층에도 사방에 부처님을 돋을 새김하였습니다.
범종각
수락산 흥국사 범종각은 맞배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아주 평범한 건물입니다.
범종각(梵鐘閣)의 편액은 오래되어 색이 바랬으며 주련은 없습니다. 여섯개의 기둥도 여염집에서 사용하는 사각 제재목을 썼고, 지붕의 기와골도 고르지 않아 잘 지은 전각은 아닙니다.
범종각 내부에는 특이하게도 범종이 2개 달려있고, 운판, 목어(木魚), 법고가 같이 있는데 이중 법고는 아주 낡은 모습입니다.
범종각(梵鐘閣)의 편액
수락산 흥국사 범종각(梵鐘閣)의 편액은 세로 44.7cm 가로 105.1cm 크기로 나무 재질입니다. 왼쪽에 가로로 쓴 글자는 ‘정유중추청파서(丁酉仲秋靑波書)’인데, 여기서 말하는 정유년은 1897년 아니면 1957년으로 추정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범종을 주조했다는 사실이 없어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또 편액을 쓴 청파(靑波)가 누구인지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범종 중에서 현재 사용하는 것은 '수락산 흥국사' 명문이 적혀 있습니다.
근대 범종
근대 범종은 일본 정토종 개교원 개교 20주년을 기념하여 1918년에 일본 교토에서 활동한 주성장 '다카하시 사이지로(高橋才治郞)'가 만든 범종입니다. 종이 조성되었을 당시 정토종 개교원의 주소는 경성부 본정 3정목 50번지(현재 서울 중구 필동 충정사)로 확인되었습니다.
다카하시가 조성한 범종 가운데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범종이 유일하게 한국종의 전통 양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전체적인 종의 형태는 일본종을 따르고 있지만, 종의 세부 문양은 한국 종 가운데 조선 후기 범종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용뉴의 배치, 상대와 하대를 두른 점, 종신에 4명의 보살상을 새긴 점, 4개의 연곽과 연곽마다 9개의 연봉오리를 표현한 점 등입니다.
근대 범종은 전체 높이가 149.5㎝, 종 전체 몸통의 높이는 116.5㎝, 입지름이 79㎝입니다. 바닥부터 종을 다는 틀인 종가(鍾架)까지의 높이는 180cm에 달합니다.
굵은 띠로 구분지은 원안에는 아미타불(무량광불, 무량수불)의 공덕을 찬탄하고 귀의하는 진언인 나무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南無阿彌陀佛 本心微妙眞言) '옴 아미 다 와사(唵 阿彌 爹哇舍)'가 새겨져 있습니다.
명문 사이로 연화대좌 위에 원형의 두광이 표현된 4구의 보살입상이 배치되었습니다. 각 보살상의 전체 높이는 34㎝로, 얼굴은 두툼해 보이지만 간략한 선으로 이목구비를 표현해 놓았으며, 목에 삼도를 새겨 넣었습니다.
또한 상체를 앞으로 굽힌 자세로 두 팔을 가지런히 앞으로 내밀어 연화보관 연꽃가지 등의 각기 다른 지물을 들고 있습니다. 원형의 두광과 함께 어깨를 두른 선각으로 천의의 표현이 돋보입니다.
당좌 중앙의 원지름은 8㎝이고, 그 주위에 2㎝ 길이의 8개의 연잎이 에워싸고 있으며, 9개의 연밥구멍을 표현했습니다.
종신에는 불패형식의 나무아미타불과 성수만세로 시작되는 명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범종의 명문(開敎院梵鐘銘竝序)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찌(⻑谷川好道)가 1918년(⼤正7) 11월 10일에 썼으며, 종신에 해서체 글씨를 양각했습니다. 명문에는 제작연대, 종을 발원한 시주자, 주성장(다카하시 사이지로 高橋才治郞) 등이 적혀 있는데, 일부 글자는 인위적으로 지워진 상태입니다.
정토종 개교원명 범종은 조성된 지 50여 년이 지난 1970년 초에 수락산 흥국사로 이운되었는데, 구체적인 날짜와 이운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85년에 만든 범종을 범종각 대들보에 매단 것이 아니라, 별도로 종을 다는 틀인 종가(鍾架)를 만들어 종각 내부에 넣었습니다.
보살입상
약사여래좌상 주변에 자유스럽게 모셔놓은 수많은 나한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불상들은 나한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대불은 왼손에 약합(藥盒, 약 그릇)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니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신 게 분명합니다
약사여래좌상
영산전의 왼쪽 산등성이 너머에 근래에 봉안한 석조 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약사여래좌상은 팔각연화좌대에 앉아서 왼손에는 약합을 들고, 오른손은 들어 올려 모든 중생을 병고(病苦)로부터 구제하겠다는 서원(誓願)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