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질논란 TOP 4, '땅콩회항' 말고 또 뭐가 있나? >
요즘 최고의 화두는 '갑질'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갑(甲)이 있으면 을(乙)이 있는 법. 을은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고객과 손님, 사원과 상사의 관계로 만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상류층의 갑질은 민감한 이슈다. 특히 '땅콩회항' 사건과 같은 재벌집 자제들의 '갑질 횡포'는 사회 특권층에 대한 불신과 비난을 불러 일으킨다.
'땅콩회항'에서 촉발된 '갑질'은 온라인상에서 갈수록 퍼지고 있다. 이전에도 '남양유업 사태', '포스코 라면 상무' , '최철원 맷값 폭행' 등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갑질논란' 사건은 존재했지만, 최근에 있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5가지만 모았다.
1. 땅콩회항 사건
지난달 5일에 발생한 일명 '땅콩회항'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기내 땅콩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륙하려던 비행기를 돌려 박창진 사무장을 하기(下機)시킨것에서 비롯됐다. 오늘 날짜인 15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41일째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중이다. '땅콩회항'과 같은 재벌 3세의 '갑질 횡포'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해당 관련기관들은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지난달 7일 여승무원 등을 폭행하고 사무장을 하기시킨 조 전 부사장을 구속 기소했다. 이어 24일에는 대한항공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고, 이날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 청구 당시 적용했던 항공보안법 항공기항로변경죄·안전운항저해폭행죄,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에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추가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편의를 봐준 국토교통부의 객실업무담당 여모 상무(57)와 김모 조사관(53)도 검찰의 수사망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은 증거 인멸 등과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각각 기소됐고, 오는 19일 첫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조현아에 대한 공판은 오는 19일 오후 2시30분 법원청사 303호에서 진행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땅콩회항' 갑질논란 2라운드가 시작됐다. '땅콩회항' 의 피해자인 대한항공 여승무원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발단은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시작됐다. 이날 방송에선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땅콩 회항' 사건을 다루며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될 당시 포착된 한 여 승무원의 미소가 공개됐다. 박창진 사무장은 이날 방송에서 "여승무원들은 직접 욕설도 듣고 파일로 맞기도 했지만 그런 적이 없다고 진술 했다더라"며 "이 일이 잠잠해지고 나면 모 기업이 주주로 돼 있는 대학교에 교수 자리로 이동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더라"고 주장했다. 해당 방송이 전파를 탄 후 네티즌들은 해당 여 승무원의 미소를 '악마의 미소'라고 비난했다. 또한 네티즌들은 방송에서 공개된 여 승무원의 치열 부분을 바탕으로 해당 인물을 추적하는 등 신상털기를 계속하고 있다.
2. 백화점 모녀
백화점 모녀의 갑질 또한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현대백화점 부천 중동점 지하주차장에서 모녀 고객이 아르바이트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고 폭언을 일삼았다. 주차요원이 차를 빼달라고 50대 여성에게 말했고, 이 여성은 딸이 "아직 (백화점에서) 나오지 않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후 주차요원이 허공에 대고 권투동작을 하자, 화가난 어머니가 주차요원에 거칠게 항의, 무릎을 꿇렸다. 주차요원은 권투동작이 어머니를 향해 한 것이 아니라 "추워서 몸을 풀려는 의도였다"고 고백했으나, 화가 난 모녀는 백화점 VIP를 운운하며 주차요원을 다그쳤다. 이후 백화점 모녀 사건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급속도록 퍼졌고, 급기야는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 경찰은 주차요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마친 상태이고, 이르면 이번주 모녀 중 50대 여성으로 알려진 어머니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3.권기선 부산경찰청장
부하직원을 상대로 막말 폭언을 일삼은 권기선 부산경찰청장 역시 '갑질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7일 오전 열린 간부회의에서 한 총경급 간부가 회의를 주재한 경무관을 통해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의 언행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면서 부터다. 권 청장이 지난해 말 부산경찰청으로 부임한 이후 하급자에게 상습적으로 심한 욕설과 모욕적인 말을 해왔다는 것. 이에 경찰청은 지난 8일 업무추진 과정에서 총경 2명을 질책하고 1명에게 욕설을 한 권기선 부산 경찰청장을 엄중 경고 조치했다. 권기선 청장 또한 9일 오전 부산지방경찰청 브리핑 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잘못된 언행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당사자와 그 가족분들, 그리고 부산경찰 동료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4. 이상봉 열정페이
지난해 10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상봉 디자이너의 청년 노동 착취 논란이 확산되며 이른바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업계의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열정페이는 청년노동자들의 '열정'을 구실로 노동강도는 높이고, 임금은 적게 주는 것을 말하는 신조어다. 논란이 된 사례에 따르면 이상봉 디자인실의 견습 월급이 10만원, 인턴 월급 30만원 등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을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일 패션노조와 청년유니온 등의 단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상봉 회장을 '2014년 청년착취대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퍼포먼스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지난 9일에는 청년유니온·패션노조·알바노조 등 3개 단체가 이상봉 디자이너에게 사회적 협의를 공식 요청했다.
이에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이 SNS를 통해 공개 사과문을 게재했다. 지난 14일 이상봉 디자이너는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저로 인해 상처 받았을 패션업계의 젊은 청년들 그리고 이상봉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말씀드린다"는 글을 공개했다. 이어 그는 "디자이너로서 삶에만 집중하다 보니 회사 경영자로서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며 "이 모든 상황은 모두 저의 부족함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상봉 디자이너는 "이번 일들을 통해서 정말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자숙하겠다"고 전했다.
( 이코노믹 리뷰, 김유영 기자 / 2015. 01. 15 / 기사원문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795 )
< '갑질', 끝나지 않은 신분제 사회의 유습 >
'갑질'과 인격모욕
'갑질'은 갑을관계에서 파생된 말이다. '갑을'은 원래 계약법에서 계약 체결의 당사자인 갑방과 을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계약은 정의상 둘 이상의 독립적인 개인이 자유의사에 의해 대등한 자격으로 체결하는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갑이 거래 관계에서 차지하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을에게 공정치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이것이 바로 '갑질'이다. 만약 갑이 계약에 명시된 한도 내에서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갑이 계약에 명시된 한도를 넘어서 무리하게 권리를 주장하거나, 계약에 명시되지도 않은 의무를 을에게 요구할 때, 이러한 요구와 주장은 타당성이 없는 횡포로 변질되고 만다.
'갑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중 경제적 피해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인격적 모욕이다. 6년 전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탤런트 고 장자연 씨 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연예 기획사 간부들은 수시로 그녀를 불러내 술 접대를 강요하고, 연예 산업 관련 유력자들에게 성 상납을 강요하였다. 기획사 간부들이 한 힘없는 여성에게 '갑질'을 저질렀다면, 이들은 다시 관련 업체의 유력자들로부터 '갑질'을 당한 셈이다.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거래상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하여 정신과 육체를 포함한 을방의 인격을 노예처럼 구속하는 일을 인신예속이라 부른다.
끝나지 않은 신분 사회의 유습
영국의 법제사가 헨리 메인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변화하는 과정을 "신분에서 계약으로" 라는 말로 정리한 적이 있다. 봉건적 신분 사회에서 근대적 시민 사회로의 진입과 더불어, 개인들은 그간 관습이나 법적으로 정당화되어오던 불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대등한 계약의 주체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아직도 봉건 시대의 유습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 신분 사회의 모습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아직 신분제적 유습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봉건적 근대' 또는 '신분제적 민주 사회'라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인다.
근대는 모든 사회적 관계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 간의 계약에 의해 생겨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실제 계약들을 보면, 평등한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계약이라기보다 불평등한 개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리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계약들이 많다. 이러한 불합리한 관계를 보정하기 위해 노동조합, 공정거래위원회, 인권위원회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갑방의 끈질긴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근거 없는 불평등은 제거되어야
'갑질' 논란의 핵심은 근거 없는 불평등에 있다. 일부 종교 전통이나 관념적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절대적 평등은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힘들다. 하지만 평등이 아무리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그대로 묵인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리는 현실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 중 정당화될 수 있는 불평등은 무엇이며,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은 무엇인지, 그리고 불평등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평등 선호의 예설' 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출발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평등은 별다른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데 반해 불평등은 언제나 '정당화의 부담' 을 가지고 있다. 평등한 대우는 그 이유를 댈 필요가 없지만, 불평등한 대우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는 불평등은 그 자체로 부당하거나 부정의한 것이다. 절대적 평등이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이라면, 우리는 "차등을 둘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는 불평등은 제거되어야 한다" 라는 평등관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우리가 비판하고 제거해야 할 것은 '불평등 그 자체'라기보다 '불평등의 근거'에 관한 것이며, 타당한 이유가 없는 모든 불평등은 부단히 고발되고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도덕적 분노 없이는 어떠한 사회적 변화도 생겨날 수 없다." 근거 없는 불평등에 대한 부단한 고발, 그리고 부정의의 시정에 대한 끊임없는 외침만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덜 불평등한 사회'로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
( 네이버 열린연단 : 에세이 시리즈, 이승환 / 원문 - http://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97953&rid=2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