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에 공개되는 글은 연세대학교 성소수자 인권 행동 Queer, We Are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기고글입니다.
각각의 글들은 전체 성소수자의 의견을 대표하지 않으며,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우리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위로가, 또 누군가에게는 이해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머리 짧은 여자(?)
하랑
나는 14살에 처음 머리를 짧게 잘랐다. 최근에 ‘그녀는 예뻤다’의 고준희 숏컷이 유행했다면, 내가 머리를 잘랐던 그 시기엔 한창 ‘커피프린스 1호점’이 인기를 끌며 방영 중이었다. 사실 내가 머리를 잘랐던 것은 드라마가 시작하기 직전이었지만, 미용실 선생님이 여자 숏컷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해 오토바이 헬멧을 얹어놓은 것 같았던 머리가 깔끔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 데는 고은찬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머리를 짧게 자르기 전까지의 나는 긴 머리를 앞머리 없이 뒤로 질끈 묶은 못난이였다. 못난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때의 나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에도 항상 비웃음이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추석 연휴를 전후로 머리를 다듬고 오니, 놀랍게도 나를 보는 시선들이 달라져있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남녀 공학이지만 각반)에선 체육시간에 여자반이 강당을 같이 쓰게 되면 종종 반끼리 피구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구기 종목을 좋아했던 나는 펄펄 날아다녔었다. 아직 머리가 길었던 어느 날 처음 얼굴을 보는 선배들과 게임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내 공에 맞은 선배들에게 못생긴 게 진짜 세게 때리더라, 라며 욕을 들었었다. 머리를 자른 후에 그 선배들하고 다시 한 번 경기를 하게 되었었는데, 같은 애인 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공에 맞은 선배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보이자 괜찮다며 방긋방긋 웃어줬다. 그 날 체육관을 나서면서 1학년 5반에 잘생긴 여자애가 있는데 피구도 잘하고 멋있더라, 라며 떠드는 말들을 들었다. 참 우습고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나는 긴 생머리와 ‘여자 같은 외모’를 내주는 대신 인기(?)를 얻었다. 내가 학교에서 제일 잘 생겼었다고 얘기하던 중학교 동창들이나, 졸업 후에 반 친구들끼리(내 고등학교는 남녀 각반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가던 엠티에서 ‘하랑이에게 솔직히 설렌 적 있다.’ 따위의 진실게임에 모두 손을 들었다던 고등학교 동창들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정의 내렸을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가끔 내가 커밍아웃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나는 진짜 살아있는 운동 아니냐’며 낄낄 댈 정도로 그 시절의 나는 꽤나 인기가 있었다.
이제까지의 내 커밍아웃이 대부분 성공적이었던 데도 나의 이 생김새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내 친구들이 그리 상상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내가 ‘여자와 사귄다(혹은 사귀었었다).’는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그들의 반응은 ‘너는 그럴만하다’였었다. 등등의 이러저러한 면에서, 나는 이런 내 외모가 나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굳이 더 솔직해지자면 만족스러운 편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이런 나의 외모가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고 취급되는 지점이다. 이 지점이 나의 일상생활을 굉장히 불편하고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처음 머리를 잘랐을 때는 잘생겼다느니, 잘 어울린다느니 칭찬을 해주던 친구들이 몇 년이 지나자 이제 머리를 길러야 하지 않냐, 너는 언제 머리를 기를거냐, 치마는 평생 안 입을 거냐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귀여운 수준이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두꺼운 겉옷을 벗어들고, 가슴을 있는 힘껏 내밀며 하이톤의 헛기침을 내뱉는 행위가 낯부끄러운 시기는 이미 지났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기준’을 통과한다면 그것은 꽤나 운 좋은 날일 것이다. 데이트를 위해 신경 써서 차려입고 나온 날엔 사람 없는 화장실을 탐색하거나, 지금 들어가는 카페가 제발 남녀 공용 화장실이길 속으로 빌곤 한다. “학생,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하는 충고부터 “진짜 여자 맞냐”는 확인까지, 나의 공중 화장실 추억을 나열하는 것은 너무 우울하고 시시할 것 같아서 넣어두려 한다.
학교 도서관을 들어가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다. 나는 3년 째 학교를 다니면서 “어, 학생, 이봐요!” 하는 불쾌함 가득 담긴 목소리를 도서관 방문 10번에 7번꼴로 들었다. 등 뒤에서 경비원 아저씨가 신분증 좀 보자며 화를 내면 나는 울컥 솟아나는 짜증을 억누르고 학생증을 내밀며, 평소보다 한 옥타브 쯤 높인 목소리로 “저 여자 맞아요.”하고 대답하곤 했다. (사실 이런저런 고민들 속에 나의 성별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결정을 유보하기로 하였으나,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 분에게 “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2로 시작하는 거 맞아요.” 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같은 분이 여러 번 나를 잡아 세우는 걸 목격한 내 애인이 친절하게 ‘얘 제 친구인데, 어제도 확인하셨어요. 이 친구 되게 스트레스 받을 거 같아요.’하고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근데 놀랍게도 그 다음부터 진짜 안 잡혔다. 이 글을 빌려 민망한 감사의 말씀을.)
심지어 이제는 L들이 ‘티부(티 나는 부치)’는 안 좋아한다는 걱정까지 들리곤 한다. 음. 일단 내가 부치인지도 고민을 좀 해봐야겠지만 나는 지금 연애를 행복하게 잘 하고 있으니 이 얘기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짧은 머리 여자(?)로 사는 게 얼마나 불편한 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쓰다 보니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지금 생긴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구구절절 말이 길었다. 나는 내가 머리를 자르고 오면 예쁘다고 해주는 애인의 칭찬이 좋다. 길어도 예쁠거라고 말해주지만 그건 아마 내가 확신이 없어서 못할 것 같다. 나는 지금 내 외모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위해 내 일상생활의 가시들을 참아낼 만하다.
덧. 머리가 짧아서 ‘남자처럼’ 하고 다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게 바지와 치마의 문제라면, 나는 원래 치마를 엄청 싫어했다. 적어도 내 기억 속 일상복 치마는 교복이 처음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대회에 나간다고 드레스를 입게 했을 때도 엄청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하늘거리는 옷과 셔츠, 하이힐과 운동화의 문제라면, 그건 일정부분 짧은 머리에 어울리게 입는 걸 수도 있겠다. 뭐든 잘 어울리고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그게 화장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라면, 나는 아직 별로 화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선크림이랑 CC크림은 바르고 다닌다. 고데기도 하고 다닌다. 사실 CC크림만 해도 한 번 바르기 시작하니까 아무리 바빠도 안 바르면 신경 쓰이던데, 그 많은 화장을 시작하기가 두렵다. 나이가 들어서 주름이 생기면 뭐든 더 바르지 않을까. 이런 질문과 대답 후에 항상 덧붙이는 말이 있다. “네가 정 나를 그렇게 꾸미고 싶다면 막진 않을 테니 네 돈 들여서 해 줘봐.” 아직까지는, 나를 ‘머리 긴 여자’처럼 만드는 데에 자기 돈을 쓰겠다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