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안주문(新安朱門)의 동국관향(東國貫鄕)인 능주(綾州)는 산천이 수려하고 인심이 화순(和順)하여 예로부터 예의향(禮義鄕)으로 불려 왔다.
능주대성(綾州大姓)이 주(朱)・구(具)・조(曺) 삼성(三姓)인데 구조 양문(具曺 兩門)의 고로(古老)들이 ‘주정승등’ 이라고 하는 묘소(墓所)는 5세조 여양공묘(五世祖 汝陽公墓(동면철장(東面鐵場))와 6세조 문절공묘(六世祖 文節公墓(능주 회덕동(綾州 懷德洞))를 경칭(敬稱)하는 말이다.
본시 능주(綾州)는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이능부리(爾綾夫里)・연주부리(聯珠夫里)라고 불려 오다가 고려 태조 원년(918년)에 나주(羅州)와 통합(統合)하여 철치현(鐵治縣)이 되었고, 이조 태종 16년(1416년)에 화순군(和順郡)으로 개정(改正), 이조 인조 10년(1632년)에 인헌왕후(仁獻王后) 능주구씨(綾州具氏) 성향(姓鄕)으로, 승서능주목사치하(陞叙綾州牧使治下)로 들어갔다.
유적(遺蹟)을 개관(槪觀)하면 읍(邑) 중앙에 현자각(玄子閣), 봉서루(鳳栖樓)가 있고 문전(門前) 정자각(丁字閣)과 훈련청(訓鍊廳)이 장청(將廳)・장방청(長傍廳)과 연호(連互)하여 그 중앙에 연당(蓮溏)이 있었다.
그 후 객사(客舍)가 보통학교로 바뀌어지고, 동쪽 17정(町) 강변(江邊)에는 300년 전 이조 인조 때의 군훈련각(軍訓練閣)이 오늘날의 영벽정(映碧亭)이 되었고, 서쪽 9정(町)에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이 있다. 남쪽 20정(町) 천태산(天台山) 줄기에 삼충각(三忠閣)과 북쪽 읍접지(邑接地)에 정암 조광조 선생(靜庵 趙光祖 先生)의 적노비각(謫盧碑閣)과 입구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이 비각(碑閣)은 이조 현종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중앙 남서 안산과두(案山過頭)에 300년 전의 빙고(氷庫)가 있고, 동북간(東北間)에 조산(造山)이 되어 있는데 당시 권업관청(勸業官廳)이 있던 곳이다.
이와 같은 옛 유적이 곳곳에 점재(點在)한 능주(綾州)에 태고(太古)의 정밀(靜謐)을 간직하고 말없이 흐르는 영벽강(映碧江)과 그 강줄기에 수려한 모습을 비추고 있는 연주산(連珠山), 즉 우리 주문(朱門)의 도선산(都先山)이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다.
-경지 제5호(1983. 8. 31)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