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람에 대하여
1. 오늘은 하느님의 피조물에서 그중 뛰어난 존재이고 , 가장 으뜸이라고 하는 ‘ 사람 ’ 에 대한 설명을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 이렇게 말씀드리면 지난 주간에 말씀드린 ‘ 천사 ( 天使 )’ 라는 표현과 조금 충돌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들으면 좋겠습니다 . 천사나 사람은 모두 다 하느님의 뜻을 대하고 실천하는 존재들입니다 . 그러나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최고의 존재이고 , 사람은 같은 최고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육체 , 시간이 지나면 다시 ‘ 아무것도 아닌 것 (?)’ 으로 돌아가야 하는 특징을 갖춘 존재라는 것이 차이가 있는 대상입니다 . 한편으로는 서글픈 존재이지만 , 그것도 우리가 대하기 나름입니다 .
2. 어째서 사람을 눈에 보이는 뛰어난 존재이고 , 으뜸인 존재라고 말할까요 ? 사실 인간의 어느 구석을 봐도 그렇게 봐줄 모습은 없습니다 . 어리거나 젊었을 때는 아름답고 예쁘다는 소리가 자동적으로 따라붙겠지만 ,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판단에서 멀어지는 모습으로 자꾸만 바뀝니다 . 그 상황을 맘에 들지 않는 표현으로 말하면 ‘ 늙는다 (!)’ 고 하겠지만 , 좋은 소리로 하면 ‘ 원숙 해진다 (!)’ 고 말할 것입니다 . 이왕이면 좋게 생각할 일이지만 , 사람이 생각하는 그 표현만으로 얻고 싶고 설명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
3. 우리가 흔히 아는 4 대종교와 신앙에서 , 그리스도교나 그리스도교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를 제외하면 사람의 시작이나 창조에 대해서 말하는 종교나 믿음은 없습니다 . 이렇게 신앙과 종교에서 ‘ 사람의 기원 / 혹은 / 시작 ’ 에 관해서 언급이 있다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뜻일 것이고 , 종교와 신앙에서 그런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
4. 사람은 흔히 자신이 모르는 것을 연구하고 탐구하고 , 알려고 애씁니다 . 하지만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그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알고 싶다고 바라는 것을 모른다고 해도 세상에서 ‘ 목숨을 유지하는 일 ’ 에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닙니다 . 내가 원하는 것을 신앙이나 종교가 알려주지 못한다면 아쉽다고 말할 것이고 , 그렇게 묻는 알고 싶은 질문에 대답이 없다는 것은 그 신앙과 그 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이 아니라는 정도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
5. 다른 종교와 신앙에 대한 것을 --- 제가 아는 한도에서 ---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 우리 그리스도교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을 찾아볼 시간입니다 . 한 걸음 더 늦게 , 우리 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을 다루기 전에 , 세상의 학문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먼저 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6. 세상을 해석하고 다루는 학문은 흔히 ‘ 진화론 ’ 을 바탕으로 합니다 . 이 진화론의 상대적인 위치는 ‘ 창조론 ’ 입니다 . 창조론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창조론은 모든 것의 기원을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해석합니다 . 당연히 하느님을 전제로 말하기 때문에 , 과학에서는 창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 진화론에서 말하는 내용을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 사람은 수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단세포가 아니가 다세포라는 얘기입니다 . 그렇게 많은 다세포로 이루어진 사람은 그 시작이 ‘ 어머니의 자궁에서 만나는 난자 ( 卵子 ) 와 정자 ( 精子 ) 의 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 생물학에서는 이렇게 사람이 생기는 과정을 말한다고 하지만 , 그렇게 난자와 정자가 합쳐지기 전 , 그보다 앞서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
7. 사람의 시작을 난자와 정자의 합체에서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진화론 혹은 과학의 입장이니 ,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것도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아주 작은 크기의 난자 ( 0.2mm ) 와 난자보다 더 작은 크기의 정자 ( 약 60 미크론 (1 미크론은 100 분의 1mm) 으로 총 길이는 난자의 4 분의 1 ) 가 수많은 가능성과 기능을 DNA 와 RNA 라는 것으로 그 안에 품고 있다고 과학에서는 말합니다만 ,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이 가능한지 , 어떤 힘으로 그렇게 특별한 능력을 작은 크기 안에 갖추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도 아니고 설명을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 그러니까 , 과학에서 밝혀낸 사실은 ‘ 그렇다고 하데 (!)’ 정도일 뿐입니다 . 그 일에 왜 그런 현상이 생겼는지 그 과정이나 목적을 아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알아듣도록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 그렇지만 과학의 기준에서는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 신앙은 그 과정을 설명합니다 . 또한 과학에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의 내용이나 기준에 대해서 단죄하거나 판단하려고 하지만 , 신앙의 기준에서는 과학에서 제시하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다고 말은 하지만 단죄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
8. 또한 과학의 설명은 시기상으로 ,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후의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생물의 진화로 설명합니다 . 사람은 유인원이나 원숭이와 같은 포유류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고 , 그 포유류보다 앞선 대상은 양서류나 파충류를 얘기하며 , 시간적으로 그 앞 단계로 이야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단세포와 다세포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 저도 현실에서는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삽니다 . 그래서 제가 이 시간에 신앙을 중심으로 말한다고 해도 세상의 기준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기에는 불가능합니다 . 하지만 , 저는 사제로 살고 있는 사람이고 , 이 시간은 그리스도교신앙을 설명하는 시간이기에 과학의 기준이나 설명보다는 신앙의 내용을 더 우선으로 말할 것입니다 . 신앙을 대하는 과학의 입장은 자기들의 기준에 일치하지 않는 ‘ 하느님의 존재나 개입을 믿을 수 없다 (!!!)’ 는 것에서 시작하고 거부하며 , 과학에서 말하는 것을 가장 확실한 것으로 여깁니다 . 그렇지만 실제로 과학의 설명역시도 자기들이 말하는 ‘ 중간단계 ’ 가 실존 ( 實存 )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 무슨 자신감으로 신앙에서 말하는 것을 무조건 거부하고 부정하는지 신앙을 먼저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
9. 이래서 과학과 신앙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린다고 말합니다 . 어느 한쪽편의 입장에서 다른 쪽을 완전히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단죄할 수도 없는 것이 정상인데 , 과학은 신앙을 부정하고 단죄하지만 신앙은 그렇게 행동하는 과학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 과학과 신앙의 씨름은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
10. 신앙에서 말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입니다 .
신앙에서 말하는 사람에 관한 기본진리는 ‘ 영혼과 육신의 결합체 ’ 라고 합니다 . 저도 설명을 이렇게 하지만 , 육신 / 육체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니까 안다고 말할 수 있고 그 구조도 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 영혼에 대해서는 달리 말할 방법이 없습니다 . 인간의 감각기관으로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 영혼에 대한 얘기는 신앙에서 말하는 개념일 뿐이기에 과학에서는 말하지는 않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 사전을 찾으면 영혼 ( 靈魂 ) 을 ‘ ③ < 가톨릭 > 신령하여 불사불멸하는 정신 / 영신 ( 靈神 ). ④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 라고 설명합니다 . 여러 가지로 설명해도 세상에 사는 우리가 흔히 앞세우는 과학의 도구로서는 영혼이 어떤 것인지 , 어떤 모양인지 ,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안타깝지요 ? 그런데도 신앙에서는 그 개념을 사용하면서 , 그 대상이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
11. 사람은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대상을 만날 때 , 적당히 도전하다가 물러서고 그러다가 포기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 그 대상이 된 상대방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사용합니다 . 특별히 신앙에 관한 것이거나 , 신앙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신앙에서는 두 번째 태도를 취할 것입니다 . 말 그대로 과학을 앞세우는 태도에서 수긍할 수 없는 것일 테니 , 만일 여러분이 같은 태도를 갖고 이 시간을 대한다고 해도 ‘ 그렇게 대하는 태도는 신앙을 대하는 태도 ’ 로서는 올바르지 않다는 것 외에 따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습니다 .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살아가는 존재라면 , 나와 다른 선택을 할 때 , 그 선택을 바꾸게 할 수 있는 것은 폭력이나 무력인데 , 그것은 말 그대로 세상의 논리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일 뿐입니다 .
12. 영혼이 무엇인지 세상의 논리나 과학의 논리로서는 따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지만 , 신앙에서는 그게 무엇인지 , 그게 어떤 대상인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 사람이라는 존재를 영혼과 육신이 합한 것이라고 한다면 , 만일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 대상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닐 것이고 , 그때 그 사람은 죽은 존재가 되는 것이고 , 세상에서 사멸하는 존재가 되어 , 땅 속으로 가거나 화장하는 일만 남겨둔 상태가 될 것입니다 . 다시 말해서 , 하느님으로부터 온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을 때 , 그 대상은 사람이 되고 , 그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할 줄 아는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 영혼이 어떤 것이며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
13. 세상의 논리에서는 이 영혼이라는 표현대신에 , 정신이나 마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 하지만 표현이 다르니 뭔가 설명하는 의미도 다를 것입니다 . 제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아니니 , 제가 말하고 싶은 것만 표현하겠습니다 . 세상의 논리에서는 영원 ( 永遠 , = ① 한없이 오래 계속되는 일 . ②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일 ) 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 정신과 마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습니다 . 하지만 신앙의 용어에서는 ‘ 영혼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 ’ 이므로 그 존재는 시간에 구애되지 않으며 영원하고 , 사람으로 살 때 함께 머물렀던 육체와 분리되면 하느님의 심판과 판단을 받기 위하여 하느님에게고 나아간다고 설명합니다 . 물론 세상의 논리는 아니기에 , 신앙의 논리와 표현을 세상의 기준으로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느냐 혹은 거부하고 거절하여 내 삶은 그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눈에 보이는 존재로서 끝을 맺는다고 생각할 것이냐의 차이뿐입니다 . 강요할 것은 아닙니다만 , 여러분은 어떤 쪽의 설명에 수긍하십니까 ? 어느 쪽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 어느 쪽에 여러분의 삶을 일치시키겠습니까 ?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사람의 삶은 아주 많은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 물론 선택이라는 말을 강조하다보면 , 신앙에 대한 요소는 사라지고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오류나 잘못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 , 그렇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
14. 최초의 인류에 대한 신앙의 얘기를 다룰 순서입니다 .
최초로 생겼다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까요 ? 아마도 알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 그때는 문자도 없었을 것이고 ,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요즘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교리에서는 최초의 사람은 남자였고 , 그의 이름은 ‘ 아담 ’ 이었다고 말합니다 . 그렇게 최초의 그 대상의 이름을 지은 하느님을 누가 만나서 들은 것일까요 ?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 세상의 논리에서는 사람이 세상에 등장한 것을 꽤나 오래전으로 계산합니다 . 학생시절에는 인간의 등장을 4 만 년 전이라는 소리로 들었던 듯 (!) 한데 , 요즘에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 50 만 년 전 혹은 60 만 년 전 인류의 두개골 뼈 발견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 세상에 인간이 등장한 지 꽤나 오래된 것처럼 말합니다만 , 과학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기준에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
15.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시간에 대하여 , 신앙에서 시간이나 길이를 말하지 않습니다 . 다만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었고 , 그 배우자는 하와였다고 합니다 . 누가 본 사람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 당연히 저도 본 일이 없습니다 . 세상의 과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 아담의 두개골 뼈나 하와의 몸을 이루었던 뼈가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일도 없습니다 . 신앙에서는 그러한 것을 중요한 단서로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아담이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 ‘ 성경에 나오는 인류최초의 남자 , 히브리어로는 사람이라는 뜻 ’ 으로 설명합니다 . 히브리어에서 우리가 아는 흙 (=soil) 은 ‘ 아다무스 ’ 라고 발음합니다 . 그 ‘ 아다무스 ’ 에서 시작된 인간이라고 하여 , 가장 처음으로 등장한 남자의 이름을 ‘ 아담 ’ 이라고 했을 거라는 소리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우리가 구약성경 , 첫째권인 ‘ 창세기 ’ 에서 볼 수 있는 내용에 사람의 창조에
대한 내용이 두 군데 ( 창세 1,26-27 / 창세 2,7) 에 나옵니다 .
16. 두 가지 내용 중에서 이 시간에 말하는 내용과 일치할 내용은 창세기 2 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이 모습도 누군가 관찰하고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준 내용은 아닙니다 . 다만 신앙에서 그렇게 말하는 내용일 뿐입니다 . 사람은 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창세기 2 장의 내용이라면 , 먼저 읽은 창세기 1 장의 내용은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 사람은 세상의 논리에서 말하는 진화의 산물로 아니고 , 다른 동물이나 포유류에서 온전하게 바뀐 것이 아니라 , 하느님의 힘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났으며 , 하느님에게 적용될 존엄성을 갖고 있기에 더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 이런 내용을 말하고 나면 , 진화를 기본으로 설명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가 다른지 설명하지 못하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 물론 어디까지나 보충논리입니다 . 어차피 현재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이 놀라운 사실을 보거나 증언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
17. 남자인 아담은 흙에서 , ‘ 흙의 먼지 (2,7)’ 에서 태어났고 ,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에서 태어났다고 신앙에서 말합니다 . 과학의 입장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소리입니다 . 실제로 남자와 여자의 갈비뼈의 개수가 다른가요 ? 손으로 짚어가면서 세어 본 일은 없습니다만 , 그 일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그 내용은 잘 모르지만 , 성경에서 그 내용을 기록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갈빗대 뼈의 수가 정말로 차이가 있다 (?) 고 하더라도 , 그 내용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 성경기록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 그래서 그 내용을 신앙에서는 ‘ 남자의 보호를 받을 대상인 여자 ’, ‘ 심장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갈빗대 뼈에서 나온 것이 여자라면 그렇게 한 일의 시작이 된 남자의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대상인 존재인 여자 ’ 라는 의미로 해석할 것입니다 .
18. 사람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후 , 그들이 살던 곳을 교리문답에서는 ‘ 낙원 ’ 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 다른 말로는 ‘ 에덴 ’( 동산 )( =Eden, ⦗ 기 ⦘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가 죄짓기 전에 살던 낙원 ) 이라고도 설명합니다 .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 성경도 그 장소가 어딘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 창세기의 이러한 기록은 장소를 알려주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던 곳 ,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구비해주셨고 살게 하신 곳이라는 의미로 알아들으면 충분할 것입니다 .
19. 교리문답 37 항의 내용은 위에서 살핀 , 구약성경창세기의 1,26-27 에 나온 내용을
강조한 표현으로 알아들으면 될 내용입니다 .
이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 진화론의 개념에서 인간이 왜 중요한 대상이고 , 다른 동물보다 더 귀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에 대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 사람이 귀한 존재가 된 것은 그 안에 하느님에게서 받은 모상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는 것입니다 . 모상 ( 模像 ) 은 ‘ 본뜬 상 ’ 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 라틴어로는 ‘ 이마고 데이 (Imago Dei)’ 라는 표현으로 씁니다 . 외국문자 하나 더 쓰는 것이 큰 자랑은 아닙니다만 , 인간이 본래 혹은 태생적으로 갖추지 못한 것을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셨기에 사람이 갖게 된 것이고 , 바로 그것 때문에 인간이 그만큼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 이 은총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 훗날 은총에 대한 설명을 또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겠습니다만 ,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신 은총을 상존성총이라고 한다면 ,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에 우리가 노력을 더하여 좋은 결과를 맺게 하는 것을 조력성총이라고 구별하면 될 것입니다 . 어떤 것이 바로 그 내용에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고 , 제게도 그것을 정확하게 구별할 능력은 없습니다 . 간단하게 문답의 내용으로만 설명하면 , 초성은혜와 과성은혜를 38 번교리문답과 39 번교리문답에서 설명합니다 .
20. 하느님의 은총은 사람들의 삶에 큰 열매를 맺습니다 . 하지만 사람이라는 존재는 왜 그런지 몰라도 처음부터 불완전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 신약성경에 있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사도바오로의 편지 8 장을 보면 ,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다는 안타까운 표현이 나옵니다 .
하느님께서 불완전한 인간을 창조해야 당신의 능력 (!) 을 드러낼 수 있기에 그랬다고 해야 할까요 ? 사람의 감정을 담는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만 , 그것은 지나치게 인간위주로 해석하는 것이 될 것이고 , 실제로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니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가능할 것입니다 . 과연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이 불완전한 존재이기를 바랐을까요 ? 그게 아니었다면 ,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지도 않았어야 하고 , 일정한 기간을 살다가 죽는 존재도 아니었어야 할 것입니다 . 하지만 그 누구도 사람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는 없는 법입니다 . 인간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바라는 것보다는 약하기 때문입니다 .
21.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아담이라는 최초의 사람을 통해서 전체 인류에게 선물을 주시고자 했다는 것이 교회공동체의 시각입니다 . 교리문답 40 번의 내용입니다 . 실제로 우리가 세상에서 바라는 것과는 달리 , 인간에게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중에 악한 사람이 있을까요 ? 당연히 없다고 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온전히 선한 사람은 있을까요 ? 이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중간이라는 대답은 없다고 한다면 ,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만큼 온전하고도 완벽한 모습으로 하느님께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
22. 사람이 선택하는 악과 그에 대한 결과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
사람이 악에 넘어간 일을 묘사하는 창세기의 내용은 첫 인간 아담의 아내 , 하와가 뱀의 꾐에 넘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 남편에게도 주고 , 자기들의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뭇잎을 엮어서 앞을 가리면서 시작합니다 . 성경의 세계에서는 다 드러낸다는 것이 악에서 멀리 떨어진 행동이라고 묘사하는 것이지만 , 실제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
23. 죄는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우기는 것이며 , 그러한 행동이고 , 실행입니다 . 그리되면 당연히 인간은 하느님의 축복에 직접 참여할 수 없고 , 자신이 생각한 올바른 (?) 삶의 방법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사람에게 순명이란 어떤 덕이겠습니까 ?
카페 게시글
교리설명
2015년 교리교안11---사람에 대하여
솔향
추천 0
조회 32
16.03.12 21:13
댓글 0
북마크
번역하기
공유하기
기능 더보기
다음검색