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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앙의 달인’ 꿈꾼다 |
‘생활의 달인’에서 이제 ‘신앙의 달인’ 꿈꾼다‘식빵공작소’의 조고운 자매
어른 서너 명이 들어가면 설 자리가 없는 서울 화곡동 ‘식빵공작소’. 도무지 빵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주택가에 작아도 너무 작은 이 빵집이 요즘 난리다. 지난 달 TV ‘생활의 달인’에 ‘서울의 7대 빵집’으로 소개된 이후부터다. 그날 방송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 찾아올 만 했다. 천연 발효종으로 숙성시켜 기포가 터질 듯이 생긴 이곳 빵은, 쫄깃하지만 부드럽고, 찰지지만 촉촉하다. 설탕 대신에 백약초 효소를 넣어 만든 백약초 식빵은 여기서만 맛볼 수 있고, 초코식빵은 뜯으면 결이 살아있어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인터뷰 시간이 오후 4시 반. 이미 선반은 텅텅 비었지만 손님들은 계속 문을 두드린다. “오늘로 다섯 번째 왔다가 허탕”이라고 하소연하는 손님도 두 명 째다. ‘식빵의 달인’으로 소개된 조고운 자매(부천 온누리교회)는 이 모든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감사하다.
“서울의 7대 빵집이라고 소개된 건 좀 와전된 것 같아요. 한 잡지에서 저도 모르게 저희 빵을 7대 빵집이라고 소개했는데 그것이 소문이 나고 생활의 달인에서 취재까지 해갔어요. 그전까지는 그저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작은 단골집이었는데 갑자기 유명해졌어요. 저희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이건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요.” 조고운 자매는 원래 IT쪽에서 일했던 전문직 ‘캐리어우먼’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해서 10년 넘게 일해 왔기 때문에 연봉도 괜찮았다. 그래서 빵집을 하겠다고 했을 때에 어머니가 많이 반대했다. 역시 요리를 했던 어머니 윤미선 권사는 “앞치마 두른 딸” 보기가 안쓰러웠던 것 같다. “원래 빵집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요,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요리 공부을 했어요. 한식, 중식, 일식, 태국요리, 이탈리아요리까지 거의 모든 자격증을 다 땄죠. 마지막이 제과 빵이었는데, 그 자격증을 따고 나서는 ‘해보고 싶다’는 맘이 생겼어요.” 식빵이 끌렸다. 식빵은 그릇과 같다. 안에 넣고 싶은 걸 넣으면 음식이 된다. 얼마든지 다채로운 응용이 가능하다.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주변에서 “좋은 직장 그만 두고 굳이 사서 고생하지 말라”며 많이 만류했지만 어느 날 덜컥, 사표를 썼다. 빵집을 열었다. 사실 무모하긴 했다. 제과점에서 일한 경력도 없지, 빵을 만드는 프로세스도 없지. 그러나 “성격이 단순해서 하고 싶으면 지르는 스타일”의 조고운 자매,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용감했다. “용감한 게 아니라 생각이 없었던 거죠. 사실 무작정 시작한 건 아니고요. 누구 밑에서 배우진 않았지만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집에서 레시피를 다 만들었어요. 요즘 매스컴을 탄 초코식빵, 백약초 식빵 등을 그때 다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만들긴 했지만 궁금했다. 사람들이 내 빵을 좋아할까. 명동 외환은행 앞에 열리는 ‘명랑시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식빵을 꺼내놓았다. 한편으론 두려웠다. 맨 꼴찌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빵 내음과 함께 사라졌다. 한 시간 만에 매진된 그녀의 식빵, 자신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빵집을 열고 보니 현실이더라고요. 사람들은 ‘여기 왜 빵집이 있지?’,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보시곤 했죠. 처음이라 일부러 부담 없는 이곳을 택했지만 너무 상권과 동떨어지다보니 어려움이 따랐죠. 와서 먹어보면 좋다고 하시지만 찾기 힘들어 하는 걸 보고, 내가 너무 만용을 부렸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즈음이었다. 교회를 몇 달째 못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적으로도 많이 침체되어 있었다. 가게를 오픈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집 앞에 교회가 있었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주일이면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자기 전에 드리던 기도 내용이, 4개월 내내 이랬다. ‘하나님, 제발 저를 내일 천국에 데려가주세요.’ “그렇게 어영부영 1년이 지나가면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태신앙이었지만 ‘선데이크리스천’ 비슷하게 지냈던 내가 더 믿음이 나태해지는 게 보였어요. 유치부, 초등학교 때 믿음이 가장 순수하고 좋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심을 하게 됐죠. 방송을 통해 예배 드렸던 교회가 있었는데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었어요. 일부러 먼 그곳을 찾아가 등록하고 새롭게 출발했죠. 그때부터 제 삶의 변화가 시작된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그런 저를 마치 지금까지 애타게 기다리셨던 것처럼요.”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게 된 게 바로 그 때였다. 가게를 홍보하려는 마음도, 그런 여력도 없었던 그녀를 방송국에서 찾아왔다. 처음엔 자랑할게 없다고 거부했지만 계속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했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가게가 난리가 났다. 어마어마하게 손님들이 찾아왔다. 헛걸음하게 할 수 없어서 무리하게 빵을 만들다가 오히려 망치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에 무리를 했더니 더 미안한 일이 발생한 거예요. 그 빵을 다 공짜로 드리면서 생각했어요. 이건 아니구나. 지금은 우리가 맛있게 만들 수 있을 만큼만 만들고 있어요. 헛걸음하는 손님들에겐 미안하지만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빵집을 연 건 아니었거든요.”
자랑스러운 ‘주일은 쉽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조고운 자매는 하나님의 손길을 깊이 체험했다. 너무 놀랐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시는구나!’ “아버지라고 부르면 너무 먼 것 같아 아빠라고 부른다”는 그 ‘아빠’ 하나님이 그녀를 잊지 않고 늘 곁에 계셨다는 걸 실감했다. 돈보다도, 인기보다도, 이것이 더 행복했다. “원래 클래스를 운영했어요. 배우고 싶은 분들을 원데이 클래스로 가르쳐줬는데 요즘은 바빠서 못하고 있어요. 언젠가 스튜디오를 해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요리도 가르쳐드리고 싶어요. 또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 음식뿐만 아니라 파티 문화나 주변 공간을 아름답게 해주는 일도 하고 싶고요. 원래 제가 인테리어를 전공했거든요. 제가 소통하는 걸 좋아해요.” ‘하나님, 저 언제 쓰실래요, 어떻게 쓰실래요?’ 혼자 있을 때면 이렇게 하나님과 ‘장난’하기를 좋아한다는 그녀, 이건 어쩌면 은혜로운 ‘밀당’일 수도 있다. 스스로 믿음도 약하고 부끄러운 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께 쓰임받기 원하는 그녀는,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밤 9시면 취침해요. 새벽 4시부터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반드시 7시간을 자려고요. 그렇게 못자면 다음날 빵이 정말 안 나와요. 빵은 정직해요. 제가 피곤하면 빵도 잘 안돼요. 멀리서 오셔서 그렇게 기다리시는데 빵이 맛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 대신에 제 개인 시간이 없어졌어요. 그래도 감사하죠.” ‘생활의 달인’에서 이제 ‘신앙의 달인’을 바라보는 그녀, 오늘도 그녀의 잘 숙성된 빵은 몇 곱절로 빵빵해진다. 그녀의 꿈도 향긋한 빵 내음과 함께 커져간다. “천국은 마치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는 말씀처럼 그녀의 작은 빵집에서 꿈도, 사랑도 한없이 부풀어간다. 맛있는 빵에 친절한 미소까지, 그녀의 가게 문에 써있는 ‘주일은 쉽니다’라는 말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