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순교자로 알려진 짐 엘리엇은 Wheaton College를 졸업한 후, 에콰도르에 있는 아우카(Auca)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현지에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함께 선교활동을 할 친구들을 모았습니다. 비행기를 이용하여 선교방송과 함께 선물꾸러미를 투하하며 접촉을 준비한 엘리엇과 동료 4명은 1956년 1월 8일 아우카 부족이 살고 있던 지역에 착륙했다가 바로 그날 칼과 창으로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졸지에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온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슬픔을 안고 있는 부인 엘리자벳에게 한 기독교 잡지 기자가 묻습니다. 28살의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가 인디언들이 사는 오지에 갔다가 복음의 열매를 채 거두기도 전에 죽었으니 인생을 낭비한 것 아닙니까? 이에 그녀가 항변합니다. 낭비라니요. 저의 남편은 바로 이때를 위하여 기도해왔습니다. 하면서 그가 쓴 기도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쓸모없는 장작과 같은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소멸되기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오래 살기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인생인데 세상의 것을 붙잡으려다가 영원한 것을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주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제 삶이 쓰임받기 원합니다. 주여, 나를 불태워 주옵소서.’ 인디언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죽었기에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 같고 실패한 선교 같았지만 그의 행적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선교에 대한 뜨거운 불을 지펴놓았습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벳은 남편이 순교한 지 2년이 지난 1958년 가을에 외동딸 밸러리(Valerie)와 함께 죽음을 각오하며 아우카 부족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아우카 족은 남자는 죽이지만, 여자는 죽이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엘리자벳이 그곳에서 열심히 사역한 후 안식년이 되어 돌아간다고 하자, 추장이 잔치를 베풀면서 그녀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자벳은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남자가 제 남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저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우카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이어서 엘리엇과 함께 죽은 선교사들의 가족들이 와서 그 부족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여 년 후, 선교사들의 가슴에 창과 화살을 꽂았던 '키모'라는 사람이 아우카족 최초의 목사가 되었고, 순교한 선교사들의 자녀 중 2명은 그들의 아버지가 순교의 피를 흘린 팜 비치 강가에서 '키모' 목사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잔인하게 잃어야했던 엘리자벳은 남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실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 비전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고통과 분노를 주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바꾼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였고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