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년 유연(劉淵)의 건국에서 439년 북위(北魏)의 통일까지 중국 화북(華北)에 흥망한 5호(胡)와 한인(漢人)의 나라 및 그 시대.
4세기 초엽에서 100 수십 년간 화북에서는 흉노(匈奴) ·갈(羯:흉노의 별종) ·선비(鮮卑:터키계라는 설이 있다) ·저(氐:티베트계) ·강(羌:티베트계)의 이른바 5호가 잇달아정권을 수립하여 서로 흥망을 되풀이하였다. 그 중에는 한인이 세운 왕조도 있고 그 수도 16개국을 넘었는데 이것을 흔히 5호 16국이라고 한다. 이민족(異民族)에 의한 중국지배의 최초의 형태이다. 이보다 앞서 한제국(漢帝國)이 주변의 이민족을 정복하여 한문화(漢文化)를 침투시켜 나가자 이민족의 중국 내륙에 거주하는 자가 늘어갔으나 민족의 자주성을 잃은 그들은 한민족으로부터 갖가지 압박을 받고 노예 ·농노 등으로 전락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은 경향은 위(魏) ·진(晉) 시대에 이르러 더욱 심했는데 크고 작은 반항을 거듭하다가 304년 흉노의 추장인 유연이 팔왕(八王)의 난에 편승하여 거병(擧兵), 산시[山西] 지방에 흉노국가를 재건하였다(漢:뒤에 前趙로 바꿈). 같은 해 저족인 이웅(李雄)이 쓰촨[四川]에 대성황제(大成皇帝)를 자칭하며 나라를 일으켰다. 이어서 서진(西晉) 왕조는 한군(漢軍)에게 수도 뤄양[洛陽]을 빼앗기고 멸망, 강남(江南)에 망명정권이 탄생하였다(東晉). 한(漢:前趙)은 갈족인 석륵(石勒:後趙)에게 멸망되고 후조도 또한 동북방면에서 남하한 선비족의 전연(前燕)과 서쪽의 저족인 전진(前秦)으로 2분되었다.
전연을 평정한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의 치세는 5호시대 중에서도 가장 안정된 시기였으며 그 지배지역은 화북 전토는 물론 쓰촨 ·서역에까지 미쳤다. 다시 동진(東晉) 정복을 꾀했으나 화이허강[淮河] 남안(南岸)의 페이수이[肥水]에서 대패함으로써 멸망, 화북은 다시 후연(後燕:鮮卑)과 후진(後秦:羌)으로 분열하였고 간쑤[甘肅] 방면에서도 여러 민족의 소국가가 분립하여 서로 항쟁하였다. 이윽고 일어난 선비탁발부(鮮卑拓跋部)인 북위(北魏)가 제국가를 평정하고 북량(北凉)의 멸망을 끝으로 이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같은 무렵 강남에서도 송(宋)이 진(晉)에 교체되어 새로운 단계에 들어갔으므로 이 이후를 남북조라 부른다. 오호의 제국가는 호족(胡族) 중심의 국가로 유목사회 특유의 부락제도로 호족을 묶어놓았으나 한족에게는 중국 전통의 군현제(郡縣制)를 적용하여 이른바 호한(胡漢) 2중체제를 실시하였다. 또한 군주 중에는 폭군도 적지 않았으나 한문화를 존중하였고 한족 사대부(土大夫)를 예우하였으며 중국의 왕조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하려는 경향도 강하여 반드시 야만과 무질서만의 시대는 아니었다. 불교에 관심도 많았고 불도징(佛圖澄) ·구마라습(鳩摩羅什) 등 서역승(西域僧)과 도안(道安) 등의 한승(漢僧)이 중국 불교 발전에 기여하였다. 다만 정권의 바탕을 이루는 부락제도의 존재가 국가의 통일성을 저해하였으므로 각 왕조는 모두 단명하였으며 복잡한 정국을 펼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